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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내가 제일 정상인인 것 같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라이트노벨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20.05.11 22:02
최근연재일 :
2020.06.15 22:37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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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추천수 :
82
글자수 :
134,605

작성
20.05.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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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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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3화. 그거 스파이짓 아니야?!

DUMMY

“에휴, 내 팔자야.”



고등학생답지 않은 한숨을 내쉬는 나. 너무 이른 아침부터 학교를 가야 해서 그런 거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보민이가 소집령을 내려서.



‘아침 7시 30분까지 학교에 와라’라는 보민이의 명령. 7시 30분에 일어나기도 힘든데 어떻게 사람이 7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해 있냐. 아니 민아 쌤이 아침 보충수업시간 째도 된다고 했잖아. 동아리 활동 시간으로. 그럼에도 억지를 부리는 보민이. 수업시간을 째면 안 된다나. 아 몰라.



“여어 잘생긴 오빠. 가방 좀 들어 줘.”

“엇······ 뭐야.”



어제 봤던 서윤이의 꼬마애 모습. 아니 왜? 어제야 우리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아침을 안 먹고 온 거라지만, 오늘은 그럴 이유가 없는데?



“너무 이르잖아······ 아침 먹을 시간도 없었다구.”

“아, 그러네. 나도 굶었어.”



하품을 하며 피곤해하는 꼬마 서윤이. 하긴, 평소보다 30분 ~ 1시간 정도 더 일찍 등교하는 것이니. 엄청 작아진 꼬마애 키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거는 서윤이.



“그 자랑스런 동아리 회장님은 먼저 가셨데?”

“몰라, 내가 좀 늦게 나왔거든. 아마 먼저 가 있지 않을까.”

“나참.”



어제는 그나마 꼬마애 몸에 맞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왔던 서윤이. 오늘은 헐렁헐렁 어른 옷을 입은 듯한 귀엽고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다. 이틀 연속 교복을 챙겨오기엔 너무 귀찮은 것이었을까.



“가는 길에 편의점 좀 들리자. 귀찮아서 그냥 입고 왔더니 이 모양이네.”

“그래.”



서윤이는 보민이나 리나와는 다르게 『고유』인 걸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내는 건 또 아니니. 이해해준다. 나도 삼각김밥이나 하나 정도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넌 뭐 안 먹어?”

“나는 삼각김밥이나 하나 먹게.”

“음─ 삼각김밥─”



서윤이는 심각한 갈등을 한다. 나는 늘 먹는 전주비빔. 다른 삼각김밥들은 양념이 가운데에 있어서 밸런스를 잡기가 어려운데 전주비빔은 그냥 비빔밥이라 균등한 느낌이거든.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삼각김밥 두 개짜리를 고른다.



“아 근데 나 국물 없으면 안 되는데. 국물 없이 어떻게 밥을 먹어.”

“생긴 건 유럽식으로 빵이나 스프 같은 거 먹을 것 같은데 실제 식성은 토종 한국인이구나.”

“뭐라구?!”

“아니 그냥 그렇다구.”

“내가 그렇게 세련되게 생겼구나~”



고민하는 서윤이에게 한 마디 던졌다가 괜히 욕을 먹게 생겼다. 얼른 변명하려 하는데 서윤이는 좋다고 칭찬으로 알아 듣는다. 본인이 좋게 받아들인다면 뭐.



“그리고 이것도.”

“햄버거도?”

“나 많이 먹어요~ 보태준 거 있어요?”

“아니 뭐.”



삼각김밥 두 개에 햄버거. 보통 하나만 간단하게 먹지 않나. 아침인데. 게다가 방금 전에 국물 어쩌고 했잖아. 그럼 하다못해 레토르트 오뎅국물이나 컵라면 같은 거라도 먹지. 전혀 상반되게 햄버거라니.



“아, 역시 안 되지. 라면도 먹어야지.”

“그걸 다 먹게?!”

“난 다 먹을 수 있어. 어제 아침 먹는 거 안 봤어?”

“아 뭐.”



님 햄최몇? 대단해. 그거를 평소 서윤이 상태에서 먹으면 뭐, 이해할 수도 있는데 지금 이렇게 쪼꼬만 서윤이 상태로 앙증맞은 손으로 가득 들고 있으니 더 대비되잖아. 안 되겠다, 들어 줘야지.



“따로 계산하세요?”

“아뇨, 그냥 다 계산해주세요.”



내 삼각김밥과 서윤이의 먹을 것 꾸러미들. 편의점 점원의 물음에 얼른 카드를 내밀며 내가 계산한다. 눈을 크게 뜨는 서윤이. 이건 서윤이 잘못이야. 누가 그렇게 쪼꼬맣고 귀여우래. 사실 나도 가오가 있지, 10살 짜리 여동생뻘(?) 여자애랑 뿜빠이(??)를 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잖아.



“뭐해, 라면에 물 안 넣고.”

“고마워, 오빠!”

“오빠라니······.”

“헤헷.”



멋지계 계산하고 서윤이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말한다. 크─ 이것이 남자의 멋인가. 쪼꼬만 여자애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면서 남성성을 자랑하는······ 이것이 「한남」인가. 뭐래. 서윤이는 굉장히 어울리게 ‘오빠’ 라고 말하며 좋아라 한다. 편의점 점원이 보기에는 흐뭇한 광경이겠지만, 실제로 서윤이는 나랑 동갑이니까. 굉장히 거북한 느낌이다. 학교나 가자.







‘드르륵!’

“아, 다들 일찍 왔네!”

“그렇게 반겨주는 리나 네가 더 일찍 온 거 아니야?”

“에헤헤, 그렇네.”



싱그럽게 웃어 보이는 리나.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힐끔 고개를 들어 보이는 보민이. 오늘은 보민이♀. 원래도 시니컬한 눈은 보민이♀가 되면 더 시니컬해보인다. 일찍 나오랜다고 또 일찍 나오다니. 우리처럼 고분고분한 동아리 회원이 또 어디 있을까. 잠자코 자리에 앉는다.



“아, 미안. 너무 일찍 오느라 아침을 못 챙겨 먹어서. 먹으면서 들을게.”

“그래.”



서윤이의 양해에 보민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컵라면 먼저 턱 하니 자리에 놓는 서윤이. 걸어오면서 이미 충분히 다 익었을 테니, 서윤이는 얼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젓가락을 뜯는다. 귀여워.



“이제 활동을 해보자.”

“음.”



아직까지 어색하게 들리는 보민이의 높은 톤의 목소리. 가만히 먹을 것이 들어 있는 봉지를 서윤이 책상에 놓고 내 자리에 앉는다. 자리가 정해전 건 아니지만 대략 어디쯤 앉겠다고 어제 정했으니까. 리나도 다시 자리에 앉는다.



“······.”

‘후루룩!’



정적. 아침이라 더욱 고요하기 그지없는 동아리방. 오로지 서윤이의 라면 먹는 소리만 그 적막을 깨고 궁상맞게 들려온다. 너무 조용한데 라면 후루룩 하는 소리만 나니 조금 미안한지 서윤이가 우리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낸다.



“아, 미안. 너무 시끄럽지.”

“다 먹고 말해.”

“아핳.”



우물우물 볼 안에 가득 라면을 넣고 말하는 서윤이. 그러지 마. 그렇게 10살짜리 꼬마애 모습으로 뭐 먹으면서 말하면 너무 흐뭇하잖아.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 좀 졸리다. 좀 피곤하다. 좀 하기 싫다. 갑자기 감정이 울컥 나와선 보민이를 보고 말을 꺼낸다.



“너무 조급한 거 아니냐?”

“뭐가.”



보민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대답한다. 으······ 뭔가 싸우는 것 같아서 싫은데.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말할 건 말해야지.



“우리 어제 동아리 만들었잖아. 그제 동아리 만들자고 결심하고, 어제 동아리 만들고, 오늘 바로 활동해? 너무 빠르지 않아?”

“······.”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초스피드로 하면 될 것도 안 되겠다. 결정적으로 우리 동아리라는 게, 뭐 모여서 할만한 게 없는 거잖아. 아직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도 않았지만.



예를 들면 댄스 동아리라면. 간단하다. 춤 연습 하면 된다. 무슨 대회나 축제 같은 게 있다면 집중해서 빡세게 연습하겠지. 밴드부 같은 것도 비슷하다. 이런 아침에 동아리실에 와도 할 게 있다는 거지. 하지만 우리는? ‘고민 들어주기’ 같은 느낌인데, 결정적으로 고민을 들을 사람이 없어. 가게에 사장하고 점원만 있고 손님이 없는 셈이라구. 뭐 연습할 것도 없고. 결국 우리끼리 수다 떠는 것 말고는 할 거 없잖아.



“그런 느낌이니까. 너무 조급하게 가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



라고 생각만 하고, 다 줄이고 그냥 ‘그런 느낌’이라고 퉁 쳐서 말한다. 뭐가 왜 빠른지 불만사항을 말해야 하는데. 그냥 말 안 했다. 나랑 보민이는 원래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보민이는 내가 말하는 비어 있는 칸을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 엄청난 의식의 흐름 기법 대화에 리나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꿈뻑꿈뻑. 나를 빤히 바라본다. 뭐 왜 뭐.



“······그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한가 봐.”

“지금도 충분히 빠른 전개 아니야? 결심한 지 이틀만에 동아리 인원들 모아서 떡하니 만드는 경우가 어디 있어. 난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민아 쌤도 너무 일사천리로 딱딱 동아리 만들라고 하시고.”

“그러게.”



물론 이해는 간다. 보민이가 조급해하는 이유를. 보민이는 이렇게 매일매일 『고유』가 발현돼서 여자애가 됐다 남자애가 됐다 하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활동을 하고 싶은 거겠지. 그래서 나도 별로 하고싶지 않지만, 보민이를 위해 도와주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너무 빠르잖아.



“아, 나 고민 있는 데 찾았는데.”

“진짜?! 오 뭐야. 언제 다 먹었데.”

“다 안 먹었어. 아직 햄버거 남았어.”



서윤이의 말에 고개를 돌리는 나. 화들짝 놀란다. 그 잠깐 보민이랑 실랑이를 버리는 사이에 라면과 삼각김밥 하나를 다 먹어치운 서윤이. 내가 되물을 때 나머지 삼각김밥 하나를 다 먹고, 라면 국물을 마저 다 마신다. 자랑스럽게 햄버거를 흔들며 대답하는 서윤이. 금세 중학교 2학년 정도로 성장해 있는 서윤이. 진짜 서윤이는 먹을 거 사주는 맛이 있구나.



“고민 있는 애가 있다고?”

“응. 내 친군데. 나 고민해결해주는 동아리 만들었다니까 상담 하고 싶다는데?”



이어서 후식으로 햄버거를 뜯어 오물오물 먹는 서윤이. 세상 살다 살다 햄버거를 후식으로 먹는 여자애는 또 처음 본다. 보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아, 그 여자애 당장 데리고 와.”

“미쳤어, 지금 시간에 등교 했겠냐. 그리고 데리고 와도 금방 보충수업 해야 하는데.”

“아아.”



아니 방금 전에 내가 말했잖아. 조급하게 마음 먹지 말라고. 근데 왜 이렇게 조급해. 서윤이는 말하는 사이 금세 햄버거를 절반 정도 먹으며 대답한다. 와, 진짜 대단하다.



“이따 점심시간쯤에나 데리고 올게.”

“그래그래. 지금은─ 대충 얘기나 하고 놀까?”

“응 좋아!”



느긋하게 대답하는 서윤이. 어느새 완연하게 원래의 서윤이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빵빵해지지 않은 걸 보면 그나마도 엄~청 배부른 건 아닌가보다. 정말 대식가네. 조급해하는 보민이를 대신해서 내가 대답한다. 내 제안에 리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무래도 딱딱한 동아리 활동보다는 얘기하면서 조금씩 서로 친해지는 게 더 좋겠지. 말이 좋아 동아리지, 우리 다들 어제 처음 알게 된 사이인데.




······근데, 아침 7시 30분데 등교해서 한 게 결국엔 서윤이 먹방 구경하는 거야. 뭐냐구 이게. 그냥 평소처럼 왔어도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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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3화 - 8 20.06.04 24 3 11쪽
17 03화 - 7 20.06.03 28 1 11쪽
16 03화 - 6 +4 20.06.02 39 2 12쪽
15 03화 - 5 20.05.30 32 1 10쪽
14 03화 - 4 +2 20.05.28 30 1 13쪽
13 03화 - 3 20.05.27 27 2 10쪽
12 03화 - 2 +4 20.05.26 35 3 12쪽
» 03화. 그거 스파이짓 아니야?! +2 20.05.25 48 3 11쪽
10 02화 - 5 20.05.24 34 1 12쪽
9 02화 - 4 +2 20.05.23 41 4 11쪽
8 02화 - 3 20.05.21 41 4 12쪽
7 02화 - 2 +2 20.05.20 37 4 13쪽
6 02화. 손님이 없다면 손님을 만들어야지 20.05.19 52 6 15쪽
5 01화 - 5 +4 20.05.18 59 7 12쪽
4 01화 - 4 20.05.14 5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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