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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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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5
추천수 :
98
글자수 :
279,987

작성
19.08.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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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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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1. 태호의 노인 (1)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방에는 왕경과 이단만이 남았다.


왕경과 이단은 십여 일째 같이 지내고 있었지만, 객점에서는 방을 따로 잡았고, 산속 초가에서는 왕경이 부엌 옆에 달린 작은 방에 기거했기에 둘이 한방에서 자보긴 처음이었다.


방에 둘만 남자, 왕경이 어색하게 말했다.


[누이 오늘 고생 많았어.]


[오라버니야말로 고생많으셨지요. 그 사도영이라는 자는 무공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맞아. 그전에 만난 사해방 무리들이 너무 형편없어서 얕잡아 보았는데 사도영의 실력은 진짜였어. 나보다도 몇 수 위인 듯해.]​


왕경은 조금 전에 있었던 사투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만일 내가 사도영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더라면 단 누이와 옥화장 사람들 모두 참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왕경은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하며 묵묵히 앞에 놓인 야식을 집어 먹었다. 이단 역시 체력소모가 많았기에 둘은 제법 많은 야식을 먹었다.


이단은 술 주전자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왕경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어흠. 왕 사형! 오늘 고생 하셨는데 한잔하시겠습니까?]


[이 사제도 수고했는데 같이 한잔하시게!]


둘은 술을 따라 한 잔씩 비웠다. 전에 이단이 사 온 술은 과실주여서 단맛이 강했는데 사도승이 준비해준 술은 죽엽청주여서 둘이 마시기에는 쓴맛이 강했다.


[크..]


왕경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 모습을 보고 이단이 웃는다.


[사형! 한잔 더 드시겠습니까?]


[암! 대장부끼리 술잔을 기울이는데 한잔은 너무 적지 않소?]


왕경과 이단은 한 잔씩 더 마셨으나 쓴맛이 강해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에 마신 과실주에 비하면 너무 쓰군요.]


[그러게 누이가 사온 술은 맛있었는데.. 덕분에 취하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가 낭패를 볼뻔했지.] 

 

둘을 상형춘 일행과 만났을 때를 생각하고는 실없이 웃었다.


겨우 두 잔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술이 약한 이단은 벌써 얼굴이 붉게 달아 올라왔다. 남장을 하고 있어도 그 미모는 숨길 수가 없어 왕경은 저도 모르게 이단의 볼에 입맞춤하고 말았다. 

 

[단 누이..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이단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당황한 왕경은 재빨리 침상으로 올라가 자는 척을 했다.


[이 대협. 주무십니까?]


사영아의 목소리였다.


이단은 당황하여 급히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음음.. 아닙니다. 사 소저 어쩐 일이십니까?]


[두 분 쉬시는데 부족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아..네.. 들어오시지요.]


사영아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왕 대협께서는 벌써 주무시는군요.]


[네. 왕 사형은 연경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데다, 아까 사해방 무리와 싸우느라 진기를 많이 소모해서 금방 잠들었습니다.]


사영아는 이단을 향해 깊게 절을 했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이 대협! 아버지와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단도 급히 반례했다.


[대협이라니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저희 가문의 은인이신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사 소저께서 이러시면 오히려 더 불편합니다. 비슷한 나이 같은데 서로 평배(平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단의 말에 사영아는 어쩔 줄 몰라한다.


[그래도 은인께 어찌..]


[사 소저는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올해 열여섯입니다.]


[저는 열일곱입니다.]


[그럼 제가 연하가 되니 사저(師姐)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편하게 이 사제라고 불러주시지요.] 

 

이단의 말에 사영아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어찌 은공을 그렇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럼 뭐라 호칭하시겠습니까? 대협은 너무 과분합니다. 설마 열여섯 밖에 안된 저를 사숙(師叔)이라 부르시려 하십니까? 그건 제가 싫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은공께 함부로 사제라고 부르겠습니까?]


이단은 술기운이 돌자 장난기가 올라왔다.


(내가 지금까지 오라버니라고 불러만 봤지 들어 본 적은 없는데 이참에 한번 들어봐야겠구나!)


[사제라 부르기 부담스러우면 오라버니라고 부르시던가요! 하하!]


이단의 말은 상당히 경박한 것이었으나 이단 자신이 남자라는 인식을 못 하고 있어, 사영아를 희롱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영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작게 말했다.


[은공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오.. 오..라..]   

 

[킥.]​


왕경은 자는 척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아웅.. 사도영 네 놈이...]


왕경이 급히 잠꼬대를 하는 척하며 뒤척이자 이단이 능청을 떤다.


[사형이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원래 잠버릇이 험한 사람이긴 한데 오늘은 더 심하군요! 누이도 피곤할 텐데 가서 푹 쉬세요.]


[아.. 이 대협.. 아니.. 오.. 오라버니도 편히 쉬세요.]


사영아의 뒷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누이의 숙소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피곤하실 텐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단은 왕경과 단둘이 방 안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음을 약간 진정시키고 싶었기에 사영아를 바래다주겠다고 우겼다.


[옥화장은 무척이나 넓어 혹시나 장원 내에 숨어있는 도적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제가 바래다 드려야죠. 자. 가시죠!]


이단은 사영아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사영아의 숙소는 이단이 묵는 방과 멀리 떨어져 있어 천천히 바래다주고 오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단은 방문 앞에 서서 망설였다.


(경 오라버니와 한방에서 같이 자는 것은 처음이구나. 이제 와서 여자라고 밝히고 다른 방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이단은 밖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얼마 남지 않은 초가 흔들리다 곧 꺼졌다.


[오라버니!]


이단이 왕경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니 고르고 깊은 호흡 소리가 들리는 것이 왕경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


이단은 깊은 한숨을 쉬고 바닥에 누웠는데, 안도의 한숨인지 아쉬움의 한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안으로 해가 들어오자 왕경은 부스스 눈을 떴다.


평소 하던 대로 왕경은 눈을 뜨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혼천공을 운기 하려는데 바닥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 이단이 보였다.


(이런! 내가 침상에서 자는 바람에 누이가 바닥에서 잤구나.)


왕경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단을 안아 침상 위에 눕혔다. 창 너머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빛이 이단의 볼을 비추자 하얗고 투명한 이단의 피부가 탐스러운 복숭아 빛으로 보여 왕경은 참지 못하고 다시 이단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말았다. 

 

이단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지긋이 이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분 대협님들 일어나셨습니까?]


이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왕경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네. 지금 일어났습니다.]


[아침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안내할 테니 천천히 준비해서 나오십시오.]


[알겠습니다. 곧 나가지요.]


왕경은 대답을 하고 다시 고개를 이단 쪽으로 돌리니 이단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단과 눈이 마주치자 왕경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시면 어지럽지 않습니까?]


이단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왕경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단 누이가 언제부터 눈을 뜨고 있었을까? 설마 입맞춤 한 것도 알았을까?)


[누이.. 언제 일어났어?]


왕경의 질문에 이단이 되묻는다.


[언제 일어났다고 해야 마음이 안정되실까요?]


볼에 입맞춤한 것을 이단이 알아챘다고 생각되어 왕경은 말을 더듬었다.


[그.. 아침 식사.. 준비가 되었다고 하네.. 준비하고 나갑시다.]


왕경의 말에 이단은 피식 웃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빨리 준비하도록 하지요.]


둘은 간단히 준비하고 하인을 따라나섰다.


사도승은 연못이 보이는 월정루 이층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승은 사영아와 제자들과 함께 앉아있다가 왕경과 이단이 나타나자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편히 쉬셨습니까? 밤새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요?]


왕경도 급히 예를 갖췄다.


[네.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사 장주님 내상은 좀 어떠신가요?]


[왕 소협의 내공과 탕약 덕분에 거의 다 좋아졌습니다. 소협은 무공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조예가 깊군요!]


[과찬이십니다. 의학은 연경에 있을 때 연사형께 약간 배운 것이 있었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사도승은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연사형이라 함은 혹시 의선(醫仙) 연백수 사숙(師叔)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한나라 계열 백련교도와 장사성의 오나라 계열 백련교도는 함께 주원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기에 서로 앙숙이었지만, 연백수는 파벌을 가리지 않고 치료를 해주었기 때문에 모든 교도들에게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왕경은 자신이 사형이라 부른 연백수를 사도승이 사숙이라 부르자 난감해졌다.


[네. 맞습니다. 장주님께서는 말씀을 편히 하시지요. 저보다 연배가 한참 위이신데 이렇게 존대하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왕경의 말에 사도승은 허허 웃었다.


[아닙니다. 며칠 전 정 사숙조(師叔祖)께 들어서 배분은 알고 있습니다. 왕 소협의 스승이신 장 대협은 저의 조부님과 같은 항렬이시니 마땅히 제게는 사숙이 되는 것이지요.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제가 예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더러 빨리 옥화장을 떠나라고 쫓아내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부디 조카처럼 대해주십시오.]


왕경과 사도승은 같은 백련교도이긴 하지만 계파가 달라 엄격히 배분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고지식한 사도승은 끝까지 왕경을 사숙으로 예우하려고 했다. 왕경과 사도승은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같은 배분의 예를 갖추기로 했다.


호칭 정리가 끝나자 사도승이 음식을 권했다.


[자자 음식이 식겠습니다. 어서들 드십시다.]


왕경과 이단은 수렵생활을 며칠하고 최근에는 급히 남경으로 오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던 탓에 사도승이 준비해준 강남 음식을 제법 많이 먹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사도승이 물었다.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긴 한데, 강남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모르겠네.]


오랜만에 포식을 한 왕경이 만족스러운 듯 대답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염치없이 너무 많이 먹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사도승은 왕경과 이단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이 사제 역시 자네와 동문인가?]


사도승은 정견으로부터 이단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바 없어 왕경에게 물었다. 왕경은 이단은 외부인이니 백련교의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해서 강호에서 만난 친구라고 말하려 하는데 이단이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저 역시 왕 사형과 연경에서 같이 왔습니다.]


이 한마디에 거짓은 없었으나 사도승이 듣기에는 이단 역시 백련교 연경지부 소속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이단은 왕경이 자신을 백련교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사도승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봐 미리 선수 친 것이었다. 왕경은 이미 이단이 말했는데 다시 정정하기도 껄끄러워 가만히 있었다.


(누이가 설마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진 않겠지. 너무 깊은 비밀 이야기만 아니면 들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사도승은 이단 역시 백련교 연경지부 소속이라고 생각하여 편안히 말을 했다.


[그대들 덕에 우리 옥화장에 덮친 큰 재난을 피할 수 있었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네. 그런데 자네들은 어떻게 사도영이 습격한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러 왔는가?]


사도승은 정견이 와서 왕경에 대한 지지를 부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도영이 습격했고, 또 딱 알맞게 왕경이 도착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주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강호에서 사도영과 사도승의 관계를 아는 자가 극히 적고, 어제의 혈투를 생각하면 둘이 짜고 자신을 속였다고 보기도 어려워 사도승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왕경은 그간의 일을 간단히 설명하였다. 이단이 남장을 하고 있었기에 상형춘 일행이 이단을 욕보이려 했다는 부분만 숨겼고 나머지는 비교적 소상히 설명하였다.


[평소에 사해방의 악명을 들어왔고, 눈앞에서 허튼짓을 하려고 하기에 조금 골려 주려고 했던 것인데 우연히 그놈들 입에서 사 장주님을 습격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급히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게 된 거였구먼. 그게 언제 일인가?]


[오일 전 입니다. 그놈들 말에 의하면 오늘 저녁에 습격한다고 해서 어제는 사 장주님을 찾아뵙고 몸을 피하시라고 전해드릴 참이었는데, 우연히 따님을 만나게 돼서..]


왕경은 덤덤히 말했지만, 연경에서 남경까지 나흘 만에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사도승은 매우 감동했다.


사도승은 왕경의 손을 덥석 붙잡고 고마워했다.


[왕 형제! 정말 고맙네!]


사도승은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파양호 전투 이후 장사성 계열(오나라)의 백련교도와 진우량 계열(한나라)의 백련교도는 서로 패배의 책임을 놓고 설전을 벌이느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 계열인 왕경이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위해 멀리 연경에서 달려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줬다는 사실에 사도승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같은 교도끼리 서로 도와야지요.]


왕경의 한마디가 사도승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혔다.


(그래. 같은 교도끼리 도와야지! 하지만 최근에 우리 백련교는 어땠는가? 다들 자기 이익만 앞세우느라 사분오열되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지 않은가? 나만 해도 몇 달 전부터 사도영에게 핍박받았는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지 않았는가!)


사도승은 왕경에 대한 의혹이 말끔히 사라진 데다 그의 인품 또한 크게 마음에 들어서 왕경과 이단을 후하게 대접했다. 왕경과 이단은 지난 며칠간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피로가 쌓여 옥화장에서 하루를 더 쉬었다.


다음 날 아침 둘은 사도승을 찾아가 말했다.


[저희는 가볼 곳이 있어 이만 떠날까 합니다. 후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왕경의 말에 사도승은 아쉬워했다.


[며칠 더 머물면 좋겠는데 일이 있다니 더 잡을 수가 없구먼.]


사도승의 말에 왕경이 웃으며 답했다.


[곧 또 만나게 될 텐데요.]


[그래 어디로 가나?]


[원래 소주와 항주를 들려볼 생각이었기에 가는 길에 있는 태호(太湖)로 가보려고 합니다.]


태호로 간다는 말에 사도승이 손뼉을 치며 반겼다.


[그거 잘됐네. 태호에는 우리 교도가 운영하는 큰 객점이 있네. 내가 소개장을 써줄 테니 가지고 가게나.]


왕경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고 싶었으나 사도승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도승은 소개장을 쓰며 넌지시 물어봤다.


[그런데 왕 형제.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처자는 있는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왕경이 제대로 대답을 못 하자 옆에서 이단이 툭 던지듯 말했다.


[형님은 정인인지 아닌지,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긴 했습니다.]


아리송한 대답에 사도승은 어리둥절했으나 곧 껄껄 웃으며 말했다.


[대장부가 꼭 한 여자만을 처로 들이라는 법은 없지! 하하.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 하지 않았는가?]


사도승의 말에 이단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영웅 보다, 한 여자만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범부(凡夫)가 훨씬 더 멋있어 보입니다.]


이단은 사도승을 향해 말을 하였지만, 눈빛은 왕경을 보고 있었다. 이단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사영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아내를 먼저 보낸 뒤 아직까지 후처를 들이지 않고 있으니 멋진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 장주님은 강호의 호걸임에도 불구하고 한 여성만을 사랑하고 또 잊지 않고 계시니 어찌 멋진 남자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단의 말에 사도승은 흡족해하며 말했다.


[하하.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니 그런 것이고, 내가 보기엔 왕 형제는 그릇이 매우 큰 사람이라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인을 여럿 거느릴 수도 있을 것 같네! 자네가 보기에 우리 영아는 어떤가?]


갑작스러운 사도승의 말에 왕경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 같은 촌부(村夫)가 어찌 귀한 따님을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사영아 역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왕 대협께서 불편해하십니다. 그만하세요.]


[하하하. 왕 사제는 중원 천하를 뒤흔들 영웅이 될 것이네. 그때가 되면 나 같이 작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을지 모르지!]


사도승의 말에 왕경은 겸양의 말을 했다.


[과찬이십니다. 이제 막 강호에 나온 햇병아리를 너무 크게 띄워주시는군요!]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한 오 년만 지나면 알 수 있겠지.]


사도승은 소개장을 다 쓴 뒤 왕경에게 건넸다.


[태호에 도착하게 되면 홍영루(紅煐樓)를 찾아가게. 기둥이 붉게 칠해져 있는 커다란 객점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 걸세.]


왕경은 공손히 소개장을 받아 넣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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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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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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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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