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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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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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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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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9쪽

제 4화

DUMMY

태승은 벌판의 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또래보다 훌쩍 큰 키. 체격은 호리호리했지만, 옷 밖으로 드러난 팔과 다리는 쇠몽둥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짙은 눈썹과 뚜렷한 눈동자, 꾹 다문 입술이 범상치 않았다.


아삼 옆의 뚱보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재가 태승이지?"


"응. 내 친구야."


"사냥을 그렇게 잘한다며?"


"그러엄! 그래서 큰 형들이 데리고 다니잖아."


아룡이 코를 훌쩍이며 끼어들었다.


"근데 노망난 할머니랑 같이 살아."


"늙으면 다 그런거야. 아룡,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던데.

야, 아두. 말 시키고는 너 혼자 다 처먹냐? 옆 동네에서 왔으면 눈치있게 굴어."


"아, 진짜. 쥐새끼 몇마리 가지고 졸라 치사하네."


"이 새끼가."


고기 먹어 힘도 났겠다, 자연스레 투닥투닥 하기 시작했다.



태승은 반나절을 걸어 흑산에 도착했다.


하늘을 보니 태양은 서쪽으로 절반쯤 넘어갔다.


붉은 태양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검은 산.


이곳의 흙은 유달리 검었고, 흙에서 자란 나무의 잎과 줄기 역시 거무스름했다. 멀리서 보면 벌판위에 검은 삼각탑이 삐죽 서 있는 것 같았다.

시커먼 색이 불길해보이고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애들은 못 들어가게 했다.


흑산의 나무나 풀이 입에 맞지 않는지, 토끼같은 작은 짐승이 별로 없었다. 자연히 작은 짐승을 먹고사는 맹수가 있을리 없었다.

대신 뱀이나 새는 흔했다. 초보 사냥꾼에게는 딱 좋은 사냥터였다.


중급 영수가 웅크리고 있어 땅이 시커멓고 맹수들이 접근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다가, 사냥꾼 대장의 욕만 들어먹었다.


"영수가 중급이면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야!

중급 영수 한 마리가 날뛰어도 여랑성같이 작은 성은 순식간에 가루가 된다고. 작은 흑산은 하품 영수도 안 쳐다 봐.

야, 이 중에서 나 말고 하품 영수라도 구경해 본 놈 있어?"



산 초입에 들어서면서 태승은 주위를 살폈다. 풀이 밟혀 꺾였거나, 나뭇가지가 부러졌거나, 사람 발자국이 찍힌 흔적을 잘 살폈지만 전혀 없었다.


"다행이네. 오늘 전부 퍼마시며 논다더니."


태승은 그래도 혹시 형들이 있는가 두리번거리며 산을 올라갔다. 맹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흑산 주위에서 맹수는 별로 없었다.

맹수보다 형들이 더 무서웠다. 재수없게 산에서 맞닥뜨렸다가는 끌려가 짐꾼 노릇만 하게 되니, 주위를 살핀 것이다.


태승은 들킬까 불안하고 짜증 났다.

그동안 형들 사냥에 따라갔다가, 개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이가 부드득 갈렸다. 짐을 들어 줬으면, 사냥 끝나고 뭐라도 줘야 하지 않는가.


"나쁜 놈들. 쥐꼬리 하나도 안 주면서, 데려가서 종 부리듯 일만 시켜. 이제는 네놈들과 사냥 안 가. 퉤. 퉤."


욕하고 침까지 뱉고나니 속이 시원했다. 이미 길을 익혔고, 눈썰미로 형들의 사냥방법도 다 알아냈다.


"나도 혼자 잡을 수 있어. 내가 잡은 것을 왜 지들에게 줘야해?"


태승은 형들과의 사냥을 때려치웠고, 형들이 불러도 씹어버렸다. 형들이 멀리 보이면 아예 피했다.



짙은 풀 냄새. 선선한 바람. 상쾌한 기분에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러나 해가 기울어져 가면서 추워지기 시작했다. 산에서 기온은 빨리 떨어진다.

태승은 등짐에서 솜옷을 꺼내 입고, 다시 걸었다. 저번에 봐둔 흑시조 둥지로 가는 길이었다.


빽빽한 숲을 헤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몇 개나 넘어 둥지 근처에 도착했다.

태승은 흑시조가 둥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흑시조가 알을 부화시키는 계절.


태승은 흑시조에게 돌을 던졌다.


푸드덕.


놀란 흑시조가 반사적으로 날아올랐다. 태승은 달려가서 둥지에서 알 두 개를 꺼냈다. 따뜻했다.


"미안해. 대신 넌 안 잡을께. 잔뼈가 너무 많아 할머니가 드시기 힘들거든."


태승은 알을 품에 넣고 계속 올라갔다.


중턱부터는 숲이 사라지고 암벽과 절벽투성이였다. 암벽도 암석도 모두 검은 색이었다. 이런 곳에서만 사는 흑백쌍두사는 비싼 약재다. 쌍두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새의 알.


태승은 길목으로 추정되는 어림에 알을 깼다. 비릿한 노른자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다.


"냄새 맡고 어서 오렴."


태승은 손도끼로 굵직한 나뭇가지를 자르고 끝을 인(人)자로 벌렸다. 여벌로 나뭇가지 두개를 더 만들어 암벽 위에 엎드렸다.



만룡산맥 너머의 끝없이 황량한 땅.

오늘도 서로 죽고 죽이며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 종족들은 하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멍이 생겼다.

구멍은 강력한 흡입력을 발생시켜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평화롭게 흘러가던 구름이 휘몰아치며 구멍으로 모여들었다.

구멍을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주위로 다가온 구름들은 구멍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들어갔다.


구름이 사라진 하늘에 붉은 태양과, 그 옆에 검은 구멍 둘 만 존재했다. 마치 하늘에 붉은 눈과 검은 눈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검은 구멍이 태양을 향해 움직이더니 일식처럼 태양을 가렸다. 하늘이 어둡게 변했다.

일식은 아니었다. 하늘에 생긴 검은 구멍의 위치와 태양의 궤도가 우연히 일치된 것 뿐이었다.


하늘에서 어두움이 내려와 땅을 뒤덮었다. 광대한 대지가 전부 어두움에 잠겼다.


꽈르르릉!


천둥이 울렸다. 비구름이 없는데도 천둥이 울리더니, 금색 번개가 땅을 내리쳤다. 한 가닥, 두 가닥이 수십 가닥의 번개로 늘어났다. 마치 하늘에 금색 그물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먹이를 뜯다 으시시한 느낌이 든 수많은 요족, 마족, 짐승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오오오!


불길한 괴성과 함께 하늘의 검은 구멍에서 큰 성 만한 운석이 낙하했다. 운석은 낙하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발생했다.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은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모든 짐승들은 불길한 느낌에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땅으로 떨어지는 운석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운석이 집채만큼 줄어들었을 때, 땅과 부딪쳤다.


꽈과과광!


어머어마한 굉음과 함께 땅 거죽이 바다처럼 파도쳤다. 혜성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반경 백만 리에 파문이 생기고, 파문을 따라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땅 밑에 만장 깊이의 절벽이 수천 개 생겨났다.


수억 마리의 요족, 마족, 짐승들이 지진으로 생긴 균열속에 떨어져 죽거나 땅 속에 갇혔다. 구슬픈 비명 소리가 천지를 채웠다.

간신히 살아남은 것들은 죽을 힘을 다해 사방으로 도망쳤다.


갑자기 죽어 원통한 혼백들이 지하에서 마구 엉겼다. 악한 원한이 겹치고 겹쳐, 찐득한 악념으로 변했다. 악념은 지하를 흘러다니며 닥치는 대로 악으로 오염시켰다.



만룡산맥 부근, 요족의 거주지에서도 최고 중심부에 위치한 구십구층 흙탑.

거대한 흙산같은 탑 꼭대기는 요족 성황(聖皇)의 거주처였다.


수천년 전부터 요족들에게 추앙받는 최상위 요물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에 언듯 언듯 보이는 열 한개의 입과 구십 아홉개의 꼬리가 기괴하고 섬찟했다. 그러나 얼굴만큼은 요염하리만큼 아름다워, 하급 요족들은 그 미모에 홀려버렸다.


"성황이시다! 성황께서 나오셨다!"


모처럼 요족성황이 모습을 보이자, 흥분한 요족들은 개미떼처럼 탑으로 몰려왔다.


성황은 스물 두 개의 손을 우산살처럼 들고, 아래를 굽어보며 외쳤다.


"기다리던 큰 지진이 일어났다.

나의 아이들아, 십 년만 기다려라. 십 년 뒤, 안개가 산맥을 넘어 여기까지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안개 길을 타고 넘어 인간들을 쓸어버리고, 야들야들한 인육을 질리도록 먹게 해 주마."


"성황 만세! 만세! 만만세!"


탑 아래 모인 수억 마리 요족들이 무릎꿇고 탑 꼭대기를 향해 경배를 올렸다. 요족들의 눈은 맹목적인 숭배감과 황홀감,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아직도 캄캄한 밤 하늘을 우러러 보며, 성황은 요사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마저 유혹적이었다.


"욕심많은 인간족들아, 내가 천옥미환진을 너희들에게 전수해준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 오호호호호."



지진의 한 가닥은 만룡산맥까지 뻗어나가, 만룡산맥의 뿌리를 건드렸다. 안개가 자욱한 수련곡도 영향을 받아 크게 흔들렸다.


수련곡 지하 깊은 곳에 설치된 천옥미환진의 주춧돌이 움직였다. 주춧돌 속에 자리잡은 최상품 법보의 위치가 삐끗했다.


이 때문에 수련곡 결계에 머리카락보다 더 가느다란 실금이 생겼고, 안개가 그 틈으로 미세하게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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