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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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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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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7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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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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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 두문동(杜門洞)에 부는 바람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위화도 회군(威化島 回軍)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李成桂)가 공양왕(恭讓王)을 폐위(廢位)시키고 조선(朝鮮)을 세운 지 이년이 지났다.


조선이 개국(開國)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아직 민심이 고려(高麗)에 있었고, 백성들도 자신이 조선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성계는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조선의 기틀을 다지기에 여념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이성계가 김가행(金可行)을 시켜 당시 송도에서 제일가는 맹인 점쟁이인 이흥무(李興茂)에게 앞으로 왕 씨와 이 씨의 운수가 어떻게 되는지 점을 치게 했는데, 왕 씨는 길(吉)하고 이 씨는 흉(凶)하여 조선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이성계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내가 조선을 어떻게 세웠는가? 한평생을 바쳐 북으로는 여진과 홍건적을 멸하고, 남으로는 왜구를 물리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며 세운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내가 전장에서 적의 목을 베며 나라를 지킬 때 왕 씨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이냐! 내가 아니었으면 고려는 수십 년 전에 진작 망해 없어졌을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당시 중국은 원명(元明) 교체기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홍건적들이 수도 없이 고려의 국경을 침범하였고, 남으로는 왜구가 내륙지방까지 침범하여 백성들은 하루도 맘 편히 살지 못하던 때였다.


그때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지역의 천호(千戶)였던 이자춘(李子春)이 고려 공민왕(恭愍王)에게 귀의하면서 고려는 백여 년 만에 쌍성총관부 지역을 탈환할 수 있었다. 영토 수복에 큰 공을 세운 이자춘과 그의 아들 이성계는 고려의 벼슬을 받았으며, 그 후 이성계는 고려 전국을 누비며 불패 신화를 써 나갔다. 만일 이성계가 없었다면 고려 왕조는 진작에 망해 없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이성계는 분한 마음이 들었다.

 

(진정 백성을 위한 사람은 누구였는가? 무능한 고려왕인가? 한평생 전장에서 피를 땀처럼 흘려온 나인가? 절대로 이 나라를 무능한 왕 씨들에게 다시 넘겨 줄 수는 없다. 뭐? 이 씨는 흉하고 왕 씨는 길할 것이라고? 길흉화복(吉凶禍福)도 살아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성계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다음날 이성계는 윤방경(尹邦慶)을 불러 모든 왕 씨의 몰살을 명하였다. 이에 윤방경은 강화도와 거제도에 모아 놓았던 왕 씨들을 배에 태워 모조리 수장시킨 뒤, 남아 있는 왕 씨들을 색출해내어 목을 치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성만 왕 씨일 뿐 고려 왕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왕 씨들까지도 참형을 피할 수 없었으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조(前朝)의 왕족을 이렇게까지 몰살시킨 예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개성은 고려의 500년 도읍으로 대다수의 백성은 어느 정도 왕 씨와 연관이 있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왕 씨를 멸족하니 한 집 걸러 한 집씩 초상을 치루게 되어 곡소리가 멎을 날이 없었다. 그에 따라 개성 주민들은 조선과 이성계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이성계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고, 많은 대소 신료들이 한양으로 따라 갔으나 고려에 충성을 다하는 일부는 새 나라 조선에서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개성에서 서남쪽으로 오십여 리 떨어진 광덕산(廣德山) 두문동(杜門洞)에 모여 살고 있었으니 이를 두문 칠십이현이라고 했다.

 

왕 씨를 멸족시킴으로써 고려 부흥의 위험을 던 이성계는 조선의 안정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으나, 자신의 지지 기반인 신진 사대부(新進 士大夫)만으로는 국정 운영에 부족함을 느꼈다. 이에 두문동에 은거하고 있는 고려 유신들을 등용할 뜻을 갖고 문하부참찬사(門下府參贊事)로 있던 박위(朴葳)를 시켜 두문동의 선비들을 모셔오게 했다.

 

박위는 명을 받고 개풍군으로 가서 현지 현감(縣監)과 함께 광덕산 두문동으로 향했다.

 

두문동이 가까워져 오자 현감이 말했다.


[대감. 두문동에는 무인(武人)들이 모여 사는 동(東) 두문동과 문인(文人)들이 모여 사는 서(西) 두문동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잠시 생각을 한 뒤 박위가 말했다.


[각기 몇 명이나 살고 있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동 두문동에는 사십팔 인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서 두문동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전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조선의 살림을 맡아 줄 문인들이니 서 두문동으로 갑시다.]

 

박위의 말에 현감은 광덕산 서쪽으로 말을 달려나갔다. 광덕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고 높지 않아 차 한 잔 마실 시간을 달려가자 이내 허름한 초가들이 모여있는 집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감은 첫 번째 집 앞에 당도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조정에서 어명(御命)이 내려왔으니 두문동의 신하들은 나와 명을 받들라!]

 

우렁찬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렸지만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박위가 물었다.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소?]

 

현감은 혹시나 두문동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이곳에 역도(逆徒)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조정에서 큰 은혜를 베풀어 토벌하지 않고 놔두고 있는데 대역무도한 놈들이 성은(聖恩)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이리 건방지게 나오는군요.]

 

잠시 기다렸으나 안에 인기척이 없자 박위가 말했다.

 

[다른 집으로 갑시다.]

 

현감이 앞장서서 몇 군데 집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으나 역시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앞에 서서 외치던 현감은 매우 당황하였다. 조선 건국 후 처음으로 한양에서 개풍군에 고위 관료가 어명을 들고 찾아왔는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다면 중앙에 찍혀 출세는 꿈도 못 꾸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조선에 반기를 든 역도들이 아닌가?


최근 왕 씨 멸족 사건은 현감도 잘 알고 있었다. 역도들과 관련된 사건에서 제대로 처신을 못 했다가는 벼슬길이 막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온 가족이 멸문(滅門)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현감은 박위의 눈치를 살폈다.

 

[이것 참 이상하군요. 역도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들었었는데, 설마 대감이 오시는 것을 알고 다른 곳으로 도망갔을까요?]

 

현감의 말에 박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몇 군데 더 들어가 봅시다.]

 

둘은 좀 더 안쪽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초가에 다가갔다.


목숨이 걸린 일이라 현감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조정에서 어명이 내려왔으니 두문동의 주민들은 어명을 받들라!]

 

잠시 기다리자 안에서 기침 소리와 함께 창로(蒼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쿨럭.. 어명이라니? 원주에 계신 우리 상감마마께서 보내신 거요?]

 

[아니올시다. 조선의 상감마마께서 어찌 원주에 가 계실 수 있겠소? 한양에 계신 우리 상감께서 보내셨소이다.]

 

박위의 말을 듣고 분노한 노인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그게 어찌 진짜 상감이요? 우리 임금을 쫓아낸 역도 새끼지!]

 

노인의 말에 현감이 크게 외쳤다.

 

[지금 무어라 하였소? 어명을 들고 온 사자 앞에서 그런 대역무도(大逆無道)한 말을 하다니! 당신 죽고 싶은 게요?]

 

현감과 말씨름하는 노인을 찬찬히 살펴보니 낯이 익어 박위가 물었다.

 

[조의생(曺義生) 조 대감 아니시오?]

 

찬찬히 박위를 살펴보던 노인이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께서 오셨군!]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는 박위가 공양왕(恭讓王) 시절에 받은 고려의 벼슬이었다. 굳이 조선의 벼슬인 문하부참찬사(門下府參贊事)라고 하지 않고 고려의 벼슬로 부른 것은 조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피력임과 동시에 박위의 변절을 비꼬기 위함이었다.

 

조의생의 말에 박위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성상의 은혜에 지금은 문하부참찬사(門下府參贊事)를 하고 있습니다.]

[흥! 나라를 팔아먹은 것치고는 벼슬이 그리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려?]

 

조의생의 비꼬는 말에 박위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성상의 명을 받들어 조대감 같은 명신(名臣)들을 모셔가기 위함이요. 나와 함께 한양으로 가 입조(立朝)하여 새로운 나라의 초석을 다집시다!]


[뭐가 성상이라는 말이요? 원주에 계신 성상이 언제 새로 나라를 만드셨소?]

 

흥분한 조의생을 달래며 박위가 말했다.

 

[조 대감! 세상이 바뀌었소. 왕 씨는 덕을 잃어 쇠하고 새로 이씨가 나타났소. 고려는 이미 망해 없어진지 오래요. 외적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고려 왕 씨들이 백성을 구했소이까? 지금은 국경이 안정되고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있소. 주린 배 움켜 쥐고 아비를 버리는 자식이 없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딸을 파는 부모가 없소이다. 그게 다 누구 덕분이요? 우리 성상께서 전국을 누비며 외적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킨 덕 아니오?]  

 

박위의 말에 조의생은 말문이 막혔다. 고려 말 중신으로서 당시 백성들의 참상(慘狀)을 익히 알고 있던 그였다.


조의생의 표정을 살펴보던 박위는 재차 말을 이어갔다.

 

[이제 겨우 새로운 나라가 서고, 백성들이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고 있소이다. 지금 조선에는 조 대감 같은 인재가 필요하오! 성상을 위해 나서기가 싫으면 무지한 백성을 위해서라도 입조하여 도와주시구려.]

 

박위의 말에 조의생은 회한 가득한 목소리로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다오..]

 

조의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가 마치 망해버린 고려를 나타내는 듯 하여 가슴 속에서 뜨거운 응어리가 솟구쳐 올랐다.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던 조의생이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멀리서 오셨는데 가난한 집이라 마땅히 대접할 게 없구려. 들어와서 성계육(成桂肉)이나 한 점 들고 가시오.]

 

당시 개성 주민들은 이성계의 잔악한 학살에 치를 떨며 돼지고기를 성계육(成桂肉)이라 부르며 이성계를 조롱하였는데 그 뜻을 모르고 있을 박위가 아니었다.


성계육이라는 소리를 들은 현감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박위 역시 이성계를 돼지고기에 비유하는 조의생의 말을 듣고 분노가 솟구쳐서 순간 허리 춤에 차고있던 칼로 손이 갔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지금 이 늙은이를 베어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하지만 성상의 뜻이 어떤지 아직 모르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야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 박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은 날이 늦었고 성상께 품(稟)하는 것이 급하니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소.]

 

결국 박위와 현감은 조의생의 대문 안으로 발도 들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 두문동을 떠났다.

박위가 떠난 뒤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조의생의 뒤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 대감 방금 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조의생에게 말을 걸며 안채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10여 세쯤 되어 보이는 준수하게 생긴 소년이었다.


조의생은 손자뻘로 보이는 소년을 보자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왕자마마! 어쩐 일로 나오셨습니까? 외부인이 있을 때는 위험하니 안채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이 소년의 이름은 왕경(王景)으로 충렬왕의 6대손이며,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증손자이다. 왕 씨 멸족을 피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왕손으로 두문동 유신(遺臣)들은 고려의 부흥을 위해 왕경을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조의생의 말에 왕경은 씁쓸하게 말했다.

 

[이미 모든 혈족이 참살(慘殺)당했는데 나 하나 없어진다고 달라질 게 무엇 있겠습니까?]

 

어린 소년의 입에서 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말이 나오자 조의생은 참지 못하고 왕경의 손을 붙잡았다.

 

[왕자 전하! 마음을 굳게 다잡으셔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이성계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님의 피를 잇고 있습니다. 조금만 참고 견디시면 북원(北元)에서 원군이 반드시 올 것이옵니다. 그때 개성의 백성들과 고려의 충신들이 들고일어나면 이성계도 별도리 없이 패하고 말 것입니다.]

 

조의생의 말에 왕경은 생각했다.

 

(이미 북원은 명(明)에 쫓겨 장성(長城) 넘어 사막으로 밀려났고, 대칸의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골육상쟁(骨肉相爭)을 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 고려를 신경 쓸 여유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자신을 위해 충절(忠節)을 바치는 조의생을 생각하면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당분간 이곳에서 북원의 원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북원에서 원군이 오면 먼저 원주로가 성상(聖上)과 다른 왕자님들을 구하고 한양으로 쳐들어가서 이성계 일당을 참(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의군(義軍)을 왕자님께서 이끄셔야지요.]

 

조의생의 말에 왕경은 씁쓸하게 웃었다.

 

(성상이 이성계 손아귀에 있으니 일단 왕족인 내가 나서서 의군을 일으키라는 거로구나!)

 

조의생의 손을 놓고 왕경은 천천히 안채로 들어갔다.

 

한편 조의생과 헤어진 박위는 지체하지 않고 말을 달려 새벽녘이 되어서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박위는 집을 먼저 들러 의관을 정제하고 입궐하여 이성계 앞으로 나아가 어제의 일을 낱낱이 품하였다. 다만 이성계의 역정을 살 것이 두려워 성계육이니 반역도니 하는 말은 입에 담지는 않았다.


이성계는 두문동 사람들이 아직도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정이 깊은 것을 듣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사람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조정에 반기를 드는 무리를 그냥 놔둘 수도 없고, 게다가 조의생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도 공양군을 다시 옹립할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성계는 결단을 내려야 했고, 결심을 굳히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폐위된 뒤 공양군으로 강등당해 원주에 유배되어있던 왕요(王瑤)와 왕세자(王世子) 왕석(王奭),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를 삼척으로 다시 쫓아 보낸 뒤 그곳에서 목을 졸라 죽였다. 그 후 아들 이방원(李芳遠)에게 두문동 토벌을 명하였다. 

 

안 그래도 왕 씨 몰살에 적극적이었던 이방원은 즉시 군사를 모아 개풍의 광덕산으로 진격할 준비를 하였다.

 

이미 고려는 멸망하였고, 두문동의 유신들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 두문동의 참화는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고려의 마지막 왕족 왕경의 생사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작가 주

 

1. 김가행은 정사에서는 고려의 중흥을 위해 점을 보았으나 극의 진행을 위해 이성계의 명으로 점을 쳤다고 고쳤습니다.

           

2. 소설의 주인공인 왕경은 심양왕 고의 증손으로 나옵니다. 심양왕 고는 충선왕(忠善王)의 조카로 실제로는 제국대장공주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복조카입니다. (충렬왕의 장남이자 충선왕의 이복형인 강양공(江陽公) 자(滋)의 아들)


하지만 충선왕이 친아들 충숙왕(忠肅王)보다 조카인 고를 더 아꼈으며 실제로 고려 왕위도 고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원나라와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해 심양왕에 고를 봉했고, 이후 고가 충숙왕에게 고려 왕위를 요구할 때도 노골적으로 고의 편을 들었던 것 등을 근거로 작가는 심양왕 고를 충선왕의 조카가 아닌 아들로 극 중에서 묘사하였고 그의 증손자로 나오는 왕경 또한 제국대장공주의 피를 이어받는 것으로 설정하였습니다.

           

3. 제국대장공주는 쿠빌라이 칸의 딸로 쿠빌라이 칸이 쿠릴타이(몽고등 북방 유목민족에서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집합회의, 혈족들만 참여 가능했으며 대칸 역시 쿠릴타이를 통해 선출되었다.) 에서 밀려 대칸의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고려의 충렬왕(忠烈王)이 자신을 지지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 제국대장공주를 충렬왕에게 시집보냅니다. 이때부터 충렬왕은 원나라 황실의 일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4. 제국대장공주는 칭기스칸의 증손녀이고 그의 자손은 황금 씨족의 일원으로 쿠릴타이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원나라 즉 몽고에서 칭기스칸의 혈족이 갖는 의미는 엄청납니다.) 따라서 왕경 역시 쿠릴타이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오백 년이나 이어온 고려가 너무나 허망하게 멸망한 뒤 이렇다할 부흥 운동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안타까워, 살아남은 고려의 왕자가 있어서 조선에 저항하며 일족을 몰살 시킨 이성계에게 복수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작가의 상상을 무협이라는 장르를 빌려 적어보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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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0 관내위
    작성일
    19.07.09 20:39
    No. 1

    거의 시간 이동이나 차원 이동이 대부분인 웹소설 사이트에서 흔치 않은 정통 역사 무협을 찾은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조회수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7 하무린
    작성일
    19.07.31 16:58
    No. 2

    잘보고 가요
    건필하시고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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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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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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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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