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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내가 제일 정상인인 것 같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라이트노벨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20.05.11 22:02
최근연재일 :
2020.06.15 22:37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380
추천수 :
82
글자수 :
134,605

작성
20.05.2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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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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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02화 - 5

DUMMY

“안녕~ 애들아.”

“아, 안녕하세요.”



민아 쌤 특유의 중성적인 목소리. 리나는 겸연쩍고 부끄러워하며 우리 눈치를 살핀다. 서윤이의 눈빛에는 이채가 돈다. 지금은 보충수업 시간. 인데 우리만 교묘하게 빠져나와 있다. 민아 쌤이 부르셔서 이렇게 나왔다.



“청소 시간에, 이 멋진 두 남자애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더라구. 그래서 너희들을 불렀어.”

“네.”



지금 모인 공간은 아까 점심시간에 들어갔던 5층 끝 교실. 민아 쌤은 싱긋 웃으며 교실을 스윽 보며 말씀하신다.



“그런데 용케 이런 교실을 동아리방으로 삼고 싶어하네. 이 교실에는 사실 엄청난 비밀이 있는데.”

“비밀이요?”



우리 넷은 민아 쌤이랑 수업이 겹칠 일이 없다. 3학년 선생님이니까. 그래서 어색하고 잘 모르는 느낌인데, 민아 쌤은 역시 선생님이라 그런가 금세 우리에게 친근하게 말씀하신다. 뭔가 흥미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선생님. 리나는 눈을 크게 뜬다.



“사실 이 교실은······ 아주 무서운 전설이 있거든······.”

“에······ 에?!”



음침한 목소리로 말하는 선생님. 리나의 큰 눈이 금세 겁에 질린다. 성큼성큼 창문 쪽으로 걸어간 민아 쌤. 슬쩍슬쩍 커튼을 치며 말을 계속한다.



“어두운 교실에서······ 밤에······ 모두가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 한 학생이······ 이 교실에 왔어. 아무도 없는 그 밤에. 우리 학교, 밤에는 동아리 활동 할 수 없거든. 그치만 그 학생은 왔어.”

“엣······ 서, 설마······?!”



한 쪽 커튼을 모두 친 민아 쌤. 리나는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서윤이도 눈을 깜빡이며 다소 긴장한 표정. 민아 쌤은 애들의 반응이 즐거운지 반대편 커튼도 천천히 치면서 말을 잇는다.



“무슨 슬픈 일이 있었는지 그 학생은······ 그리고······ 며칠 뒤에······!”

“으핫!”



말하면서 천천히 치던 커튼을 갑자기 확! 소리가 나게 치는 민아 쌤. 순식간에 들어오던 햇빛이 완전히 차단돼서 교실이 어두워지고, 리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갑자기 어두워지니까 눈이 적응이 안 돼서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치익!’

“그리고 거짓말이죠.”

“어머어머.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 거기까지 갔는지 반대편 커튼을 치면서 말하는 보민이. 빛이 다시 들어와서 교실이 밝아진다. 싱글벙글 웃는 민아 쌤. 보민이는 안경을 스윽 올리며 말한다.



“첫째. 몇 년 안에 우리 학교는 자살한 사람이 없어요. 보통 선생님들은 4~5년 안에 전근 가시니까, 그 학생을 직접 알 수는 없죠. 게다가 4~5년 전이면 선생님은 아직 대학생이셨을 테고.”

“우후후♡ 그건 참 기분 좋은 추리네.”



아니 근데 보민이 쟤 왜 저러냐. 원래 안경 썼었어? 한 번도 안경 쓴다는 말 한 적 없는데 어디서 안경이 생겨서 안경 쓰고, 갑자기 추리를 하냐. 명탐정 코난이야? 민아 쌤은 민아 쌤대로 컨셉에 심취해 즐거워하며 대답하신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 학교는 설립된 지 10년도 안 됐고, 설립 됐을 때부터 야간자율학습은 없었죠. 그런데 야간자율학습이라니. 너무 선생님 학창시절 위주로 꾸며내신 거 아닌가요?”

“아아. 이래서 요즘 학생들은. 무서워서 장난도 못 치겠다니깐. 그래, 농담이야.”



적당히 선생님의 나이 문제도 거론하며 선생님을 완전히 이긴 보민이. 민아 쌤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교탁 쪽으로 걸어가신다.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고유』예요. 알고 있었나요?”

“네 뭐······.”



나랑 보민이는 그 충격적인 사실을 아까 전에 들었지. 리나는 잘 모르는지 눈을 꿈뻑이며 민아 쌤을 빤히 바라본다. 서윤이는 특유의 느긋한 표정이다. 서윤이는 아나보네. 칠판에 보드마카로 ‘오민아’라고 쓴다. 그리고 뒤에 ♂ ♀ 이런 표시를 그린다.



“선생님은 두 개 다 있답니다~ 오호호~”

“에······ 에?! 에에에?!”



리나는 이것저것 모르는 게 많구나. 내 이름 처음 들었을 때 얼굴천재를 떠올리지 못한 유일한 사람인데, 학교의 유명인사인 민아 쌤의 존재도 모르고 있다니. 하긴, 존재감을 지우니까 아무하고도 잘 교류를 안 하니까 그런 것도 모를 수 있겠다. 어쨌든 리나의 격한 반응에 민아 쌤은 생글생글 웃으신다.



“너희들은 어떤 『고유』가 있니?”

“말했잖아요. 전 고유가 아니라고. 제발 비고유를 챙겨주세요. 이거 그런 건가요? 흑인들 사이에 백인 있어서 백인이 오히려 차별 받는! 저리 가 이 흑인들아!”

“뭔 개소리야.”



드립에 과몰입하는 나. 말하면서도 내가 웃기다. 그러면 뭐, 백인은 흑인을 차별해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 근데 나는 소개할 말이 없잖아 고유 아니니까! 씨. 보민이의 태클에 잠자코 입을 다문다. 여기서 더 말하면 드립이 아니라 진짜 차별이 되니까, 이쯤 줄여야지.



“저부터 말할게요.”

“응, 그래. 팀장이라고 했지? 이름이? 보민이었나?”

“네.”



차례차례 고유를 말하는 시간. 나는 고유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들었던 내용을 또 들을 필요가 있나. 보민이는 하루는 남자, 하루는 여자 되는 고유. 리나는 감정에 따라 점점 강아지가 되는 고유. 서윤이는 배의 상태에 따라 어려지고 어른이 되는 고유. 뭐 그런 느낌이지.



“그렇구나. 다들 개성 넘치는 고유들이구나! 후후.”

“네. 그리고 저는 무개성이 특징인 비고유인입니다.”

“그래. 차은우지. 왜 그런 이름이니. 그 얼굴인데.”

“으아아! 선생님이 학생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제 얼굴이 어때서요!”

“후후······ 그 이름은 쫌.”

“아아아악! 제가 본명이라구요 그 쪽이 예명이고!”



나는 그냥 몰개성으로 가고 싶은데. 그 놈의 이름 개그. 민아 쌤은 놀려먹는 맛이 있는지 계속 나를 놀리신다. 서윤이도 그렇고, 다들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생님은 그런 동아리 만드는 것을 적극 찬성해요. 오히려 기다려 왔죠. 우리 학교, 고유시범학교잖아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 번을 그런 동아리도 활동도 없이 다들 적당히 지내다 그냥 졸업해버리구. 좀 너무하지 않아요?”

“······.”



민아 쌤은, 본인이 『고유』시니까, 은근 학생들이 그런 활동을 해주기를 기대하셨나보다.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하다. 보통 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든다고 하지, 선생님이 주도해서 동아리를 만드는 경우가······ 뒤져보면 어디 한 군데 그런 동아리는 있겠지만, 보통은 아니지. 민아 쌤은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간다.



“자세한 건 너희들이랑 같이 활동하면서─ 팀장이 펼치고 싶은 동아리의 모습. 팀원들이 꾸미고 싶은 동아리의 내용. 이야기를 많이 들어가면서 모양을 갖춰 나가야겠지만. 팀장한테 대강 들었을 때엔 그런 거였어. 고유든 비고유든 할 거 없이, 그냥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결해주자. 맞지?”

“······네.”



과연, 선생님이구나. 나보다 훨씬 정리를 잘 해. 나는 보민이랑 꽤 오래 다녀서 숙달됐는데도. 민아 쌤은 보민이 얘기 오늘 처음 들었을 텐데도. 보민이도 그 내공을 느꼈는지 다소 기가 죽은 느낌으로 대답한다.



“행정적인 처리는 선생님이 다 할게. 너희는 활동을 하면 돼. 원래는 5인 이상이어야 동아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뭐, 4명이니까. 그 정도는 어떻게든 되겠지? 아참, 동아리 이름이 뭐니?”

“······.”



그거는 그냥 보민이나 내가 말해도 될 텐데. 보민이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리나에게 돌린다. 나도 그런 보민이의 시선을 확인하고 리나를 쳐다본다. 서윤이까지 그녀에게 눈이 가자, 리나는 얼굴이 빨개져선 머리에 손을 올린다. 이미 귀는 ‘뿅’ 하고 나와 있지만.



“모, 「모이자」요······.”

“아이. 참 귀여운 고유네. 그래, 모이자? 모이는 거야?”

“네, 네······.”



만든 사람에게 말을 하게 하는 평화로운 동아리. 리나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한다. 민아 쌤도 리나의 강아지귀는 참을 수 없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신다. 저 눈웃음, 참 예쁘시단 말이지.



“동아리 활동 시간은~ 정규 수업시간을 뺄 수는 없으니까. 보충수업시간은 해도 되겠지. 그건 내가 담당 선생님한테 물어볼 테니까.”

“오.”



그냥 동아리만 만드는 게 아니라 활동시간까지 보장해주시는 건가. 뭔가 얘기만 들으면 동아리 활동을 핑계로 보충수업 뺄 수 있을 것 같잖아.



“보충수업시간이면······ 0교시랑 9교시요?”

“응. 근데 아침부터 하기는 좀 그렇지 않아? 상관은 없지만. 점심시간에 활동해도 좋고.”



0교시는 8시부터 8시 50분까지. 9교시는 오후 5시부터 5시 50분까지. 아침은 그러려니 하지만, 9교시는······ 오호. 막말로 동아리 활동 한다고 뻥 치고(?) 도망가도 되는 거잖아! 우효─



“물론 도망치거나 다른 짓거리 하면 바로 동아리 철퇴예요~ 선생님이 믿고 이렇게 권한을 주는데~ 이렇게나 예쁜 학생들이 그런 짓거리를 하지는 않을 꺼라고 믿어요. 그치?”

“네, 넵.”



어째서인지 나를 쳐다보며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말씀하시는 민아 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생각을 읽으실 줄 아는 건가. 아니면 내가 얼굴로 말하는 타입이라 그런가. 쳇.



“자, 그럼 이제 자유롭게 얘기하세요! 동아리에 대해. 선생님이 늘 와 있진 않을 거지만~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 구경할게요!”

“네······.”



라고 말씀하시고, 선생님은 교실 뒤편 구석에 있는 의자 쪽으로 가신다. 처음에 왔을 때 책상 의자가 다섯 개 있었잖아.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하나 남은 것에 선생님이 앉으신다. 으······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해도, 선생님이 계시면 뭔가 좀 그런데.



“담당 선생님 문제는 해결됐고.”

“으, 응.”



바로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는 보민이. 보민이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나보다. 리나는 무척 신경 쓰이는지 연신 선생님 눈치를 살피며 대답한다. 저럴 때 보면 리나, 뭔가 엄청 신경 쓰는 대형견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개 같다는 거지. 아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고민 있는 친구는 찾았어?”

“아니.”

“어떡해.”

“찾아 봐야지. 그게 찾는다고 그냥 나오나! 없던 고민 만들어?!”



서윤이가 대답한다. 보민이의 닦달에 서윤이도 공격적으로 대답한다. 리나는 부끄러워하고 애들 눈치 보느라 잘 못 말하지만 서윤이는 굉장히 당당한 성격이니까. 그 말에 보민이는 움찔 다시 대답한다.



“그럼 우리도 찾아볼게.”

“그래. 뭐 급한 거 아니잖아? 이미 선생님이 허락 하신건데.”

“내가 원하는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어······.”

“뭐 그림 따지고 있어. 우리 그림 동아리었어?”

“그 말이 아니잖아.”



꼭 나한테만 태클을 거는 게 아니구나, 서윤이? 아무나 다 무는 미친개였어. 근데 보민이는 의외로 그런 공격에 약해서 잘 대처하지 못 한다.



“갑자기 사실 고민을 그런 거를 음.”

“나는 그래도 몇 명 물어보긴 했는데. 다들 그냥 나한테 말할 정도 고민이지, 우리가 다같이 들어주고 상담할 정도 고민은 아니었어.”

“보통 그렇지.”



방금까지 공격 목표가 보민이었으니, 나에게는 고분고분 잘 말하는 서윤이. 그래, 이렇게 잘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대화가 잘 진행되잖아.



“이런 분위기구나?”

“네 뭐······.”



신경 쓰지 말고 말하라고 하는데 불쑥 끼어들어서 말씀하시는 선생님. 되게 신경 쓰이는데요.



“리나는? 고민 있는 사람 좀 찾았어?”

“으, 으응······ 나, 아는 애가 별로 없어서······.”

“아하. 그렇네. 미안.”

“아,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리나 나랑 같은 반인데. 지금 우리 반에서 리나랑 제대로 얘기하는 게 그나마 나밖에 없는데. 질문을 생각 제대로 안 하고 했네. 아휴. 힘들다 힘들어. 고민해결이라─ 동아리는 만들어졌는데 막상 활동을 하기가 쉽지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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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3화 - 8 20.06.04 24 3 11쪽
17 03화 - 7 20.06.03 27 1 11쪽
16 03화 - 6 +4 20.06.02 39 2 12쪽
15 03화 - 5 20.05.30 32 1 10쪽
14 03화 - 4 +2 20.05.28 30 1 13쪽
13 03화 - 3 20.05.27 27 2 10쪽
12 03화 - 2 +4 20.05.26 35 3 12쪽
11 03화. 그거 스파이짓 아니야?! +2 20.05.25 47 3 11쪽
» 02화 - 5 20.05.24 34 1 12쪽
9 02화 - 4 +2 20.05.23 41 4 11쪽
8 02화 - 3 20.05.21 41 4 12쪽
7 02화 - 2 +2 20.05.20 37 4 13쪽
6 02화. 손님이 없다면 손님을 만들어야지 20.05.19 52 6 15쪽
5 01화 - 5 +4 20.05.18 59 7 12쪽
4 01화 - 4 20.05.14 53 6 12쪽
3 01화 - 3 20.05.13 63 6 12쪽
2 01화 - 2 20.05.12 93 7 12쪽
1 01화. 여기에 정상인은 없어. +4 20.05.11 441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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