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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아빠가 되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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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1.09.29 13:55
최근연재일 :
2011.09.29 13:55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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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12
추천수 :
1,099
글자수 :
467,525

작성
11.08.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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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추천
16
글자
11쪽

아빠가 되주센! - 072

DUMMY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는 훌쩍 지나가고 거의 저녁때가 다 되었다. 하지만 어째 엄마와 효성이는 올 기미가 안 보인다. 아빠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 늬 할머니랑 효성이는 어째 저녁 먹을 때까지 안 들어올 거 같구나. 밖에서 먹으려나.”



“아빠가 문자로 늦어도 저녁까지는 온다고 했어요.”



“그러니...”



아빠는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나도 조용히 쇼파에 앉는다.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쉬고 있던 두 사람. 갑작스럽게 유나가 조금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으응?”



“우리 저녁 만들어요.”



“저녁?”



“네!”



유나의 활기찬 모습에, 아빠는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점심 때의 일이 생각나서 그렇다.



“미안하지만 유나야, 이 할아버지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단다.”



“그래도 둘이서 만들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글세다...”



아빠는 자신이 없다. 요리를 생전 해본 적이 있어야지. 해본 적이 있다면 정말 몇십년 전 대학교 자취 생활 때인데. 그러다 문득, 대학교 동기들과 자취방에서 술 마실 때 대충대충 만들던 요리가 생각났다.



“부대찌개...!”



“네?”



“음, 그거면 어떻게든 만들 수 있겠구나.”



“부대찌개요?”



“그래, 유나 네 덕에 대학교 때 만들었던 게 기억이 났구나.”



“그럼, 얼른 만들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둘은 하나된 마음으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대찌개를 만들자면 대충 햄이니 소세지니 이런 것들이 필요할테고, 부가로 라면 사리나 당면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다. 기대하고 냉장고를 열었지만 냉장고엔 많은 채소와 과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봉투와 음료수 정도밖에 있지 않았다. 아빠는 냉장고를 열고 골치가 아파옴을 느꼈다. 완전히 미궁이다. 여기서 재료를 찾는 건 무리다.



“마트 가서 사오자꾸나, 유나야.”



“네!”





두 사람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면 나오는 작은 마트에 갔다. 작지만 나름 있는 건 다 있는 실속있는 마트. 아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트에는 거의 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운전수, 짐 나르기, 박스 조립하기 정도의 역할로 큰 마트나 백화점에 끌려간 적은 있어도, 자신이 필요해서 스스로 마트에 오는 건 정말 거의 처음인것 같다. 아빠는 냉장 코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햄을 들었다.



“이걸로 하나 사고.”



“에에이, 할아버지 그건 비싸기만 해요. 이게 맛있어요.”



“아, 그래?”



쇼핑을 해본 적이 없는 아빠는 다행이 알뜰한 유나가 따라 붙어서 적절한 쇼핑을 할 수 있게 됐다. 부대찌개를 할 재료를 사고, 유나와 효성이 먹으라고 과자도 사고, 사는 김에 아빠가 좋아하는 만두도 샀다. 쇼핑을 하면서 아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줌마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남자 혼자 쇼핑을 온 사람도 있고,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아빠와 유나처럼 부녀가 같이 쇼핑을 온 사람도 있다. 아빠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집사람이 쇼핑 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하지 말고 같이 가 줘야 겠구먼...’



물론 평소에 엄마가 쇼핑 가자고 하면 안 가준 건 아니지만, 매우 귀찮아하면서 가기 싫어 죽은 표정을 짓는 아빠였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가 직접 쇼핑을 해 보니까, 조금은 그 마음을 알겠다. 쇼핑을 마치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아빠는 앞치마를 두르고 팔을 걷어 부치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다. 도마가 어디있는지, 냄비는 또 어딨는지, 김치는 어디? 칼은 어디? 하는 식으로 아주 난리다. 유나도 효성이 덕에 항상 얻어만 먹고 사는 처지인지라, 그런 면에서는 아빠와 별 차이가 없다.



“이게... 김치가 어디 있지?”



“냄비는 얼만큼 커야 되지...?”



두 사람은 허둥대면서도 조금씩 착실하게 요리를 만들어갔다. 유나는 이게 아닌데란 생각이 조금 들었다. 틀림없이 아빠인 효성이가 만들 때엔 되게 체계적이고 훌륭한 모양으로 요리가 되어갔는데, 지금 할아버지랑 만들고 있는 요리는 뭔가 지저분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자기도 뭐라고 할 처지가 못 되는게, 유나 자신도 요리를 못한다. 아빠는 겨우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찾아 한 포기를 썰어 넣고, 파와 양파를 썰어 넣었다. 아빠가 파와 양파를 삐뚤삐뚤하게 썰자, 유나는 보고 웃었다. 아빠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만지며 다시 햄과 소세지를 썰었다. 유나는 라면 사리를 뜯었다.



“자, 이것도 넣고.”



“에! 할아버지, 무슨 부대찌개에 만두를 넣어요!”



“원래 넣어 먹는 거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데...”



“아이, 이 할애비에게 맡기렴, 이건 내가 늬 할머니보다 잘 끓일 자신 있어.”



아빠는 자신만만하게 만두를 마저 넣으며 말했다. 게다가 아빠는 참치캔을 따서 참치 한 통도 다 넣었다. 유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부대찌개를 만드는데 왜 참치캔을 사나 했다. 점점 차원을 달리하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걸 본 유나는 저녁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맛없어 보이는데.”



“떽! 이게 얼마나 맛난데... 한 번 먹어나 보고 그런 말 하렴. 일단 이제 끓이면 되겠구나.”



아빠는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처음에 어색하게 부렸던 허세와는 달리 자연스런 허세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어색함도 찾을 수가 없다. 유나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아빠에게 말을 잘 걸지 않고 대답도 대충 ‘네’ 정도밖에 안했는데, 이제는 효성이에게 대하듯이 딴지도 걸고 대답도 잘 하고 잘 웃었다. 아빠도, 이제 어색하게 유나를 대하지 않고 부드럽게 오히려 효성이보다도 더 친하게 대했다.



‘보글보글...’



“잘 끓고 있구나.”



“와, 냄새는 되게 좋은데요?”



“맛도 좋다니까 그러네!”



찌개가 끓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이제 식탁에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아빠는 밥솥에서 밥을 펐고, 유나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 놓았다.



‘딸깍.’



“완성이구나.”



“겨우 다 됐네요.”



둘은 완성된 찌개를 보고 자랑스런 마음이 들었다.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두 사람이 만든 걸작이다. 냄새는 그럴듯 하다. 보기엔 음식물 쓰레기같다. 정말로. 둘은 이제 식탁에 앉아서 막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그래, 많이 먹으렴.”



‘쾅!’



막 먹으려는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



“유나야, 할머니랑 아빠 왔다~”



요란하게 외치는 사람은 엄마. 효성이는 엄마 옆에서 몇 개의 짐을 들고 천천히 들어왔다.



“어...?”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엄마와 나는 들어오자마자 유나와 아빠를 찾았다. 얼마나 어색하게 하고 있나 보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장면은 볼 수가 없다. 너무나 어색해야 할, 그러나 더 이상 어색함은 남아있지 않은 그런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유나와 아빠가 같이 밥을 먹고 있다니! 엄마는 들어와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뭐 만들었슈?”



“어, 유나 멕일려고 부대찌개 끓였지.”



“어머나, 세상에. 당신이 요리를 했다고? 이게 몇 십년 만이야? 한 20년?”



“허허허.”



엄마의 놀람과 약간의 비아냥이 들어간 말에, 아빠는 답변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유나는 웃으며 손짓했다.



“할머니도 아빠도 와서 드세요, 이제 막 먹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 표 부대찌개.”



“그래, 먹자. 나도 저녁 안 먹었는데.”



“아빠가 만든 찌개라... 나 17년 평생 처음 먹어 봐.”



엄마가 짐을 놓고 대충 겉옷을 벗고 본능적으로 밥을 푸려고 하자, 아빠가 일어나 제재하며 아빠가 밥을 퍼 줬다. 그런 행동에, 엄마는 좋다고 웃으시며 자리에 앉았다. 찌개는 양이 엄청 많았다. 나랑 엄마랑 저녁 먹고 들어오면 어쩌려고 이렇게 많이 만들었데... 게다가, 생긴 건 완전 음식물 쓰레기 같다. 부대찌개라는데... 햄에, 소세지에, 김치는 너무 익혀서 축 늘어져 있고 또한 이상한 죽 같은 국물과 함께 라면에... 냄새는 그럴듯 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여보.”



“그래, 들 들어봐.”



나는 잘 먹겠습니다 합장을 하고 수저로 국물을 떠 맛을 봤다.



“...!”



“아니 이 맛은?!”



“으아아아~!”



나는 호들갑을 떨며 벌떡 일어났다. 생긴 것과는 달리 꽤나 맛이 있다. 게다가 이건 뭘 넣은 건지 오감을 만족시키는 맛이다. 단 맛도 있고 짠 맛도 있고 매콤한 맛도 있고 심지어 약간 시큼한 맛도 든다. 정상적인 요리의 범주에서 이미 벗어난 아빠 표 부대찌개. 엄마도 김치를 쭉 찢어 드시더니 칭찬을 하신다.



“어유, 맛있네. 참말 의외야, 이 양반 요리는.”



“허허허. 맛있으면 다들 많이 먹어.”



“네!”



유나는 웃으며 햄과 소세지를 하나 가득 밥공기 위로 가져갔다. 단란한 식사시간. 항상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드시고 유나는 나랑 엄마랑만 얘기했는데, 이제는 다들 친해진 가족이 돼서 화목하다. 분위기 좋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서 웃으며 밥을 먹었다. 엄마도 웃으면서 유나에게 말했다.



“이제 할아버지랑 많이 친해졌어, 우리 유나?”



“네!”



엄마의 물음에 유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서, 유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미래에선 할아버지가 ‘없었는데’, 이렇게 노니까 정말 재밌었어요!”



“......?”



유나의 말에, 나와 엄마, 아빠는 순간 굳어버렸다.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유나에게 물었다.



“어, 없다니... 그게 무슨?”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뭐, 뭣!!”



아빠는 그 말에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게 대관절 무슨 청천벽력같은 죽음 선언인가. 회사는 짤리지 않는 한 60대까지 다니고서, 훌륭하게 은퇴하고 남은 여생을 아내와 함께 조용하게 보내려던 그의 노후계획은 모두 판타지가 되었다. 아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조하는 말투로 작게 말했다.



“그럼 난... 60살도 안 돼서 죽는 건가...”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하하하...”



“그, 그래, 당신이 왜 그렇게 일찍 죽겠어, 안 그래?!”



좌절하는 아빠를 나와 엄마는 애써 웃으며 달랬다. 유나는 햄을 입에 넣으면서 조심스럽게 상황을 보고는 한 마디 했다.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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