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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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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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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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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2. 태호의 노인 (2)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둘이 옥화장 입구에서 사도승 부녀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서려는데 하인 하나가 말 두 필에 간단한 짐을 실어 가져다주었다.


[이 말을 타고 가게나. 자네들이 급하게 구해서 타고 온 말보다는 나을 걸세. 말 등에 요깃거리도 실어 놨으니 배고플 때 먹게나.]


왕경은 관아에서 말을 빌렸다고 말하면 괜한 의심을 살까 걱정돼서 시장에서 급하게 말을 구해 타고 왔다고 했다. 둘은 극구 사양하다가 관인이 찍혀있는 말을 계속 타고 다니면 남들의 주목을 끌 거라 생각하여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받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까지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왕경의 말에 사도승이 말했다.


[우리야말로 고맙네. 언제든지 오시게. 우리는 항시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네!]


[왕 대협. 가시는 길이 평안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사영아는 왕경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이단을 향해 머뭇거리며 작게 말했다.


[이.. 이..오라버니도.. 항시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빌겠습니다.]


[하하하. 사 누이도 건강히 잘 계십시오. 그럼 사장주님 저희 가보겠습니다.]


왕경과 이단은 객점으로 돌아가 석가장의 관아에서 빌린 말을 근처 관아에 돌려주었다. 말을 돌려주면서 이단은 호북성(湖北省)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친왕이나 이단의 숙부가 다시 사람을 보내온다면 호북성과 태호는 서남쪽과 동남쪽으로 방향이 다르니 한동안은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둘은 객점으로 돌아와 나머지 짐을 찾아 사도승이 내어준 말 위에 싣고 태호를 향해 출발하였다. 왕경과 이단은 사도승을 구하기 위해 밤낮없이 달려오느라 주변 구경을 하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느긋하게 강남의 풍물을 즐기며 천천히 말을 몰아갔다.


[형님! 사 소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단이 뜬금없이 물어보자 왕경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예쁘고 착하다고 생각하네, 어머니가 없어 사 장주가 금이야 옥이야 키운 게 보이더군!]


[형님은 강호에 나온 지 한 달도 안됐는데 벌써 아내를 두 명이나 얻게 생겼군요! 사 장주 하는 말을 들어보니 후처(後妻) 자리라도 들여보낼 기세던데.]


이단의 말에 왕경은 발끈한다.


[뭐가 두 명이라는 거야? 그리고 그 형님 소리 좀 그만해! 언제까지 남장을 하고 형님 형님 할 거야?]


[강호에 돌아다닐 때는 계속 남장을 하려고요. 그게 편하니.. 그보다 사 장주는 형님에게 사 소저를 주고 싶어하는 눈치던데?]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 장주 같은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강호의 떠돌이인 나를 사위로 삼는다는 말인가? 오히려 사 소저는 누이에게 마음이 있는 거 같던데!]


왕경의 말에 이단이 키득거렸다.


[킥킥.. 나보다 연상이면서 오라버니라고 부르다니..]


[누이가 잘못한 거야. 사 소저한테 누이는 생명의 은인인데,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정절을 지켜준 사람이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하면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제가 강제로 시켰나요? 본인도 그걸 원하는 듯 보여 한번 권해 본 건데 잘만 부르던걸요?]


왕경은 이단의 장난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중에 사 소저를 다시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설마 그 아가씨를 다시 볼 일이 있을까요? 어차피 저는 조선으로 돌아갈 건데.]


이단과 십여 일 붙어 있으면서 이단이 조선 여인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는데, 언젠간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왕경은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누이.. 언제 돌아갈 예정이야?]


[글쎄요? 중원 천하를 충분히 유람하고 나서 질리면?]


[중원은 매우 넓어. 평생을 유람해도 다 못 볼 텐데..]


[음.. 동전 하나로 부탁하는 소원이 너무 길면 미안하니, 오라버니가 내가 싫어져 그만 가라고 하면.. 그때 갈까요?]


왕경은 이단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면 평생 안가고 곁에 있을 거야?]


[흥! 오라버니의 그 령 누이가 나를 오라버니 곁에 평생 있게 하겠어요?]


이단은 한마디 쏘아붙이고 말을 몰아갔다.


왕경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급히 쫓아갔다.


[누이 같이 가!] 

 

한참 말을 달려가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지 이단은 말 고삐를 늦췄다.


그사이 쫓아온 왕경이 말했다.


[누이! 갑자기 그렇게 달려가면 어떻게 해!]


이단은 눈앞에 편평한 바위가 보이자 왕경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 저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죠. 사 장주가 뭘 싸줬나 한번 봅시다!]


이단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갔기에 왕경은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이단이 말한 바위에 앉았다.


사도승이 싸준 봇짐을 풀어보니 떡과 과일, 견과류 등이 잔뜩 들어있었고 그 밑에는 열 냥쯤 되어 보이는 금덩이가 두 개 들어 있었다.


[봇짐이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게 들어있었군요.]


[금이 들었다고 말하면 안 받을 것이 뻔하니 음식 밑에 숨겨뒀나 보군. 이제 와서 돌려주러 갈 수도 없으니 일단은 가지고 가야겠군.]


[다시 잘 생각해보세요.]


[응? 무슨 생각?]


[사 장주의 사위가 되면 사도영이 탐내던 그 보물들이 모두 형님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경은 고개를 저었다.


[답답한 장원에 갇혀 사는 것 보다 상인의 사위가 되어 천하를 유람하는 것이 더 좋아!]


왕경의 말뜻을 어느 정도 헤아린 이단은 묵묵히 과일을 집어 먹었다.


왕경이 떡을 하나 집어 들며 말했다.


[이 떡은 굉장히 예쁘게 생겼군! 사 소저가 당신을 생각하고 만든 것 아니오? 하하.]


[흥! 사 장주가 사위를 생각하며 만든 것일 수도 있죠!]​


사도승이 부엌에서 떡을 빚는 모습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와 둘은 한참을 웃었다.

둘은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같이 놀기도 하면서 천천히 갔기에 태호(太湖)에는 나흘째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홍영루는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 사이에 있었는데 태호 주변에서 가장 큰 객점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왕경이 홍영루에 들어가 사도승이 써준 소개장을 건넸다.


잠시 후 삼십여 세쯤 되어 보이는 주인이 급히 내려와 둘을 맞이했다.


[두 분 사숙님 어서 오십시오.]


자신들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아 보이는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사숙이라고 칭하자 왕경과 이단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사숙이라니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왕경이 말을 하자 주인이 허리를 굽힌 채 말했다.


[아닙니다. 저 역시도 명존화성(明尊火聖)을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십여 년 전에 사 장주님이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이후로 그분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있습니다. 편지에 두 분은 사 장주님의 은인으로 형제의 예를 갖추셨다고 하셨으니 저에게는 숙부님이십니다.]


왕경이 몇 마디 더 해도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끝까지 아랫사람을 자처했다.


이단은 주변의 눈이 부담스러워 빨리 상황을 넘기고자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희보다 한참 연상이시니 저희 역시 존대를 하겠습니다. 그만 일어나시지요.]


그제야 주인은 허리를 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방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일단 올라가셔서 쉬고 계시지요.]


주인의 안내를 받아 2층 객실로 올라가니 태호가 한눈에 보이는 가장 경치 좋은 방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방이 저희 객점에서는 가장 좋은 방입니다. 이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태호에는 마흔여덟 개의 섬과 일흔두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다 보시려면 일 년이 걸려도 부족하니 마음 편히 갖으시고 천천히 머물다 가십시오.]


이단은 주인이 나가고 방을 살펴봤다. 상당히 넓은 방이었으나 또다시 왕경과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 형님과 같은 방을 쓰게 됐네요. 이제 와서 남장을 풀고 다른 방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왕경도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침상이 두 개 있어서 편히 잘 수 있으니 다행이야.]


[누군가가 자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이단의 말에 왕경은 궁색하게 변명을 했다.


[그건 식사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누이를 깨우려고 했던 것이고..]


[흥!]


둘이 투닥거리며 쉬고 있을 때 주인이 푸짐한 요리를 한 상 차려 올라왔다.


[태호에서 나는 민물게와 생선을 이용한 요리입니다. 우리 집 주방장이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태호의 산물이 별미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왕경은 두문동에 살 때부터 검소하게 살아왔기에 홍영루의 사치스러운 요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도승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집 수준의 음식이었지 이렇게 고급 요리집에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주는 음식은 처음이었기에 왕경은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젓가락만 들고 있었다.


이단은 부유한 상단의 여식답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것저것 요리를 집어 먹으며 연신 감탄했다.


[민물고기 요리에 비린 맛이 전혀 없고 담백하니 맛있네요. 나물 무침도 맛있고!]


둘은 거의 반시진 동안을 먹었으나 음식을 반 이상 남기고 말았다.


[아! 배불러 더이상 못 먹을 것 같아요.]


[나 역시 더는 들어갈 곳이 없는데 이렇게 많이 남겨서 어쩌지?]


둘이 눈치를 보자 옆에서 시중을 들던 하인이 말했다.


[남기시면 저희 아래 것들이 알아서 다 먹습니다. 배부르시면 그만 드시지요.]


하인의 말에 왕경은 한 냥의 은자를 꺼내주고 상을 물리도록 했다.


둘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잠시 창 너머로 보이는 태호를 구경했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커다란 태호의 위용에 왕경과 이단은 압도당해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태호에 작은 배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 이단이 말했다.


[형님! 우리도 배를 빌려 낚시를 하죠!]


이단의 말에 왕경이 뾰로통하게 대답한다.


[둘이 있을 때 오라버니라고 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겠어!]


[아이고 그렇게 오라버니 소리가 듣고 싶으시면 사 소저한테도 왕 대협 말고, 왕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하지 그랬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대에게 듣고 싶은 것이야!]


왕경의 말에 이단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집에도 아들이 없기에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대밖에 없습니다.]


이단의 말에 왕경은 가슴이 크게 뛰어 자기도 모르게 이단의 두 어깨를 움켜잡았다.이단은 왕경이 자신을 붙잡고 가까이 다가오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둘 사이가 너무 가깝구나.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경 오라버니께 들리면 어쩌나.)


이단은 왕경을 가볍게 밀치며 말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우리 뱃놀이 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단의 말에 왕경은 아쉬움을 삼키고 이단을 따라 객점 밖으로 나왔다. 둘은 나루터에서 배와 낚시 도구를 빌려 태호의 가운데로 저어갔다.


[누이는 수영할 줄 알아?]


[아니요. 오라버니는요?]


왕경은 만보산 계곡에서 수영해본 적은 있으나 태호처럼 깊은 물에서 수영해본 적은 없었다.


[조금은 할 줄 알지만 잘은 못해.]


[오라버니가 내가 명나라에 있는 동안은 지켜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물에 빠지면 알아서 구해주시겠죠.]


이단의 말에 왕경은 다짐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누이만큼은 구해내야지!)


왕경은 한참 노를 젓다 보니 곧 익숙해져 한번 저을 때마다 배가 쑥쑥 앞으로 나아갔다.


나루터가 가물가물 보일 만큼 멀리 저어간 후 왕경과 이단은 낚싯줄을 내리고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이단은 낚시가 처음이었으며, 왕경도 주로 작살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아왔기에 낚시는 서툴렀다. 한참을 기다려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자 이단은 금세 지루해졌다.


[낚시라는 게 그리 재미있는 것은 아니군요.]


[그러게 작살로 잡는 편이 훨씬 편한데. 하긴 이렇게 깊은 곳에서는 나는 작살을 사용 못 하겠다.]


[왜요?]


[난 수영하면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을 실력은 안 되거든. 만보산에서는 계곡 물에 서서 지나가는 물고기를 찔러 잡았을 뿐이니 이곳에서 작살로 잡는 것과는 크게 다르지.]


이단은 조금 더 낚싯대를 만지작거리다 그늘막쪽으로 가서 누웠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것을 보고 이단이 왕경을 불렀다.


[오라버니 이리 와서 누워 보세요. 구름이 참 예쁘네요.]


이단 곁에 누워 하늘을 보니 예쁜 구름이 떠 있었다. 봄바람이 불어와 이단의 머리카락을 날리니 이단의 몸에서 나는 분 냄새가 왕경의 코를 간질였다.


왕경은 오른팔을 뻗어 이단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배에 드려 놓은 낚싯대의 찌가 움직이며 찰랑하는 소리가 들려 왕경이 낚싯대를 급히 거두려 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배에서 크게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엣취!]


기침 소리에 물고기는 도망가서 왕경이 낚싯대를 당겨 올렸을 때는 아무것도 잡혀있지 않았다.


이단은 아깝게 물고기를 놓치자 옆의 배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쉽네요. 처음으로 입질이 들어왔는데.. 저배는 언제 여기까지 왔데?]


이단이 못내 아쉬워하자 왕경이 말했다.


[이제 물고기들이 슬슬 배가 고픈가 봐. 금방 또 물 거야!]


왕경의 말대로 다시 낚싯대를 드리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찌가 또 움직였다. 그것을 보고 왕경이 당기려는 순간 옆에 있던 배에서 다시 크게 기침 소리가 들렸다.


[엣췻!]


커다란 기침 소리에 다시 물고기를 놓치자 이단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것 보세요! 기침 좀 작게 할 수 없어요? 당신 때문에 물고기를 놓쳤잖아요!]


이단이 큰 소리로 말하자 옆배의 그늘막에서 칠십여 세쯤으로 보이는 덩치 큰 노인이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아니 널린 게 물고기인데 한두 마리 놓친 것이 뭐 어떻다고 그러는 게냐?]


적반하장격으로 노인이 역정을 내자 이단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두 번이나 노인장의 기침 소리에 놀라 물고기가 도망갔지 않습니까? 사과는 못할망정 역정을 내다니!]


[아니 이 드넓은 태호가 너의 것이란 말이냐? 어디서 기침을 하든 내 마음이지! 내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를 좀 했기로서니 뭐가 문제란 말이냐? 내 기침 소리를 듣기 싫으면 너희가 다른 곳으로 가던지!]


왕경은 나이 많은 노인과 말싸움하기도 싫고, 둘 다 물에 익숙하지 않은데 혹시라도 노인과 싸우다 물에 빠질까 걱정되어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저희가 다른 곳으로 가지요. 쉬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왕경이 사과하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자 이단은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오라버니!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사과를 하십니까? 둘이 처음으로 같이 잡을 수 있는 물고기를 저 노인 때문에 두 번이나 놓쳤지 않습니까?]


이단이 화를 풀지 못하고 씩씩거리자 노인이 비웃으며 말했다.


[물고기 잡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그리 징징대느냐? 그깟 물고기 내가 잡아주면 될 것 아니냐?]


노인의 말에 이단은 기가 차서 소리쳤다.


[누가 그냥 물고기 잡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라버니와 함께..] 

 

이단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노인이 소리쳤다.


[시끄럽다!]


노인은 벌떡 일어나 천천히 왼발을 들더니 배 바닥을 힘껏 내리밟았다.


-쾅!-


커다란 소리가 호수에서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그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났으면 노인이 탄 배에 구멍이 뚫렸을 법도 한데, 배를 중심으로 넓게 물결만 퍼져 나갈 뿐 노인의 배는 미동도 없었다.


왕경은 노인의 배가 가라앉지나 않나 걱정돼서 쳐다보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둥둥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노인은 격산타우(隔山打牛) 신공을 발에 실어 진각(震脚)을 했던 것이었다.


[여기 물고기가 수십 마리 떠 있으니 알아서 건져가거라!]


왕경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이 떡 벌어져 즉시 몸을 숙이고 공손히 말했다.


[제가 우둔하여 고인(高人)이 눈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왕경이 공손히 읍을 하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대로 성실한 청년이로구나!]


노인의 말에 왕경은 궁금증이 일었다.


[저를 아십니까?]


노인은 왕경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나루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할 말이 많으니 일단 호수에서 나가도록 하자!]


노인이 앞서 배를 저어 가자 왕경도 서둘러 배를 저어 노인을 따라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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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흑묘파 (3) 19.08.12 100 2 21쪽
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3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5 3 18쪽
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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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구출 19.07.22 170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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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29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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