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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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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0
추천수 :
98
글자수 :
279,987

작성
19.07.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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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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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10. 조천사(朝天使)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구명관은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하여튼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백련교와 명나라는 철천지원수로 지금까지 수도 없이 싸움을 하고 있다네.]


[아무래도 우리는 상인들이다 보니 지역 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서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박용수는 조선, 만주, 명나라를 오가며 상단을 운영하고 있어서 당시 정세에 대해서는 세세히 잘 알고 있었다. 


오늘 구명관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박용수는 속으로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형님 혹시 백련교와 명나라의 싸움에 우리 고려 상단에서 군자금 지원을 부탁하시려는 겁니까?]


구명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백련교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고려를 지원해 달라는 것일세!]


[네? 고려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고려라고 했네. 우리는 명나라와 싸우기 전에 조선과 먼저 싸울 것이네.]


구명관은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구명관의 이야기를 듣고 박용수는 감격해서 엎드려 울었다.


[형님! 저는.. 아니 우리 고려촌 사람들은 한시도 고려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형님은 제 목숨을 살려주시고, 왕자님을 구해주시고.. 이번에는 나라까지 되찾아 주시려 하는군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아. 어서 일어나게나. 이것은 우리 한나라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네. 내가 아무 대가 없이 자네나 왕 사제를 돕는 것이 아니야. 이 빚은 한나라 건국으로 되갚아 주어야 하네.]


[물론입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요.]


박용수는 감격에 겨워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저희 나름대로 조선에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희는 고려를 다시 세우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해볼 수도 없었는데..]


왕경은 조선에 복수하겠다는 그의 계획이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연경의 고려인들이 조선에 어떻게 복수를 하겠다는 것인가? 설마 자객을 고용하여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는가?]


[아닙니다. 왕에 대한 방비가 두터울 터인데 자객 몇 명으로 한양을 뒤엎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어떤 계획을 세웠는가?]


[왕자님께서 하문하시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보름 후면 조선에서 조공을 바치러 조천사(朝天使)들이 들어옵니다. 저희는 그 사신들을 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흠..]


박용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명나라 관내에서 조천사가 습격당해 죽임을 당하면 두 나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겠지요.]


[좋은 생각이군. 현재 명나라는 사방이 적이고 우군이라고는 조선밖에 없는데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 있다면 우리 계획에 큰 도움이 되겠네!]


구명관의 말에 박용수는 대답했다.


[저희는 그런 큰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조선에 조금이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어서 세운 계획입니다. 그런데 형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것 또한 왕자님을 위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그래 조천사들은 많은 공물을 가지고 오느라 경비가 삼엄할 터인데 고려인 중에 무공이 뛰어난 자가 있는가?]


왕경의 말에 박용수가 빙긋 웃었다.


[왕자님. 저희는 천하를 누비는 상단입니다. 한번 상행(商行)을 나가면 크고 작은 도적무리와 마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무공이 약하면 상단(商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박용수는 말해놓고 과거 구명관에게 구원받은 기억이 나서 머쓱하게 말했다.


[물론 저희 힘으로 버거운 상대를 만나기도 하지만요..]


[그래 알았네! 그쪽 일은 자네에게 맡길 터이니 잘해보게 혹시나 우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하시게. 백련교 연경지부에는 고수들이 제법 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야.]


구명관의 말에 박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백련교의 고수들이 도와준다면 일은 더 쉬워지지요. 하여튼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려의 부흥과 왕자님을 위해서 우리 고려촌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형님의 계획에 동참시켜 달라고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군요.]


[앞으로 우리 긴밀히 협조해 나가세. 과거 자네를 구한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리라곤 정말 생각도 못 했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을 만난 건 삼생(三生)의 복인 것 같습니다. 하하.]


박용수는 고려촌의 원로들을 불러 왕경과 구명관을 소개했다. 왕경이 고려 왕족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원로들은 꿇어 엎드려 감격해 마지않았다. 박용수는 앞으로 백련교와 협조하여 고려 왕실을 다시 세울 것임을 설명하였고, 원로들은 모두 다른 의견 없이 백련교와 왕경에게 협조하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 박용수는 왕경을 환영하는 큰 연회를 베풀었다. 고려인들은 왕경이 살아온 날들에 대해 궁금해하였고 왕경은 담담히 두문동을 탈출하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두문동이 불타고, 충신들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왕경 입에서 다시 들으니 고려인들은 다시 한 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중 한 명이 비분강개하여 크게 외쳤다.


[우리 고려인들은 반드시 조선과 이성계 일당에게 복수할 것이오!]


결의에 찬 고려인들의 표정을 보고 왕경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내 반드시 그대들과 함께 고려를 되찾을 것이오!]


왕경의 말에 고려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고려촌에 활기가 돌았다.


이날 왕경과 구명관은 늦게까지 고려촌에 머물면서 대접을 받았다. 구명관은 일이 급하여 자리를 뜨려 했으나 박용수와 고려촌 사람들이 한사코 붙잡아 왕경과 함께 밤늦도록 고려촌에 머물렀다.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구명관과 왕경은 은신처로 돌아왔다.




구명관이 길을 떠난 후 왕경은 은신처에 머무르며 연백수에게 백련교의 교리에 대해 배우고 짬짬이 의술에 관해서도 공부를 했다.


워낙에 총명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니 왕경의 배우는 속도에 연백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왕 사제가 고려의 왕자가 아니라면 나의 의술을 모두 전수해주고 싶구나. 시간을 들여 차분히 배운다면 천하의 으뜸가는 명의가 될 수 있을 텐데.. 안타깝군!)


왕경은 연경 내 은신처와 고려촌을 오가며 조선의 소식과 명나라의 정세에 대해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왕경은 날짜를 헤아려보니 조천사 일행이 연경에 당도했을 것이라 생각되어 조천사의 소식을 수소문하고자 은신처를 나섰다. 


홀로 연경의 중심가로 들어간 왕경은 자금성 근처의 객점에 들러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앉아 국수를 시켰다. 천천히 국수를 먹으며 밖의 동정을 살피는데 열대여섯 살쯤 보이는 소녀 하나가 세 명의 거지들에게 희롱당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보시오 소저! 불쌍한 거지들에게 적선이나 좀 하시구려!]


소녀는 도도한 눈빛을 띄우며 한 푼의 은자를 꺼내 길바닥에 던졌다.


그것을 본 거지 하나가 비아냥댔다.


[차림새는 부잣집 아가씨 같은데 손은 무척 작구먼, 한 푼의 동전으로 뭘 어쩌라는 거요? 좀 더 주시오]


소녀는 거지들을 상대하기 귀찮은지 주머니에서 닷 푼 정도 되는 돈을 집어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급히 나오느라 돈이 별로 없으니 이거나 주워가거라!]


키가 큰 거지 하나가 소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 부잣집 아가씨가 우리 거지들보다 돈이 없으면 어떡하오? 이거 옷만 번드르르하게 차려입었지 실속은 영 없구먼!]


키 작은 거지 하나가 품에서 두 냥 정도 되는 은자를 꺼내 흔들며 말했다.


[이보시오 아가씨 우리가 이 돈을 줄 테니 우리랑 놉시다.]


소녀는 몹시 화가 난 듯 거지를 밀치며 걸어갔다.


[아이고 거지보다 돈도 없으면서 되게 도도하게 구네! 이보시오 아가씨! 같이 놀자니까?]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거지가 소녀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려고 하자 소녀는 가볍게 피하며 발길질을 했다.


왕경은 소녀를 도와주려 하다가 발길질 솜씨가 가벼운 것이 필시 무공을 익히고 있다 생각되어 잠시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수염 난 거지는 소녀의 발길질에 아랫배를 맞고 데굴데굴 굴렀다.


[아이고 돈도 없는 것이 적선은 못 해줄 망정 거지를 잡네 그려!]


키 큰 거지가 소녀를 안으려 달려들었으나 소녀는 몸을 돌려 피하며 무릎으로 거지의 등 뒤 명문혈을 때렸다. 키 큰 거지는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이쯤 되니 거지들은 소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어때? 더 해볼 테냐?]


소녀의 앙칼진 말에 거지들은 뒤로 물러서며 눈치를 살폈다. 장정 셋이 작은 소녀 하나를 못 당하고 물러서는 게 영 체면이 안 서는 모양이었다.


[흥!]


소녀가 콧방귀를 뀌며 제 갈 길을 걸어가는데 키 작은 거지가 뒤에서 달려들었다. 소녀는 가소로운 듯 냉소를 날리며 왼손을 돌려 키 작은 거지의 목을 후려치는 순간 갑자기 거지가 가래침을 탁 뱉었다.


깜짝 놀란 소녀는 가래침이 극독이라도 되는 양 황급히 왼손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보고 수염 난 거지와 키 큰 거지도 합세하여 소녀에게 침을 뱉기 시작했다.


거지들의 침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소녀는 담벼락 구석까지 몰리고 말았다. 키 큰 거지가 소녀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으며 달려들자 소녀는 침을 피해 고개를 숙였고 그 틈에 수염 난 거지가 소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나뒹굴었다.


아무리 상승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십여 세의 소녀가 장정 셋을 힘으로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이런 더러운 드잡이질은 해본 적이 없는 소녀는 결국 거지들에게 제압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키 작은 거지가 소녀의 팔을 꺾은 뒤 키 큰 거지에게 말했다. 


[형님 요년이 피부도 하얗게 예쁜 것이 맛이 아주 좋겠습니다 그려?]


[그래 오랜만에 어린 것의 살맛을 좀 보겠구나. 관청에서 나오기 전에 얼른 움막으로 끌고 가자!]


거지들은 일대에서 유명한 무뢰배들이라 해코지당할까 무서워 아무도 소녀를 도와주러 나서지 않았다. 


왕경은 더 지켜볼 수 없어서 창문을 넘어 거지들에게 달려들어 삽시간에 세 명의 거지를 쓰러뜨렸다.


[소저 괜찮으시오?]


소녀의 얼굴과 옷에는 거지들의 침과 흙이 범벅되어 있었다. 소녀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객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물! 깨끗한 물을 가져오너라!]


점소이가 물을 떠다 바치자 소녀는 얼굴과 손을 깨끗하게 닦고 또 닦았다. 거지들은 방금 왕경의 솜씨를 보니 자신들의 상대가 아닌지라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왕경은 도망가는 거지들은 상관하지 않고 객점으로 들어와 소녀에게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오?]


한참을 닦고 나서야 소녀는 대답했다.


[덕분에 괜찮습니다.]


왕경은 물기가 흐르는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소녀의 긴 속눈썹과 하얗고 갸름한 얼굴을 보자 왕경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왕경은 어릴 적에는 두문동에서 노인들과 같이 지냈고, 그 이후에는 만보산에서 무공을 익히며 세상과 단절된 채 지냈기에 젊은 여인은 장화령을 제외하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왕경이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은데 지금 가진 것이 없군요.]


소녀의 말에 왕경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실례를 했구나! 처음 보는 여인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다니!)


[사례라니요. 괜찮습니다. 더 빨리 도와드리지 못해 송구하군요.]


[아닙니다. 연경은 처음이라 혼자 구경을 나왔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는데 공자께서 도와주셔서 살았습니다.]


소녀가 인사치레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자 왕경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저도 연경에 온 지 얼마 안 됩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는 조선에서 왔습니다.]


소녀는 중원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조선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왕경은 놀랍고도 반가웠다.


[아.. 고.. 조선 분이셨군요. 중원 복장을 하고 계셔서 몰랐습니다.]


[조선의 옷을 입고 연경을 돌아다니면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지요.]


왕경은 조선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소녀와 헤어지기도 싫어 자리를 권했다.


[거지들 때문에 힘드셨을 텐데 이리 앉으셔서 잠시 숨이라도 돌리고 가시지요.]


소녀는 옷에 뭍은 먼지 때문에 빨리 의복을 갈아입고 싶었으나 준수하게 생긴 왕경이 자리를 권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아까 거지들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잠시 쉬시면서 동정을 살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경이 거듭 권하자 소녀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흥! 그 거지들을 다시 만난다면 이번엔 제대로 혼을 내주겠습니다.] 


소녀는 거지들의 더러운 수법에 당한 것이 매우 분한 모양이었다.


왕경은 입을 삐죽이는 소녀의 모습이 몹시도 귀여워 보였다.


(혹시 이 소녀가 이번에 들어온다던 조천사의 일행인가? 설마 공녀(貢女)로 온 것은 아니겠지?)


[연경에는 조선에서 공물을 가지고 사신이 온다고 소문이 돌고 있는데 혹시 이번 조천사와 함께 오신 겁니까?]


왕경의 질문에 소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숙부님이 비단을 다루시는데 이번 조천사와 함께 오셔서 연경에 비단을 파신다고 하기에 연경 구경을 하고 싶어 억지로 졸라 따라 왔습니다.]


(다행히 공녀나 조선 관리의 딸은 아닌 모양이구나)


[은공(恩公)의 성함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소녀의 말에 왕경은 잠시 고민했다.


(이곳이 고려땅도 아니고 나를 명나라 사람으로 알고 있을 텐데 본명을 말해도 상관없겠지!)


[저는 왕경이라고 합니다. 소저의 방명(芳名)은 어찌 되시는지요?]


처음 본 남자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지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이름을 묻자 대답하지 않기도 어려웠다.


소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야기했다.


[저는 목자단(木子緞)이라고 합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장화령을 제외하고는 젊은 여인과 말을 해본 적이 없는 왕경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꺼내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목자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신세 진 것을 갚고 싶은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군요.]


목자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왕경은 당황했다. 가지 못하게 붙잡고 싶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목자단이 품에서 옥 비녀 하나를 꺼내 왕경에게 건넸다. 세공이 매우 정교하게 들어가 있는 귀해 보이는 비녀였다.


[저는 경친왕부(慶親王府)에 손님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게 되면 경친왕부로 오셔서 그 비녀를 건네주세요. 그러면 제가 힘이 닿는 한 돕도록 하겠습니다.]


왕경은 얼떨결에 비녀를 받아들었다.


[지금 가시는 건가요?]


[네. 제가 나온 지 오래되어 숙부님이 걱정하실 것 같습니다. 이만 들어가 봐야지요.]


[그럼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왕경이 따라나서자 목자단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가겠습니다.]


[그 거지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목 소저를 호위하여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목자단이 싸늘하게 웃으며 품 안에서 단도를 꺼내 허공에 한번 휘둘렀다.


[흥! 그놈들이 다시 한 번 제 앞에 나타나길 바랍니다. 아까의 수모를 갚아 주어야지요!]


그 거지들이 눈에 띄면 단칼에 베어 버릴 기세다. 그런 목자단이 못내 걱정되어 왕경은 고집을 부렸다.


[아무래도 그놈들의 일행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더 몰려오면 위험할지 모르니 제가 꼭 모셔다드려야겠습니다.]


왕경의 진지한 얼굴에 목자단은 피식 웃고 말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거절하기 어렵군요.]


둘은 객점을 나와 경친왕부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왕경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가는 내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밥 한 공기 먹을 정도의 시간을 걷자 커다란 저택 앞에 도착했다.


[이곳이 경친왕부입니다. 우리 조천사 일행은 여기서 머물며 황제 폐하를 알현할 날을 기다리고 있지요. 아마 알현이 끝나고 지역 상인들과 거래까지 다 하려면 달포 이상은 머무를 것 같습니다.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이곳으로 오세요.]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더 붙잡을 핑곗거리도 없어서 왕경은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박용수 일행이 조만간 조천사들을 습격할 텐데 목 소저가 피해를 당하면 어쩌지? 목 소저는 조선의 관리가 아니라 단순히 조천사를 따라온 무역상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목자단에게 미리 귀띔을 해줄 수도 없는 일이라 왕경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내일 고려촌으로 가서 관리만 제거하고 상인들은 건들지 말라고 이야기해야겠구나!)


왕경은 천천히 은신처로 돌아와 저녁 공부를 마친 뒤 자려고 누웠으나 눈앞에 목자단의 얼굴이 아른거리며 쉬이 잠이 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아침 식사를 마친 왕경은 고려 촌으로 달려갔다. 반 시진 정도를 달려 박용수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인기척을 내며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용수는 대청에서 상처 입은 젊은이와 이야기하고 있다가 왕경을 보고 급히 인사를 했다.


[왕자님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사람을 보내려던 참입니다.]


박용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느끼고 왕경이 물었다.


[무슨 일 있는가? 저 청년의 상처는 어찌 된 것인가?]


박용수 앞에 서 있던 청년은 좌측 어깨에 자상(刺傷)을 입고 있었다.


[왕자마마 어제 조천사 일행이 연경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에 손을 썼습니다.]


[아.. 왜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도착하자마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습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일단 먼저 손을 쓴 후 보고 하려고 했습니다만..]


조선 관리와 관계가 없는 상인은 해치지 말라고 말을 하러 온 것인데 이미 새벽에 손을 썼다니.. 왕경은 속으로 목자단의 안위가 매우 걱정되었다.


[그래.. 일은 어떻게 되었나? 우리 쪽 피해는 어떤가?]


박용수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상단의 고수 일곱을 보냈는데 돌아온 것은 이 녀석 하나입니다.]


청년의 이름은 김정원(金鄭源)이라 했다.


김정원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왕자마마 죄송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으나 능력이 모자라 일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왕경은 김정원을 달래며 말했다.


[괜찮네! 괜찮어.. 조천사 일행 중에 고수도 많았을 것이고, 경친왕부 내에도 고수들이 즐비 할 텐데 자네가 살아온 것만 해도 다행일세. 자 어깨를 보여보게나.]


왕경은 최근 연백수에게 의술을 전수받아 외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처치가 가능했다.


김정원은 황송해 하며 상처 부위를 왕경에게 보였다. 좌측 어깨에 날카로운 칼로 위에서 찍힌 상처로 상처 자체는 깊었으나 뼈에는 이상이 없어 치료가 가능해 보였다.


왕경은 김정원의 견정혈(肩井穴), 거골혈(巨骨穴), 곡원혈(曲垣穴)을 차례로 눌렀다. 혼천공을 실어 혈 자리를 누르자 대뜸 쏟아져 나오는 피가 멎었다.박용수는 피에 범벅이 된 금창약을 닦아내고 재빠르게 새로운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사실 김정원의 상처는 치료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박용수의 내력이 부족하여 올바른 혈도를 점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멎지 않았던 것인데 왕경이 혼천공을 이용하여 점혈하자 금세 피가 멎는 것을 보고 박용수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왕자님의 내공은 보통이 넘는구나) 


왕경은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김정원의 상처를 감싸주고 말했다.


[자상이 뼈에까지 닿진 않았으니 곧 회복될 걸세 걱정하지 마시게나]


김정원은 허리를 크게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왕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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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 파양호 대전 19.08.13 84 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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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4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22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6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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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14 14. 연경을 떠나다. 19.07.24 157 3 20쪽
13 13. 모함 19.07.23 164 2 17쪽
12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 10. 조천사(朝天使) +1 19.07.19 245 3 20쪽
9 9. 연경의 고려인들 +2 19.07.18 250 3 21쪽
8 8. 장원계의 죽음 19.07.17 238 3 18쪽
7 7. 연경으로 19.07.16 244 4 20쪽
6 6. 혼천공을 완성하다. 19.07.15 285 4 18쪽
5 5. 만보산에서의 생활 +2 19.07.13 296 7 22쪽
4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29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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