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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1,586
추천수 :
187
글자수 :
97,151

작성
21.10.17 22:52
조회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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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1)

DUMMY

츠츠츳-


나는 계속해서 태극심법(太極心法), 즉 운기행공을 펼쳤다.


사실 내가 태극심법을 익힌 건 천운에 가까울 정도로 큰 행운이었다.


중원 땅 대부분의 문파는 자신들의 무공이나 심법이 바깥으로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문파 고유의 무공이 바깥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필시 그에 따른 파훼식이 연구되어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것은 전력이 깎이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전무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특정 문파의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정식으로 문파에 입단하는 절차를 밟는 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말은 일반 백성이나 양민들은 무공을 접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우선 문파에 발을 디디는 것 자체가 일반 양민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문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손을 번쩍 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파에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무공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받아야 한다. 즉 오성(悟性)이 뛰어나지 않으면 문파에서 받아주지를 않았다.


이건 중원을 넘어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통하는 공통적인 이야기였는데, 조직 구성원들의 수준이 곧 조직의 힘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새로이 조직원을 들일 때 최대한 재능있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리라.


오대 세가 같은 명문 가문들은 집안에 새로운 식솔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의 재능을 조금이라도 더 개화시키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들인다.


어린아이의 무재(武才)를 일찍 판별하여, 그 아이에게 꼭 알맞은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명문으로 불리는 가문들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효과적인 비전심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 넉넉한 금전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영약을 복용시키거나 약초를 달여 먹이는 일도 일반적이었다.


명가의 후손들은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에서 쑥쑥 자라면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농민들이나 소규모 상점을 운영하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양민들은 아이들이 적당히 성장했을 때부터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동에 투입하는 게 일반적인 생리였다.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재능이고 나발이고 도무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영약이나 약초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제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지 않아 할까.


영약을 섭취하여 내공을 늘리면 물론 좋겠지만 당장 오늘 먹을 음식도 없는 상황에서 언감생심 사치스러운 짓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일반 백성들은 무공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지는 것이고, 혹여나 재능이 있는 아이일지라도 고된 노동에 치여 이리저리 고생하다 나이가 들고 그 능력이 시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사냥꾼의 아들이니 양민 집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태극문의 태극심법을 익혔다.


아버지가 처음 무공서를 선물해주셨을 때가 아직도 선하다.


“아버님, 이게 뭡니까?”

“하하하. 무공비급이다. 이놈아.”


나는 미심쩍을 표정을 지었다.


“······무공비급이요?”

“간만에 시내에 나간 김에 구해왔다. 태극문의 비전심법이 담긴 태극기서(太極奇書)라고 하더구나.”

“······절 놀리시는 겁니까?”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아버지께 되물었다. 문파의 무공서라는 건 외인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물건일진데 어떻게 구하셨단 말인가?


“얼마 범 한 마리를 잡지 않았느냐?. 시내에 범 가죽을 팔러 나갔는데 도무지 팔리지 않지 뭐냐. 그래서 그냥 무공서와 바꿔 오고 말았다. 하하하.”

“······”


알고 보니 아버지는 가죽상점 주인에게 비급을 얻어오셨다.


상점 주인의 맏아들이 태극문에 입단했지만, 태극문에서의 훈련이 너무 고된 탓에 무공 수련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후 무공이나 수련에 관심이 떨어졌던 가죽상점 맏아들은 태극문에서 받은 무공서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먼지 쌓인 무공서를 발견하시곤 곤란해하는 상점 주인을 설득한 끝에, 범 가죽과 태극기서를 교환하는 데 성공하셨다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문파의 무공비급을 외인에게 전해주는 건 금기시되는 일이었지만, 상점 주인으로서도 아들이 무공을 익히지 않으면 비급서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으므로 범 가죽과 바꿔먹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으리라.


심법은 모든 무공의 기초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결코 무공의 성취를 이룩할 수 없다. 아버지가 범 가죽을 내주면서도 무공서를 얻으신 건 그 중요성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애비도 젊었을 때 무공을 조금이라도 배워둘 걸 후회가 되는구나. 그랬다면 사냥꾼 노릇도 수월했을 텐데···.”

“······”


아버지가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무공을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기초체력 자체가 월등히 향상되므로 짐승을 수월하게 쫓을 수 있을 테고, 절벽이나 암석 같은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마도 젊은 적에 무공을 배우고 수련하지 않은 게 평생의 후회로 남으셨던 것 같다.


“이 애비는 무공에 관한 건 까막눈이나 다름없어 미안하구나. 너는 영민하니 혼자서도 비급을 잘 익힐 수 있을 게야······.”

“······감사합니다.”


태극기서.


사실 비급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무공서다.


심법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인, 얇은 무공서.


기본서 중의 기본서였기에 검법이나 창법 같은 무기술은 아예 담겨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얄따란 책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천하 그 어떤 절세비급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물건이다.



---



나는 동굴에서 약 한나절 동안 태극심법의 운기법으로 몸을 다스렸다.


고통이 차차 잦아들었다.


인체의 기경팔맥을 따라 진기를 유도하자 자연스럽게 인체의 재생력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뼈가 조금씩 붙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극한 상황에서 운기법을 펼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태극기서를 선물해주신 이후로, 그 책을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하긴 했지만 사실 눈에 띄는 어떤 효과가 있는걸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리가 부러지고 전신의 기혈이 무너져 있을 때는 운기법이 체감될 만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기와 혈행을 운용하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태극심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츠츠츳-


...


한차례 운기행공이 끝나자, 동굴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온종일 태극심법을 수련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기운이 더 샘솟는듯하다.


실제로 그랬다. 다리뼈가 몽땅 박살 나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심각했었는데, 이제는 다소 견딜 만한 수준까지 내려와 있었다.


물론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기에 움직임이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후우······. 이제 다시 걸을 수 있겠어.’


운기행공을 마치고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통증이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은 기분이었다.


‘지독한 놈들이다. 잡히면 죽음이니 더 멀리 도망친다.’


나는 그로부터 약 칠 주야 동안 수풀을 헤치며 도주극을 벌였다.


마교의 포위망은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했기에, 예전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동굴이나 바위 밑에 숨어 운기행공을 연마하고, 해가 지면 자리에서 일어나 달음질을 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멀리까지 온 것 같았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 뛰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칠 주야가 지나고 다음 날 밤.


나는 마교의 포위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날도 저물었고, 마침 아늑해 보이는 동굴도 찾았기에 하룻밤을 머무르기로 했다.


슥슥-


나는 마른 잎사귀와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동굴 안에 간이 잠자리를 마련했다. 찬 바람이 숭숭 들어왔지만 불을 피우지는 않았다. 혹시나 마교의 수색대가 연기를 보고 찾아올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빛이 반짝였다.


다음 날. 나는 주섬주섬 일어났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데는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내 목표가 복수하는 것이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인 것이다.


내겐 오직 수련 뿐이다.


그 후로 나는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태극심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다리뼈가 모두 붙었다.


주변의 핀 버섯이나 나무 열매, 작은 산짐승을 사냥하여 끼니를 때우고 나머지 시간을 모두 수련에 쏟아붓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공력을 수련하니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먹을 것을 구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내공을 연마할수록 육체의 피곤함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수면시간도 점점 짧아지게 되었다.


물론 나는 남는 시간을 모두 운기행공하는 데 투자했다.


삼 주가 지나자 나는 이제 웬만큼 태극심법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대주천을 돌릴 때마다 내공이 전신의 세맥을 툭툭 뚫는 감각도 느껴지곤 했다.


물론 인체의 거대한 주요 경맥은 아직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씩 성장한다는 재미가 계속 수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


한 달이 더 지났다.


나는 아예 동굴 안에 작은 움막을 짓고 눌러앉아 버렸다.


새벽녘에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집을 지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바위나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뭇가지와 솔잎을 얹은, 조악한 초가집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바람은 충분히 막아 줄 수 있었다.


운기행공을 통한 수련도 꾸준하게 했기 때문에 내공도 제법 쌓였다.


주변에 약초나 버섯 따위가 많이 자랐기 때문에 끼니도 적당히 해결할 수 있었다.


어깨너머 배운 덫도 산 곳곳에 설치해두었다.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큰 짐승들은 잘 잡히지 않았지만, 토끼나 뱀 등의 작은 동물들은 곧잘 잡혔으므로 사냥하는 재미가 제법 있었다.


석 달이 더 지나갔다.


여전히 운기행공을 통한 수련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즈음부터 나는 무언가 잘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진기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말로는 형용할 수 없지만 무언가 잘 못 수련하고 있다는 느낌. 아니, 잘못하고 있다기보다는 비효율적이라는 게 더 정확하리라.


‘스승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이 산골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나는 홀로 해답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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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6 겜판소조아
    작성일
    21.11.02 22:11
    No. 1

    8일밤을 도망친 후 거기서 거처를...? 옛날사람들 시간감각과 거리 기준이면 8일거리면 잡힐 거 같은데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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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6화. 낙양으로 가는 길 (2) 21.11.03 346 5 11쪽
15 6화. 낙양으로 가는 길 (1) 21.11.01 378 5 12쪽
14 5화. 상림촌(桑林村) (5) +1 21.10.30 449 6 11쪽
13 5화. 상림촌(桑林村) (4) +1 21.10.29 464 9 11쪽
12 5화. 상림촌(桑林村) (3) 21.10.28 501 9 11쪽
11 5화. 상림촌(桑林村) (2) 21.10.27 539 12 11쪽
10 5화. 상림촌(桑林村) (1) 21.10.26 556 13 11쪽
9 4화. 여진곡(庐進谷) (4) +1 21.10.25 609 11 11쪽
8 4화. 여진곡(庐進谷) (3) +1 21.10.23 690 12 12쪽
7 4화. 여진곡(庐進谷) (2) 21.10.22 701 12 12쪽
6 4화. 여진곡(庐進谷) (1) 21.10.21 770 14 11쪽
5 3화. 절정에 이르다 (2) 21.10.20 786 12 11쪽
4 3화. 절정에 이르다 (1) +1 21.10.19 820 13 11쪽
3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2) +1 21.10.18 864 13 11쪽
»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1) +1 21.10.17 957 16 11쪽
1 1화. 검은 옷의 무인 +1 21.10.16 1,275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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