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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생 님의 서재입니다.

참룡기(斬龍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진효생
작품등록일 :
2019.07.09 15:26
최근연재일 :
2019.08.16 19: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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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98
글자수 :
27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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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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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2. 구출

고려의 마지막 왕자 왕경의 일대기 입니다.




DUMMY

네 사람은 무사히 은신처로 돌아왔지만, 포로들을 구하지 못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연백수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보게 왕 사제! 이미 지난 일이긴 하네만, 아까 고려인 포로들은 입막음하는 것이 맞았네. 자네도 그 모습을 보지 않았나?]


[고문당하는 것을 보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제게 생각이 있어 살려 두자고 한 것입니다.]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해 하던 연백수는 왕경이 구해낼 방법이 있다고 말하자 반색한다.


[그들을 구해낼 묘안이라도 떠올랐는가?]


[묘안은 아니고 그냥 궁여지책이 하나 생각났을 뿐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이렇게 뒤집어 놓았으니 그사이 죽이지나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왕경의 말에 연백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우리가 오늘 뒤집어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죽이지 않을 걸세.. 다만 더 심한 고초를 당하겠지.]


막기평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저희가 습격을 했으니 후환을 없애기 위해 더 빨리 죽이지 않을까요?]


[그들은 스스로 좀도둑이라 우기며 배후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네. 그런데 오늘 강호의 인물들이 급습해서 그들을 구하려고 했지. 우리 같은 실력자가 구원하러 올 정도면 분명 큰 배후 세력이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배후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죽이지 않을 거란 말씀인 거죠?]


[그렇지 오늘 일 때문에 다른 배후가 있는 것이 명확해졌는데 쉽게 죽일 수 있겠나? 다만 몸이 더 힘들어지겠지.]


왕경은 고려인들이 당할 고초를 생각하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 오늘만 잘 버텨주면 좋겠구나!]


[아마 오늘은 뒷 정리하느라 더 고문하지는 않을 것 같네. 하여튼 어떤 계책으로 그들을 구해내겠다는 것인가?]


왕경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습니다. 너무 졸렬한 생각이라.. 조금 있다가 동이 트면 한번 가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뾰족한 수도 없는 데다 왕경이 말하기 거북해 하자 연백수는 더 묻지 않고 왕경에게 맡기기로 했다. 


왕경은 잠시 눈을 붙인 뒤 동이 트자마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경친왕부로 갔다.경친왕부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나와서 맞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왕경은 품에서 목자단에게 받은 비녀를 꺼내 문지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조천사 일행 중 목자단 소저와 약속이 있어 왔소이다.]


문지기는 왕경을 위아래로 살펴보니 비싸 보이는 옷에 가죽 신발을 신고, 귀티가 흐르는 얼굴을 하고 있어 연경 내 부잣집 도령이거나 고관(高官)의 자제로 보여 공손하게 물었다.


[어느 분이 찾아오셨다고 전해드릴까요?]


[그냥 그 비녀를 건네주면 알 것이오.]


고위 관리 밑에 있는 하인들의 습성을 어느 정도 아는지라 왕경은 최대한 거만하게 말을 하며 품에서 한 냥의 은자를 꺼내 문지기에게 건네주었다.


문지기는 옥비녀가 정묘하게 세공된 것이 보통 귀한 물건이 아닌지라 연경의 부잣집 도령 하나가 조선의 여인을 마음에 두어 찾아 왔다고 생각되어 실없이 웃으며 말을 전하러 갔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문지기가 나와 말을 전했다.


[공자님! 목 아가씨께서 전에 만났던 객점으로 가 계시면 찾아가시겠다고 하는군요.]


왕경은 알았다고 하고 한 냥의 은자를 더 건네준 뒤 객점으로 갔다. 돈을 받아 신이 난 문지기는 싱글벙글 웃으며 왕경에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셔서 준비하고 나가시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천천히 기다리십시오. 공자님 하하.]


왕경은 문지기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객점으로 나는 듯 달려갔다.


객점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오가 거의 다되어서야 목자단은 호위 무사 두 명을 대동하여 객점에 나타났다. 목자단은 호위 무사를 객점밖에 대기 시킨 뒤 혼자 왕경이 있는 탁자로 걸어왔다.


왕경은 목자단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벌떡 일어나 길게 읍을 했다.


[목 소저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밤새 고생하고 오신 분도 있는데 이까짓 게 수고랄 것까지 있나요?]


목자단의 말투에는 비아냥대는 어조가 다분했다.


(목 소저도 어젯밤 나를 봤구나. 빙빙 돌려 말할 것 없으니 차라리 잘됐다.)


왕경은 못 들은 척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아직 점심 전 이시죠? 무언가 먹을 것을 시킬까요?]


[저는 괜찮으나 왕 공자께서는 밤새 힘을 많이 써서 시장하실 테니 음식을 시키도록 하시지요.] 


왕경은 머쓱해져서 말했다.


[혼자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니 같이 드시죠. 이 집 국수가 맛있답니다.]


왕경은 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목자단에게 어떻게 부탁을 할까 말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왕경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자 목자단이 웃으며 비녀를 꺼냈다.


[왕 공자. 이 비녀를 보내셨는데 제게 무슨 분부할 것이 있으신지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부탁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자단은 왕경의 부탁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가서 미리 선수를 쳤다.


왕경은 물을 한잔 마시고 솔직히 말했다.


[아마 목 소저께서도 쉬이 들어주실 수 있는 부탁은 아니리라 생각되어집니다만, 그래도 이제 방법이 소저께 부탁하는 것 밖에 없어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왕경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목자단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차갑게 말했다.


[말씀해 보시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왕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며칠 전 제 친구들이 길을 잘못 들어 경친왕부에 들어갔나봅니다. 연경지리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라 아마 실수한 것 같은데 목 소저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수는 없는지요?]


[며칠 전 자객 몇 명이 경친왕부를 습격한 일이 있습니다. 왕 공자께서는 그들과 어떤 관계이신가요?]


왕경은 끝까지 잡아떼기로 한 이상 뻔뻔하게 우기기로 했다.


[자객이라니요? 제 친구들은 시골에서 연경 구경을 하러 온 한량들이지 자객이 아닙니다.]


[이것 보세요. 왕 공자! 자객들이 경친왕을 살해하려 한 것이라면 명나라 황실 사람을 죽이려 한 대역죄입니다. 만일 조천사 일행을 습격한 것이라면 양국 간의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심각한 범죄이고요. 설령 자객들 말대로 단순히 좀도둑이라 하더라도 명나라 황제께 바치는 진상품을 훔치려 한 것인데 그것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중죄입니다.]


목자단이 쉽게 협력할 것 같지 않자 왕경은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목 소저!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다못해 그들이 갇혀있는 감옥의 위치라도 알려주신다면 내 힘으로 한번 구해보겠습니다.]


목자단은 왕경을 잠시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감옥의 위치를 알려드리면 어제처럼 습격이라도 하시게요?]


어차피 목자단이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생각되어 왕경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그들의 죄는 삼족을 멸해야 하는 중죄일지도 모릅니다. 왕 공자! 당신은 그들과 어디까지 연관되어 있는 겁니까? 혹시 당신이 사주한 것인가요?]


왕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천사 일행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놓고, 조천사와 함께 들어온 상단의 아가씨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왕경이 아무 말이 없자 어느 정도 짐작이 되어 목자단은 한숨을 쉬었다.


[왕 공자 같은 분이 어쩌다 그런 흉악한 무리와 연관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빨리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몸을 피하시라는 거밖에 없네요.]


[그럴 수는 없소. 나는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사내대장부요. 장부가 어찌 의(義)를 저버릴 수 있겠소!]


이 한마디로 인해 본인과 자객들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 되었다. 목자단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대장부는 일언(一言)이 중천금(重千金)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여인의 한마디도 그리 싼 편은 아니랍니다.]


목자단의 말에 왕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 아닌가?


왕경은 마른 침을 삼키며 목자단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 왕 공자는 그들 중 누구를 구하고 싶으신 겁니까?]


넷 중 하나를 고르라니 예상외의 질문에 왕경은 더듬거렸다.


[그..그들 모두를 구하고 싶습니다.]


왕경의 말에 목자단이 크게 웃는다.


[호호호.. 왕 공자! 그대는 나의 목숨을 너무 비싸게 여기는 것 아닌가요? 한목숨에는 한목숨으로 셈해야지 넷 모두라니, 이건 너무 바가지가 심한 것 아닙니까?]


[거친 사내 넷이랑 꽃다운 목 소저랑 어찌 같은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그들 열 명이라 하더라도 싼 편이지요.]


자신을 추켜세우는 말에 목자단은 기분이 좋아졌다.


[왕 공자님. 저는 조선의 상인입니다. 아무리 보비위를 하셔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합니다.]


목자단의 말투에서 뭔가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을 느끼고 왕경이 말했다.


[그럼 제가 무엇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한목숨은 제가 약조한 것이니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머지 셋은.. 음.. 이번엔 반대로 저의 부탁 세 가지를 들어주는 것으로 하지요!]


목자단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왕경은 즉시 대답을 했다.


[제 양심에 거릴 낄 것이 없는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왕경은 품에서 동전 세 개를 꺼내 반으로 접어 목자단에게 건넸다.


[저는 목소저 처럼 귀한 물건을 지닌 게 없으니 이것을 증표(證票)로 합시다.]


목자단은 왕경이 손가락만으로 동전 세개를 가볍게 구부리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왕공자의 신력(神力)은 정말 탄복하겠군요!]


목자단이 반으로 접힌 동전을 거둬가자 왕경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빨리 갑시다. 목 소저는 그저 그들이 갇혀있는 뇌옥(牢獄)까지만 안내해주시오.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약속은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뭘 그리 서두르시나요? 여기서 국수나 들고 계시지요. 제가 구출해내겠습니다.]


[목 소저께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국사범으로 다루고 있다고 하셨는데 괜히 목 소저까지 연루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목자단은 가볍게 웃었다.


[이미 왕 공자를 만나는 순간부터 크게 연루가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걱정해주는 척하지 마시지요.]


왕경은 크게 미안하여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게다가 제게 생각이 있어 그럽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사실 그들에 의해 왕부가 피해 본 것은 거의 없습니다. 고작 시위 몇 명 죽은 것이 다니까요. 조천사 일행도 아무런 피해가 없고, 다만 그들의 노림수가 무엇이었는지 그 뒤에 어떤 배후세력이 있는지가 중요하기에 이토록 엄중히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시위 몇 명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목자단에게 왕경은 반감이 일었으나 자기 사람들이 해친 일이라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친왕께 한번 건의 드려 보려 합니다.]


[어떤..?]


[포로들을 놓아주자고요. 매섭게 심문하였으나 알아낸 것이 없어 너희 말을 믿을 테니 앞으로는 도둑질할 생각 하지 말고 건실히 살도록 하여라 라고 말하고 놓아주자고요!] 


왕경은 목자단의 말에 속으로 탄식했다.


(아..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로구나! 경친왕이 어떤 사람인데 심문해서 못 알아 냈다고 그냥 놓아주겠는가! 오히려 자신의 체면 때문에라도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면 죽였지 절대 그냥 놔줄 사람은 아니다!)


[그들을 그냥 놓아주자고 하면 경친왕이 놓아주겠습니까?]


왕경은 저도 모르게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목자단은 왕경의 말속에 비웃음이 담겨있음을 깨닫고 가볍게 냉소하였다.


[흥! 상처 입은 새끼 들개를 풀어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목자단의 말에 왕경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경친왕께 그렇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들을 놓아주면 필시 배후 인물과 접촉할 터이니 미행을 붙였다가 일거에 섬멸하자고.. 경친왕 입장에서 그들의 하찮은 목숨이야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니 당연히 좋다고 하겠죠. 이렇게 심하게 고문하였는데도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는데!]


[그.. 그들은 심하게 다쳤습니까?]


[그럼 왕부에 침입한 자객들이 몸 성히 있으리라 보셨습니까?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지요.]


목자단의 매몰찬 말에 왕경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목.. 목 소저.. 그들을 부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입니다. 필시 경친왕은 배후를 캐기 위해 그들을 놓아주겠죠. 그 뒤로 그들을 빼돌리는 것은 왕 공자 당신이 할 일 입니다. 경친왕부를 나서는 순간 들쳐 업고 뛰든 사람을 바꿔치기하든 재주껏 빼돌려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목 소저···.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목자단은 몸을 돌려 나가며 말했다.


[혹시나 경친왕이 제 꾀에 넘어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 네 명의 자객에게 극약을 먹여 편히 죽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목자단의 냉정한 말투에 왕경은 식은 땀이 흘렀다.


[모쪼록 목 소저의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내일 오전 중에 석방할 수 있도록 할 터이니 준비해 주세요. 우리는 모레 점심 때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왕경은 목자단의 등 뒤로 길게 읍을 하며 배웅한 뒤 서둘러 은신처로 돌아와 연백수와 상의하였다.


왕경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연백수는 목자단에 대해 연신 감탄하였다.


[어린 소저의 흉계가 몹시 무섭구나. 내가 그 입장이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네.]


[제 생각에도 경친왕이 목소저의 의견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요? 그들이 그대로 고려촌으로 돌아가면 고려촌 주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당하고 말 것입니다.]


한참을 상의한 끝에 연백수가 한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백련교도 중 붙잡힌 네 명과 비슷한 체형의 발 빠른 자를 선별하여 골목에 숨겨 놓기로 했다.


짐 마차 두 대를 그 옆에 같이 대기 시켜놓고 있다가 왕경이 포로들을 데리고 골목을 돌면 대기하고 있던 백련교도와 바꿔치기하여 포로를 한대의 짐 마차에 태우고, 포로로 변장한 백련교도와 왕경은 적당히 시간을 끌다 경신술을 펼쳐 도망가기로 했다. 


짐 마차에 실린 포로들은 그 후 몇 번 마차를 바꿔 타고 연경 외곽으로 나가 연백수가 치료한 뒤 고려 마을로 돌려보내면 감쪽같을 것 같았다.


왕경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경친왕부 근처에 숨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동튼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왕부에서 나오는 사람이 없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할 때쯤 왕부의 문이 열리며 네 사람이 풀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왕부의 위사(衛士)로 보이는 장정 하나가 풀려나는 고려인들에서 몇 냥의 돈을 던져 주며 말했다.


[왕야(王爺)께서 너그러우시어 그냥 풀어 주는 것이니 감사히 여기고, 앞으로는 건실하게 살도록 하여라. 이 몇 냥의 은자는 왕야께서 네놈들 치료비로 내리시는 것이니 감사히 받아가도록!]


풀려난 네 명은 팔다리가 부러져 제대로 걷지도 못해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의지하며 겨우겨우 걸어 나왔다. 한참을 기다시피 걸어 왕부에서 반 마장쯤 떨어진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왕경과 막기평이 달려들어 고려인들을 부축했다.


고려인들은 왕경이 갑자기 나타나자 매우 놀랐다.


[왕..]


왕경이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보는 눈이 많으니 아무 말도 하지말게. 지금 미행이 붙었네. 자네들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게!]


고려인들도 모진 고문을 받다 처형당할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혐의가 풀렸으니 풀어준다고 하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는데 왕경의 말을 듣고 일의 전말이 짐작이 되어 조용히 왕경의 안내에 따랐다.


눈썰미 좋은 교도 하나가 고려인들의 몰골을 보고 나는 듯 달려 고려인들로 변장해 있는 다른 백련교도에게 가 그럴듯하게 분장을 다시 해주었다.밥 한 끼 먹을 시간이 걸려서야 왕경과 고려인들은 백련교도들이 잠복해 있는 골목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골목을 돌자마자 왕경과 막기평은 마차 안으로 고려인들을 밀어 넣고 대기하고 있던 고려인으로 분장한 백련교도를 부축했다.고려인을 태운 마차는 골목 안쪽의 북쪽 골목으로 달려나갔고, 똑같은 모양의 마차 한 대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왕경이 왔던 길로 움직여 나갔다.


골목 안으로 왕경 일행이 사라지자 미행하던 자들은 급히 뒤를 쫓았다. 왕경과 분장한 고려인들은 골목 안쪽으로 서로 한 덩이가 되어 걸어가고 있었다. 미행하던 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눈짓을 하자 두 명이 따로 나와 마차를 뒤따라 갔다. 


왕경 일행과 제법 거리가 떨어졌을 때 그들은 마차를 세우고 짐을 수색했다.


[나으리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희는 야채를 납품하러 가는 상인들입니다. 점심 준비를 하기 전에 빨리 식당에 납품해야 하는데..]


[닥쳐라!]


둘은 짐을 뒤척이다가 칼을 뽑아들고 짐들을 마구 쑤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부는 어쩔 줄 모른다.


[아이고 나리들.. 이건 식당에 팔아야 하는 채소들인데···.]


짐들을 쑤시던 미행인 하나가 칼을 뽑아들어 마부의 목에 가져다 댔다.


[지금 국사범이 탈출했는데, 혹시 네놈이 그 녀석들을 숨겨 준 것 아니냐?]


마부는 시퍼런 칼이 목에 닿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닙니다요. 아니에요. 저는..]


[그런데 왜 수색을 방해하느냐? 한 번만 더 쫑알대면 그 개 같은 목을 잘라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미행인은 마부를 잔뜩 겁 준 뒤 짐마차를 꼼꼼히 조사했다. 심지어 마차 아래에 매달려 있진 않을까 해서 칼로 마차 아래를 휘저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자 둘은 마부를 보내주었다.


[그냥 평범한 짐 마차였군!]


[그러게 어서 대장님께 가세나 아까 그놈들이 맞나 보네.]


둘은 미행하는 무리에게 다시 합류하여 마차를 수색한 결과를 보고 하였다.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마차가 나와 의심하긴 했는데 그 후로 우리가 눈을 떼지 않고 있으니 그 마차에 없었으면 저놈들이 맞겠지. 모두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잘 미행해라!]


[네!]


왕경은 골목 골목을 돌며 충분히 시간을 끌다가, 고려인들을 태운 마차가 안전한 곳까지 빠져나갔다고 생각되어지자 나직이 말했다.


[저 골목을 돌면 자네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게 나와 막사질이 저들을 막으며 시간을 끌겠네.]


[저희도 함께 공격하여 제거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전일 우리가 습격한 것을 보고 상당한 실력자들을 붙인 것 같으니 자네들은 도주에 신경을 쓰게나. 우리 둘이 이곳에서 최대한 막다가 몸을 빼도록 하겠네. 목 소저 체면을 봐서라도 저들을 죽이면 안 되네!]


말을 마치고 왕경 일행은 오른쪽 골목으로 급히 몸을 날렸다.


그것을 보고 미행하던 무리가 다급히 달려왔다. 고려인으로 변장한 교도 넷은 경공을 펼쳐 나는 듯 달아났고, 왕경과 막기평은 골목 어귀에 숨어 있다가 미행자들이 골목을 돌아 들어오자 등 뒤로 기습을 가했다.


순식간에 두 명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남은 셋은 크게 놀라 칼을 빼 들고 덤벼들었다. 확실히 왕부에서 엄선한 위사들이라 무공이 대단하여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아 삽시간에 수십 합을 교환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왕경이 둘을 상대하고 막기평이 한 명의 위사를 상대하였으나, 오히려 왕경은 여유가 넘치고 막기평은 종종 위험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기습하여 두 명을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 할 뻔했군!)


그때 막기평을 상대하던 위사의 칼이 막기평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왕경은 재빨리 좌장을 뻗어 막기평을 찌르는 위사의 태양혈을 치려했다. 위사가 칼을 계속 뻗는다면 막기평의 가슴에 바람 구멍을 낼 순 있겠지만 본인도 왕경의 일장에 머리가 터져 죽을 것이다. 결국 위사는 몸을 돌려 왕경의 좌장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숙!]


막기평은 전날 왕경의 무공을 보고 크게 감탄하여, 비록 나이는 자신이 훨씬 더 많지만 왕경에 대해 공손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왕경이 목숨을 구해주자 감사한 마음이 더 크게 일었다.


[조심하게! 이들의 무공은 보통이 넘네!]


다시 수십 초를 겨루자 결국 왕경 혼자 셋을 상대하고 막기평은 싸움에 끼질 못했다. 


왕경은 이만하면 충분히 도망갔을 것이라 생각하여 막기평에게 외쳤다.


[자 이제 우리도 이만 자리를 뜨세! 유제독이 기다리시겠네.]


[네!]


왕경과 막기평은 쉽게 몸을 빼내어 담을 타고 도망갔다. 


위사들은 왕경을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두명의 위사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때 한 명의 위사가 바닥에 붉은 물건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해서 주워보니 겉에 광동수사제독부(廣東水師提督府)라고 자수가 놓인 비단 주머니였다.


그들은 주머니를 잘 챙겨 경친왕부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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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룡기(斬龍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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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19.08.19 54 0 -
30 30. 복건삼호(福建三虎) (2) 19.08.16 73 2 32쪽
29 29. 복건삼호(福建三虎) (1) 19.08.14 85 2 25쪽
28 28. 파양호 대전 19.08.13 83 2 26쪽
27 27. 흑묘파 (3) 19.08.12 100 2 21쪽
26 26. 흑묘파 (2) 19.08.09 101 2 21쪽
25 25. 흑묘파 (1) 19.08.08 104 3 21쪽
24 24.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2) 19.08.07 103 3 18쪽
23 23. 대하천명장(大夏天冥掌) (1) 19.08.06 109 3 29쪽
22 22. 태호의 노인 (2) 19.08.05 95 3 17쪽
21 21. 태호의 노인 (1) 19.08.02 105 3 18쪽
20 20. 옥화장의 위기 19.08.01 108 3 22쪽
19 19. 이단의 무술 실력 19.07.31 120 3 18쪽
18 18. 남경으로 19.07.30 125 3 20쪽
17 17. 사해방 19.07.29 198 3 23쪽
16 16. 산중생활 19.07.26 144 2 14쪽
15 15. 야반도주 19.07.25 140 3 13쪽
14 14. 연경을 떠나다. 19.07.24 156 3 20쪽
13 13. 모함 19.07.23 164 2 17쪽
» 12. 구출 19.07.22 171 2 21쪽
11 11. 습격 19.07.20 204 3 18쪽
10 10. 조천사(朝天使) +1 19.07.19 244 3 20쪽
9 9. 연경의 고려인들 +2 19.07.18 250 3 21쪽
8 8. 장원계의 죽음 19.07.17 237 3 18쪽
7 7. 연경으로 19.07.16 244 4 20쪽
6 6. 혼천공을 완성하다. 19.07.15 285 4 18쪽
5 5. 만보산에서의 생활 +2 19.07.13 296 7 22쪽
4 4. 사부를 모시다. 19.07.12 329 4 20쪽
3 3. 추격자들 +2 19.07.11 297 7 23쪽
2 2. 두문동(杜門洞)의 참화(慘禍) 19.07.10 32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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