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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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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1,587
추천수 :
187
글자수 :
97,151

작성
21.11.05 23:00
조회
306
추천
2
글자
11쪽

6화. 낙양으로 가는 길 (3)

DUMMY

“크윽······!”


머리가 쪼개질 듯 한 통증과 함께 환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외형의 괴물들이 입을 쩍 벌린다. 사람들은 괴물에게 홀려 산 채로 잡아먹힌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축 늘어져, 마물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팔다리가 뜯겨나가는데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사람들.


인간의 상식이나 윤리 규범을 벗어난 아비규환의 지옥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나는 정신력을 돋우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의식을 잃지 않고 간신히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순간, 설백이 단검을 휘두르며 술력을 크게 일으켰다.


“흐압!!”


파지직-!


큰 번개 소리와 함께 마물 주변에 거대한 뇌광이 튀겼다. 마물은 번갯불에 큰 타격을 입었는지 괴음을 내지르며 펄쩍 뛰었고, 순간 정신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고 말았다.


[구에에엑!!]


뱀 껍질을 태운 듯한 역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마물이 고통스럽다는 듯 몸을 뒤틀어댄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검날에 기를 모았다.


검기를 심은 칼날이 명동(明洞)한다.


쿠콰콰쾅!


내공을 실은 공격에 마물의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났지만, 마물을 계속해서 촉수를 내뻗었다. 나는 촉수를 검으로 튕겨내며 계속해서 검격을 날렸다.


푸확!


나는 마물을 수십 덩이로 토막 친 후에야 검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지경이 되어서도 조각난 몸뚱이와 촉수는 여전히 꿈틀댔다.


‘······’


나는 가공할만한 마물의 생명력이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수십 조각을 내도 죽지 않는다니! 애초부터 겉가죽이 금속처럼 딱딱해 피해를 주기도 쉽지 않다. 내게 절정의 공력이 없었다면 마물에게 상처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으리라.


나는 일단 설백에게 다가갔다. 그는 모든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했는지 몹시 창백해 보였고, 입가에는 한줄기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괜찮소?”

“후우······. 괜찮소. 좀 힘이 들 뿐이오. 곤옥검(崑玉劍)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군.”


설백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나는 마물의 사체가 있는 골짜기의 건너편을 가리켰다.


“골짜기 너머에 무언가가 있소. 아주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오. 아마 마물은 저것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군.”

“어서 가 봅시다.”


나는 설백을 부축하여 골짜기를 건넜다. 거무튀튀하고 진득한 점액질 웅덩이를 건너자, 기괴한 형상의 무언가가 불쑥 솟아올라 있다.


흉측한 촉수 같기도 하고 뒤틀린 팔 같기도 한 무언가가 가슴팍 높이까지 올라와 있고, 한가운데에는 시커먼 돌멩이가 박혀 있다.


돌멩이에서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결계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기(邪氣)의 근원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되겠소. 당장 파괴해야겠소.”


우웅-


"잠깐!"


검기를 방출해 촉수를 내려치려는데, 설백이 나를 만류했다.


“왜 그러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너무 성급하군. 내가 해 보겠소.”

“······”


나는 그 순간 내가 너무 조급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결계도, 마물도, 시커먼 돌멩이까지도 사악한 무언가인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내가 홀린 듯 검을 내려치려 했던 것이다. 그건 속 시원한 일일지는 몰라도, 그리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다.


카각, 카가각-


설백이 단검을 이용해 촉수에 박혀 있는 시커먼 돌멩이를 조심스레 긁어냈다.


한참을 긁어대던 설백이 드디어 돌멩이를 캐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던 환술 결계가 깨어졌다.


“······!”


햇살이 쏟아지고, 그와 동시에 돌멩이를 품고 있던 촉수가 생명력을 잃고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골짜기를 바라보니 마물의 사체도 활기를 잃고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魔)를 퇴치한 것이다.



***



결계가 사라진 뒤, 우리는 마물의 사체를 모아 불에 태웠다. 설백이 부적을 한 장 꺼내 주문을 외우자, 불길이 치솟는다.


말없이 마물의 조각들이 오그라드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불길 사이로 낯선 형체가 서서히 보이더니, 단단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황금으로 된 가지가 수놓인 왕관이었다.


나는 곧바로 왕관을 집어 들었다. 불에 그을린 흔적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굉장한 물건이로군.”

“아는 물건이오?”

“그렇지는 않소. 허나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마도구(魔道具)를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소.”


나는 왕관을 이리저리 뜯어보았지만, 어떤 특별한 느낌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장건. 일단 그대가 가지고 있으시오. 보통 이런 물건은 특별한 조건이 성립해야 그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니, 차차 생각해 봅시다.”

“알겠소.”


나는 황금 왕관을 품에 잘 넣어두었다. 설백은 아까 촉수에서 긁어낸 검은 돌덩이를 꺼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이 검은 돌이오. 여기에서 아주 지독한 마기(魔氣)가 느껴지는군. 그대는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있소?”


설백의 물음에 나는 눈을 감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흑색의 목걸이.


흑귀가 떨어트린 흑색의 목걸이에서 비슷한 기운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었다. 방금 촉수에서 캐 낸 돌맹이가 훨씬 더 맹렬한 마기를 뿜어댔으니까.


나는 품속에서 흑색의 목걸이를 꺼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우웅-


검은 돌과 흑색의 목걸이가 공명(共鳴)하며 진한 파장을 뿜어냈던 것이다!


덩달아 흑색의 목걸에서도 마기가 더욱 진해졌기에, 설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아······. 안 되겠소. 일단 마기를 봉인 시키겠소."


설백이 품속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부적은 사락거리며 저절로 접히더니, 검은 돌을 둥그렇게 둘러싸는 모양새가 되었다. 우리는 흑색의 목걸이까지 봉인한 다음, 돌맹이와 목걸이의 정체를 밝히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마기로 오염된 골짜기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이곳은 마기에 오염되어 있어 이대로 놔두면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마을까지 오염될 거요. 일단 임시방편으로 기문진을 설치하겠소.”


설백은 촉수 주위로 기묘한 문양의 기문진을 그리더니, 길쭉한 기물(奇物)을 네 방위에 각각 꽂았다. 그리고선 부적을 세 장 꺼내 주문을 외웠다.


스으으-


마기가 서서히 중화되는 게 느껴진다.



***



그 무렵, 강서성 평향(萍鄕).


흑파천 서열 3위 호영락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그가 가장 아끼는 심복을 거처로 불러들였다.


끼익-


“호법님을 뵙니다.”


문이 열리고, 흑의를 입은 사내가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호영락은 손을 휘휘 저으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됐으니까 일어서라.”

“예.”

“초하룻날이 한참 지났는데 흑살대에게서 아무 기별이 없다. 혹시 최근에 흑귀와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있느냐?”

“지난달 삭일(朔日)에 본부에서 본 이후로 따로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그렇단 말이지······.”


호영락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삭일, 즉 매달 초하룻날에는 흑파천의 각 지부(支部)나 산하 조직들이 그 전 달에 벌어들인 수입 일부분을 자진하여 상납한다.


언뜻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뜯어 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흑파천 소속의 무인들은 결코 불만을 터트리거나 상납금을 아까워하는 법이 없었다.


흑파천 련주에게 상납하는 금액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값진 것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목숨이었다. 막말로 살수 집단이나 정보집단을 운영하다 보면 온갖 더러운 꼴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그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럴 때 흑파천이라는 든든한 뒷 배경이 힘을 발하는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강력한 무공을 갖고 있어도 집단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다. 또한 마도팔문의 일원을 적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미친놈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흑파천 소속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흑파천 본부는 매월 초하룻날만 되면 그 달의 상납금을 바치려는 각 지부의 지부장이나 조직장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본부에 드나들면서 조직의 고위 간부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상납금이야 자신들의 부하를 시켜 전달하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어설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파천의 다른 초고수들과 인맥과 친분을 미리미리 쌓아두어야 훗날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흑살대 대주 흑귀도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본부에 꼬박꼬박 찾아와 눈도장을 찍던 부류였다.


물론 매번 찾아오지 못했지만, 상납 자체는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던 사내.


십수 년 동안 흑귀의 철두철미함을 느꼈던 호영락은 초하루에서 여러날이 지나도록 연통조차 없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호영락이 말했다.


“네가 직접 여산에 있는 흑룡각으로 건너가서 흑살대와 흑귀의 행방을 확인해봐라. 혹여 변고가 생겼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예, 호법님.”


그의 말에 주약풍이 고개를 숙이며 부복했다. 그는 즉시 방을 빠져나와 수하들을 추려 여산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완숙한 일류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흑파천의 본거지인 평향에서 여진곡까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여진곡에 도착한 주약풍은 수하들과 함께 흑룡각을 샅샅이 뒤졌지만, 흑귀는 보이지 않았다.


‘호법님께서 우려하시던 일인가······.’


주약풍은 흑귀와 딱히 친분이랄 것도 없었지만, 십수 년간 호영락 호법을 보좌하며 안면은 터놓은 상태였다.


아니, 사실 그는 흑귀가 나름 실력도 있고 호쾌한 사내라고 생각해왔다. 흑귀는 흑파천의 이름값만 이용하려는 놈들과는 질적으로 달랐으니까.


주약풍은 흑룡각이 텅 비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즉시 수하들을 동원해 여진곡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흑룡각에서 조금 떨어진 한 개천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한 흑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


개천에는 흑귀 뿐만 아니라 복면을 뒤집어쓴 시체들도 여러 구 있었다.


그리고 복면인들의 인상착의와 명패들을 확인해 본 결과, 그들이 흑파천 산하 살수집단 중 하나인 칠살조(七殺助)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럴 수가······! 바닥에 새겨진 검흔으로 볼 때 흑귀와 칠살조를 몰살시킨 건 단 한 명이다······!’


주약풍은 그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제일 발이 빠른 수하를 시켜 호영락 호법에게 이 사실을 전하도록 했다.


그가 말했다.


“나머지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다. 지금부터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라. 흑살대와 조금의 관련이라도 있는 자는 모두 잡아들여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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