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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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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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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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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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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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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2쪽

4화. 여진곡(庐進谷) (2)

DUMMY

“정말 고맙소이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약방 주인이 연신 허리를 숙인다.


어차피 지금 당장 태극문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별로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나는 그의 말대로 상림촌에 가 보기로 했다.


이제 내게 조그만 삼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


게다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조금의 수고를 하는 건 가치가 있는 일이다.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오.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팔지 않소.”

“그렇다고 해도 고맙소이다······.”

“흠흠, 민망하군.”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 근방 지리를 잘 모르오. 상림촌으로는 어떻게 가야 하는 거요?”

“음, 걱정하지 마시오. 내 아주 상세히 알려 드리겠소.”


약방 주인이 어디선가 주섬주섬 지도를 꺼내 펼쳤다.


“자, 먼저 이곳. 여산이 있소, 그리고 그 밑에는 바로 이곳, 여진곡이 있소이다. 이해하시겠소?”

“계속하시오.”

“좋소. 여진곡에서 북쪽으로 쭉 가다 보면 조그마한 개울이 하나 나올 거요. 아마 백 리가 채 안 될 거요.”


지도에는 약방 주인의 말대로 조그마한 실개천이 그려져 있었다.


“개울을 건너서 약 오십 리만 더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마을이 상림촌이오. 내 말 알아듣겠소?”

“음. 알겠소이다.”


상림촌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다. 허나 나에게는 절정의 내공이 있었으므로, 하루 정도면 그곳까지 갈 수 있을 듯했다.


“사실 나는 목적지가 따로 있어 이것저것 준비할 게 있소. 혹시 약재가 급히 필요한 것이오?”

“그렇지는 않소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법이 아니겠소. 급한 대로 대용품을 찾아서 해결하고 있을 거요.”

“그게 무슨 소리요?”

“산삼이 없다면 비슷한 성질을 지닌 다른 약초를 처방하면 되오. 물론 고유의 성질 자체가 다르기에, 다른 약재와의 궁합을 잘 고려해야겠지만······.”

“······”


약방 주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산삼이나 하수오가 있으면 큰 효능을 지닌 명약(名藥)을 만들 수 있을 것이오. 허나 효과가 좋은 만큼 구하기도 어렵지.”

“으음······.”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약재를 적절히 배합(配合)하는 거로 산삼의 성질을 적당히 따라 할 수 있소. 그렇지 않다면 돈이 없는 백성이나 양민들은 어찌 세상을 살아가겠소? 당장 먹을 죽 한 그릇이 없는데 말이오.”


나는 그제야 약방 주인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산삼은 약효가 탁월하지만, 공급이 적어 가격이 비싸다.


농민이나 양민같이 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약방 주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작두콩은 구내염이나 입안에 생긴 고름에 특효약이고, 물푸레나무 껍질을 달여 마시면 장염이나 설사에 효과가 좋소. 이것들은 모두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정작 그 쓰임새를 몰라 고통받는 이들이 너무 많소.”


약방 주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생각보다 의로운 사람이군.’


의학(醫學)이나 약학(藥學)을 배운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힘없고 무지한 양민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의원이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재물만을 탐한다면, 환자의 안위나 사정 따윈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의도적으로 비싼 약재를 처방하며 폭리를 취할 것이다.


본초학(本草學)을 비롯한 의학은 제대로 익히기가 매우 까다로운 학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 크기를 차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의원이 폭리를 취해도 도무지 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는 약방 주인의 신념에 가슴 한 켠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어쨌든 걱정하지 마시오. 내 책임지고 상림촌에 약재를 전달할 테니······.”

“음, 잠깐 기다리시오. 내 서신을 한 통 써줄 테니······.”


약방 주인은 어디선가 종이와 붓을 꺼내, 편지 한 통을 휘갈겨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붓질이 먹물깨나 먹은 듯 보인다.


이윽고 편지가 완성되자, 약방 주인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뭐요?”

“이것은 오행단(五行丹)이라고 하오. ”

“오행단?”


그가 내민 작은 나무 상자에서 은은한 광택이 돌았다.


“이런 말 하기는 부끄럽소만 우리 송씨가문은 이곳 여진곡에서 3대째 약재상을 하고 있소이다.”

“······”

“오행단은 우리 가문의 자랑이자, 천하의 명약(名藥)이오. 이걸 받아주시오.”

“······!”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것이오?”

“후우······. 나는 처음 당신을 보고 깜짝 놀랐소. 웬 비렁뱅이가 밥을 빌어먹으러 왔나 싶었지.”

“······”

“그러나 그건 내 짧은 식견으로 인한 편협한 생각이었소. 나는 살아생전 당신과 같은 고수는 결코 보지 못하였소!”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더구나 상림촌의 병자들을 생각하는 당신의 인의(人義)에 나는 깊이 감동하였소이다. 자, 받아주시오!”


그가 은은한 광택이 도는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으로 누런 빛깔의 단약이 보인다.


“오행단은 우리 송 씨 가문 100년의 비기! 만드는 데만 꼬박 이 년이 걸리오.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중원 땅 수십 개의 약초를 오랜 기간 말리고 달여야 하오.”

“그, 그렇구먼.”

“오행(五行)의 균형이 맞도록 절묘하게 배합하는 것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오. 만약 한 치의 오차라도 생긴다면, 오행단은 거무튀튀해지지.”

“······.”


나는 병자들을 생각해서 상림촌에 가는 게 아니다.


인의를 중시하거나,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약초 캐다 파는 건데······.


혼자만 먹기 미안해서······.


뭔가 단단히 오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오행단을 건네받았다.


상자 안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주니까 고맙긴 하다만······. 그냥 먹으면 되는 거요?”

“아, 잠깐···. 잠시 기다리시오.”


그는 순식간에 약방 한 켠에 달이고 있던 중탕기에 다가가서는, 덮어놓은 삼베를 걷어냈다.


쪼르르-


탕약이 잔에 한가득 담긴다.


“영약을 섭취할 때는 몸을 데우고 먹는 게 기본이오. 몰랐소이까?”

“······”

“이건 윤폐탕(潤肺湯)이라 하오. 한잔 쭉 들이키시오.”

“으음······. 향이 너무 쓰군.”


정말이었다. 그가 건넨 탕약에서 지독한 쓴 내가 풀풀 풍겼다.


“어성초 때문이오. 젖먹이처럼 투정하지 말고 얼른 드시오.”

“음······.”


꿀꺽-


나는 그의 말에 못 이겨 탕약을 들이켰다. 역시나 고약한 쓴맛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크으···. 정말 쓰군.”

“오행단은 결코 함부로 섭취하면 안 되오. 강한 양기와 음기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오. 그 때문에 먼저 윤폐탕으로 폐를 보(保)하는 거요.”

“폐를······. 뭐, 뭐라고 했소?”

“허허. 폐는 호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오. 오행단 같은 영약을 먹는다는 건 몸속에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는 것과 같은 일, 폭풍이 오기 전에 먼저 폐를 돌봄으로써 그 기운이 뭉치지 아니하고 퍼트리게 하는것이 기본 상식 아니겠소.”

“······”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의약(醫藥)의 세계는 어렵구나.


어쨌든 그의 말에 따라 탕약을 마셨으니, 이제 오행단을 먹을 차례였다.


나는 상자에서 누런빛깔의 오행단을 집어 들고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으음······!


‘······!’


오행단은 실로 영약(靈藥)이었다. 둥그런 단약을 씹어 삼키자, 웅혼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단전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뱃속에 붕조(鵬鳥)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듯한 기분.


과연 3대째 전해 내려오는 가문의 비전 영약이 아닐 수 없었다.


츠츠즛-


나는 가부좌를 틀고 한참 동안 몸을 다스린 끝에, 오행단의 내공을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


온몸에 기운이 넘친다.


어째 이백 년 된 산삼을 먹었을 때보다도 더 내공이 늘어난 기분이다.


“고맙소. 덕분에 무공이 한 층 진일보한 게 느껴지는군, 상상 이상이구려.”

“허허. 다행이오. 다만 오행단은 생에 단 한 번밖에 섭취할 수가 없소.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두세 번 먹는다고 효과가 곱절이 되지가 않는다는 소리요.”

“알겠소이다.”


나는 약방 송 씨와 간단한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섰다.



---



송 씨의 한약방을 빠져나온 다음, 나는 가까운 포목점에 들렀다.


약방 송 씨가 마을 지도를 건네준 덕에, 마을 포목점까지 헤매지 않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포목점에는 온갖 비단과 명주실로 짠 고급스러운 의복들이 많았지만, 나는 적당히 수수하고 편안한 도복(道服)을 골랐다.


단정한 옷차림이면 충분했고, 굳이 화려한 옷을 입어 남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대로 상림촌으로 출발할까 싶었지만, 시장기가 돌았기에 무언가 먹고 싶었다.


‘으음······. 배고프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적당한 객잔을 발견했다. 제법 번듯한 모양새가 여러 음식을 파는 것 같았다.


‘여기가 좋겠군.’


딸랑-


객잔에 들어가자 점소이가 반긴다.


“어서 옵쇼!”


건물 벽면에 온갖 화려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울긋불긋한 소채류 하며 닭고기 요리, 붕어찜, 만두까지······.


주방에는 무언가를 기름에 튀겨대는지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우와······. 엄청나다······.’



감격스럽다.


그동안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산에는 도무지 먹을 만한 게 없다.


몸에 좋은 약초도 한두 번이지, 끼니마다 먹어야 한다면 그건 그냥 괴로운 일이 된다.


가끔가다 산짐승을 잡아먹긴 했지만, 그건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냥 불에 구운 고기일 뿐.


숙련된 요리사가 만들어내는 검증된 맛에 감히 비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차림표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눈치 빠른 점소이가 거들기 시작했다.


“손님. 우리 가게가 처음이시죠?”

“그렇소. 처음이오.”

“그렇다면 만두에 우육면(牛肉麵)부터 시작하시죠. 특히 만두는 저희 주방장님이 새벽마다 직접 빚으십니다. 여진곡 명물이라구요.”


점소이의 말에 차림표를 쳐다보았더니, 과연 만두에 윤기가 좌르르한 것이, 군침이 돈다.


“좋군. 일단 만두랑 우육면을 한 그릇씩 주시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잠시 기다리십쇼!”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



가만히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데, 건너편 한쪽에는 있는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체격이 건장한 젊은 사내 대여섯 명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들이 여럿 모여있어서 그런지 제법 시끄러웠지만, 거슬린다는 느낌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상하다.


왜 아는 사람 같지?


······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저 사내들은 나와 동문이다!


어딘가 아주 익숙한 기세가 풍긴다 했더니, 같은 태극심법을 연마했던 것이다.


나는 난생처음 만난 동문이 반가워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냥 참기로 했다.


저 사내들은 나를 모른다.


저들이 동문이라는 건 순전히 내 어림짐작일 뿐이고. 설사 사실이더라도 그들과 나는 생판 모르는 남인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내들은 한둘씩 일어서는 분위기였다.


‘그냥 아는 체 말고 만두나 먹자.’


때마침 점소이도 주방에서 만두 한 판을 들고 나왔다.


“맛있게 드십쇼!”


점소이가 음식을 턱 하고 내려놓았다.


‘음······. 이거지······.’


만두피가 번들번들 윤이나며 탐스럽고, 구수한 향기가 진동하는 게 과연 여진곡 명물이라 할 만했다.


‘한번 먹어볼까?’


그때였다.


콰당탕-!

철퍽-


앞서 지나가던 사내의 검집이 식탁을 때리면서, 음식이 모두 엎어지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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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6화. 낙양으로 가는 길 (1) 21.11.01 378 5 12쪽
14 5화. 상림촌(桑林村) (5) +1 21.10.30 448 6 11쪽
13 5화. 상림촌(桑林村) (4) +1 21.10.29 463 9 11쪽
12 5화. 상림촌(桑林村) (3) 21.10.28 501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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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화. 상림촌(桑林村) (1) 21.10.26 555 13 11쪽
9 4화. 여진곡(庐進谷) (4) +1 21.10.25 609 11 11쪽
8 4화. 여진곡(庐進谷) (3) +1 21.10.23 689 12 12쪽
» 4화. 여진곡(庐進谷) (2) 21.10.22 701 12 12쪽
6 4화. 여진곡(庐進谷) (1) 21.10.21 770 14 11쪽
5 3화. 절정에 이르다 (2) 21.10.20 785 12 11쪽
4 3화. 절정에 이르다 (1) +1 21.10.19 820 13 11쪽
3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2) +1 21.10.18 863 13 11쪽
2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1) +1 21.10.17 956 16 11쪽
1 1화. 검은 옷의 무인 +1 21.10.16 1,275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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