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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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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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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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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글자수 :
9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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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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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여진곡(庐進谷) (3)

DUMMY

순간 객잔에 정적이 흐른다.


······


다음 순간, 탁자를 엎은 사내가 공손하게 포권을 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민하여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


이목구비가 훤칠한 사내였다.


몸에 걸친 의복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인다.


한눈에 봐도 명문가의 자제로 보이는 몸가짐과 말투.


나는 그의 격식 있는 사과를 듣고, 정신이 번쩍했다.


고작 만두 때문에 화를 낼 뻔하다니, 이 무슨 소인배 짓거리란 말인가.


만두야 다시 찌면 된다. 그러나 사람 간의 신의는 한 번 상하면 되돌릴 수가 없다.


‘고작 음식에 눈이 멀어 평정심을 잃다니······.’


나는 사내의 포권에 정중히 답례했다.


“괜찮소이다. 그럴 수도 있지요.”

“정말 송구합니다. 저 때문에······.”


사내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정말 괜찮소이다. 음식이야 어차피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니, 너무 염려 마시오.”

“······귀공이 허락하신다면 제가 음식값을 대신 계산하고자 하는데, 괜찮으실지요?”

“아니오, 괜찮소. 나도 음식 사 먹을 돈은 충분히 있소이다.”


그 후로도 사내는 한참 동안 음식값을 대겠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극구 사양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나중에 동문이 되어 호형호제(呼兄呼弟)할지도 모를 사내에게 벌써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실랑이한 끝에, 그는 돈을 내는 걸 포기하고 그의 친우들과 함께 객잔을 떠났다.


“그럼, 편안한 식사 되시길······.”


딸랑-


나는 객잔을 나가는 사내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건실한 젊은이들이로군.


······


꼬르륵-


‘만두를 다시 시켜야겠군.’


그때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점소이를 부르려던 찰 나, 별안간 밖에서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솔직히 말해 보시오. 일부러 엎은 거요?”

“크크···. 자식, 눈치가 빨라······. 웬 거지새끼가 걸리적거리잖느냐.”

“끅끅······. 웃음 참느라 혼났소.”

“빈티는 풀풀 풍기면서 같잖게 체면치레하기는······. 내 나름대로 배려하여 적선해 주려 했거늘.”

“그런 깊은 뜻은 몰랐소, 역시 형님이오. 하하하!”


사내들이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린다.


‘······’


뿌드득-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가슴 속에 무언가가 울컥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사내가 음식을 엎었다는 것 따위가 화가 나는 게 아니다.


허울 좋은 말로 남을 기만하고, 뒤에서 비웃음짓는 저 태도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다.


내가 만약 절정지경에 오르지 못해 귀가 트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저 양아치 같은 놈들을 평생 건실한 젊은이들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


이제 보니 그냥 우르르 몰려다니는 쓰레기들이다.


‘웃음거리가 되었군······.’


나는 탁자의 물을 한 컵 쭈욱 들이켰다.


물맛이 쓰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지.’


좋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다.


······묵사발을 만들어 주마.


스윽-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보시오. 주인장.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각났구려. 식사는 다음에 하겠소.”


동시에 나는 허리춤에서 은화 세 냥을 꺼낸 뒤, 두 냥은 식탁 위에 올려두고 한 냥은 점소이를 향해 던졌다.


점소이가 은화를 받아들고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소, 손님···. 음식값을 너무 많이 주셨는데요······.”

“······”


딸랑-


나는 그대로 객잔을 빠져나왔다.



---



저벅저벅-


아까 내 식탁을 엎은 놈은 나와 비슷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으므로, 나는 어렵지 않게 그놈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기운을 따라가자 골목길이 나왔고, 골목 으슥한 곳에서 아까 그 사내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이제 본색을 드러냈는지, 웬 여자 하나를 에워싸고 희롱하는 중이었다.


내가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가자, 수하로 보이는 놈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엥? 넌 아까 그 객잔의······. 으하하, 음식값 돌려받으러 왔소?”

“큭큭······. 우리 형님은 한 번 거절한 년놈들은 눈길도 안 주는데······. 아쉽게 됐군.”

“······”


예상대로 그들은 이죽거리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지만,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손바닥을 날렸다.


텅-!


그저 내공을 조금 실은 간단한 장법이었지만 그걸 맞은 사내는 가슴이 움푹 내려앉으며 피를 토하고 말았다.


“크아악······!!”

“······!”

“어, 어! 뭐야, 이게 대체······.”


양아치 무리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쾅!


이번엔 다른 놈에게 주먹을 갈겼다. 연약한 얼굴 뼈가 뭉그러지는 느낌이 들더니, 그놈은 일 장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

“이, 이새끼 뭐야! 씨, 씨발!!”


챙강!

채채챙!


이제 남은 놈은 넷.


놈들은 허리에 맨 장검을 빼 들고 나를 향해 겨눴지만, 나는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시시하다.


칼끝이 바들바들 떨린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주제에 그렇게 까불었단 말인가?


스으으-


나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다. 절반의 내공만 끌어올려도, 이놈들을 쳐 죽일 수 있으리라.


그때, 검을 들고 있는 어중이떠중이 사이로 그들의 ‘형님’이 소리쳤다.


“다들 그만-!”

“혀, 형님······.”

“그만둬라. 우리가 감히 대적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


쩔그렁-


‘형님’의 말에, 다른 사내들은 검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뒤이어 그 형님은 한쪽 무릎을 꿇더니, 아까보다 더욱 공손한 태도로 포권을 해왔다.


“다시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범상치 않은 분인 것은 느꼈지만, 이리도 고명한 무공을 지니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섬서성 주익현이라 하······”

“입 닥치거라.”

“······”


츠츠츳!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내공을 끌어올려 무형지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흐어억·····. 으윽······!”

“으으, 으아아······!”


사내들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아까 주 뭐시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놈은 간신히 무형지기에 저항하는 듯했지만, 나머지는 무공이 형편없는지 가슴을 부여잡는다.


‘흐압······!’


내공을 절반 이상 끌어올리자, 사내들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 때, 힘겹게 저항하던 주익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 잠깐! 잠깐 기다리시오. 하, 할 말이 있소!”

“······나는 너랑 할 말이 없다.”

“크윽······. 그만두시오. 이, 이러다 다 죽어!”


스으으-


그의 필사적인 외침이 들린다.


나는 무형지기를 거두었다. 골목 전체를 찍어누르던 중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죽기는 또 싫은 모양이군.”

“헉, 헉······. 왜 이러시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요!”

“이유라······.”


나는 주 뭐시기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말하지 않기로 했다.


네놈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으니 어쩌니 구구절절 말할 필요까진 없었으니까.


“말해 보시오! 고작 음식을 엎어서 이런 행패를 부리는 거요? 아까 대신 계산하겠다 하지 않았소. 말해 보시오!”

“······”


쾅!


나는 주 아무개의 말을 더 이상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냥 주먹을 갈겨버렸다. 인정사정없는 주먹질에 그는 얼굴이 피떡이 되어 뒤로 나동그라졌다.


“혀, 형님!”

“으, 으으······.”

“이 악적놈! 천벌이 두렵지 않느냐!”


이 새끼들이······.


구태여 대꾸할 필요를 못 느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뿐인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마치 내가 음식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을 두들겨 팬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는 잠깐 고민한 끝에,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음······. 내가 너희를 공격한 이유는······. 그래. 너희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아녀자를 희롱했기 때문이다.”

“그, 그건······.”

“그래도 네놈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더구나. 짐승도 부끄러운 줄 아는 법이거늘······.”

“······”


내 꾸짖음에, 나머지 셋은 입도 벙긋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즉석에서 만들어 낸 명분이긴 하지만, 지들도 지은 죄가 있으니 도무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


바들바들 떨고 있는 쓰레기들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의 복수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런 쓰레기들과 더이상 어울리고 싶지가 않다.


“내 너희를 찢어 죽여버리고 싶지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너희 대장 격인 이놈만 처리하고 끝내겠다. 내 생각이 어떠냐?”

“······”

“······”


좋다.


힘의 차이는 충분히 보여줬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살생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꺼낸 말이었다.


저들이 우두머리를 위해 희생하려 한다면, 못 이기는 척 물러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나서는 자가 없다.


아까 기세등등하던 사내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눈치만 보며 서로의 눈을 피한다.


‘······’


쥐새끼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저 주익현이라는 놈은 자기 부하들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목숨을 걸고 내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이 꼴 사나운 광경은 무엇이란 말인가?


형님으로 모시는 사내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했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보호하려는 자가 없다. 심지어 대장을 팔아 목숨을 보전하라는 말에 눈치만 본다.


‘짐승도 제 주인을 지키는 법이거늘······.’


저벅저벅


나는 눈치 보던 사내에게 다가가, 그의 팔목을 부러뜨렸다.


우드득-!


“끄아아악······!”



---



나는 주익현을 제외한 다른 놈들의 팔목을 모두 하나씩 부러뜨렸다.


억울할 만도 했으나, 그들 중 누구도 감히 반항하는 자는 없었다.


‘한심한 놈들······. 후우, 그나저나 생각지도 못한 일에 휘말려 버렸군.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좀 더 침착하게 대처했어야 했을까?


병신이 되어 널브러진 놈들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후회가 밀려온다.


‘······이제 돌아가자.’


저 주익현이란 놈은 단지 기절했을 뿐이니, 어떻게든 부하들을 수습해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면포로 얼굴의 피를 슥 닦고,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아까 그 객잔으로 돌아가 음식을 먹어볼까도 싶었지만, 도저히 무언가 먹거나 마실만 한 기분이 아니었다.


‘······’


복수는 짜릿했다. 나를 비웃던 놈들을 흠씬 두들겨 패 줄 때는 정말 강렬한 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다 끝내고 나니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온다.


‘······’


후우······.


‘복수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군.’


나는 잠시 감상에 빠졌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저기 쓰러진 사내들은 수 개월 동안, 아니면 영영 손을 못 쓸 수도 있다.


그리고 나를 평생 원망하며 살아가리라.


나는 복수의 끝은 씁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침음을 흘렸다.


‘어쩔 수 없지. 이미 벌어진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자.’


나는 마음 정리를 마친뒤, 발걸음을 옮겼다.


스윽-


발걸음을 돌려 골목길을 빠져나오려는데, 별안간 한 여인이 말을 걸어온다.


자세히 보니 아까 희롱당할 뻔한 그 여인이다.


“감사해요···.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음······. 별거 아니오. 그럼 이만.”

“어머! 여기 피 좀 봐.”


팔뚝에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나는 약간 당황하여 그녀의 손길을 뿌리쳤다.


“으음, 나는 괜찮소이다. 그보다 많이 놀랐을 텐데, 어서 들어가시오.”

“괜찮긴요···. 이렇게 많이 다치셨는데······.”


고개를 돌리니 처자가 근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희고 깨끗한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안 되겠어요. 당장 치료를······.”

“난 멀쩡하오. 정말이오.”

“······”


그녀가 말없이 내 팔뚝을 꼬옥 쥐었다.


‘미치겠군······.’


도무지 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견디기 힘들다.


결국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급하게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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