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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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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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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8,436

작성
22.05.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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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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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
10쪽

제 9화

DUMMY

해가 졌다.


여랑성 서문에서 십리 떨어진 숲속 공터.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곳이라 오후에 출발하면 매번 여기서 하룻밤을 지냈다.


경호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 오늘 밤은 여기서 쉽니다.

내일은 해가 뜨자마자 길을 나섭니다. 꾸무럭거리면 놔두고 갈 테니 명심하시오."


스무 명 남짓한 일행은 군데군데 퍼져서 자리를 잡았다.

태승도 구석에 잠자리를 잡았다.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할머니, 물 떠 올게."


태승은 대나무 물통을 들고 개울물을 떠 와, 사온 만두를 먹고 담요로 몸을 감았다.


오늘 하루 많은 일을 겪어, 일찌감치 쉬고 싶었다. 할머니 역시 드러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른 일행들도 저녁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경호원 하나만 술을 홀짝거리며 가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밤중.


천물루의 수사 하나가 바람을 일으키며 야영지로 달려왔다.

얼굴에 짜증이 더덕더덕했다.


"이들이 전부냐?"


불침번을 서던 경호원이 얼어붙어 더듬거렸다.


"예, 예. 수, 수사님. 무, 무슨 일이든 하명하십시오."


"아무 일도 아니니, 시끄럽게 굴지 마라."


수사는 냉랭한 말투로 내뱉었다.


원래는 다 두드려 깨워서 하나하나 심문하듯이 뒤져야 했다.

그랬으면 태승과 할머니는 겁이 나서, 표정에서 티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는 오늘 일이 너무 많아 피곤했다. 사람들 깨우기도 귀찮았다.


구질구질한 차림의 일행을 둘러보는 수사의 눈초리에는 혐오와 멸시의 감정이 역력했다.


'꼴을 보니 찾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어.'


수사는 영력을 끌어올려 일행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러나 1경 연기 중기의 실력으로는 어떤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괜히 아까운 영력을 썼어.'


수사는 몸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경호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남은 술을 들이부었다. 곧 곯아떨어졌다.



경호원이 깊이 잠들자 부도탑에서 그림자 둘이 나와 할머니의 의식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넓은 의식 속에 단단한 성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림자는 성 안으로 넘어 들어가, 유독 색깔이 선명한 구슬만 쓰다듬으며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얘가 수련곡주 태경의 후손이었어!]


[게다가 태가(太家)의 가주였네. 그렇다면 태경 다음부터 여인이 가주가 된 건가?]


[태경은 그날 죽었을 테고, 딸이 대단했었구나. 가주가 되고, 가문을 유지했으니.]


벽신국에서는 여인이 대대로 가주가 되는 가문이 제법 있었다.


대를 잇기 위해 데릴사위를 들였고, 아들들은 가정을 가지면 분가해서 나가야 했다.


[태경 그놈이 욕심이 많아, 법보 여러 개를 빼돌려 자기 집에 가보로 쟁여놓았어.]


[부도탑도 언제 빼돌렸는지.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네.]


두 그림자는 계속해서 기억을 읽어나갔다. 간간히 탄식과 한숨을 쉬면서.


[불쌍한 애야.

남편은 일찍 죽어 달랑 딸 하나. 사위가 죽일 놈이네.

이놈이 가보로 보관하던 법보를 다 들고 튀었어!

애초에 법보를 목표로 결혼한, 이런 나쁜 놈.]


[법보가 없는데 적이 쳐들어오니 막을 수가 없지.

법보 도둑맞은 것을 그때야 알았나봐, 얘도 참 멍청하기는.

결국 집은 불타고, 가족은 다 죽었어.


얘만 가주 전용 전송진(傳送陣 ; 사람을 먼 곳으로 보내는 특수한 진법)을 타고 천리 길을 넘었구나.

부도탑과 손자만 들쳐 업고.]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이야기해 보자.]



할머니의 꿈속에 여인 둘이 나타났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입은 옷이 고대의 복장이라 선조로 짐작되었다.


'뉘신지요?'


[너의 선조 태경의 사부다. 착한 후손아, 그 동안 너무나 고생 많았구나.]


따사롭게 위로하는 말에 할머니의 눈물이 터졌다.


할머니는 꿈속에서나마, 속 시원하게 그 동안의 고생과 설움을 이야기하고 눈물을 계속 흘렸다.


여인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는,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게도 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고생의 끝은 못 보겠지만, 남은 몇 달은 우리를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 거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가문을 이어오고, 한빙종의 명맥 한 가닥을 유지해 온 너의 공로가 크다.

우리가 네 소원을 들어주마.]


할머니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부담 없이 평소의 소원을 말했다.


"헤어져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사위와 아승이 만나게 해 주소서.

나쁜 사위지만 그래도 아승이 애비 얼굴을 한번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찾는 방법이야 있지만, 네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바치겠습니다."


[네 혼이다. 네 혼이 주체가 되어야 사람 찾는 대법을 베풀 수 있다.

다른 것은 모두 우리가 도와줄 수 있지만 이것만은 네 혼이 해야 한다.]


"제 혼이야 얼마든지."


[그렇지 않다.

대법이 끝나면, 네 혼은 고혼(孤魂 : 죽은 뒤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외롭게 떠돌아다니는 혼)이 되어 윤회도 거치지 못한다.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불가능 하지. 그래도 하겠느냐?]


할머니의 대답은 무쇠를 자르듯 단호했다.


"상관없습니다."


[네 각오가 그렇다면, 우리가 가르쳐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소원은?]


"아승은 단 하나 남은 태가의 핏줄입니다.

아승을 돌봐주시고, 태가를 일으키는 큰 인물이 되게 해 주소서."


[도와주마. 저 아이의 능력에 따라 더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지.

이 왕국 뿐 아니라 더 큰 적사제국이나, 홍황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대인물 말이다.]


"감사합니다. 선조님.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소원은 없느냐?

몇 달 남지 않은 여생이라도 호의호식하며 편안히 지내고 싶지 않느냐?]


할머니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눈 가에는 눈물이 다시 고였다.


"몇 달 뒤 죽으면 썩어질 몸. 후손에게 그따위 것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손자 녀석이 잘 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생사를 초월한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에게서 의연한 기품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과연 태가의 가주며, 우리 후손이다.

네 기개가 가상하다.]


여인은 감탄하며, 노란 구슬을 집어 들어 쓰다듬고 흔들었다.


할머니의 의식 속에 어릴 적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도와 석판.

돌로 된 판에는 여섯 개의 구결(口訣 ; 외우기 쉽게 요점만 쓴 짧은 문구)이 기록되어 있었다.


[네가 어렸을 적 보았던 것이다.

실물은 없지만 네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 다행이구나.


지도에 표시된 이곳으로 가라.


안개로 인해 진입이 대단히 어렵지만 다섯 구결을 차례대로 운용하면 가능하다.


단, 저 아이의 힘으로 가야 한다.

저 아이가 큰 인물이 되기 위한 첫 훈련이다.


다섯 구결을 아이에게 단단히 기억시키고, 네가 격려하여 반드시 성공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성공하게 만들겠습니다."


[마지막 한 개의 구결은 저 아이의 부친을 찾는 방법과 관련 있다.

기억했느냐?]


"예. 그런데 선조님, 저 곳이 어딥니까?"


[항상 안개가 자욱한 계곡.

이름이 바뀌었을 테니, 주변 천리 이내에 그런 계곡을 찾아서 머릿속의 지도와 비교해 보거라.

그 곳으로 들어가려면 하지 정오에 솜옷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예. 선조님,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끝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태승이 울고 있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 꿈 꿨어?"


할머니는 벌떡 일어났다.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손자를 얼싸안고 뺨에 마구 입을 맞추었다.


"아이, 씨. 그만하고 얼굴 닦아. 눈물로 엉망이야."


태승은 좋으면서도 투덜대고는, 물통을 들고 일어났다.


할머니는 태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요성으로 가서, 안개 계곡 위치를 알아봐야겠다.

출발할 때는 단단히 준비해야지.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니까."



두 달 후.


천 년 내내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계곡.


기이하게도 안개는 다른 곳으로 퍼지지도 않고, 마치 용처럼 계곡 속을 굽이치듯 드나들었다.


호기심에 들어갔던 사람들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안개용이 사람을 잡아먹는 무룡곡(霧龍谷)이라 부르며 얼씬도 하지 않았다.


천 년 전의 전투는 그냥 옛날이야기로 남았다.


두 달 전 지진으로 인해 결계에 실금이 생겼고, 그곳을 통해 안개가 조금씩 새어나가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하지 정오.


무룡곡 입구.


태승은 지팡이를 짚고, 커다란 대나무 배낭을 짊어졌는데 두 달 전보다 키가 훌쩍 커졌다.


할머니와 손자는 두 달 동안 은전 열 냥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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