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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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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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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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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8,436

작성
22.05.1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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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10쪽

제 8화

DUMMY

할머니는 태승의 바짓단을 잡아끌었다.


"뭘 멍청히 서있는 거야. 어서 선조님의 혼백께 절을 올리고 사죄드려. 어서."


할머니의 잔소리에 못 이겨 태승은 절을 올렸다.


잠시 후, 할머니는 부도탑을 제자리에 놓고 다시 한 번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태승의 옆에 다가갔다.


"아승아, 차라리 잘 되었다. 영핵은 잊어버려라. 선조님께서 나중에 주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자.

착하지."


태승의 입은 잔뜩 나와 있었다. 할머니는 태승을 달랬다.


"할미랑 나가서 흑백쌍두사를 약재상에 팔고 오자.

그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오랜 만에 좋은 옷도 사 입자.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네.

넌 아직 아침도 안 먹었지? 할미도 배고프구나.

태승아, 사내답게 툭 털어버리고 어서 나가자."


태승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벌떡 일어났다.


"알았어. 할머니.

그런데 저 탑은 가지고 가야지."


"저걸 누가 가져가?

십년동안 떠돌아 다녔지만 누가 거들떠보기나 하더냐?"


"싫어. 내가 들고 갈 거야.

그 속에 얼마나 비싼 게 들어있는데."


"아이고 그 녀석 성질하고는.

알았다, 할미가 들고 가마."



몸놀림이 날렵한 중년 수사가 천물루 최고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갑작스런 영력 파동을 느끼고는 깜짝 놀란 것이었다.


중년 수사는 노 수사에게 다가와 예를 올렸다.


"루주님, 주천길입니다."


"너도 느꼈느냐?"


"예. 하지만 워낙 순간적이라 방향은 못 찾았습니다."


"방향은 남향이고 성벽 쪽이다.

수하들을 데리고 이 잡듯 뒤져라.

중급 영수가 죽을 때 발하는 영력 파동 같은데, 만약 영수가 살아있다면 포위만 하고 즉시 나를 불러라."


"존명!"


천물루는 갑자기 떨어진 비상소집으로 난리가 났다.



할머니와 태승은 빈민가를 벗어나, 여랑성 중심가로 접어들었다.

작은 성이지만 성의 중앙대로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할머니와 손자는 인파를 헤치며 약재상들이 모여 있는 골목을 향했다.

때 묻고 허름한 옷차림 때문에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길을 비켜주었다.

손에 든 봇짐 안에 흑백쌍두사가 들어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비켜라!"


미처 골목을 들어가기 전에 커다란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얼떨결에 태승과 할머니도 대로 한쪽 편으로 밀려났다.


"비켜라!"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천물(千物)이라 씌여진 깃발을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네놈도 비켜라."


수사 복장의 사람들이 빠르게 달려 나오더니, 사내의 어깨를 밟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수사들의 옷깃에는 천(千)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수사들은 급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중앙 대로는 복잡했다.

수사들은 길 좌우의 이층 건물 지붕과 지붕을 넘나들며 빠르게 질주했다.

마치 메뚜기가 뛰는 것 같았다.

여럿이 동시에 움직이니 보기에 그럴싸했다.


뒤늦게 출발한 수사들은 길 중간의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 눈에 일반 백성은 개미와 다를 바 없었다.

갈 길이 급하면 그냥 밟고 지나가도 되고, 거치적거리면 없애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백성들도 수사를 신선 비슷하게 보기 때문에 어떤 항변도 하지 못했다.


길 가의 행인들은 떼로 몰려가는 수사들을 보고 수군거렸다.


"천물루 수사들이 갑자기 웬 일이래?"


"그러게 말이야. 영수라도 나타났나?"


태승은 수사들의 빠른 움직임에 감탄했다.

번쩍거리는 수사 복을 허공에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와, 흑시조가 나는 것 같아."


같이 구경하던 덩치 큰 텁석부리 사내가 태승의 말을 듣고 웃었다.

경장에 커다란 도를 등에 매었다.


"하 하, 꼬마야. 저건 나는 게 아냐. 경신술을 배운 무사라면 저 정도는 쉽지.

흥, 저것도 수사라고 위세 떨기는. 날 줄도 모르면서."


옆에 서있는 같은 옷차림의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주둥아리.

장가야, 연기경 초기라도 너 하나쯤은 간단해. 들으면 어떡하려고, 겁도 없이."


"까짓 거 들으면 들었지.

그런데 수사들 가는 방향이 남문 성벽 쪽이네. 거기는 빈민가인데."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태승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할머니와 태승은 사람들 틈을 빠져나오며 속삭였다.


"할머니, 우리 집 쪽으로 가는데?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야. 탑 안에 그것이 있는 것을."


"그러게, 선조님 말씀이 맞구나."


두 사람은 발길을 옮겼다. 할머니가 태승에게 귓속말을 했다.


"쌍두사도 조심해서 팔아야한다.

네가 쌍두사를 판 돈을 가졌다는 것을 알면 사냥꾼들이 달라붙을 게 틀림없어."


"내가 말을 안 하는데 형들이 어떻게 알아?"


"약재상 주인들은 사냥꾼이랑 한통속이거든."


"세상에."


미처 몰랐던 태승은 어안이 벙벙하여 할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한편,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태승에게 다시 귓속말을 했다.


"네 말대로 탑을 가져오길 잘했구나.

뱀을 팔고 그 돈으로 양식을 사서 다른 성으로 가자꾸나.

아무래도 위험하다."


"집에 안 가? 아, 가면 안 되겠네."


"담요도 몇 개 사자꾸나. 노숙할 때 필요하니까."


태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성과 성을 오가면서.

적을 피하기 위해서 라는 할머니의 말을 태승은 전혀 믿지 않았다.

할머니가 치매로 인한 망상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어제 오늘 일어난 일들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할머니의 말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약재상 점포가 줄지어 있는 골목을 들어섰다.

쿰쿰한 약재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태승이 할머니를 붙잡았다.


"할머니, 여기 있어. 내가 얼른 들어가서 바꿔올게."


"조심해라."


잠시 후, 태승은 아깝다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쌍두사를 넣었던 봇짐은 사라졌다.

할머니가 걱정스레 물었다.


"얼마 안 주든?"


태승은 더럽다는 듯 골목을 향해 침을 퉤 뱉었다.


"은전 열개 밖에 안 주더라고. 치사해."


"제대로 받은 거야?"


"반값이야. 그래도 주는대로 받았어."


"왜?"


"할머니가 그랬잖아. 약재상 주인들이 사냥꾼 형들이랑 한통속이라고."


"그래서?"


"반값만 받은 대신, 형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


"그런다고 말 안할까?"


"체면 때문에 나한테 샀다고 말 못해.

말했다가 나중에 반값으로 후려쳤다는 것 까지 까발려지면 체면이 개똥이 되니까.

그 사이 우리는 멀리 튀면 돼."


그러면서 태승이 씩 웃었다.


"할머니가 다른 성으로 가자고 했잖아. 위험하다고.

그럼 반값이라도 받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게 낫지.

괜히 제 값 다 받겠다고 실랑이 하다가 소문나면 끝이야."


"아이고, 내 새끼. 똑똑하기도 해라.

그래, 대장부가 그 정도 결단력은 있어야지. 저기 노점에서 만두 먹자."


할머니는 흐뭇해하며 태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사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솜옷과 담요 넉 장과 대나무 물통.

가면서 먹을 곡물 가루와 육포를 사고, 이 모든 것을 넣을 거대한 대나무 바구니까지 샀다.


태승이 바구니를 등에 지고, 할머니는 부도탑을 품에 안았다.


"할머니 어디로 갈 거야?"


"무요성이 제일 가깝지?

이번에는 거기로 가자. 걸어서 열흘이면 될 거다."


"그럼 서문으로 가야겠네."



무요성은 여랑성과 가까워 왕래가 빈번했다.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다 보니 매일 새벽에 한번, 오후에 한 번씩 무리를 지어 출발했다.


새벽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마차로 출발했다.

마차로 새벽에 출발하면, 그날 밤 하루만 노숙을 하면 되니까 편했다.


걸어서 무요성으로 갈 사람들은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오후에 서문에 모였다.


사람들은 스무 명 이상이 모이면 경호원을 고용했다.

비록 먼 거리는 아니지만 간혹 짐승들의 공격이 있기 때문.


경호원은 무기를 들고 선두와 뒤끝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며 길을 안내했다.

비용은 성인 일인당 은전 하나.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과 어린 손자 합쳐서 은전 하나로 퉁쳤다.

경호원은 인상을 썼지만 그냥 넘어갔다.


"출발!"



두 시진 뒤, 날이 어두워졌다.

수색을 끝내고 천물루로 돌아오는 수사들은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


더러운 빈민가를 세 시진동안 뒤졌지만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루주에게 혼 날 생각을 하니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보고를 받은 노 수사의 눈초리가 살벌했다.

루주의 눈빛에 얼어붙은 주천길은 납작 엎드렸다.

루주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다.


한참 말없이 생각하던 노 수사가 명령했다.


"특별히 촉이 뛰어난 아이들을 뽑아, 점심때부터 여랑성에서 나간 모든 사람들을 뒤져라. 즉시!"


"존명!"


"나머지는 성 밖까지 수색시켜라."


"존명!"


"천길, 중급 영수의 영핵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알지?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목숨 걸고 찾아라.

찾으면 크게 포상하겠다고 아이들을 독려해.

그리고 만약 찾지 못하면."


일부러 말을 끊은 루주.

한 호흡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살기가 주위에 퍼졌다.


"쓸모없는 몇 놈을 뽑아서, 본보기로 죽여 없앨 것이다. 내가 직접.

이 말도 전해라."


"조, 존명."


으스스한 루주의 말에 주천길은 말까지 더듬으며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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