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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663
추천수 :
98
글자수 :
279,987

작성
19.07.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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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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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18. 남경으로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그럼 저들은 어쩔 생각이신가요?]


[음..]


[설마 저들과 함께 남경으로 가자는 말은 아니겠죠?]


둘이 말하는 것을 듣고 곽생문이 말참견을 했다.


[이보시오 대협. 저희가 남경까지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남경에서 방주님과 합류만 한다면 저런 어린놈들쯤이야 단박에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구산휘도 말을 거들었다.


[저희가 두 분을 편안히 남경까지 모시겠습니다. 저희가 안내하면 쉽게 사도승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왕경은 연백수에게 자세히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굳이 그들의 도움이 없이도 백련교 남경지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 사방주는 며칠까지 당신들을 오라 했소?]


[저희가 연락받은 것이 구 일전이니 이제 닷새 남았습니다.]


닷새면 남경까지 가기 빠듯한 시간이다.


[오라버니! 이들을 데리고 닷새 만에 남경까지 가긴 어렵습니다. 우리가 늦으면 아마 그 사도승이라는 사람도 큰 화를 당하게 되겠지요.]


구산휘와 곽생문은 이단이 한사코 자신들을 죽이려 하자 애가 탔다.


[아가씨 한 번만 용서해 주시구려. 잘못한 것은 대형(大兄)이지 우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동생들이 계속 못난 꼴을 보이자 상형춘이 호통을 쳤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 뭔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 닥치고 있어라!]


상형춘의 호통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누이 내일 아침 일찍 이놈들을 관아에 넘기고 출발합시다. 굳이 살생을 하고 싶진 않아.]


이단은 한칼에 처치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왕경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이단의 눈치를 살피던 구산휘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주십시오. 사실 큰형님에게는 쉰 냥의 현상금이 걸려있습니다.]


구산휘는 여기서 죽는 것보다 관아로 끌려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자신들에게 현상금이 걸린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냈다.


[너희 둘도 쉰 냥씩이냐?]


이단의 말에 구산휘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서른 냥이고 둘째 형은 스무 냥의 현상금이 있습니다.]


[왜 너희는 그것 밖에 안 되느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관병을 해치지 않아서..]


[좀 닥치고 있게!]


상형춘이 참지 못하고 다시 한 번 호통을 쳤다.


세 명이 못난 꼴을 보이자 이단도 더 이상 죽일 마음이 들지 않아 왕경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왕경은 사냥한 고기를 훈제하는 곳에서 밧줄을 찾아 셋을 묶고 다시 한 번 혈도를 봉한 뒤 초가에서 이단과 잠시 눈을 붙였다.


둘은 다음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남경으로 갈 준비를 했다.


사도승에게 화가 닥치기 전에 급히 가야 했으므로 왕경은 이단에게 짐을 간소화해서 가져갈 것을 부탁하였고, 이단은 순순히 말을 들었다.


둘은 근처 관아에 들러 상형춘등 세 명을 넘기고 백 냥의 현상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말을 사려 했지만 작은 고을이라 말을 파는 곳이 없어서 둘은 급히 남쪽으로 달려갔다.


이단은 경친왕이 내어준 통행증으로 관아에서 말을 빌릴까도 생각했었지만 왕경에게 명나라 관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잠자코 있었다.


둘은 하루를 꼬박 달려 하북성(河北省) 석가장(石家莊)에 도착하였다. 석가장은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지만, 그곳에서도 말을 구할 수 없었다.


석가장에는 북경과 남경을 오가는 상단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라 깔끔한 객점이 많이 있어 이단의 마음에 쏙 드는 괜찮은 객점을 잡을 수 있었다.


둘은 방에 짐을 풀고 내려와 저녁을 먹었다. 그러나 왕경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애가 타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하루 전에 도착해서 동정을 살피고 싶었는데, 이러다 제때 도착하지 못할 것 같군.]


[제가 경공이 미숙하여 오라버니의 발을 붙잡고 있네요. 저만 아니었으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이단의 말에 왕경은 이단을 살펴보았다. 하루 종일 달려오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이단을 보니 왕경은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너무 조바심을 내서 누이가 마음을 쓰게 만들었군! 미안해.]


[아니에요. 사도승이라는 사람은 오라버니께 중요한 사람인 거죠? 저도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오라버니는 어떻겠어요?]


이단은 무슨 고민이 있는 지 미간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늦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누이와 같이 있지 않았다면 사도승이 위험에 처해 있는 줄도 몰랐을 텐데, 그래도 누이 덕에 그를 구원하려는 시도라도 해보는 것 아니겠어?]


왕경의 말에 이단은 결단을 내리고 말했다.


[오라버니! 저한테 한가지 생각이 있는데 괜히 오라버니가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되는군요.]


이단의 성격이 신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왕경은 되물었다.


[무슨 오해?]


[오라버니는 저를 얼마나 믿으시나요?]


뜻밖의 질문에 왕경은 당황했다.


[얼마나 믿느냐니? 누이를 믿으니까 같이 다니지! 설마 몇 할쯤 믿는다고 수치로 말을 해야 하나?]​


왕경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 하자 이단이 한숨을 쉰다.


[휴..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오라버니가 그렇게 초조해 하니 그냥 오라버니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단은 목이 마른 지 앞에 놓인 물을 한잔 들이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상단은 일반적인 상단이 아닙니다. 조선의 조공 무역을 도맡아 하는 국가 공인의 큰 상단이지요.]


왕경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왜 다시 하나 싶어 눈만 껌뻑였다.


[그러기에 제가 명나라에 남겠다고 했을 때, 경친왕 전하께서 명나라 관청을 이용할 수 있는 신원 보증서를 발행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근처 관아에 가서 증서를 내밀면 관청의 말을 빌릴 수가 있지요.]


[아!]


[진작에 말씀을 못 드린 이유는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제가 명나라의 명령으로 오라버니와 함께하는 거라는 괜한 오해를 받을까 봐 그런 것입니다.]


이단은 백련교와 명나라가 수십 년째 서로 싸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명나라 친왕의 신원 보증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왕경에게 말했다가 왕경으로 부터 쓸데없는 오해를 살 것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단이 왕경을 따라나선 이유는 조선을 위한 것이지 명나라를 위한 것은 아니었기에 불필요한 오해는 피하고 싶었지만 왕경이 초조해 하니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낸 것이다.


왕경은 관아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당장 사도승을 구하는 일이 급하고, 또 이단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거절하게 되면 이단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 되니 이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오해는 무슨 오해를 한다고.. 나를 위해 신경 써주는 누이의 마음이 고맙구려! 내일 관아가 문을 여는 대로 가서 말을 빌려 탑시다.]


왕경의 말에 이단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라버니!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왕경은 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까 하여 이단을 쳐다봤다.


[관아의 말을 빌려 타면 아무래도 우리의 행적이 드러나겠지요. 그러면 숙부께서 붙인 사람들이 우리를 추격해 올 것입니다.]


[괜찮아. 사도승을 구하는 것이 급한 일이니 일단 말을 빌려 탑시다. 추격대가 쫓아오면 또 누이와 야반도주하면 되는 것 아니야? 하하.]


이단은 사내가 혼자 자는 방에 몰래 숨어 들어간 사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는 일이 급해서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또다시 그 이야기를 꺼낸다면 오라버니와 말을 안 할 테요!]


왕경은 얼굴을 붉히며 토라지는 이단이 귀여워 빙긋 웃었다.


[알았어. 내 다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다. 추격대가 쫓아오면 그때 봐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 되지 뭐!]


둘은 장시간을 달려오느라 피곤하였기에 식사를 마치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왕경과 이단은 근처 관아로 찾아갔다.


이단은 왕경을 쳐다보며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께 죄송하지만 잠시 제 종자(從者)로 가장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겠군요!]


[어차피 누이를 수행하기로 한 거였으니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역할을 하는 셈이지!]


이단은 관아 앞에 다다르자 앞에 서 있는 군졸에게 경친왕의 증명서를 건네고 현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잠시 뒤 푸른 옷을 입은 관원이 나와서 이단을 안내했다.


이단은 들어가면서 왕경에게 말했다.


[잠시 들어갔다 올 터이니, 너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네! 아가씨!]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왕경은 관아 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말발굽 소리에 눈을 떠보니 준수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엉덩이에 관인(官印)이 찍혀있는 말 두 필을 끌고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청년은 말 한 필을 왕경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가씨는 급한 볼일이 있어 연경으로 돌아갔으니 왕 대협은 이 말을 타고 남경으로 가 일을 처리하라 하셨소!]


이단이 홀로 연경으로 돌아갔다는 소리에 왕경은 매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왕경의 모습을 보고 청년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단 누이.. 아니 이 소저는 이미 연경으로 출발했습니까?]


지금이라도 급히 말을 달려가면 중간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다급히 물었는데, 가만 보니 청년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이 매우 낯이 익었다.


[그렇소! 이 소저는 왕 공자가 우유부단하여 답답하다고 먼저 길을 떠났습니다.]


그제서야 왕경은 이단이 청년으로 변장했음을 알아채고 안도했다.


[휴.. 누이! 장난이 지나치군! 정말 나를 버리고 혼자 연경으로 간 줄 알았잖아!]


왕경이 놀라서 당황하다가 다시 안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단이 짓궂게 말했다.


[왜요? 오라버니를 감시하는 계집이 사라지면, 속 시원히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자 왕경은 이단의 손을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엔 누이가 무슨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했는지 몰라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오. 하지만 지금은 그대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고, 오히려 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매우 즐겁다오.]


왕경의 말에 이단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저 역시도 오라버니와 함께하는 요 며칠이 정말 즐거워요. 자 이제 말도 구했으니 빨리 사도승을 구원하러 가시지요!]


왕경이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남장을 한 거야?]


[아무래도 남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 눈에 덜 띌 것 같아서요.]


[하긴 숙부님의 수행원들이 일남일녀(一男一女)를 수소문하며 찾고 있을 테니 남장을 하는 것이 낫겠군!]


둘은 말 위에 올라 급히 남경을 향해 달려갔다. 관아에서 전령을 보낼 때 쓰는 말을 내어주었기에 지구력이 강하고 속도도 제법 나는 말이어서 둘은 이틀 만에 남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경은 연경만큼이나 커다란 도시여서 쉽게 깔끔한 객점을 찾아 편히 쉴 수 있었다.


[누이가 말을 빌린 덕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네.]


[그 녀석들 말에 의하면 내일 밤에 습격할 것 같은데, 사도승을 구할 묘안이 있나요?]


다급히 달려오긴 했지만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계책이 없었다. 왕경은 사도승을 구원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도영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와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음.. 사도영와 겨뤄 패배시키면 나머지 무리는 자연히 돌아가지 않을까? 그들은 사도영의 명령으로 움직이니 사도영만 제거하면 알아서 흩어질 것 같은데.]


[사해방이 어떤 무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요전에 만났던 사람들의 인품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리 좋은 물건들은 아닐듯싶어요. 과연 그들이 정정당당하게 오라버니와 사도영이 겨루도록 할까요? 제 생각에는 머릿수를 앞세워 오라버니를 제압하려 들 것 같네요.]


[음..]


듣고 보니 이단의 생각이 맞을 것 같았다. 사해방의 온갖 더러운 추문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져있지 않은가? 그들이 수적 우세함을 포기하고 방주와 자신을 일대일로 싸우게 놔둘 것 같진 않았다.


[제 생각엔 일단 사도승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몸을 피하라고 알려야 할 것 같군요! 사해방 무리를 이끌고 사도승을 협박하는 것을 보니 아직 보물이 숨겨진 곳을 모르는 것 같은데, 사도승만 잠시 위험을 벗어나 숨어있게 하면 자기들도 제풀에 지쳐 돌아가겠지요.]


[그들이 쉽게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갈까?]


[사해방의 근거지가 남경이 아닐진대, 그리 오래 머물진 못할 것입니다. 남경 근처 방파에서 사해방 사람들이 오랫동안 남경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진 않지 않겠습니까?]


사해방은 황하 근처에서 주로 활동하는 방파로 강소성(江蘇省) 일대에는 연고가 없었다. 악명 높은 사해방 무리들이 남경 일대에 오랫동안 머물면 분명히 남경과 강소성에 연고가 있는 지역 문파들과 분쟁을 일을 킬 것이 틀림없었다.


왕경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이단은 말을 이어갔다.


[한두 명도 아니고 사도승을 제거하기 위해 사해방의 거의 모든 인원을 남경으로 불렀으니 오래 머물면 분명히 다른 방파와 분쟁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 며칠 사도승을 찾다가 못 찾으면 자연히 자기들 근거지로 돌아가겠지요.]


[누이 말이 맞소. 그러면 빨리 사도승을 찾아가 알립시다.]


[네. 사도승을 피신시키고, 우리는 사도영을 미행하다가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하도록 하지요. 사도승의 심복지환을 제거해 줌으로 해서 그에게 큰 은혜를 입혀놓으면 오라버니께도 좋은 일 아닙니까?]


이단 역시 백련교가 여러 분파로 분열되어 서로 견제하며,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슬쩍 왕경을 떠보는 말을 했는데 왕경이 부주의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사도승에게 은혜를 입혀두면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사도승은 매우 강직한 성품을 갖은 사람이라 들었기에 그런 이해관계를 떠나 도와주고 싶어.]


왕경의 말을 듣고 이단은 생각했다.


(오라버니가 속한 분파는 사도승과는 다른 계열임이 확실한 것 같구나.)


이단이 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을 때 왕경이 말했다.


[그럼 누이는 여기서 쉬고 있도록 해요. 내가 가서 사도승을 피신시키고 올게.]


(오라버니와 사도승의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한 이단은 재빨리 대답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아니야. 벌써 사해방 무리들이 잠복해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이를 위험한 일에 데려갈 수는 없어. 여기서 쉬고 있어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왕경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긴 했지만, 이번이 왕경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겨 이단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함께 있는데 그까짓 사해방 무리가 뭐가 겁나겠어요? 게다가 그놈들은 사도승을 기습할 생각으로 은밀히 숨어 있을 텐데 우리를 건드려 소란을 피우진 않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사도승은 강직한 성품이라면서요? 그런 사람더러 사도영을 피해 도망가라고 하면 쉽게 도망을 칠까요? 오히려 맞서 싸우겠다고 펄펄 뛸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오라버니 혼자 그를 설득할 자신이 있나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단의 말이 맞는듯하여 왕경은 대답했다.


[그럼 동행을 부탁할게.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바로 도망치도록 해. 내 몸 하나 빼내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내 걱정말고 누이 먼저 도망쳐요!]


[그렇게 할게요! 자 더 늦기 전에 빨리 출발하죠.]


사도승은 남경에 옥화장(玉華裝)이라고 하는 장원(莊園)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제법 규모가 큰 장원이어서 객점의 점소이에게 길을 물으니 자세히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아직 시간적 여유도 있고, 관인이 찍힌 말을 타고 가면 사도승이 경계할 것을 우려해 둘은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반시진 정도 걸었을 때 앞에 두 명의 사내가 시끄럽게 떠들며 가는 것이 보였다.


[송 사형(宋 師兄)! 이번에 우리가 큰 공을 세웠으니 방주님이 보물을 얻으면 한 몫 떼주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아마 큰 상을 내리실 것 같네. 그 작자가 방주님 명을 무시하는데 얼마나 더 버티는지 두고 보자고!]


[정말 운이 좋았지 뭡니까? 그 계집이 우리 손에 딱 걸리다니! 그놈이 딸이 잡혀있는데도 보물 있는 데를 불지 않는지 두고 봅시다.]


[계집의 살결이 뽀얗고 예쁜 것이 보물을 숨겨 놓은 곳을 불더라도 넘겨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하하하!]


왕경과 이단은 건달 둘이 말하는 것을 듣고 안색이 바뀌었다.


(이놈들이 사도승의 딸을 납치했나 보구나!)


이단은 상형춘등에게 능욕당할뻔한 일이 생각나서 치가 떨렸다.


[오라버니 저들을 미행하도록 해요.]


왕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경공을 펼쳐 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송사형이라는 자가 말했다.


[그 계집은 양 사제(梁 師弟)가 잘 감시하고 있겠지? 방주님께 데려가야 하는 계집이라 함부로 손대면 안 되는데..]


[양 사제가 호색한이긴 하지만 이번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함부로 굴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 빨리 데려가세. 오늘 밤 옥화장을 습격한다고 하셨는데 빨리 준비를 해야지.]


그 말을 듣고 왕경은 다급해졌다.


(내일이 아니고 오늘이었단 말인가? 이거 일이 급하게 됐구나.. 사도승을 피신시킬 여유가 없겠군.)


둘은 옥화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산으로 올라갔다. 둘의 무공은 대단치 않아 왕경과 이단은 들키지 않고 손쉽게 쫓아갈 수 있었다.


올라가기 시작한 지 이각(二刻)이 채 되지 않아 작은 절이 보였다. 현판이 깨어진 채로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아 버려진 절 같았다.


둘은 절 안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양 사제! 계집은 잘 있는가?]


송 사형이라는 자의 물음에 안에서 40대쯤으로 보이는 키가 작고 마른 사내가 나왔다.


[제가 심문을 하여 보물의 위치를 알아내려 했으나 계집이 입을 열지 않는군요. 방주께 넘기기 전에 매운맛을 좀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양 사제라는 사람 뒤로 십칠팔 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팔다리가 묶인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송 사형이라는 자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 계집은 방주님께 데려가야 하니 함부로 손대지 말게!] 


양 사제는 쓰러져 있는 소녀의 몸매를 감상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보고 송 사형과 함께 온 사내가 말했다.


[이봐 괜히 군침 삼키지 말고 계집이나 빨리 들쳐업게! 방주께서 계집을 빨리 데려오라 하시네. 혹시 아는가? 우리가 이번에 이 계집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으니, 보물을 얻은 후에 우리에게 계집을 상으로 주실지 하하하!]


사해방 사람들의 말이 점점 음탕해지자 이단은 왕경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라버니 제가 먼저 나서서 한 놈을 쓰러뜨릴 테니 혹시 나머지 두 놈이 함께 덤비려 한다면 오라버니가 맡아 주세요.]


이단은 왕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뛰쳐나갔다.


사실 이단은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혀왔으나 제대로 사용해 볼 기회가 없었다. 무공을 좋아하는 이단은 집안의 무사들과 대련을 하자고 졸랐으나 귀한 아가씨와 진짜로 손을 쓰는 무사는 없었다. 무사들은 몇 합 겨루는 시늉을 하다가 이단이 내지르는 주먹에 다들 나가떨어지는 척했다. 이단도 그들의 수작을 뻔히 알고 있어 몇 번 대련을 조르다가 더는 대련을 요구하지 않았다. 

 

연경에 와서 거지들과 처음으로 실전을 치렀을 때 내심 큰 기대를 했으나 더러운 수작에 걸려 제대로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고, 상형춘 등과 손을 썼을 때는 술에 만취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왕경 앞에서 솜씨를 보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미행하면서 보니 둘의 무공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자 이번 기회에 재주를 부려 보고자 급히 나선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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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복건삼호(福建三虎) (2) 19.08.16 74 2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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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 파양호 대전 19.08.13 84 2 26쪽
27 27. 흑묘파 (3) 19.08.12 100 2 21쪽
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4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22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6 3 18쪽
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 18. 남경으로 19.07.30 126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14 14. 연경을 떠나다. 19.07.24 157 3 20쪽
13 13. 모함 19.07.23 164 2 17쪽
12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10 10. 조천사(朝天使) +1 19.07.19 245 3 20쪽
9 9. 연경의 고려인들 +2 19.07.18 250 3 21쪽
8 8. 장원계의 죽음 19.07.17 238 3 18쪽
7 7. 연경으로 19.07.16 244 4 20쪽
6 6. 혼천공을 완성하다. 19.07.15 285 4 18쪽
5 5. 만보산에서의 생활 +2 19.07.13 296 7 22쪽
4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30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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