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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659
추천수 :
98
글자수 :
279,987

작성
19.07.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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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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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14. 연경을 떠나다.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고려인들이 치료 받고 있는 집으로 돌아온 왕경은 연백수에게 목자단과 한 이야기를 말했다.


[하하하. 우리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놈들이 유정협을 의심하게 되었다니 그것참 좋은 일이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비록 조천사 일행은 제거하지 못했지만, 유정협을 괴롭힐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 해도 작은 성과는 낸 셈이지요.]


[우리는 자금성에서 어떤 조칙(詔勅)이 내려오는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보세.] 

 

왕경과 연백수는 큰 기대없이 던진 말에 경친왕이 걸려들자 매우 기뻐했다.


그날 저녁 왕경은 연백수와 함께 고려인들을 치료한 후 늦은 저녁을 먹었다.


[사형.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연백수는 수저를 들다 말고 왕경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사형! 고려인들의 치료가 어느 정도 끝나면 연경을 떠날까 합니다.]


연백수는 최근 왕경에게 의술을 전해주면서 왕경의 총명함에 크게 탄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배운 의술을 응용하여 고려인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의술을 왕경에게 전수 하고자 결심을 했었기에 왕경이 떠난다는 말을 하자 매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그러나?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생겼는가?]


[아닙니다. 요 며칠 큰일을 겪으면서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네가 무지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왕 사제 자네 정도의 무공과 식견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네!]


왕경은 최근 연백수나 구명관등이 일 처리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몰랐는지 깨달았다.


더욱이 천군명과의 대결에서 고전한 것을 생각하면 강호 경험이 얼마나 부족한지 절실히 느껴졌다. 비록 천군명이 고수이기는 하나 그 정도의 상대는 왕경이 쉽게 이길 수 있어야 했다.


왕경은 그런 생각들을 연백수에게 전했다.


[사숙님과 사형님들은 저를 백련교 교주 자리에 오르라고 하십니다. 사부님도 그럴 생각으로 저에게 무예와 학문을 전수하셨고요. 하지만 책에서 배우는 것과 현실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연백수는 조용히 왕경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서 이번에 중추절이 오기까지 강호를 돌아다니며 견식을 넓혀 볼까 합니다.]


연백수는 의술을 전수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왕경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사실 백련교를 이끌고 조선과 명을 치는 데는 뛰어난 의술보다는 강호 경험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자네 생각도 일리가 있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게.]


[네 천천히 강호를 다니다 각 지역의 백련교 지부를 방문하여 인사도 하려고 합니다.]


[흠..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조심해야 하네. 같은 백련교라도 어느 일파냐에 따라 원수보다 더 사이가 안 좋은 곳도 있으니, 게다가 우리 한나라 쪽 백련교도라 하더라도 자네를 교주로 모시는데 반감을 갖는 무리도 많이 있을 수 있네!]


왕경이 한(漢)인이 아니라 고려인이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백련교도도 많을 것이고, 또 나이가 어려서 반대하는 교도도 있을 것이다. 장원계가 살아 있다면 어느 정도 무마시킬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순전히 왕경의 힘으로 다른 교도들을 설득해야 한다.


왕경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다진 상태였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매사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그래 자네가 알고 있다면 됐네.]


왕경은 고려인들을 돌보며 여행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연백수는 꼼꼼하게 강호에 나가면 주의해야 할 것들과 각 지역의 방파 및 주요 인물들에 대해 설명해줬다. 왕경은 적을 건 적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며 연백수의 말을 경청했다.​


삼 일째가 되자 왕경은 목자단과의 약속을 지키러 객점으로 떠났다.


왕경이 객점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목자단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왕경은 앞에 놓인 차를 한잔 마시고 입을 열었다.


[어떤 분부시길래 삼일이나 지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왕경은 목자단이 어떤 부탁을 해올지 내심 불안했다.


(얼마나 어려운 부탁이길래 삼일이나 시간을 들여 하는 것일까?)


왕경은 긴장을 하며 목자단의 대답을 기다렸다.


[요전에 왕 공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부탁할 것이 생각났으나, 그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삼일의 시간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은 하고 오셨습니까?]


목자단은 품에서 반으로 접힌 동전을 하나 꺼내 왕경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네. 어제저녁에야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왕경은 돌려받은 동전을 매만지며 목자단의 말을 기다렸다.


[저의 부탁은 제가 명나라에 머무는 동안 저의 호위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뜻밖의 부탁에 왕경은 당황하였다.


[목 소저의 무공이 뛰어나고 경친왕부에도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은데 제가 할 일이 있을까요?]


[친왕부에 고수들이 많다고는 하나 왕 공자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친왕이 공들여 초빙해온 천군명 마저도 일장에 쓰러뜨리지 않으셨습니까?]


[목 소저! 저의 무공은 별것 아닙니다. 더욱이 저는 며칠 내로 연경을 떠나야 합니다.]


목자단은 앞에 놓인 차로 입술을 적신 뒤 말했다.


[어디로 떠나십니까?]


[딱히 정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중추절까지 약간의 여유가 생겨 강호를 유람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왕경의 말에 목자단이 반색을 했다.


[그거 잘되었군요. 사실 저도 연경을 떠나 명나라 구석구석을 다녀볼 생각이어서 너무 귀찮은 부탁을 드리는 건 아닌가 고민했었는데, 어차피 강호를 유람할 생각이시라면 친구와 동행 한다 생각하시고 저와 함께 가시면 되겠군요!]


[네?]


왕경은 몹시 당황하였다. 아무리 강호인들이 예법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 큰 남녀가 함께 강호를 유람하다니.. 더군다나 왕경은 백련교 인사들을 두루 찾아볼 예정인데 비록 상인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왕경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목자단이 슬쩍 자극하는 말을 한다.


[왕 공자께서는 사내대장부가 아니었습니까? 분명히 남아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맹세하지 않으셨나요?]


[네. 하지만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목 소저와 단둘이 여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숙부님과 함께 오셨다고 했는데 그분께는 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내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는지요?]


[허락받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에 제가 삼일 뒤에 만나서 부탁을 드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물론 허락을 받았으니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요.]


목 자단은 쉽게 말하지만 사실 허락 받기까지 과정이 그리 평탄치는 않았다.


[혹시 제 부탁이 협의(俠義)에 어긋난다거나 왕 공자의 양심에 걸리는 그런 부탁인가요?]


[그..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명나라를 유람하려는 이유는 명나라 산천을 구경하겠다는 것도 있지만, 상단의 일원으로 명나라 각지의 토산품을 조사하고 또 그 지역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어 우리 상단에서 교역하고자 함이 더 큰 이유입니다. 그러기에 숙부님께서도 허락해 주신 것이고요.]


목자단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왕경은 더는 거절할 구실이 없었다.


[그래도 어린 여자의 몸으로 여행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숙부께서 용케 허락을 해주셨군요.]


[왕 공자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렸지만 제 무공도 제법 괜찮답니다. 어지간한 무뢰배 몇 명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요.]


왕경도 그날 목자단의 몸놀림을 봐서 그녀의 무공 기초가 탄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자단은 그날 왕경과의 대화에서 뭔가 조선에 불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왕경을 감시하고자 명나라에 남겠다는 결심을 했다.


경친왕부로 돌아간 뒤 그런 뜻을 김유겸에게 전했고, 김유겸은 안된다고 펄쩍 뛰었으나 목자단이 경친왕을 설득하여 압박해오자 마지못해 허락했던 것이다. 

 

그녀는 경친왕으로 부터 명나라 관청 어디든 통할 수 있는 신원 보증서까지 발급 받아놓은 상태였다. 왕경을 감시하다가 조선에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면 즉시 근처 관아의 도움으로 왕경을 체포하던지, 체포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면 자신이라도 관아의 도움으로 연경까지 귀환하려는 속셈이었다.


[음.. 이미 숙부께 허락까지 받으셨다면 제가 더 거절하긴 어렵겠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목 소저의 호위를 맡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틀 뒤 출발하는 것으로 하지요. 왕 공자께서는 어디로 유람을 가실 생각이십니까?]


구출해낸 고려인들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어 이틀 뒤면 출발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뒤에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저는 딱히 정해 놓은 곳은 없으나 우선 강남 쪽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목 소저께서는 달리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강남이 따뜻하고 놀기 좋다는 이야기는 조선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지요.]


목자단은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어갔다.


[왕 공자께서는 강남에 볼일이 있으신 것은 아닙니까? 혹시 정인(情人)이 있다던가...]


왕경은 얼굴을 붉히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요 근래 왕경은 장화령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불현듯 목자단의 얼굴이 종종 떠오르곤 했으나, 그것은 여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고려인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올린 것이라고 합리화를 시키곤 하였다.


왕경이 대답을 못하자 목자단은 오해를 했다.


(왕 공자에게 정인이 있긴 있나보구나)


왕경에게 정인이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심술이 났다.


[그럼 왕 공자께서는 이틀 뒤 친왕부로 와주십시오!]


[네. 오전 중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마필(馬匹)을 비롯하여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은 저희 쪽에서 준비할 테니 왕 공자께서는 본인 개인 물품만 챙겨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혼자 여행 준비를 하는 것보다 상단에서 준비해주는 것이 더 편리할 것이라 생각되어 왕경은 목자단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목자단이 돌아간 뒤 왕경은 연백수에게로 가 오늘의 일을 보고했다.


연백수는 목자단의 속내를 알 수 없어 걱정했다.


[아무리 상단 사람이라고 해도 드넓은 중원을 처음 만난 남자에게 의지하여 유람하겠다는 것이 납득이 안가는 군.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유하게 자란 아가씨 같은데..]


[네. 저도 무슨 속셈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연백수는 왕경을 힐끗 쳐다보고 매우 준수하고 귀티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설마 왕 사제에게 반해서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쫓아 오려고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왕 사제에게 들은 것으로 가늠해 보건데, 그 목 소저란 아가씨는 매우 총명하고 과감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단지 사내에게 반했다고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자 그저 조심하라는 당부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이미 약조한 것이니 어쩔 수 없네만 항시 조심하게나. 자네의 신분이 노출될만한 행동이나 말은 하지 말고, 백련교도들과 접촉하는 일도 은밀히 하게.]


[네. 사형 알겠습니다.]


연백수는 잠시 생각해 본 뒤 한가지 당부를 더 했다.


[잘하면 역정보를 흘려 상대를 혼란케 할 수도 있을 테니 꼭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알맞게 처신하도록 하게!]


[네. 기회를 봐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경은 이틀 동안 여행갈 준비를하느라 매우 부산하게 보냈다. 그사이 고려촌에 들어가 잠시 여행을 떠날 것이라 전했다.


박용수의 반응도 연백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왕경을 몹시 걱정하였다. 박용수는 본인의 상단을 동행시키려 했으나 조천사 일행과 연줄이 닿아 있는 여인에게 고려 상단을 노출 시키고 싶지 않아 왕경은 박용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틀 뒤 왕경은 장원계의 무덤에 들러 절을 한 뒤 간단히 짐을 꾸려 경친왕부로 갔다.


경친왕부에 도착하여 문지기를 부르니 지난번에 봤던 하인이 나온다.


[오늘 목 소저와 약속이 있어 왔소.]


하인은 오늘 목자단이 짐을 챙겨 떠나는 것을 아는지라 속으로 웃었다. 

 

(이 어린 공자가 공을 들이더니 결국 조선 아가씨를 꾀어냈구나!) 

 

그렇게 생각한 하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알고있습니다. 공자님! 안 그래도 목 소저께서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인이 베실 베실 웃기만 하고 들어가서 말을 전하려 들지 않자 왕경은 느껴지는 것이 있어 품속에서 한 냥의 은자를 꺼내 건넸다.


하인은 두 손으로 은자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며 한마디 보탠다.


[두 분이 떠나시는 데에 제 공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 하지요. 제가 옥비녀를 잘 전달했기 때문에 오늘 같은 경사가 있는 것 아닙니까? 하하.]


하인이 들어간 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목자단이 말 두 필과 노새 한 마리를 끌고 나왔다. 노새 등에는 짐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목자단이 왕경을 보고 인사를 한다.


[왕 공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유람을 가신다고 하셨는데 짐이 상당히 많군요? 혹시 상행(商行)을 가시는 겁니까?]


[저는 명나라 천하를 주유(周遊)하고 싶은 것이지 길바닥에서 고생하려는 것이 아니니 그만큼 짐이 많을 수밖에요.]


왕경은 먼 길 떠나는데 거추장스럽게 짐을 늘리는 것이 이해가 안 됐으나 여인의 속내는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저 빙긋 웃고 말았다.


[왕 공자!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제가 부탁해서 떠나는 길이지만 딱히 목적지를 정한 것은 아니니 왕 공자께서 볼일이 있는 곳을 먼저 들리셔도 무방합니다.]


[저도 강남 쪽으로 간다는 생각만 있지 딱히 어디를 들려야겠다 싶은 곳은 없습니다. 목 소저께서는 어디 생각해둔 곳이 있습니까?]


왕경의 질문에 목자단은 미리 생각해 두었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명나라에는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또 '소주(蘇州)에서 태어나 만관을 두르고 항주(杭州)에서 놀다 광주(廣州)로 가서 먹고 유주(柳州)에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는 말도 있다더군요. 어차피 강남으로 갈 것 이라면 소주와 항주를 먼저 들려 보도록 하지요.]


왕경은 백련교의 남경지부에 들릴 예정이었고, 전부터 소주와 항주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들어 왔기 때문에 목자단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목자단은 말 한 필을 왕경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이 말은 왕 공자께서 타시지요.]


경친왕부에서 준비해준 말이라 목자단이 끌고 나온 두 마리의 말은 모두 뛰어난 준마(俊馬)였다.


[귀한 말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갈 길이 먼지라 왕경은 사양하지 않고 즉시 말 위에 올라탔다. 목자단은 다른 한 필의 말에 올라타고 천천히 길을 떠났다.


연경 남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니 풍경이 금방 바뀌었다. 왕경은 목자단이 의심 갈만한 행동을 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였으나 특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왕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과 여행한다는 사실에 긴장감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는 묘한 감정도 떠올랐다.


목자단은 명나라의 풍물에도 밝아 왕경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목 소저는 견문이 무척이나 넓군요. 명나라에 사는 저보다도 훨씬 더 명나라에 대해 잘 아시니..]


[상인의 집안에서 자라게 되면 듣기 싫어도 여러 나라의 소식이 들려오는 법이지요.]


둘은 반나절을 달려 연경에서 60여 리 떨어진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날 묵을 숙소를 찾아보던 중 왕경은 눈에 익은 사람이 몇 명 보였다. 어디서 본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히는 구석이 있었다.


(저자들은 연경에서 출발할 때 남문 쪽에 있던 상인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농민으로 변장하고 있군. 아마 목 소저를 보호하며 나를 감시하는 것이겠지. 흥! 역시 무슨 꿍꿍이가 있었군!)


왕경은 비교적 깨끗한 객점을 찾아 방 두 개를 잡고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자 목자단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왕경 앞에 앉는다.


[시장하실 텐데 미리 드시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식사는 같이해야 더 맛있죠.]


둘은 저녁을 주문한 뒤 오늘 오면서 본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했기에 금방 준비가 됐고 둘 다 먼 길을 오느라 배가 고파서 제법 많은 양을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왕경이 말했다.


[목 소저! 동행하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왕경의 말에 목자단은 의아해했다.


[출발한 지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그러십니까? 왕 공자께서는 식언을 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저에게 부탁하신 일은 중원 천하를 유람할 때 안전하게 호위해 달라는 것 아니었습니까?]


[네. 맞습니다. 천하에 왕 공자의 무공이나 인품을 따라갈 자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되어서 부탁드린 것입니다.]


목자단의 추켜세우는 말에 왕경은 고개를 저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는 법입니다. 저보다 무공이 뛰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은 그야말로 셀 수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은 그리 많이 않습니다.]


왕경이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자 목자단이 답답해 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급히 가보셔야 하는 일이 생기셨습니까? 그런 거라면 저도 동행해도 상관없습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여행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목 소저 주위에 고수들이 즐비한데 굳이 제가 나서서 호위해야 할 이유를 못 느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왕경의 말에 목자단은 아차 싶었다.


(왕 공자가 미행이 붙은 것을 눈치챘구나! 그만큼 조심하라고 했거늘..) 

 

어차피 왕경이 눈치챈 거, 변명해봐야 화만 돋울 뿐이라고 생각되어 목자단은 바로 사과했다.


[왕 공자께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들은 저의 숙부님이 보내신 사람들로 저들을 따르게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우기셔서 어쩔 수 없이 쫓아오게 된 것입니다.]


[저자들이 있다면 굳이 제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출발 전에 분명히 다짐을 받았습니다. 멀리서 쫓기만 할 뿐 절대로 우리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왕 공자께서는 그들을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흥! 주변에 저만한 무공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얼쩡거리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목자단은 왕경을 설득할 방법이 없어 난감해 했다. 사실 목자단은 왕경과 둘이 떠나려 했다. 어차피 경친왕이 보증한 신원 증명서와 유사시 관병을 동원해 도와주라는 명령서까지 받아내었기에 왕경과 둘이 여행을 가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왕경이 아무 이유 없이 아녀자를 해칠 인물도 아니고, 왕경이 못 당할 정도의 고수를 만나게 된다면 몇 명의 무사들이 더 있어 봤자 별 도움이 안 될 것을 알기에 목자단은 끝까지 혼자 갈 것을 고집하였다. 하지만 김유겸이 극구반대하여 어쩔 수 없이 들키지 않게 조심히 따라오라고 당부한 것인데 왕경이 이토록 쉽게 눈치챌 줄은 몰랐다.​


목자단은 궁색하게 변명을 하였다.


[그들은 그다지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고수가 아니라면 누가 고수란 말입니까?]


왕경은 미행하는 자들의 몸놀림이 매우 가벼운 것을 보고 상당한 무공을 갖춘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말할 것 없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 따로 출발할 터이니 목 소저는 그들과 함께 행동하십시오. 혹시 다른 부탁할 것이 있으면 동전과 함께 우리가 만났던 객점에 글을 남겨 놓으시오. 내 연경에 들릴 때 마다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왕경은 목자단과 헤어지는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대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여인을 옆에 오래 두고 있을 수는 없어서 독하게 쏘아붙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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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복건삼호(福建三虎) (2) 19.08.16 73 2 32쪽
29 29. 복건삼호(福建三虎) (1) 19.08.14 85 2 25쪽
28 28. 파양호 대전 19.08.13 84 2 26쪽
27 27. 흑묘파 (3) 19.08.12 100 2 21쪽
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4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22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6 3 18쪽
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 14. 연경을 떠나다. 19.07.24 157 3 20쪽
13 13. 모함 19.07.23 164 2 17쪽
12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10 10. 조천사(朝天使) +1 19.07.19 244 3 20쪽
9 9. 연경의 고려인들 +2 19.07.18 250 3 21쪽
8 8. 장원계의 죽음 19.07.17 238 3 18쪽
7 7. 연경으로 19.07.16 244 4 20쪽
6 6. 혼천공을 완성하다. 19.07.15 285 4 18쪽
5 5. 만보산에서의 생활 +2 19.07.13 296 7 22쪽
4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29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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