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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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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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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8,436

작성
22.05.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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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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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10쪽

제 11화

DUMMY

늑대가 다리를 건드릴 때 마다 태승은 죽음의 공포로 떨었다. 죽는다고 생각되자 별 별 잡념이 다 떠올랐다.


'틈을 봐서 단도로 늑대 숨통을 끊어야지.

할머니를 늑대 밥이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돼.

아, 물리면 졸라 아플 거야. 괜히 여기까지 고생하며 왔네.

여랑성에 그대로 있었으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을 텐데.

아룡, 아삼, 이 녀석들 또 싸우고 있겠지.'


생전 처음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친 태승.


두려웠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견디고 또 견뎠다.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시간이 흐르자 태승은 추위와 탈진으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일각이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늑대는 물어뜯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의 공포는 옅어졌고, 두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칼로 죽기보다 공포 때문에 더 빨리 죽는다는 할머니 말이 딱 맞네.


그래! 물어 뜯겨 죽더라도 겁쟁이처럼 죽지는 말아야지. 나 혼자는 안 죽는다.'


마음을 정하자, 공포가 가라앉았다. 차분해진 태승은 단도를 굳게 잡았다.


태승의 마음이 변하자, 태승 주변의 기(氣)가 미묘하게 변했다. 이에 맞춰 늑대의 움직임이 더 무섭게 변했다.


늑대는 혀로 태승의 오른쪽 종아리를 핥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앞발을 들어 태승의 오른쪽 어깨를 짚고 입을 들이댔다.


태승의 목 줄기가 늑대의 입 안에 들어갔다. 늑대의 이빨이 닿는 감촉이 끔찍했다.

그러나 늑대는 물지 않고, 혓바닥으로 목을 핥았다.


핥고 또 핥았다. 장난치는 것 같았다. 늑대의 지독한 누린내에 치가 떨렸다.


태승은 늑대의 장난감이 된 느낌이 들어, 오기가 솟구쳤다.


"개 같은 짐승이 나를 가지고 놀려고 들어?"


태승은 과감하게 오른 쪽으로 몸을 틀었다.


늑대가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 입을 크게 벌려 으르렁 대었다.

더 다가오면 정말 물어뜯을 것 같았다.


그러나 태승이 늑대를 향해 과감히 몇 걸음 더 나아가자 늑대가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랬구나! 역시 헛것이었어. 하아."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태승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낭이 땅에 부딪쳤다.

태승이 갑자기 주저앉는 바람에 할머니의 엉덩이가 아팠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숨죽여 기쁨의 눈물을 참느라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첫 관문을 통과한 손자가 너무 대견했다.


'기특한 놈.'


무요성에서 두 달 동안 걸어오면서 할머니는 여섯 구결 중 다섯 구결만을 끊임없이 태승에게 되뇌었다.


그리고 방금 손자가 첫째와 둘째 구결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면 나머지 네 구결도 거짓이 아니라는 것.

할머니의 가슴은 희망에 부풀었다.


"후아, 힘들어."


태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사가 달려있어 극도로 집중한 탓에,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팠다.


천옥미환진은 들어온 사람의 의식 수준에 걸맞게 환상을 피워내어, 죽기까지 사람을 몰아붙였다.

진의 설치 목적은 진속에 들어온 인간이 공포를 이겨내고, 나아가 공포를 공격하도록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이었다.


일단 진속으로 들어오면 모든 영력을 사용할 수 없어, 보통 사람과 같은 조건이 된다.

심지가 연약해서 환상을 이겨내지 못하면, 영력이 높아도 의식이 붕괴되어 스스로 허물어진다.

반면에 보통 사람이라도 굳센 심지를 가지면 환상을 이겨낼 수 있다.


한빙곡주는 고위층 요족에게 제자들 훈련용 핑계로, 엄청난 보수를 지급하고 천옥미환진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매년 제자들이 진을 통과하도록 지시했지만, 속셈은 달랐다.

주목적은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였다.


환상 속에서 목숨이 위험한데도 법력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의식만으로 환상을 이겨내면 의식이 강화되고 수련 경지가 크게 상승한다.


한빙곡주는 이러한 수련을 통하여 의식을 크게 단련했고, 의식이 강화됨에 따라 법력도 대단히 증가했다.


여기에 자신이 생겨 한빙종이라 칭했다. 상승한 그의 경지는 현무종의 고위 수사 수사들 수십 명과 같이 죽을 정도였다.


이렇게 대단하므로 그림자가 할머니에게 태승의 첫 번째 훈련이라 한 것이었다.


천옥미환진의 환상을 통해 죽음을 뼈저리게 경험한 태승의 의식은 강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태승의 의식 평야가 크게 확장되었다.

평야가 확장됨에 따라 평야 위의 성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성벽이 다시 세워졌다.


새로 세워진 의식의 성벽은 더 큰 면적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더 높고 더 견고했다.


생사와 관련된 감정도 성벽을 쉽게 넘지 못하고, 의식을 흔들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다.



한 고비를 넘기니 태승의 긴장이 풀어졌다.


"아, 단 게 땅기네."


극도로 신경 쓴 뒤라 단것이 먹고 싶었다.

태승은 품 속의 볶은 콩을 입에 잔뜩 넣어 씹었다.

고소한 맛에 기운이 났다.


태승은 한참을 쉬고 일어났다.

오른 쪽으로 계속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늑대 두 마리가 좌우 양쪽에서 달려왔다.

다시 할머니가 말한 세 째 구결이 떠올랐다.


<여러 마리가 나타나면, 가장 살기등등한 놈의 방향이 맞는 길이다.

어느 놈이 가장 살기(殺氣)가 짙은지 찾아라.>


사람은 본능적으로 위험과 살기 앞에 몸을 사린다.

그러나 필요하면 본능을 이겨내고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법.


천옥미환진은 환상을 통하여 들어온 사람의 의지를 단련시키려 하였다.

또한 살기를 느끼는 훈련도 겸했다.


태승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늑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발치까지 다가온 두 마리 모두 태승을 한입에 삼킬 듯 으르렁거렸다.


시끄러운 늑대의 짖는 소리와 강한 냄새가 귀와 코를 막히게 만들었다.


"실감나네. 진짜 같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속아 넘어가겠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태승은 좌우에서 으르렁거리는 늑대를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왼쪽 늑대에게서 더 섬뜩하고 진저리칠 만큼 지독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살기라는 것이구나."


천대와 멸시는 여러 번 받아봐 익숙했다.

그러나 정면으로 받는 살기는 처음이었다.


"우욱, 졸라 무섭네."


살기는 피부를 찌르는 것을 넘어, 내장까지 꿰뚫는 것 같았다.

속이 뒤틀리고 토가 나오고 비지땀이 흘렀다.


태승은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찢어죽일 것 같은 기세에 오금이 덜 덜 떨리고,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태승의 마음 한 구석에서 오기가 솟구쳐 올랐다.


"씨, 헛것에 왜 이리 겁먹어!"


겁이 나서 다리가 얼어붙을 지경이지만, 태승은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한 발 앞으로 가자 늑대는 뒤돌아서 사라졌다.


"휴우. 맞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왼편으로 걸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비트적거렸다.


일각 쯤 걸었을까, 태승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미치겠네."


으르렁!


땅을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집채만 한 호랑이 다섯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순간 태승은 뒷걸음질 칠 뻔 했다. 간신히 마음을 붙잡고 견뎠다.


빠르게 다가온 호랑이는 마차 바퀴만한 대가리를 들이밀고 울부짖었다.

흉포한 눈알은 주먹만 했고, 누런 바탕에 검은 줄이 난 이마에는 왕자가 선명했다.

수박도 단숨에 들어갈 입을 크게 벌리고 태승을 삼키려 들었다.

송곳보다 굵고 큰 이빨이 숭숭 난 시뻘건 입 속.


태승의 머리는 가장 먼저 달려든 호랑이의 입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역겨운 호랑이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정도였다.


태승은 환상인줄 알지만 너무나 오싹했다. 오줌 쌀 것 같았다.


"씨, 맘대로 해! 잡아먹든지 말든지."


태승은 바지춤을 끌러 오줌을 쌌다.


호랑이는 태승의 주위를 빙 빙 돌며 으르렁거렸다.


호랑이의 살기는 엄청났다.

살기가 너무나 강해서 형체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늑대의 살기 따위는 비교도 안 되었다.


태승은 공포를 견뎌내면서, 가장 강한 살기를 찾았다.


정면의 살기가 가장 매서웠다.

태승은 과감하게 앞으로 한 걸음 걸었다.

그런데 늑대와 달리 호랑이는 없어지지 않았다.

태승의 주위를 계속 맴돌면서 으르렁거렸다.


“이상하다.”


앞으로 한 걸음 또 가려는데, 갑자기 살기가 움직였다.

살기가 오른 쪽으로 옮아갔다.


'살기가 움직이기도 하는구나.'


태승은 살기를 따라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한 걸음을 더 나아가니 이번에는 살기가 왼쪽에서 느껴졌다.


재빨리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호랑이들이 사라졌다.


"이제 알겠다. 자신 있어."


요령이 생겼다.

이제는 아무리 무서운 짐승이라도 겁이 날 것 같지 않았다.


태승은 혼자 중얼거렸다.


"겁먹을게 없지. 전부 헛것인걸."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일단 나타나면 살기의 방향부터 찾으면 된다.


태승은 자신 있게 걸음을 옮겼다.


등에 매달린 할머니도 태승의 가벼운 발걸음을 느꼈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할머니의 입에는 미소가 어렸다.


'장하다.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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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 5화 +2 22.05.12 2,524 5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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