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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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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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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84
추천수 :
187
글자수 :
97,151

작성
21.10.1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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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2)

DUMMY

지글지글-


장작불에 노루 한 마리가 노릇하게 익어간다.


꼴깍


나는 군침을 삼켰다. 오랜만에 먹을 만한 산짐승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장작불에서 은근하게 구워지는 향기가 일품이었다.


‘음······.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게 참 맛있어 보이는군······.’


태극심법(太極心法)을 익힌 뒤로는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식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먹지 않아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 보니 끼니를 따로 챙겨 먹지 않게 되고,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쌓여 식욕이 폭발하곤 했다.


입이 근질거리던 찰나에 때맞추어 나타난 노루 한 마리.


나는 그동안 운기행공으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노루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눈에 띄게 몸이 가벼워졌다.’


보통의 사람들은 달리는 산짐승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인간과 비교하면 짐승 쪽이 속도라든가 순간 가속력이 월등히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루 같은 네발짐승을 잡으려면 여러 명이 둘러싸 포위하거나, 활 같은 무기로 멀리서 노리는 게 일반적인 사냥법이었다.


물론 무공을 배운 사람들은 예외였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벌써 산짐승을 따라잡을 정도로 빨라졌으니 말이다.


치이이익-


나는 노르스름하게 익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다리를 턱 하니 집고 입으로 가져갔다.


---


노루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나는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후우······.’


수련을 앞둔 내 마음이 무겁다.


츠츠츳-


나는 일단 대주천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단전에서 솟아오른 내공이 신체 기경팔맥을 따라 움직이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주요 경맥을 무언가가 막고 있다.


내공이 일정하게 흐르지 않고 툭툭 튀는 현상이 느껴지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나는 몇 주 동안 해결방법을 고뇌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내가 가진 밑천이라고는 얇은 기본서인 태극기서(太極奇書) 하나뿐이었으므로, 애초에 무공 수련이 순탄하게만 흘러갈 거라는 게 그릇된 생각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주위에 스승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고, 주워들은 지식이라도 많으면 이것저것 무공서를 뒤적거리며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같이 무공을 수련하는 동료라도 있으면 좋겠다.


‘조언이라도 구할 겸 말이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열심히 삽질하는 기분. 지금 내 신세가 그리하였다.


‘······산에서 내려갈 때가 된 걸까?’


집과 마을을 떠나 산에 눌러앉아 산 지 언 반년이 지났다.


엉겁결에 시작한 산골 생활이지만 맑은 공기도 덕인지 수련이 잘 되었기에 불만은 전혀 없었다.


마교에 복수하는 것을 내 삶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상, 안락한 잠자리보다는 무력(武力)을 쌓는 게 내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산골에 처박혀 있는 게 정답일까?’


물론 내가 이곳에 꼭 눌러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산에서 떠나기 주저하는 이유는 왠지 도망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를 상대로 복수하려면 얼마나 강해져야 할까?


아마 천하제일(天下第一)의 고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마교에 맞설 수 있을 만한 거대한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


나는 마교를 상대하는 길이 엄청난 난도(難度)임을 깨닫고 침음을 흘렸다.

이대로 산에서 내려가도 아무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내려가지 않았다고 미련퉁이 취급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


하지만 나는, 진정한 강함은 역경에 부딪혔을 때 나타난다고 믿는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남의 손을 빌려서 해결하려는 나약한 마음가짐으로는 인생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짧은 마음 정리가 끝나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멀고 험한 길을 갈 때 목적지에 너무 사로잡혀 괜한 압박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난관에 봉착했다고 해서 주저앉아버리거나 쓸데없는 자기혐오(自己嫌惡)에 빠져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장애물은 뛰어넘으면 그만이다. 뛰어넘을 수 없다면 돌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일단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그래······. 태극기서(太極奇書)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뭔가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몰라.’


촤르륵-


나는 움집 한켠에 고이 보관해 둔 태극기서를 꺼내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음······? 이런 게 있었나?’


책의 맨 뒷장에 새하얀 백지(白紙)가 생긴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렇게 색깔이 독특하다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보통 무공서는 닥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종이로 엮기 마련이다. 나무를 잘게 잘라 삶고 물을 먹이는 과정에서 종이는 자연적으로 누런빛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몇몇 특수한 약물을 섞으면 흰 백색을 띤다고도 했지만, 이 백지는 그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종이가 어떻게 밀가루나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얗단 말인가?


‘음······.’


참 묘한 일이군.


나는 무심결에 백지에 손을 갖다 댔고, 다음 순간 정말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


백지(白紙)에서 눈부신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크윽······!”


눈이 멀 듯한 섬광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츠즈즈-


‘······!!’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눈부신 광채는 점점 잦아들었지만, 별안간 무형의 기(氣)가 태극기서에서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내 단전으로 쑥 들어오고 말았다.


······


······?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단숨에 몇 갑자나 되는 내공이 상승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눈 부신 빛이 점차 잦아들더니 이내 사라졌고, 백지가 있던 자리에는 누리끼리한 평범한 장(章)이 있을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나는 새로 생긴 장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태극을 배우는 자들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수련에 정진하여 다음 세 가지 경지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첫째 경지는 음(陰)과 양(陽)의 기운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다루는 것을 넘어, 음양의 기운을 느끼는 경지다.

이를 위해서는 음양의 기운을 노련하게 다루는 것을 넘어서서 기(氣)를 감(感)해야 한다.

첫째 경지에 이른 자는 무형의 기를 음과 양으로 분리해, 손 위에 구 형태의 태극을 만들 수 있으리라.]


[둘째 경지는 음(陰)과 양(陽)의 기운에 얽매이지 않고 음을 양으로, 양을 음으로 환(換)하는 경지다.

이를 위해서는 기(氣)를 감(感) 하는 것을 넘어 음양(陰陽)이 곧 합일(合一)이요, 여(如)임을 오(悟)해야 한다.

둘째 경지에 이른 자는 음양을 무한히 회(回)할 수 있으리라.]


[셋째 경지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음양(陰陽)으로 해(解)하는 경지다. 즉 견(見)하되 견(見)하지 아니하고, 청(聽)하되 청(聽)하지 아니하며, 통(通)하되 통(通)하지 아니해야 한다.

셋째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일(第一)의 태극(太極)을 만들 수 있으리라.]


······


‘아니······. 씨발 이건 너무하잖아.’


구구절절 쓰인 뜬구름 잡는 소리를 보며 나는 순간 욕지기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뿐더러, 무공서에 무슨 내용이 써있는 건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냥 뭐라고 씨부려져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신기하긴 한데······.’


세상에 신기한 일이 어디 한둘인가?


어차피 이해할 수도 없는 일.


나는 그냥 서책에 주술이라도 걸려 있었는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


다음 날.


나는 아주 신비한 경험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자마자 계곡에서 몸을 씻고, 동굴로 돌아와 공력 수련을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이건 또 뭐야······.’


다른 게 아니라 내 주위에 희끄무레한 빛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느껴졌다.


어제 단전에 쑥 하고 들어온 기(氣) 덩어리가 사실은 헛것이 보이는 주술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곧 ‘그것’들이 주술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었다.


공중을 둥둥 떠다니거나 동굴 벽에 붙어있던 ‘그것’들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와 몸으로 쑥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츠츠즛-


‘······!’


태극심법(太極心法)을 전개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들이 느껴지고, 내 몸으로 흡수되다니!


그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게다가 태극심법을 펼치며 ‘그것’들을 흡수할 때면 희한하게도 몸의 내공이 한 겹씩 쌓이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반나절 운기행공을 했을 뿐인데 효과가 엄청났다. 지난 칠 주야동안 내력을 훈련하며 쌓은 내공보다 오늘 반나절 동안 쌓은 내공이 더 높을 정도이니 말을 더해 무엇하겠는가.




일 년이 더 지났다.


나는 그동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내공을 꾸준히 쌓았다. 동굴 벽이나 거대한 대송(大松)에 붙어있는 희끄무레한 ‘그것’의 정체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자연의 정기(精氣)였다.


나는 대자연의 정기를 직접 흡수하여 내공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일수록 대자연의 정기가 풍부하구나······.’


대자연의 정기는 산천초목(山川草木)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가 있었다. 다만 오랫동안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에서는 그 정기가 더욱 응축되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동굴, 높고 가파른 깎아지른 절벽 등에는 정기가 농축되어 있었는데, 그 기력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는 나로서는 매일 절세 영약을 퍼마신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동굴에서 지낼 필요가 없겠어.’


나는 동굴과 움막을 버리고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산을 유랑하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정기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생겨나기 때문에, 한곳에 오래 있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으음······. 이제 여기는 다 빨아먹었군.’


나는 마치 배고픈 메뚜기떼처럼 산과 계곡을 휩쓸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구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에는 어김없이 대자연의 정기가 밀집되어 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빼어난 산수를 관람하다가,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대자연의 정기를 빼먹었다.


물론 그럴수록 내공은 쑥쑥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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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6화. 낙양으로 가는 길 (1) 21.11.01 37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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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4화. 여진곡(庐進谷) (2) 21.10.22 701 12 12쪽
6 4화. 여진곡(庐進谷) (1) 21.10.21 770 14 11쪽
5 3화. 절정에 이르다 (2) 21.10.20 786 12 11쪽
4 3화. 절정에 이르다 (1) +1 21.10.19 820 13 11쪽
»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2) +1 21.10.18 864 13 11쪽
2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1) +1 21.10.17 956 16 11쪽
1 1화. 검은 옷의 무인 +1 21.10.16 1,275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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