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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1,574
추천수 :
187
글자수 :
97,151

작성
21.10.16 22:05
조회
1,274
추천
14
글자
11쪽

1화. 검은 옷의 무인

DUMMY

꼬르륵


“······”


배가 고프다.


벌써 하늘도 어두컴컴하다.


오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련에 열중했다.


나는 비록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적은 없지만, 무공을 익히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버지가 태극기서(太極奇書)라는 무공서를 선물해주신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아마도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한 건 아니었다.


태극기서를 처음 접했을 때는 수련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책을 보며 놀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그때는 수련을 한다거나 무공서를 익힌다기보다는 그냥 각 장(章)마다 간략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이나 동작을 혼자 따라 하며 흉내 내는 수준이었다.


태극기서에 적힌 구결들을 해석하는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솔직히 말해 의미도 모르고 그냥 떠듬떠듬 읽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무공서에서 말하는 내공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태극기서 첫 장에 나온 태극심법(太極心法)이라는 운기행공법을 따라 하면서부터는 단전 안에 내공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내공을 쌓는 재미를 알아차릴 때 부터, 나는 매일 아침 산을 올라가서 해가 질 때 까지 운기행공법을 연습했다.


물론 이것도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한참 동안 운기행공을 하다 보면 몸도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고, 손아귀에 힘도 확실히 강해지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왠지 모르게 안력(眼力)이 상승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캄캄한 밤에도 어느 정도는 눈 앞의 물체를 구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터벅터벅-


‘······?’


수련을 끝내고 상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별안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언가 숨 막히는 듯한 기분에 가슴이 답답하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답답하고 불쾌한 느낌.


운기행공법을 연마한 뒤부터 기감이 발달해 오감이 민감해지긴 했지만,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다.


나는 괜스레 덜컥 겁이 나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피에 흥건히 젖은 채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손이 덜덜 떨린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거, 건아······.”

“아, 아버지······!”

“도망쳐라······. 마교 놈들이······.”


털썩-


아버지의 고개가 맥없이 떨어진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숨이 턱 막힌다.


“아, 아아······.”


가슴이 아려온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사방에서 죽일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으...으윽..."


숨이 막혀온다.


찰나의 순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도저히 목숨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다.


머지않아 살기를 뿜은 놈들이 몰려올 것이다.


‘······’


그러나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온다.


이대로 죽는다.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보잘 것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곳에서.


······


아니, 그럴 수 없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죽을 수가 없다.


번쩍!


나는 순간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구체적으로 각오를 다진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삶의 목표가 명확하게 정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일단 도망치자.


지금 당장은 도망치는 신세일지라도 상관없다.


평생이 걸리더라도,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원수를 갚으리라.


놈들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


타닥-


나는 후일을 기약하며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


'헉..헉...‘


점점 숨이 가빠온다.


시커먼 흑의를 입은 마교의 무사들이 나를 쫒는다.


심장이 터지도록 내달렸지만, 흑의인과의 거리는 오히려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상승보법을 구사하는 무인들을 상대로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뒤를 힐끔 돌아보았지만, 흑의인들은 결코 지친 기색이 없다.


'헉... 헉... 내공 차이인가······.‘


운기행공을 조금 더 열심히 수련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태극기서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혀두었다면, 흑의인들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이대로 가다간 따라잡힌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타다닥-!


나는 막다른 낭떠러지 쪽으로 미끄러지듯 속력을 낮추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뒤따라오던 흑의인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세 명의 흑의인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말했다.


"······재빠른 놈이군."

"후욱, 후욱······."

"순순히 따라오면 목숨은 살려주지."

"후우···. 정말이오?"


내 말을 들은 흑의인 대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라."

"정말 살려줄 것이오?"

"······그래, 살려주겠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흑의인들이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그들은 아마 나를 돌대가리쯤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내가 뱉은 말에, 그들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지고 말았다.


"당신네 대장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소?"

"······뭐, 뭐라고?"

"당신네 대장을 걸고 맹세하라 했소."

“······무엄하다! 네깟 놈이 무어라고 감히······”

“자신이 없나 보군.”


챙강!


흑의인 대장 검을 뽑아 들었다. 내 말을 모욕이라고 느낀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당장 죽여주마.”


카악- 퉤!


나는 대답 대신 걸쭉한 침을 뱉었다.


흑의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귀찮고 짜증스러운 표정.

안 그래도 곧 죽을 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싶을 것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렇게 도발하는 게 놈들의 화만 돋울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들의 신경을 긁었다.


흑의인이 말했다.


“마음이 바뀌었다. 그냥 뒤져라!”


쐐액!


'지금이다.'


나는 그 순간 온 힘을 집중시켜 흑의인의 검을 피한 다음,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 던져버렸다. 그는 내공을 끌어올려 버티려고 했지만, 이미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있었기에 역부족이었다.


"끄아아아...!"


절벽에서 떨어진 흑의인의 절규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

"이놈···! 버러지 놈이 감히···!"


이성을 잃은 흑의인 두 명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격한 몸부림 끝에 흑의인 한 명과 같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다.


휘이잉-


마지막으로 느껴진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원통하구나···.'


분하다.


남은 한 놈을 마저 찢어 죽이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게 너무 분하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낯선 수풀 속에서 깨어났다.


“크윽······.”


정신을 차리자마자 밀려오는 격통.


절벽에서 떨어진 충격 때문에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주저앉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풀숲에 다시 드러누웠다.


흑의인들과 같이 절벽에서 떨어진 것까지는 기억난다.


······!


‘그 새끼들······. 어디있지······?’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았다.


‘······!!’


멀지 않은 곳에 흑의인의 쓰러져 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그들이 쥐 죽은 듯 꼼짝 않고 쓰러져 있다는 점이었다.


‘저놈들을 확실히 죽여야 한다. 지금 당장······.’


언뜻 볼 때는 이미 절명(絶命)한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기절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내가 떨어지고 살아남았듯 그들도 아직 숨이 붙어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리가 부러진 나는 필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절벽 아래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떨어졌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은 천운(天運)이다.


하늘이 준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곧바로 흑의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엉금엉금 기어가야 했다.


‘크윽······. 다리가······.’


부러진 다리뼈가 어그러지며 엄청난 격통이 밀려들었다.


참아야 한다.


이를 악물어도 신음이 새어 나온다.


나는 뼛조각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을 꾹 눌러 참은 채 흑의인을 향해 기어간 다음, 그의 허리에 매달린 단검을 빼 들었다.


‘잘 가라.’


푸욱!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흑의인을 찔렀다.


푸욱! 푸욱!


뜨끈한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세 번을 찔러도 흑의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건 살아있는 인간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기에, 흑의인은 찌르기 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뜻이리라.


‘후······. 다행이다······.’


나는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슥 닦은 뒤, 다른 흑의인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조각난 뼛조각들이 살갗을 찢어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푸욱, 푸욱! 푸욱!


두 번째 흑의인도 첫 번째와 마찬가지였다. 칼로 거의 난도질을 한 지경이었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후아······.’


정신이 몽롱하다.


나는 지금 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틀림없이 흑의인들의 추적을 받아 죽을 게 분명했다.


‘마음을 굳게 먹자. 도망치지 못하면 죽는다.’


나는 일단 흑의인들의 사체에서 쓸만한 물품을 모조리 꺼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크으윽······!’


다리뼈가 부서져 지독한 고통이 몰려들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



나는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어느 동굴 앞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내 몸은 만신창이었다.


사흘 동안 먹거나 마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자꾸 깜빡 잠이 든다.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지 못할 것만 같다.


‘안 돼······. 이대로 잠들면 죽어······.’


가만히 앉아있으니 졸음이 더욱 쏟아진다. 차라리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태극심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붙잡고 곧바로 운기행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츠츠츳-


'······!‘


그러자 놀랍게도 고통이 천천히 잦아들고,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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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1) +1 21.10.17 956 16 11쪽
» 1화. 검은 옷의 무인 +1 21.10.16 1,274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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