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662
추천수 :
98
글자수 :
279,987

작성
19.07.12 15:51
조회
329
추천
4
글자
20쪽

4. 사부를 모시다.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왕경은 정오성을 매장해 주려 했지만, 군졸들이 가지고 있던 병장기(兵仗器)로는 땅을 팔 수도 없었고 마땅히 묻을 만한 장소도 근처에 없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근처 초가로 들어가 소리쳤다.

 

[내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나오시오!] 

 

노인이 몇 차례 소리 질렀으나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노인은 내공이 높아 초가 안에서 내쉬는 작은 숨소리를 듣고 이미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 

 

노인의 호통소리에 안에 숨어서 떨던 청년 하나가 눈치를 보며 슬금 슬금 나왔다. 청년은 군관들이 칼을 빼 들고 왕경과 정오성을 죽이려 하고, 노인이 군관들을 잡아 죽이는 것을 보고 사건에 연루될까 두려워 문을 닫고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어르신.. 저는 이곳에서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 사람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청년의 말에 노인이 대답했다.


[누가 자네를 벌한다 했던가? 뭘 용서하란 말인가?] 

[네 네.. 잘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청년의 말에 노인은 피식 웃었다.


[자네 같은 촌사람을 죽여서 뭐하겠나? 내 자네에게 한가지 시킬 일이 있으니 이리 나와보게.]


청년은 덜덜 떨며 노인을 따라 나왔다.노인은 정오성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등에 칼을 맞고 죽은 청년이 보이는가?]

[네 어르신 잘 보입니다.]

[그래.. 저 청년을 눈에 안 띄는 곳에 잘 묻어주게.]


노인은 품 안에서 열 냥쯤 되는 돈을 꺼내 청년에게 건넸다.


[그리고 관청에서 누가 저들을 죽였는지 묻거든 여진인 기마대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 죽었다고 하게나 그리고 여진인들은 동북 방향으로 갔다고 하고.]


노인의 말에 청년은 당황했다. 비록 작은 촌락의 어귀지만 다른 집이 몇 채 더 있었고, 그곳에 사람이 있어 이 일을 목격했다면 금방 관청에 일의 전모가 밝혀질 것이 아닌가? 


당황해하는 청년을 보고 노인은 금세 그 의중을 알아차리고 내공을 끌어올려 길게 외쳤다.


[오늘 일을 발설한다면, 이곳 주민 중 살아남을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누가 발설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연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루 이틀... 운 좋으면 한 두 달은 나를 피해 몸을 숨길 수 있겠지만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나를 피해 도망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내공을 실어 말했기에 사방 5리까지 똑똑히 목소리가 퍼졌다. 조금 전 노인의 귀신같은 솜씨를 숨어서 지켜보았던 마을 주민들은 숨을 죽이며 두려움에 떨었다.


노인은 청년을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나는 조선.. 고려에 볼일이 있어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이곳을 지난다네. 만일 무덤 관리가 잘 안 되어있으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청년은 덜덜 떨며 대답했다.


[제.. 제 목이 붙어있지 않겠죠..]

[잘 알고 있으니 되었네.. 대신 무덤 관리가 잘 되어 있다면 지나 갈 때마다 몇 냥씩 주겠네.]


노인은 왕경을 보고 말했다.


[자! 다시 관군이 따라붙으면 귀찮아지니 우린 이만 가세나.]


왕경은 노인의 일 처리 솜씨를 보고 매우 감탄했다.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나와는 크게 다른 사람이로구나)


왕경은 노인의 재촉에 아쉬운 발걸음을 떼며 청년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예의를 갖춰서 묻어 주게나. 그리고 무덤 앞에 고려충의지사(高麗忠義志士) 정오성(鄭吳成)이라고 비(碑)를 하나 세워주게.]


왕경의 말에 청년은 난색을 표한다.


[작은 나리.. 젊은 무사님은 의기(義氣)가 높고, 저 또한 존경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솟아오르지만.. 그렇게 적었다가는 관청의 눈에 띌 것이고 무덤도 훼손될 것입니다. 저와 제 가족도 모조리 참수당할 것이고요. 죄송하지만 고려는 빼고 비를 세우겠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 왕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경은 청년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하고 노인과 함께 길을 떠났다.


(언젠가 반드시 자네의 충의에 걸맞은 비를 다시 세워주겠네! 자네는 비단 나의 신하일 뿐만 아니라 듬직한 형이요 좋은 친구였다네.)

 

노인과 소녀 그리고 왕경은 의주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안동(安東, 지금의 단둥(丹東))에 도착했다.


왕경은 압록강을 건너며 다짐했다.


(내 오늘은 이렇게 쫓겨가지만 다시 돌아오는 길은 다를 것이다. 이성계여!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게 살아있어라!)


길을 가는 동안 노인은 왕경에게 아무것도 묻질 않았다. 노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기쁜 표정을 짓는 등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였다. 노인이 혼자서 무슨 계획을 세우는지 몰라 왕경은 불안하고 답답했다.


안동의 작은 주막에 들러 방 하나를 잡았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있었다. 노인은 세 사람 분의 식사를 시켜 왕경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십여 일 동안 건량만으로 배를 채우다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되자 왕경은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먹어치웠다.


노인은 왕경이 밥을 다 먹기를 기다려 말을 했다.


[내 이름은 장원계(張原計)라고 한다네, 이 아이는 화령(和玲)이고 내 손녀딸인데 조선.. 아니 고려말은 하지 못한다네.]

[저는 왕경(王景)이라고 합니다. 어르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구명지은(救命之恩)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왕경은 노인 앞에 엎드리며 공손히 예를 갖췄다.


[됐네 됐어..오는 동안 누차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나. 과분한 예는 그만하시게.]


장원계는 왕경의 공력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슬쩍 내공을 돋우어 왕경의 어깨를 들쳐 올렸다. 왕경은 엎드려 버티려 했으나 태산 같은 힘이 어깨를 밀어 올리자 견디지 못하고 몸이 둥실 떠올랐다. 거대한 힘에 뒤로 나뒹구나 싶었는데 어깨를 밀고 있던 장원계의 공력이 어느새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왕경은 당황하여 노인을 쳐다보았다.


[하하.. 자네 공력을 잠시 시험해 본 것뿐이네. 기초가 튼튼히 잘되어 있구먼.. 어린 나이에 상당히 견실하게 내공을 쌓았어.]


장원계는 자신의 익힌 무공과 유사점이 있는 것이 궁금하여 왕경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는 어느 무공을 익혔는가? 보아하니 명문정파의 내공을 착실히 익힌 것 같은데..]

[저희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을 약간 익혔습니다.]

[무공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

[태상무결이라고 합니다.]

[태상무결? 태상무결이라.. 흠.. 들어본 적이 없는데..]


태상무결은 구처기가 구술한 전진교의 입문 내공으로 태상무결이라는 이름은 칭기즈칸 옆에 있던 몽고의 사관(士官)이 칭기스칸의 명령으로 붙인 이름이라 장원계가 알 리 없었다. 전진교의 입문 내공이라고 설명했으면 바로 알았겠지만 왕경 역시 중원 무림의 사정에는 어두워 태상무결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게 한번 보여 줄 수 있겠나?]


왕가의 지보(至寶)를 남에게 내보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장원계가 힘으로 뺏으려 들면 당해내지 못할 것을 잘 알기에 왕경은 즉시 태상무결을 품에서 꺼내 건넸다.


장원계는 천천히 태상무결을 읽어본 뒤 빙긋 웃었다.


[자네 가문의 보물을 폄훼할 생각은 없네만 이건 태상무결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현문정종(玄門正種)의 내공(內功) 입문서 일세]

[네?]


의아해하는 왕경을 보고 장원계는 설명을 이어간다.


[현문정종은 도가(道家)를 말하는 걸세. 아마 자네 가문 귀족들이 건강을 위해 배워온 심법이겠구먼, 자네가 꾸준히 연마한다면 무공의 기초를 단단히 할 수 있을 것이네!]


장원계의 말뜻은 분명했다. 비록 고급 내공 심결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초입문 내공일 뿐 이것만 가지고는 무공의 일가를 이루긴 어렵다는 뜻이 아닌가?


왕경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왕경에게 있어 태상무결은 북원의 황실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열쇠이지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장원계가 태상무결을 돌려주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고려를 떠나온 이야기를 좀 들려주겠나?]


왕경은 이성계의 마수를 피해 숨어지내던 때부터 어떻게 이방원이 습격하고 정오성이 보호하여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간략히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장원계는 혀를 찼다.


[쯧쯧.. 이성계가 전조(前朝)의 왕족들을 학살한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네. 이건 주원장(朱元章)보다 더 악랄하구먼!]


장원계가 명태조 주원장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보고 왕경은 의아해서 물었다. 

 

[어르신은 명나라 사람이 아니십니까?]


왕경의 말에 장원계는 차갑게 내뱉았다.


[나는 한(漢)나라 사람일세!] 

 

사실 장원계는 한(漢)왕 진우량(陳友諒)의 부하였다. 당시 중국은 원나라 지배가 약해진 틈을 타서 전국 각지에서 백련교도들의 반란이 일어나던 혼란의 시기였다. 진우량(陳友諒), 장사성(張士誠), 한림아(韓林兒), 주원장(朱元璋)은 모두 백련교도(홍건적)로 각기 강력한 군벌로 자리 잡고 있었다.


비옥한 산동을 점거하고 있던 장사성은 군자금이 넉넉했고, 한림아와 진우량은 군대가 강했다. 넷 중 가장 약했던 주원장은 강남지역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진우량과 장사성을 차례로 토벌한 후 한림아 마저 죽이고 대명제국을 세운 것이다.


장원계는 비록 한(漢)나라가 멸망하고 진우량이 죽었지만 한(漢)의 부흥을 꿈꾸며 수십 년 동안 장사성, 한림아의 잔당들과 연락을 하며 후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장원계는 간단히 자신에 대해 왕경에게 설명한 후 물었다.


[이제 자네는 어찌할 셈인가? 혼자서 화림으로 가겠는가?]


왕경은 망설였다. 화림에서 동생을 만나기로 했지만 왕준이 무사한지도 모르겠거니와 혼자서 화림까지 갈 자신도 없었다.


왕경이 망설이며 대답하지 못 하자 장원계는 왕경을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네]


길을 오는 내내 장원계의 표정이 변화무쌍했던 것을 떠올리고 왕경은 가슴 한편에서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장원계는 물을 한잔 마시고 천천히 말을 했다.


[자네.. 내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는가?]


너무 뜻밖의 제안이라 왕경은 당황했다.


[제.. 제자 라니요?]


장원계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게는 한평생 아들 하나에 세 명의 제자가 있었네.. 제자 두 놈은 황제폐하(여기서 황제폐하는 진우량을 말한다)를 지키다 전사하였고, 아들놈은 얼마 전에 명나라의 개에게 참살 당했다네.. 다른 제자 한 놈은.. 음.. ]


장원계는 잠시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여튼 자네는 내 다섯 번째 제자가 되는 거네. 내 비록 천하제일 무공을 가졌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천하에서 노부(老夫)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게야!]


장원계의 말투에서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실제로 장원계의 무공은 왕경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는가? 만일 장원계 정도의 무공을 익힐 수 있다면 고려를 되찾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이성계나 이방원을 암살하는 것은 손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무공을 익히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십 년 , 삼십 년 뒤에 무공의 성취를 이루면 어쩐단 말인가? 그사이에 이성계와 이방원은 흙으로 돌아갔을 텐데, 절대 그들을 편히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왕경은 장원계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어르신의 제안은 감사하지만, 제게는 고려 왕실의 부흥이라는 큰 사명이 있습니다. 하루빨리 화림으로 가서 북원의 원군을 얻어 이성계를 치러 가야 합니다.]


왕경의 말에 장원계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자네가 지금 화림에는 어떻게 가겠는가? 나도 자네를 화림까지 안내해 주고 싶지만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있어 짬을 내기 어렵네. 게다가 설령 자네가 무사히 화림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열 살 남짓한 소년에게 북원이 뭘 믿고 군사를 내준단 말인가? 더욱이 지금 북원의 상황은 대칸의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골육상쟁을 하고 있는데 말일세!]


장원계의 말이 타당하다는 것은 왕경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이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것도 아니고,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무공만 익히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왕경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저에게는 고려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대업(大業)이 있습니다.]


왕경의 말을 듣고 장원계는 느껴지는 것이 있어 왕경을 달래듯 말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네! 내가 자네를 제자로 삼으려 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네. 첫 번째는 자네의 인품이 크게 마음에 들어서이고, 두 번째는 자네의 무공자질이 뛰어나서 일세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 두 사람의 염원과 관련이 있다네.]


장원계의 심계(心計)가 깊다는 것을 알기에 왕경은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자네는 고려 왕실의 유일한 후계자네 그리고 과거 몽고 대칸인 칭기즈칸의 피가 흐르고 있어 북원과도 크게 관계가 있고.. 그리고 나는 한(漢)나라의 신하일세! 지금은 주원장의 명나라가 천하를 쥐고 있지만, 아직 우리 한나라 백성들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네 그려.. 자네는 모르겠지만 지난 수십 년간 우리 백련교도와 명나라는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 왔다네. 지금은 우리의 힘이 많이 약해져 몸을 낮추고 있네만 당장이라도 한(漢)의 깃발을 내걸면 즉시 수십만 명의 백련교도들이 모일 걸세!]


왕경은 장원계의 의도를 몰라 섣불리 맞장구를 칠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한(漢) 나라 쪽 교도가 그 정도 이지, 소명왕(小明王-한림아를 말한다-)을 따르는 무리나 과거 장사성을 따랐던 무리까지 합치면 그 수가 백만은 족히 넘을 걸세. 그들은 모두 같은 백련교도 출신이었네. 게다가 주원장의 부하였다가 주원장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장수들의 후예도 남아 있다네.]


장원계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과거 한(漢)나라의 군사(軍師)였고 지금은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소명왕과 장사성측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며 규합하려고 바삐 움직이고 있지. 어차피 우리는 모두 같은 백련교 출신으로 지금은 사소한 의견 대립이 있지만, 곧 다시 뭉칠걸세.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자네는 내 제자가 되어 그 백련교도들의 우두머리 즉 백련교주가 되도록 하란 것이네!]


백련교는 수시로 고려를 침범하던 홍건적 무리가 아닌가! 왕경은 장원계의 제안에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제자가 되어 십여 년간 착실히 무공을 배우도록 하게 그 정도 배우면 자네 자질이면 중원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가 될 거야! 거기에 나와 내 측근들이 자네를 추대하면 수백만 백련교의 교주가 될 수 있네. 당장 손끝만 움직여도 백만에 가까운 병사를 모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다음 백련교의 우두머리이자 고려 왕실의 정통 후계자로 북원으로 들어가게!]

 

당황해 하는 왕경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장원계는 말을 쏟아냈다.

 

[그렇게 되면 북원에서도 자네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자네는 황금 씨족의 일원이니까 쿠릴타이에도 참여할 수 있겠지? 백련교의 군사를 이끌고 북원으로 가서 쿠릴타이에 참여하게! 그런 다음 자네에게 호의적인 몽고 귀족과 연합하여 그를 북원의 대칸으로 추대하게. 다른 몽고 귀족들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백련교와 손잡은 자를 이길 수는 없겠지! 그렇게 자네의 도움을 받은 대칸에게 병력을 빌려 북원군과 백련교도가 힘을 합쳐 조선을 치러 가는 거네. 게다가 내가 지금 설득 중인 여진인들까지 합세한다면 조선 같은 작은 나라쯤이야 한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지 않겠나? 그러면 자네는 손쉽게 고려를 다시 세울 수 있네! 내 생각이 어떤가?]


무척이나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장원계의 계획대로라면 조선을 없애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워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찜찜한 생각을 떨쳐낼 순 없었다.


(과거 홍건적이 고려의 국경을 넘어 쳐들어왔을 때 홍건적으로부터 고려를 지켰던 것은 이성계였다. 그런데 고려의 왕족인 나는 이성계를 치기 위해 홍건적을 끌어들이려 하는구나!)


찜찜한 마음은 들지만,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고려의 부흥이 현실성 있게 다가오자 왕경의 심장은 매우 빠르게 요동쳤다.


[어르신! 그러면 어르신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입니까?]


왕경이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자 장원계는 껄껄 웃었다.


[첫 번째 이득은 내 무공이 실전(失傳)되지 않고 전수해 줄 수 있는 뛰어난 제자를 얻는 것이요. 어쩌면 고려 왕과 사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네.]


거기까지 듣고 왕경은 옆에 있는 장화령을 쳐다보았다. 아직 앳된 소녀지만 하얀 피부와 가지런한 치열, 붉은 입술 등으로 보았을 때 분명히 미인으로 자랄 것으로 보였다.


장화령은 고려말을 몰라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왕경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바로 한(漢)나라의 재건이네!]

[네?]

[북원과 여진, 백련교도의 힘으로 먼저 조선을 멸하고 고려를 부흥시킬 것이네! 그리고 나서 다시 북원이 만리장성을 넘어 진격하고 고려와 여진의 군사가 대도(-지금의 북경-)로 쳐들어가는 거네. 거기에 백련교도들이 명나라 내부에서 호응한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는 명나라라도 멸망할 수밖에 없을 거네!]


장원계의 말에 왕경은 몸이 떨려왔다.


[고려는 그렇다 쳐도 북원과 여진이 계획에 동참할까요?]

[사실 여진은 크게 상관이 없네.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진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고려가 도와준다면 여진의 도움은 그리 크게 필요없지. 하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북원과 여진 모두 군을 동원할 것이네.]

 

왕경은 장원계가 자신 있게 말하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장원계는 확신에 찬 듯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천하 삼분 계책이네. 여진까지 하면 사분 계책이 되겠군!]


왕경이 눈이 둥그레져서 물었다.


[천하 삼분 계책이라니요?]

[원래는 내 지인이 후한(後漢) 말(末) 삼국시대의 고사(古史)를 연구하다가 이야기해준 것인데, 거기서 영감을 얻어 생각해낸 계책이지.]


왕경은 중국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조용히 장원계의 말을 경청했다.


[명나라를 몰아내고 천하를 넷으로 나눌 것이네. 먼저 우리 한(漢)나라는 장강(앙자강) 아래의 남송 지역을 차지할 것이네, 북원은 대도를 포함하여 장강 위쪽 지역을 차지할 것이고, 고려는 현재 고려 땅에다 심양 지역까지를 영토로 할 것이네.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지는 것이지. 여진인들은 북만주지역에 자치권을 줄 생각이네! 내 생각이 어떤가? 모두 군침을 흘릴만한 계획이 아닌가?]


참으로 무서운 계책이었다. 장원계의 생각대로라면 명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득을 보는 일이 아닌가? 왕경을 만나고 짧은 시간 동안 이런 계책을 세우다니! 장원계의 묘수에 감탄할 뿐이었다. 


[이 모든 계획은 고려의 왕족이자 칭기즈칸의 피가 흐르는 자네가 중심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밑에서 십 년만 착실히 무예를 익히면 고려의 부흥도, 한나라의 재건도 더 이상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네!]


장원계는 왕경의 눈빛에서 자신의 말에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읽어 내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껄껄걸. 자네는 망국(亡國)의 왕자요, 나는 망국(亡國)의 유신(遺臣)이니, 그럴싸한 사제지간이 되지 않겠는가?]


장원계의 말을 듣고 왕경은 마음을 굳히고 일어나 크게 절을 올렸다.


[제자 왕경이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공손히 절을 하는 왕경을 보고 장원계는 흡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이번화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퇴고 과정에서 지루할 것 같아 내용을 많이 줄였으나 더 줄이게 되면 앞으로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할것 같기에 이정도로 마감하였습니다. 참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참룡기(斬龍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안녕하세요. 19.08.19 54 0 -
30 30. 복건삼호(福建三虎) (2) 19.08.16 74 2 32쪽
29 29. 복건삼호(福建三虎) (1) 19.08.14 85 2 25쪽
28 28. 파양호 대전 19.08.13 84 2 26쪽
27 27. 흑묘파 (3) 19.08.12 100 2 21쪽
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4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22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6 3 18쪽
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14 14. 연경을 떠나다. 19.07.24 157 3 20쪽
13 13. 모함 19.07.23 164 2 17쪽
12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10 10. 조천사(朝天使) +1 19.07.19 245 3 20쪽
9 9. 연경의 고려인들 +2 19.07.18 250 3 21쪽
8 8. 장원계의 죽음 19.07.17 238 3 18쪽
7 7. 연경으로 19.07.16 244 4 20쪽
6 6. 혼천공을 완성하다. 19.07.15 285 4 18쪽
5 5. 만보산에서의 생활 +2 19.07.13 296 7 22쪽
»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30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