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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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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7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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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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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쪽

30. 복건삼호(福建三虎) (2)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왕경은 초수(初手)에 기선을 제압하고자 대하천명장중 천뢰무망의 초식을 사용하여 남원희를 향해 일장을 뻗었다. 남원희는 강맹한 장력에 놀라 감히 맞받아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몸을 뒤로 뛰어 겨우 왕경의 장력에서 벗어났다.


남원희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왕경은 발을 금(金) 방위로 옮겨 밟으며 택풍대과의 초식으로 임성수를 후려쳤다. 임성수 역시 왕경의 일장(一掌)이 노도와 같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급히 고개를 숙여 피했으나 장력이 스쳐 지나간 목 뒤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고 대경실색을 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리도 위력적인 장력을 쏟아 낼 수 있단 말인가!)


남원희와 임성수는 각기 두어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서 달빛과 모닥불에 의지하여 자신들을 습격한 인물을 살펴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아니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의 장력이 이토록 매섭단 말인가!)


임성수는 상대방이 아직 어린 소년이라는 것에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물었다.


[소협은 누구시길래 우리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오?]


임성수의 말에 왕경은 주변을 둘러보며 읍을 했다.


[저는 백련교의 왕경이라고 합니다. 평소 복건삼호의 위명을 귀에 따갑도록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왕경의 말에 남원희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세민이가 말한 놈이 저 녀석이구나! 눈앞에 있는 임가 놈들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강적이 하나 더 나타났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임성수는 왕경의 말투가 공손하고 자신들에게 적의(敵意)가 없음을 느껴 즉시 반례했다.


[백련교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다고 하던데 과연 명불허전이로군요!]


남원희는 왕경과 복건삼호가 연합하여 자신을 치려 한다고 느껴져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저놈과 임가 놈들이 합세해서 공격하면 우리 흑묘파는 오늘로 끝장날 것 같구나.. 애초에 나는 저놈이나 백련교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아쉽지만 보물 보다는 일족의 안전이 우선이다.)


남원희는 흑묘파가 멸문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빨리 결단을 내리고 말했다.


[왕 소협. 이야기는 세민이에게 들었소! 우리는 호해산인의 일에서 손을 떼기로 했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 주시오. 그동안의 무례는 추후 따로 사과하리다!]


왕경은 먼저 복건삼호를 물리친 뒤 도리를 따져 흑묘파가 나관중에게서 손을 떼게 할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남원희가 순순히 포기하자 당황했다.


(남 채주가 호해산인을 더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 이상 내가 끼어들 명분이 없구나. 하지만 저들의 말을 순순히 믿을 수도 없고..)


왕경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자신을 믿지 못해 그런다고 생각한 남원희는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우리 흑묘파는 비록 녹림의 무리이지만 신의가 없는 사람들은 아니오! 한번 손을 떼겠다고 하면 떼는 것이오. 왕 소협은 우리를 믿어도 좋소이다!]


남원희의 말에 임성수가 피식 웃었다.


[신의 있는 무리가 남의 약재를 함부로 훔친단 말인가!]


임성수의 말에 남원희가 반박한다.


[그게 왜 당신들 약재란 말이오?]


[우리가 먼저 사기로 예약을 해 놓았으니 우리 약재 아니오? 더군다나 우리 셋째가 중병이 들어 위급한 상황인데 그걸 훔쳐내다니!]


[흥! 당신들 형제의 목숨만 귀한 줄 아시오? 우리도 그 약이 필요하기에 가져갔다 말하지 않았소!]


남원희의 말에 임성수가 분노하여 말했다.


[설령 황제가 쓸 약이라고 해도 우리가 가져가야겠다!]


[흥! 네놈들도 녹림의 도적인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구나! 힘으로 빼앗으려 하다니! 하지만 안됐소이다. 한발 늦으셨소!]


[닥쳐라!]


남원희가 비아냥대자 임성군이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구부려 남원희의 어깨를 노려왔다. 임성군은 소림파의 절기인 호조수(虎爪手)의 고수였다.


손가락의 힘이 매서워 단단한 바위마저도 손으로 찢어 버릴 것 같다 하여 그의 별호가 열암맹호가 되었다. 임성군의 기습에 남원희는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좌측 어깨가 찢기려는 찰나 왕경이 혼천공을 운용하여 임성군의 손을 밀어냈다.


임성군은 자신의 공력이 왕경의 손에 닿자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이 어린놈이 무슨 요술을 부렸단 말인가?)


임성수는 왕경이 동생의 공격을 밀어내는 것을 보고 부쩍 의심이 들었다.


[왕 소협! 우리는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로 이곳까지 왔소이다. 왕 소협이 저자의 편을 들게 되면 부득이하게 우리도 왕 소협에게 손을 쓸 수밖에 없소!]


임성수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느끼고 왕경은 즉시 해명했다.


[지인분이 흑묘파와 약간의 오해가 있어 그것을 중재하러 왔을 뿐 나는 흑묘파와는 큰 인연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자의 편을 들어 동생의 손을 막아선 것이오?]


[임 이협의 별호는 열암맹호가 아니겠습니까? 바위마저도 찢어 버린다는 그 호조수가 남 채주의 목을 뜯어 낼 듯 사납게 달려들길래 부득이 손을 썼을 뿐입니다.]


왕경의 말에 임성수는 미간에 인상을 썼다.


[막내 동생의 목숨이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설삼구명환에 달려있소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우리가 구매하려고 했던 설삼구명환을 훔쳐간 자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 채주와 흑묘파 사람들에게 나 선생님의 안전을 확답 받을 때 까지는 그들을 해할 수 없습니다.]


왕경의 말에 성질 급한 임성군이 씩씩대며 말했다.


[어차피 도적놈들 아니오? 이참에 모조리 죽여버리면 당신네 지인이라는 사람도 안전할 텐데 뭐가 문제요?]


임성군의 말에 왕경은 안색이 굳었다.


[어찌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거둔다고 하시오! 그대들 복건삼호라는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소!]


임성군은 한순간 흥분하여 거칠게 말을 내뱉긴 했지만 왕경의 질책을 듣고 이내 후회하였다.


임성수 역시 동생의 언행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즉시 수습에 나섰다.


[막내의 병환이 중하여 급한 마음에 실언하였소. 미안하오. 하지만 설삼구명환은 반드시 우리가 가져가야겠소!]


임성무는 자신 때문에 형들이 그동안 쌓아온 명예까지도 모두 버릴 각오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더군다나 조금 전에 보여준 왕경의 내공으로 봐서는 흑묘파에 왕경까지 가세하게 되면 단번에 전세가 역전되어 형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분히 말했다.


[형님들! 명줄은 타고나는 거라 하였소. 내 명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데 부질없이 몸부림쳐봐야 뭐 하겠소? 우리 이만 돌아갑시다!]


임성무가 처연히 말하자 임성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 형제는 태어난 후로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찌 제일 어린 네가 가장 먼저 간다고 하느냐?]


임성수는 말을 마치고 슬픈 감정이 치밀어 올라 남원희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그만하고 약을 내놓아라!]


남원희는 갑자기 당한 기습에 당황하여 급히 우장을 내밀어 임성수의 일장과 부딪혔다.


펑 소리와 함께 남원희는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끼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임성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좌장을 뻗어 나갔다. 그때 왼쪽에서 매서운 일장이 쳐오는 것을 느끼고 급히 몸을 돌려막았다.


갑자기 장의 방향을 바꾸느라 기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했던 임성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외쳤다.


[왕 소협! 결국 우리와 손을 쓰겠다는 거요? 우리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소?]


[남 채주 역시 살려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목숨에 어찌 경중(輕重)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왕경의 말에 임성군이 분노하여 부르짖었다.


[그 약은 원래 우리 것이란 말이다!]


임성군은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세워 왕경의 목을 향해 내리찍어 왔다. 왕경이 혼천공을 운용하여 가볍게 호조수를 해소하는 순간 임성수의 맹렬한 발차기가 왕경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바로 임성수가 자랑하는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로 임성수에게 금각대호라는 별호를 안겨준 소림의 절기였다.


왕경은 강맹한 발차기를 혼천공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우리라 판단되어 즉시 대하천명장의 지화명이를 사용하여 맞부딪쳤다. 강맹하기 짝이 없는 대하천명장과 소림의 자랑하는 절기인 항마연환신퇴가 서로 맞부딪히자 왕경은 뒤로 가볍게 한걸음 물러났고 임성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손과 발이 부딪혔으나 오히려 발차기한 임성수가 뒤로 더 물러났으니 공력의 차이는 확연해 보였다.


임성수는 왕경의 장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내가 사십 평생 무예를 익혀오면서 이제 무공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자부하였는데 저런 핏덩이에게조차 밀리다니!)


임성수는 왕경에게 읍을 하고 말했다.


[원래 강호의 도리를 생각한다면 왕 소협에게 우리 둘이 덤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오. 하지만 막내 동생을 살릴 수 없다면 우리 모두 이곳에서 죽을 작정으로 왔기에 체면을 불고하고 우리 형제 둘이 왕 소협을 상대하겠소.]


임성수의 말에 왕경은 생각했다.


(어차피 말로 해결하긴 어려울 것 같다. 흑묘파가 나 선생님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 이상 이 일에 더 관여할 필요가 없는데.. 이대로 흑묘파가 몰살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도 없고..)


왕경이 고민을 하며 대답을 하지 않자 임성군이 말했다.


[오늘 복건삼호의 위명은 땅에 떨어졌소. 우리 형제들은 왕 소협 당신께 패했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며 다시는 협의를 입에 담지 않겠소. 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싸움은 승부를 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오. 설삼구명환은 우리가 가져갈 테니 살아남은 자들은 복건삼호가 비겁하게 숫자를 앞세워 왕 소협과 싸웠다고 소문 내주시오!]


왕경은 일단 둘을 제압하고 이야기하고자 결심했다. 그때 이단이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복건의 임 씨는 형제가 있는데, 우리 형님께는 좋은 동생이 없을 것 같으냐? 나 이단이 함께 상대해주마!]


갑작스러운 이단의 등장에 복건삼호 뿐만 아니라 왕경도 당황했다.


[누.. 사제! 내가 나오지 말라고 했지 않은가!]


이단은 임성수의 발차기와 임성군의 호조수에 실린 공력이 보통이 아님을 보고 왕경을 돕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것이었다.


[형님! 복건삼호가 형제가 있다고 저리 유세를 떠는데 우리도 형제애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경은 속이 탔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이단은 싸움 한가운데 끼어들었는데!


이단의 말을 듣고 임성수가 콧방귀를 꼈다.


[흥! 마음대로 하시오!]


임성수는 이단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공력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단을 먼저 쓰러뜨리기 위해 연환퇴의 수법으로 정신없이 발길질을 했다.


이단은 무지막지한 발차기를 감히 정면으로 받을 생각을 못 하고 후영보를 사용하여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왕경은 이단에게 공격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즉시 대하천명장의 뇌천대장의 수법을 사용하여 임성수를 쳐나갔다. 임성군 역시 왕경이 임성수를 향해 공격하며 등을 보이자 호조수를 사용하여 왕경의 등을 찢으려 덤벼들었다.


넷이 한데 어우러져 난전(亂戰)이 되자 왕경은 예측할 수 없는 이단의 움직임 때문에 대하천명장을 마음껏 펼쳐낼 수 없었다.


(실수로라도 누이의 몸에 대하천명장이 맞게 되면 큰일이다!)


왕경은 이단이 맞을까 봐 조심스레 대하천명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공력이 반감되어 여러 차례 위험에 빠지게 됐다.


그것을 보고 이단은 크게 후회했다.


(아.. 내가 쓸데없이 끼어들었구나. 나의 움직임이 오히려 오라버니의 손까지 묶어 버릴 줄이야!)


이단은 몸을 빼내려고 했으나 고수들의 난전은 처음 겪어 보는지라 쉽게 몸을 빼낼 수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임성무가 끼어들었다.


[당신은 나와 겨뤄보자!]


임성무가 이단을 맡아 무공을 펼쳐내자 임성수는 동생이 걱정됐다.


[막내! 무리하지 말거라!]


[아닙니다. 형님들은 왕 소협과의 싸움에 집중해 주십시오.]


이단이 난전에서 빠져나가게 되자 왕경은 혼자 둘을 상대하게 되었지만, 마음 편히 전력을 다할 수 있어서 오히려 형세는 유리해졌다.


서로 손을 쓴지 오십 초가 넘어갔을 때쯤 왕경도 슬슬 지치는 것을 느꼈다.


(혼천공으로 계속 체력을 회복하고 있긴 하지만 대하천명장을 연속으로 사용하니 역시 힘이 부치는군! 빨리 승부를 내야겠다.)


그때 임성수의 왼발이 자신의 복부를 노리고 차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차오는 발 뒤로 우측 등에 허점을 발견한 왕경은 수상표의 경공을 사용하여 재빠르게 임성수의 뒤로 돌아가 일장을 뻗었다. 그 순간 임성군의 오른 손가락이 왕경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왕경은 급히 몸을 틀어 간발의 차로 임성군의 호조수를 피하였는데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왼쪽 어깨에 길게 세줄의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나온 왕경은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오랜 시간 같이 무공을 익혀오며 손발을 맞춰왔기에 이들의 연환 공격은 보통 무서운 것이 아니구나!)


왕경은 수상표의 경공을 사용하여 둘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다행인 점은 왕경의 경공은 중원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것이라 임씨 형제들이 쉽게 왕경을 공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공을 사용하여 피하는 것만으로는 복건삼호를 제압할 수 없었다.


파괴력은 임성수의 항마연환신퇴가 월등히 앞서지만, 날렵하고 눈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변초에다 사납기까지 한 임성군의 호조수가 더욱 눈에 거슬리기에 임성군을 먼저 제압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린 왕경은 수상표의 경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임성군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이단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 뒤!]


이단은 후영보를 사용하여 임성무와 빙글빙글 돌며 대치 중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임성무가 적극적으로 이단을 공격하지 않아 한층 여유가 있어 왕경의 싸움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다 왕경의 등 뒤로 임성수의 발이 날라오는 것을 보고 다급히 외쳤던 것이다. 왕경은 이단의 외침을 듣고 오른 무릎을 굽혀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피했다. 바로 정견에게 배운 초상비의 신법이었다.


임성수는 왕경의 무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놈이 수상표에 초상비의 경공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다니! 정말 이렇게 죽이기엔 아까운 놈이로구나!)


왕경도 방금 공격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저들은 한쪽이 허점을 보여 나를 유도한 뒤, 뒤에서 다른 한 명이 공격을 한다. 내가 매번 너무 정직하게 덤벼들었구나!)


왕경은 강호에 나온 지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신출내기였다. 비록 무공이 높다고는 하나 실전에서 허허실실을 파악해 가며 대처하기에는 미숙한 점이 많았기에 상대의 허 초에 일일이 실 초로 대응하다 보니 체력 소모도 심하고, 위기에도 자주 노출되었던 것이다.


(저들이 허점을 내보여 유도 한다면 나 역시 그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왕경은 즉시 화(火)방위로 발을 내디디며 대하천명장중 풍택중부의 초식을 사용하여 임성수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후려쳤다. 임성수는 강한 바람이 가슴을 향해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고 즉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사이 임성군이 호조수에 필생의 공력을 담아 왕경의 대추혈을 노리고 찍어 들어왔다.


그 순간 왕경은 몸을 홱 돌려 수화기제의 일 초를 임성군을 향해 쏘아 냈다. 화(火)방위에 위치했던 발은 왕경이 몸을 돌리자 수(水)방위로 바뀌었고, 거기에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장력이 더해지니 물과 물이 만나 홍수가 일어나듯 거대한 힘이 임성군을 향해 덮쳐왔다. 임성수는 아차 싶어 도와주려 했으나 이미 뒤로 물러나고 있던 상황이라 다시 앞으로 나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펑! 하는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가 터져 나오며 임성군은 오른팔이 부러져 뒤로 나뒹굴었다. 왕경은 다시 몸을 돌려 이번에는 지화명이(地火明夷)의 일장을 임성수를 향해 내리쳤다. 다시 몸을 돌리자 수(水)방위에 있던 발은 다시 화(火)방위로 바뀌었으며 불과 불이 만나 거대한 화염을 이루듯 강맹한 일장이 뒤늦게 뛰어들어오던 임성수를 향해 밀어닥쳤다.


임성수는 감히 한 손으로 막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즉시 쌍장을 내밀어 왕경의 지화명이를 받아냈으나 버텨내질 못하고 뒤로 몸이 석 장이나 튕겨 나가고 말았다. 사실 처음부터 왕경이 허점을 보여 유도했다면 경험이 풍부한 임성수나 임성군이 걸려들 리 없었다. 하지만 오십여 초를 싸우면서 매번 실 초로 대응을 하였기에 이번에도 같을 거라 예상하고 대응했다가 한순간에 두 명이 중상을 입고 쓰러지고 만 것이다.


왕경은 둘을 쓰러뜨린 뒤 이단을 도와 임성무를 제압하려 했다.


그때 이단이 왕경을 제지했다.


[형님! 잠시만요!]


이단은 임성무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임성무가 중병을 앓고 있으나 이단이 덤벼볼 상대가 아니었는데 이토록 오래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임성무가 이단을 해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단 역시 자신의 요혈을 위협하기만 할 뿐 실제로는 중간에 손을 거두어 가는 임성무를 보며 자신을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터였다.


왕경도 남원희와 흑묘파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줄 생각으로 복건삼호를 물러나게 할 요량이었는데 뜻밖에 임성수와 임성군에게 상처를 입혀 속으로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이단과 임성무가 손을 멈추자 왕경도 즉시 손을 거두고 읍을 했다.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성무 역시 한발 물러나며 읍을 했다.


[제 안위가 걱정돼 형님들이 무리하였습니다. 왕 소협의 무공을 보아하니 백련교는 앞날이 탄탄할 것 같습니다.]


왕경은 임성군에게 다가가 부러진 팔을 맞춰주려 했다.


[제가 주제넘게 나서서 중재하려다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임성군은 왕경의 난입으로 동생의 목숨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부러진 팔을 뒤로 뺐다.


[네놈 때문에 내 동생이 죽게 생겼는데 내 팔은 맞춰 무엇하겠느냐? 네놈 무공이 이토록 고강하니 이참에 우리 세 형제를 모두 죽이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도록 하여라!]


왕경은 치료를 하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임성군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입장이 난처해졌다.


왕경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것을 보고 남원희가 나섰다.


[이보시오 임 이협.. 동생분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됐소. 하지만 우리도 사정이 있어 약을 가져온 것이오. 게다가 이미 설삼구명환은 다른 곳으로 보냈다오.]


남원희의 말에 임성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설삼구명환이 이곳에 없다는 거요?]


[그렇소이다. 그대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남경으로 보냈소이다.]


임성군은 남원희의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니 그러면 왜 처음부터 없다고 하지 않았소?]


임성군의 질책에 남원희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임성수는 깨닫는 것이 있어 탄식했다.


[그대는... 그대는 우리를 이곳에서 붙잡아 놓을 속셈이었군! 우리가 쫓아가서 약을 빼앗을까 봐 이곳에 있는 척 빙빙 말을 돌리며 우리의 발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군.. 아! 그것도 모르고..]


임성수의 장탄식에 남원희는 착잡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얼마 전 딸아이가 금사방(金蛇邦) 놈들이 쓴 백주산(白蛛酸)에 중독되었소. 금사방 놈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긴 했지만, 딸아이의 독은 제거할 길이 없어 설삼구명환을 가져가게 된 것이오.]


임성수는 남원희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백주산이 맹독이긴 하지만 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흑묘파가 그까짓 독을 해소하지 못해 귀한 설삼구명환을 사용했다는 것이 말이 되오?]


임성수의 호통에 남원희는 얼굴이 구겨졌다.


[그렇소. 백주산 자체는 별것 아니오. 하지만 중독된 위치가 좋지 않았소. 딸아이가 현음공(玄陰功)을 시전하는 도중에 기문혈(期門穴)에 백주산이 칠해진 암기가 날아와 박혔다오. 한참 현음공을 끌어 올리는 중이어서 기문혈로 들어간 백주산은 음유맥(陰維脈)을 따라 순식간에 염천혈(廉泉穴)을 지나 임맥(任脈)으로 퍼져버렸소!]


[아!]


왕경은 안타까움에 탄성을 내질렀다. 백주산 자체는 독을 전문으로 다루는 흑묘파에서 충분히 해독할 수 있는 독이긴 하나 임맥까지 독이 퍼져버렸다면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음유맥 전체에 독이 퍼지니 딸아이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여, 남경으로 보내 요양을 시키고 우리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겨우 설삼구명환을 가지고 있는 의원을 찾았소. 그런데 당신네 복건삼호가 설삼구명환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급하게 손을 쓴 것이오.]


남원희의 말에 임성수는 크게 낙심하였다.


[그대의 딸을 위해 약을 훔쳐간 탓에 내 동생은 이제 죽게 생겼소!]


임성수의 한탄에 남원희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맞소! 모두 내 잘못이오.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 내가 저지른 일이오. 그대들은 내 목숨을 가지고 가시오!]


남원희의 말을 듣고 임성군이 분노하였다.


[어차피 저놈이 너를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을 알고 떠드는 것 아니냐!]


왕경은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는 임성군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내 동생은 살길이 없는데 네놈의 목을 잘라간들 무엇하겠느냐! 아..]


임성수의 말에 임성무가 담담히 말했다.


[남 채주! 따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올해 열아홉이오.]


[허허..나는 올해 서른 하고도 일곱입니다. 형님들! 나 대신 스무 살은 더 어린 아가씨가 살아난 것이니 그걸로 된 것 아니겠소? 삼십칠년간 살았으니 나는 살 만큼 살았습니다.]


임성무의 말에 남원희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더듬었다.


[어.. 어찌..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임대협..]


[형님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우린 이만 가십시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삶은 고향에서 보내고 싶군요.]


임성무의 말에 왕경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장부로구나! 아까 싸울 때도 보니까 누이에게 많이 양보하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임성무는 설삼구명환에 대한 욕심이 없었구나!)


왕경은 자신 때문에 임성무가 죽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 복건삼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솟아 올랐다.


[제가 별 능력은 없지만, 접골 실력은 비교적 괜찮답니다.]


왕경은 말을 마치고 재빨리 임성군에게 다가가 부러진 팔의 혈도를 점(點)하였다. 임성군은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아 왕경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으나 임성무의 표정을 보고 가만히 팔을 내맡겼다.


왕경이 점혈을 하고 부러진 팔을 익숙하게 맞춰주자 대뜸 통증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임성군은 크게 감탄했다.


(어린놈이 무공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조예가 깊구나.. 백련교에서 괴물을 키워냈군!)


왕경은 임성군의 팔을 맞춰준 뒤 임성수에게 다가가 탈구된 어깨를 맞춰주었다.


[제가 의술을 약간 아는데 실례가 되지 않다면 임 삼협의 진찰을 해봐도 괜찮겠습니까?]


왕경의 말에 임성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대답했다.


[왕 소협이 의술에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부디 저희 막내를 잘 부탁드립니다.]


왕경은 자리에 앉아 임성무의 진맥을 짚었다. 임성무의 맥은 연백수에게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르게 잡혀 왕경은 어떤 병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왕경이 진맥을 하며 인상을 쓰는 것을 보고 임성수와 임성군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긴장하여 쳐다보았다.


일각(一刻) 정도 진맥을 하고 왕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임 삼협께서는 기침을 얼마나 하셨고, 기침이 멈춘 것은 얼마나 되셨습니까?]


왕경의 말에 임성수는 크게 기뻐했다.


[동생은 일 년 전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인 줄 알고 있었는데 점점 기침이 더 심해져 온갖 약을 다 먹였지만, 전혀 듣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석 달 전부터는 갑자기 기침이 멎었습니다.]


왕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피를 토하진 않았겠군요!]


이번에는 임성군이 대답했다.


[바로 맞혔소! 내 동생은 기침이 심하긴 했지만, 피를 토하진 않았소!]


왕경이 임성무의 증상을 맞추자 둘은 동생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 목소리가 들떴다.


[음..]


왕경은 인상을 쓰고 한참을 생각한 뒤 천천히 말을 꺼냈다.


[임 삼협이 앓고 계신 병이 어떤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맥이 규칙적으로 뛰기는 하나 음기가 서려 있고, 미간에 검은 기운이 맴도는 것을 보아 폐맥에 침투한 풍습한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질 못하고 임맥을 따라 올라가 인당혈(印堂穴)까지 침범한 것으로 보여 상당히 치료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왕경의 말에 귀를 곤두세우고 듣던 남원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왕 소협에게도 방법이 없다면 임 삼협은 이제 죽을 일만 남았구나. 내 한목숨으로 용서해준다면 좋을텐데...)


[폐맥에 침범한 풍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커졌습니다. 차라리 객혈하여 뽑아냈더라면 좀 나아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폐에서 세력을 잔뜩 키운 풍습한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임맥을 침범하여 인당까지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기침이 갑자기 멈춘 것입니다.]


왕경의 말에 임성수는 개탄했다.


[우리는 병이 낫느라고 기침이 멎은 줄 알았소. 헌데 오히려 폐에 있던 나쁜 것들이 인당으로 올라가서 그렇게 됐다니..]


[인당은 상단전(上丹田)이 아닙니까? 상단전에 침범한 풍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왕경의 말에 임성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왕 소.. 왕 대협! 뭔가 방법이 없겠습니까?]


임성군의 간절한 말에 임성무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형님! 왕 소협은 무공과 의술에 조예가 깊은 소년 영웅입니다. 그가 방법이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더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말고 우린 이만 갑시다.]


임성무의 말에 왕경은 생각했다.


(세 명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임 삼협은 그릇의 크기가 다르구나.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도 그렇고 임 삼협의 인품도 그렇고.. 내가 강호에 나와서 만난 사람들 중에 사부님을 제외하곤 이만한 인물이 없었다.)


왕경은 임성무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한가지 생각이 있는데 세 분께 실례가 되는 말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왕경의 말에 임성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왕 대협이 우리 삼 형제를 위해 하시는 말이 어찌 실례가 된단 말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대협이라니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 달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의술을 배워 골절이나 자상 같은 외상은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병의 치료에는 실력이 한참 부족합니다.]


왕경의 말에 놀란 것은 복건삼호였다.


(고작 한 달 만에 이 정도 처치가 가능할 정도로 의술을 배웠단 말인가!)


[제가 우둔하여 임 삼협의 병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저에게 의술을 가르쳐주신 분은 어쩌면 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왕 대협께 의술을 가르쳐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임성군의 말에 왕경은 즉시 대답했다.


[바로 연경에 계신 연백수 사형입니다.]


[아!]


연백수는 백련교에서 의선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계파를 가리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백련교 내에서는 의술뿐만아니라 인망 역시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백련교도가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의 일이지 평소 백련교와는 아무런 친분도 없고, 스스로 정파(正派) 무림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여 백련교와는 거리를 두어온 복건삼호가 쉽게 치료를 부탁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우리는 백련교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오. 어찌 연백수 같은 사람이 우리를 치료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임성수의 말에 왕경이 빙긋 웃었다.


[어찌 인연이 없다고 하십니까? 이렇게 저와 인연을 맺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평소 세 분의 위명을 많이 들어왔고, 오늘 직접 세 분을 뵙고 나니 그 호협한 기운에 매우 감명받았습니다.]


왕경이 추켜세우는 말을 하자 임성수는 몇 마디 인사치레를 했다.


[제가 연사형께 소개장을 쓰겠습니다. 부디 제 체면을 보아서라도 세 분께서는 연경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속한 문파가 다르면 치료를 부탁하기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몽고와의 싸움에서 정사의 구분이 많이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정파 인물임을 내세워 사람을 가려 사귀어온 복건삼호 입장에서는 연백수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 크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왕경이 스스로를 낮추고 치료받을 것을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제가 주제넘게 개입하는 바람에 임 삼협의 치료가 어려워졌습니다. 부디 제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시지요.]


사실 왕경의 난입과는 아무 상관 없이 임성무의 치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미 남원희가 약을 빼돌렸다는 것을 숨기고 시간을 끌고 있던 터인데 왕경의 난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왕경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고 간곡히 부탁하니 본인들의 자존심을 내세워 거절할 수 없었다.


[왕 대협! 그대의 흉금은 바다보다 넓소! 우리 삼 형제는 치료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그대의 말이라면 타는 불이나 끓는 물이라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것이오!]


[어찌 어린 저에게 대협이라 칭하십니까? 그냥 동생처럼 편히 대해주십시오.]


왕경의 말에 임성군이 정색을 했다.


[그대는 대협이오! 그대가 대협이 아니라면 세상천지에 누가 대협이라 칭할 수 있겠소!]


왕경은 빙긋 웃고 남원희에게 지필묵을 부탁하여 연백수에게 편지를 썼다. 그간의 여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복건삼호와 인연을 맺게 된 경위와 치료를 부탁한다고 적은 뒤 임성수에게 편지를 건넸다.


[임 대협. 연 사형은 졸렬한 저보다 만 배는 뛰어나신 분입니다. 분명히 뭔가 방법을 찾아 주실 것입니다.]


왕경은 연경지부의 위치를 외부인에게 알려줄 수 없어서 연경 외곽에 있는 다른 교도의 집을 알려주었다.


왕경이 편지를 쓰고 가는 길을 설명하는 동안 남원희는 산채에 있는 인삼, 영지, 웅담 등을 모조리 긁어와 임성군에게 건넸다.


[세분께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저희 산채에서 보관 중인 약재는 보잘것 없으나 그래도 다른 약방에서 파는 약재들 보다는 월등히 좋을 것입니다. 임 삼협께서 연경까지 가시는 동안 드십시오.]


남원희가 내온 약재들은 향이 진하고 색이 뚜렷하여 얼핏 봐도 상당히 귀한 약재들임을 알 수 있어 임성수가 사양했다.


[이렇게 많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가는 동안 몸을 보호할 수 있게 조금만 받아가겠습니다.]


임성수의 말에 남원희가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아닙니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보약을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치료에 어떤 약재가 필요한지 모르는데, 일단 다 가지고 가십시오. 혹시라도 구하지 못하는 약재가 있다면 저희에게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온 천하를 뒤져서라도 구해놓겠습니다.]


남원희의 말에 임성수는 더 사양할 수 없어 약재를 받아들었다.


[그럼 고맙게 받겠습니다.]


임성무도 나서서 깊이 읍을 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주신 두터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아있다면 언제고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도와드린 것도 없는데요.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임성수가 떠날 준비를 하며 말했다.


[왕 대협과 남 채주께는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우리 복건의 세 형제는 오늘 이후로 남 채주와는 어떤 원한도 없소이다. 그럼 일이 급하니 우리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원희도 나서서 읍을 했다.


[제 욕심에 고생하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며칠이고 저희 산채에서 대접을 해드리고 싶지만 임 삼협이 서둘러 가셔야 하니 잡을 수가 없군요. 치료가 끝난 뒤 저희 산채에 꼭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


복건삼호는 왕경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 뒤 급히 연경으로 떠났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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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19.08.19 54 0 -
» 30. 복건삼호(福建三虎) (2) 19.08.16 74 2 32쪽
29 29. 복건삼호(福建三虎) (1) 19.08.14 85 2 25쪽
28 28. 파양호 대전 19.08.13 84 2 26쪽
27 27. 흑묘파 (3) 19.08.12 100 2 21쪽
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4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22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6 3 18쪽
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14 14. 연경을 떠나다. 19.07.24 157 3 20쪽
13 13. 모함 19.07.23 164 2 17쪽
12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10 10. 조천사(朝天使) +1 19.07.19 245 3 20쪽
9 9. 연경의 고려인들 +2 19.07.18 250 3 21쪽
8 8. 장원계의 죽음 19.07.17 238 3 18쪽
7 7. 연경으로 19.07.16 244 4 20쪽
6 6. 혼천공을 완성하다. 19.07.15 285 4 18쪽
5 5. 만보산에서의 생활 +2 19.07.13 296 7 22쪽
4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29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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