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내가 제일 정상인인 것 같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라이트노벨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20.05.11 22:02
최근연재일 :
2020.06.15 22:37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352
추천수 :
82
글자수 :
134,605

작성
20.05.23 20:30
조회
39
추천
4
글자
11쪽

02화 - 4

DUMMY

“아~ 이제 점심시간 다 끝나가~”

“뭐 그렇지.”



동아리 이름 짓느라 시간을 좀 허비했다. 원래 이런 게 잡담하다보면 시간 되게 잘 지나가거든. 이제 한 10분 정도 남은 점심시간. 동아리방도 아닌데 일단 점거하고 있는 이 교실. 근데 있다 보니까 정 드네.



“동아리 이름은 정했고. 이제 활동을 정해야 돼. 시간 10분 밖에 없으니까, 짧게 말할게.”

“엥? 활동은 아까 은우가 요약해서 말하지 않았어?”



그 TOO MUCH TALKER 여보민이 짧게 말하겠다고 하다니. 보민이가 말을 꺼내려고 하니 서윤이는 꽤 당황한 느낌으로 저지하려 한다. 한 번 당해보면 그 참맛을 알 수 있지. 보민이의 일장연설. 얼마나 당황했는지 나 놀릴 때 쓰던 ‘변태 씨’라는 칭호 대신 ‘은우’라고 이름 불러주네.



“동아리 만들기 전에, 실제로 실적이 있다는 걸 먼저 보여주고 싶어.”

“응?”



보통 동아리를 만든다고 한다면─ 일단 동아리를 만들고 그 다음 활동을 하겠지. 동아리 담당 선생님도 있어야겠지. 우리끼리 하면 학교 인정 동아리가 아니니까 동아리방이나 그런 것도 없고 이것저것 불편하겠지. 사실 동아리 활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계획을 보여주기보다는 실적을 먼저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좋은 동아리다, 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렇지.”



호응을 유도하는 서윤이의 느긋한 말투. 대화 패턴이 이런 것 같아. 리액션 담당 서윤이. 듣기 담당 리나. 나는 태클 담당. 어떤 대화든 서윤이의 호응이 없으면 진행이 안 되는 느낌이야.



“그래서 시간 없으니까, 활동 지침을 내려주지. 팀장으로서 처음으로.”

“오오.”



적극적인 보민이의 모습에 나는 신음한다. 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민이를 빤히 쳐다본다. 여전히 설렁설렁 느긋한 표정의 서윤이.



“리나랑 서윤이는 고민 있는 친구를 데리고 와줘. 우리는 팀을 만드는 일을 할게.”

“가, 갑자기 고민 있는 친구를?”

“응. 아, 시간 다 됐다. 가자.”



뜬금없이 고민 있는 친구를 어디서 구해. 하지만 서윤이와 리나가 그 담당이고, 나는 보민이가 말한 ‘우리’에 들어가는 모양. 당황한 표정의 리나. 서윤이도 씨익 쓴웃음을 짓는다. 보통 고민 들어주는 동아리면 고민 있는 사람이 알아서 오는 거 아니야? 우리가 직접 고민 들어주려고 영업해야 하는 거야? 뭔가 웃긴데, 상황이. 변명과 반항의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점심시간이 끝나서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






**






지루하기 그지없는 오후 수업시간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어, 보민이는 또 나를 붙들고 나선다. 청소 시간에는 청소 하는 적이 없네.



“우리는 그러니까 팀을 만들 수 있게 선생님께 말씀드려야지.”

“담당 선생님이 필요하다 그거지?”

“응.”



왜, 일본 애니메이션 많이 보면 그런 거 있잖아. ‘고문 선생님’.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동아리 담당 선생님 정도로 표현하면 될 것 같은데. 근데······ 그걸 누구한테 말해야 할까. 동아리, 솔직히 학생들도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을 하지 못 하고 있지만 선생님들도 그닥 동아리 활동을 선호하지 않는 느낌이다. 귀찮은 일 늘어나니까 그런 걸까.



“담당 선생님이······ 담당 선생님이 있어? 별로 다들 안 좋아하실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



부정적인 내 예상에 보민이는 힐끔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같은 보민이인데 보민이♀일 때에는 이렇게 쳐다보면 막 똑바로 못 보겠는데 보민이♂는 괜찮다. 참, 사람은 이상하지?



“다들 적당적당히 일상이 유지되는 걸 좋아하는 느낌이라. 선생님들. 그런 귀찮은 것에 굳이 에너지 소모를 하고 싶을까, 싶어서. 솔직히 선생님도 공무원이잖아. 편한 게 좋잖아? 담임도 안 맞고 과목 선생님만 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아.”

“그건 일리가 있긴 해.”



선생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나와 보민이. 아니 그렇잖아. 선생님들은 늘 우리를 통제하고 막기만 하려고 할 뿐 진정으로 우릴 위하거나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말은 뭐 학생이 미래다, 학생들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엔 성적순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모든 사람들의 개성을 짓밟고 획일화 시키는 게 바로 선생님들인걸. 보민이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치만 이 분은 달라. 이 분이라면 분명 우리 팀을 맡아주시고 승낙해주실 거야.”

“무슨 자신감이래?”

“그분도 『고유』거든.”

“아······ ‘그’ 선생님.”



고유시범학교인만큼, 우리 학교에는 선생님 중에도 『고유』인 분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뭐, 애초에 고유라고 특정 직업을 못 갖거나 하는 차별은 없으니까. 겉모습으로 티가 엄청 나는 고유도 있고, 말하기 전에는 전혀 모르는 고유도 있으니까. 보민이가 말하는 ‘그’ 선생님은, 꽤 유명한 고유 선생님이다.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 3층이면 3학년의 구역이다. 모르는 형 누나들이 잔뜩 있다. 우리 학교는 학년을 이름표 색깔로 구분한다. 1학년이 흰색, 2학년이 노란색, 3학년이 파란색. 그렇기 때문에 지나가는 3학년들이 나와 보민이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이름표가 흰색이니까 누가 봐도 1학년인 걸 알 수 있잖아.



“어······ 아, 저기 계신다.”



청소중이라 3학년 교무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선생님도 몇 분 안 계시고, 학생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나도 보민이도 ‘그’ 선생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다. 뚜벅뚜벅, 그 선생님 자리 앞으로 간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꾸벅, 굉장히 예의바르게 75°정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보민이. 나는 반 박자 느리게 얼른 인사한다. 컴퓨터로 뭘 하시던 ‘그’ 선생님은 우리의 인사에 힐끔 눈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신다.



“어, 안녕. 근데 누구니? 1학년?”

“네.”



3학년 교무실에 명찰이 하얀 1학년 학생들이 왔으니 의아할 법도 하지. 우리 학교는 1학년 2학년 3학년 구분이 철저해서, 이렇게 교무실도 학년별로 따로 있고, 선생님들도 각각의 학년 과목만 가르친다. 그래서 이 선생님은 우리하고 인연이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선생님을 알고 있다. 유명하시거든.



어깨 너머까지 오는 긴 머리. 크고 또렷한 눈망울은 아주 예쁘고, 안경을 쓰신 외모는 지적이다. 희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는 무척이나 깨끗하고 보드라워 보인다. 힐끔 봐도 엄청 미인인 선생님. 흠이 있다면, 방금 대답하신 목소리. 여자라고 하기엔 꽤나 많이 낮은 톤이고, 남자라고 하기엔 되게 높은 톤. 그러니까 중성적인 목소리다.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응??”



부연설명 하나 없이 너무 훅 치고 들어오는 보민이. 제반사정을 설명해야 할 거 아냐. 선생님은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의문문으로 대답하신다. 이럴 때엔 내가 보충설명을 해 줘야지.



“그, 저희가요! 동아리를 만들고 싶은데, 그거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선생님이.”

“오호. 호호호. 동아리.”



뭔가 게이가 일부러 높은 톤으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하는 선생님. 게이 혐오 발언이 아니라, 그냥 그······ 고정적인 이미지 있잖아. 엄청 예쁜 외모하고 상반되는 목소리인지라 좀 깨는 느낌이다. 선생님은 ‘동아리’라는 말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신다. 오. 느낌 좋은데.



“『고유』동아리에요.”

“오. 고유 동아리야?”



『고유』인 선생님에게 어필하기 위함인지 보민이는 아예 쐐기를 박고자 고밍아웃을 한다. 눈에 빛이 도는 선생님. 그 와중에 나는 보민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태클을 건다.



“아니 고유 동아리 아니랬잖아. 나 빼고 다 고유인데, 고유 동아리라고 하면 나는 뭐가 돼. 고유 비고유 따지지 않고 고민에 대한 이야기 하는 그런 거 아니었어?!”

“그치만 지금 고유 선생님한테는 그런 걸 어필해야.”

“그걸 또 이 선생님 앞에서 말을 하면 어떡해!”

“아아.”



허점투성이인 보민이. 선생님은 ‘후후’ 하고 웃으신다.



“그래, 내가 『고유』인 건 알고 왔겠지? 굳이 내 앞에서 고유 얘기를 한다는 건.”

“네.”



조금 목소리 톤이 올라간 선생님. 그렇게 하니까 훨씬 낫다. 선생님은 서윤이 비슷하게 놀리는 듯한 우월한 표정으로 스윽 우리를 바라보며 뜸을 들이신다.



“너네 내가 어떤 『고유』인지 아니?”

“네, 대강은.”

“그렇다면.”



이 선생님은 꽤 유명인사라서. 예쁜 외모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이유는─



“선생님은 달려♂있단다.”

“굳이 말씀 안 하셔도······.”

“후후훗.”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 나와 보민이는 슬쩍 시선을 회피한다. 하지만 괜히 ‘그 쪽’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반응을 즐기시는지 선생님은 깔깔 웃는다.



“선생님 이름 아니?”

“아니요.”

“오민아. 간단하게 민아쌤이라고 부르세요~”

“네.”



민아 쌤이구나. 겉모습이나 이름이나 하는 행동거지나, 누가 봐도 아리따운 예쁜 선생님인데. 달려♂있다니······. 게다가 목소리가 중성적이라 더 이색적이다. 민아 쌤은 그런 고유. 전문용어(?)로 후타나리. 아니 씹덕용어인가. 어쨌든.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가지고 있는, 양성(兩性)이신 분이다.



“무슨 동아리? 『고유』에 대한 거니?”

“아뇨, 그건 실은 선생님 환심을 사려고 한 말이에요. 팀원 3/4가 고유이긴 하지만.”

“어머, 호호호. 너 되게 직설적이구나?”



직설적인 정도가 지나치잖아. 하지만 민아 쌤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호호 웃으신다. 목소리 톤이 중성적이지 않았다면 참 예쁘기 그지없는 선생님인데. 톤이 너무 중성적이야.



“그럼 너희 둘 다 『고유』니?”

“아뇨, 저는 아니구요. 얘는 맞아요.”



얼른 회피하는 나. 보민이는 의연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한다.



“저희 팀은 그러니까 몇 개월 전.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돌연 『고유』가 되고 나서부터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모 야구선수의 ‘제가 LA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 급으로 엄청난 대화량을 자랑하는 보민이. 또 TOO MUCH TALK 능력을 사용하는 건가. 하지만 민아 쌤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또 다 듣고 계신다. 참, 눈웃음이 매력적인 선생님이다. 사려 깊고 학생들 의견을 잘 들어주실 것 같애. 예쁜 건 권력이니까. ······다 좋은데 달려♂있다는 게 큰 반전이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가 제일 정상인인 것 같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04화 - 6 20.06.15 22 0 14쪽
24 04화 - 5 20.06.14 38 0 12쪽
23 04화 - 4 20.06.12 20 0 11쪽
22 04화 - 3 20.06.10 20 0 11쪽
21 04화 - 2 +2 20.06.09 44 1 11쪽
20 04화. 개 같네 증말! 20.06.06 27 1 12쪽
19 03화 - 9 20.06.05 24 1 14쪽
18 03화 - 8 20.06.04 24 3 11쪽
17 03화 - 7 20.06.03 25 1 11쪽
16 03화 - 6 +4 20.06.02 38 2 12쪽
15 03화 - 5 20.05.30 32 1 10쪽
14 03화 - 4 +2 20.05.28 29 1 13쪽
13 03화 - 3 20.05.27 26 2 10쪽
12 03화 - 2 +4 20.05.26 35 3 12쪽
11 03화. 그거 스파이짓 아니야?! +2 20.05.25 46 3 11쪽
10 02화 - 5 20.05.24 33 1 12쪽
» 02화 - 4 +2 20.05.23 40 4 11쪽
8 02화 - 3 20.05.21 41 4 12쪽
7 02화 - 2 +2 20.05.20 37 4 13쪽
6 02화. 손님이 없다면 손님을 만들어야지 20.05.19 52 6 15쪽
5 01화 - 5 +4 20.05.18 58 7 12쪽
4 01화 - 4 20.05.14 52 6 12쪽
3 01화 - 3 20.05.13 63 6 12쪽
2 01화 - 2 20.05.12 93 7 12쪽
1 01화. 여기에 정상인은 없어. +4 20.05.11 434 1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