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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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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436

작성
22.05.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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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 10화

DUMMY

태승은 한 겨울 솜옷으로 갈아입어, 이마에서 땀이 물처럼 흘렀다.

그러나 아랑곳 하지 않고 계곡 안을 노려보았다.


계곡 안은 짙은 안개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의 길만 조금 보일 뿐.


태승이 고개를 뒤로 돌려 배낭을 보았다.


"할머니, 입구야."


배낭 속에서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파리한 안색. 목소리도 힘이 없었다.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할머니가 너무 쇠약해져서 태승은 할머니를 대나무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왔다.


"아승, 다 기억 했지?"


"응."


"그럼 됐다. 들어가자."



계곡 안으로 몇 걸음 옮기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무더위가 싹 가셨다. 들어갈수록 더 추워졌다.

태승은 걷었던 소매 단을 풀었다.


'이래서 한 여름에 솜옷을 입고 오는 거구나.'


밖은 한여름인데 이곳은 한겨울이었다.


태승은 신수결로 숨을 고르게 하여 천천히 걸었다.

몸이 따뜻해졌다. 추위도 견딜 만 했다.


추위보다 더 성가신 것이 안개였다.


보통 안개와 달리 끈적거리며 달라붙었다.

가만히 있으면 팔과 다리에 거미줄처럼 감기는 것 같아, 여러 번 털어내었다.


길이 보이지 않아 안개를 양손으로 밀어헤쳐 길을 열었다.

그래봤자 일장(약 3m) 앞 까지만 보였다.



태승과 할머니가 점점 더 들어가자, 계곡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눈을 떴다.


그것은 붉은 눈알을 굴리면서 생각했다.


[인간 둘.

인간은 거의 오백년 만이네.

영력도 없는 범인(凡人 ; 보통 사람)인데, 왜 들어왔지? 길을 잃었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밖은 밝은 대낮인데 계곡은 온통 흐렸다.

하늘도 먹구름이 끼어 시커멓게 변했다.


어떻게 된 계곡이 짐승이나 새 울음소리, 하다못해 곤충의 울음소리조차 없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소리는 안개가 흡수했다.


소리 없는 막막한 공간속을 걷다보니 태승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멍해졌다.

발만 무의식중에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 냄새도 났다. 짙은 냄새로 봐서 큰 짐승 같았다.

태승은 정신이 번쩍 났다.


'짐승 흔적은 없었는데. 제기랄.'


걸음을 멈추고 품속의 단도를 꺼냈다.


태승은 주위를 살폈지만 짐승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딱.


할머니가 뒤통수를 때렸다.


"집어넣어. 잘못하면 네 칼에 다쳐."


"그래도 짐승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짐승이 굶어 죽으려고 먹을 것 하나 없는 이 계곡에 들어오겠니.

할미 말 잊었어?

제일 첫 구결이 뭐라고 했어?"


"길이 끊어지면 눈을 감아야 길잡이 짐승이 보인다.

길잡이 짐승을 따라가되, 모두 환상임을 명심하라."


태승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길 찾으려면 눈을 감아."


'눈을 떠야 길을 찾지. 말이 안 맞잖아.'


태승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단도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눈을 감자마자 저만치에 회색 덩치가 보였다.


"늑대다!"


태승은 번개처럼 빠르게 단도를 꺼냈다.


자기도 모르게 부릅뜬 눈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안개와 나무들 뿐.


'늑대가 이렇게 빨랐던가?'


다시 눈을 감은 태승.


회색 털의 커다란 늑대가 시뻘건 입을 벌리는 것이 보였다.


태승은 기겁해서 눈을 떴다. 그러나 눈앞에는 안개와 나무 뿐.


사방은 조용했다.

늑대가 움직이는 소리도 전혀 없었다.


태승은 단도를 붙잡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늑대 한 마리가 십장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았는데도 어떻게 보이는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위험한 것은 늑대.


태승은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태승은 눈앞의 나무들을 기억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앞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 감기 전에 보았던 나무들은 눈을 감아도 그대로 보였다.

안개가 보이지 않아 시야가 되레 훤했다.


그리고 십장 앞에서 송아지만한 늑대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태승은 다시 눈을 뜨고 조금 전의 현상을 되짚어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머니 말이 맞네.

눈을 감으면 늑대가 앞에 있는데, 눈을 뜨면 없어져.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러니까 할미 말을 들어야지.

전부 헛것이라니까.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응. 그랬지. 그런데 아니네."


태승은 침을 꿀떡 삼켰다.


헛것이 보인다는 할머니 말을 믿지 않았는데, 다가왔던 늑대는 너무나 진짜 같았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태승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 눈뜨고 싶지만 참았다. 진짜 늑대인지 궁금했다.


눈을 감자 늑대가 가까이 오는 것이 보였다.


늑대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서는 입을 벌렸다.

시뻘건 입 속의 날카로운 이빨이 무시무시했다.

벌어진 입가로 침이 줄줄 흘렀다.


늑대를 본 태승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사실 늑대 한 마리 정도는 단도와 지팡이를 들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늑대가 바싹 다가왔는데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목숨을 내 놓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늑대가 뒷발로 일어섰다.

앞발로 태승의 어깨를 짚고, 혓바닥으로 태승의 이마를 핥았다.

강렬한 늑대 냄새가 너무도 구역질나고 싫었다.


코에 늑대의 코가 닿았다.

축축한 느낌에 저절로 몸서리를 쳤다.

아무리 헛것이라고 하지만 열세 살 소년이 견디기는 무리였다.


"와아아악!"


태승은 비명을 지르며, 양손을 마구 뿌리쳤다.

눈이 저절로 떠졌다.

여전히 눈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허탈했다.


"빌어먹을. 간 떨어질 뻔했네."


태승은 헐떡이며 지팡이를 굳게 잡았다.

숨을 고른 다음에 보니, 왼손 끝이 단도에 베여 피가 났다. 쪽팔렸다.

태승은 다친 손가락을 입에 넣어 빨면서, 퉁명스레 물었다.


"할머니, 눈뜨고 길 찾으면 안 돼?"


"못 찾아.

끝없이 가다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 이 녀석아."


일단 진(陣) 속으로 들어오면 앞을 가리는 안개 때문에 길을 못 찾는다.

끝없이 비슷한 자리를 맴 돌기 때문에 금방 체력이 떨어진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짐승의 환상이 덮쳐서 잠을 못 잔다.


며칠만 지나면 웬만한 사람은 말라죽는다.

진의 힘이 억누르기 때문에 내공이나 영력을 펼치기도 어렵고, 펼쳐봤자 안개가 다 흡수해서 소용이 없다.


"되돌아가면 되잖아."


"뒤를 보렴. 입구도 이젠 못 찾아."


태승은 뒤를 돌아다 봤다.


뒤도 역시 안개가 꽉 차 있다.

걸어왔던 길은 흔적도 없다.

안개로 완전히 포위되어,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


태승은 눈앞이 깜깜했다.


"아이 씨. 괜히 이런 데 데려와 가지고."


"할미 말 믿어.

눈 감고 길 찾으면 반나절 안에 도착한다.

거기 가면 너한테 좋은 게 많아.

할미 죽기 전에 어서 가자."


할머니는 태승을 달래고는 눈을 감았다.

차가운 기온 탓에 안색은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에 태승은 울컥했다.


어릴 때부터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할머니였다.

죽을 만큼 힘든데도 자신에게 좋은 것이 많다고, 어서 가자고 하시는 할머니.


지친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태승은 결심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길을 찾아야 한다.

태승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소매 단을 뜯어 눈 주위를 칭칭 감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다시 늑대가 보였다.


늑대는 오른쪽 종아리에 대고 입을 벌렸다. 늑대를 벌써 네 번째 본다.


익숙해졌는지 태승은 조금 덜 떨렸다.


'할머니 말이 맞네.

진짜 늑대 같으면 벌써 물어뜯었겠지.'


긴장이 풀어지면서 태승은 할머니가 가르친 두 번째 구결이 기억났다.


<짐승이 덤벼드는 방향이 맞는 길이다.

짐승을 향해 걸음을 옮겨라.>


"아, 씨. 그걸 어떻게."


늑대는 간을 보려는지 혀로 오른쪽 종아리를 핥았다.

까칠까칠하고 뜨거운 늑대의 혓바닥 감촉에 소름이 짜르르 돋고, 전신에 전율이 치달았다.

금방이라도 오른쪽 종아리가 늑대 이빨에 아작 날 것 같았다.


태승은 늑대의 주둥이를 걷어차고 도망치고 싶었다.


"할머니 말이 틀릴 리가 없다. 믿자."


겁이 났지만 태승은 할머니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이를 악물고, 온 몸에 힘을 주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뜨지 않았다.


태승이 늑대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늑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앞의 행동이 공포에 대한 방어라면 뒤의 행동은 공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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