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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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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1,576
추천수 :
187
글자수 :
97,151

작성
21.10.21 23:00
조회
769
추천
14
글자
11쪽

4화. 여진곡(庐進谷) (1)

DUMMY

서쪽으로 얼마간 걸어가자, 한 건물이 보였다.


‘음······. 여기로군.’


사내가 안내한 대로 걸어가니, 한약방이 나왔던 것이다.


한약방 근처에서는 뭔가 쌉쌀하고 쿰쿰한 냄새가 풍겨 나왔는데, 아마 온갖 약초와 탕약에서 우러나온 향내가 건물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한약방 바깥 한 켠에 더덕과 도라지를 가지런히 말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드르륵-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쪼그려 앉아서 탕약을 달이고 있는 한약방 주인이 보인다.


그가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잘 오셨소! 무엇을 찾······으시오?”


싱글거리던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진다.


‘음······. 알만하군······.’


나는 침음을 흘렸다,


약방 주인이 갑자기 말을 더듬은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완전 거지꼴이다.


약방 주인의 단정한 옷차림에 비하면 내가 입고 있는 건 거의 넝마로 보일 정도였다.


2년 동안 산골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옷 한 벌 갈아입지 않았던 것이다.


‘······’


찢어지고 해진 옷이 팔랑거린다.


머리카락이며 수염도 따로 신경 쓰지 않았기에 무성하게 엉켜 있다.


한약방 주인으로서는 웬 거지가 기어들어 왔나 싶었으리라.


‘음······. 여기서 나가면 포목점이라도 들러야겠구먼······.’


불행 중 다행으로 아까 계곡물에 씻은 게 다행이었다. 거지꼴로 썩은 내까지 풀풀 풍겼다면 약방 주인이 질겁을 하며 쫓아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약간 머쓱했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꺼냈다.


“크흠흠. 이보시오, 주인 양반. 여기가 한약방 맞소?”

“······예. 그렇소만.”


약방 주인은 냉랭하게 말한 뒤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음. 내가 잘 찾아왔나 보군. 내가 산골에서 오래 살아 행색은 추레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구걸하러 온 건 아니니 안심하시오.”

“······예. 헌데 무슨 일 이신 지······?”

“내가 약초를 캐는 취미가 있소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소중히 모은 것들이오. 그걸 좀 팔고 싶소이다.”


그는 내가 못 미더운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대꾸했다.


“······약초를 팔고싶단 말이오?”

“그렇소. 내가 틈틈이 캔 산삼(山蔘)을 좀 팔고자 하오.”


산삼!


본초학(本草學)에서 최고로 치는 약재 중 하나.


옛말에 산삼은 하늘이 내려준다고 했다.


나는 수십 뿌리나 되는 산삼을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으며 놀래 자빠질 지 궁금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 칠 뿐이었다.


“······하! 산삼이라!”


숫제 미친놈 보겠다는 표정!


“장난은 사절이오. 지금은 농담할 기분이 아니니, 그냥 돌아가 주시오.”

“······”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갑자기 웬 거지꼴의 부랑자가 나타나서 산삼을 판다고 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무리 더 설명을 해 봤자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일단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스윽-


나는 등허리에 메고 있던 망태기에서 약초 꾸러미 하나를 꺼내 약방 주인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뭐요?”

“나는 장난 따윈 하지 않소. 아까 약초를 캐왔다고 하지 않았소. 눈으로 직접 보시오.”


그는 싱싱한 이끼로 포장해 둔 꾸러미를 받아들고는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길래······.”


스윽-


“아, 아니······. 이건!”


산삼 수십 뿌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비록 거대한 산삼은 한 뿌리도 없었고, 모두 자잘한 크기였지만 그래도 산삼은 산삼인 법.


약방 주인은 대번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을 더듬었다.


“이, 이럴 수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어떻게 산삼을 수십 뿌리나······.”


나는 마음 속으로 슬쩍 미소지었다.


물론 나는 산삼을 찾는 요령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웬만한 심마니보다도 산삼을 더 잘 찾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대자연의 정기가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곳에는 산삼뿐만 아니라 굵은 하수오나 삼백초 같은 귀한 약초가 심심치 않게 자생(自生)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2년동안 대자연의 정기도 흡수하고, 겸사겸사 진귀한 여러 약재들도 무한정 맛보고 즐겼던 것이다.


대자연의 정기를 흡수하면서 늘어나는 내공이 워낙 많았기에 잘 체감은 안 됐지만, 그래도 몸에 좋다니 열심히 캐먹었다.


특히 산삼이나 하수오는 부지런히 캐 먹었는데, 언젠가는 이백 년 된 산삼을 먹고 내공이 급격히 늘어나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귀하고 좋은 약초는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우고, 먹기 애매한 자잘한 놈 위주로 한두 개씩 모은 개 이 정도!


당연한 말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아무리 작아도 산삼은 산삼이다. 지금 한약방 주인도 깜짝 놀라 눈만 껌뻑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약방 주인에게 말했다.


“여산을 잘 뒤져보시오. 천지에 널려있는 게 산삼이오.”

“그럴 리가······ 평생 산을 뒤져도 산삼은 찾기 어려운 법이거늘······.”


약방 주인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아니··· 이건 말도 안 돼······. 도대체······”


급기야는 산삼에 손을 뻗는다.


“어허···! 어딜!”


탁-!


나는 함부로 삼에 손을 대려는 약방 주인의 손을 쳐냈다.


“으윽···, 무슨 힘이······.”


내공도 담지 않은 가벼운 손사래였지만, 그는 신음을 흘리며 손등을 부여잡았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려고 했던 것이 괘씸하게 느껴진다.


‘장난 좀 쳐볼까?’


음······.


‘에라, 모르겠다.’


“내 목숨을 걸고 채취한 산삼이오.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오!”

“으, 으으······.”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실뿌리 하나라도 상한다면, 내 결코 좌시하지 않겠소!”


츠츠츳-


나는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려 무형지기(無形之氣)를 내뿜기 시작했다.


“흐.. 흐어억!! 끄.. 끄아아······.”


내력을 약간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약방 주인은 숨을 쉬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크,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스으으-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전개되자 얼른 무형지기를 거두었다. 그러자 사방을 압박하던 사나운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약방 주인이 참았던 호흡을 토해낸다.


“헉, 허억······.”

“흠흠. 내가 너무 과했나 보군. 어쨌든 앞으로 조심해 주시오.”

“헉, 허억···. 소, 송구하오······. 내가 무례를 저질렀구려······.”


---


“열셋···. 열넷···.”


약방 주인이 산삼을 일일이 세고 있다.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음, 총 스물한 뿌리군. 정확히 맞소이다.”

“음······. 그렇군.”


그냥 재미 삼아 시켜본 일이다. 사실 스물한 뿌리인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이 산삼을 전부 파는 거요?”

“왜 그러시오? 사기 싫소? 싫으면 마시오. 그냥 다 먹어버리면 그만이니.”

“허허···. 농담도 참······.”

“······”


약방 주인은 뭐가 웃긴지 혼자 낄낄거렸다.


“산삼(山蔘)은 본래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인데 싫을 리가 있겠소이까.”

“으음······.”

“다만 제가 지금 가진 돈을 다 털어도 열 뿌리밖에 살 수가 없소이다.”

“그렇군·····.”


열 뿌리?


열 뿌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김이 팍 새면서 만사가 귀찮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많은 돈이 필요 없다. 그저 태극문까지 갈 여비나 조금 필요할 뿐이다.


‘진짜 확 다 먹어버릴까?’


그때 약방 주인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조, 조금만 기다리면 의원과 다른 약방 곳곳에서 대금(代金)이 들어올 거요. 그럼 다섯 뿌리 정도는 더···.”

“나는 그렇게 한가한 몸이 아니오.”


나는 지금 할 일이 태산이다. 겨우 약초값이나 몇 푼 더 받자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약방 주인이 크게 낙심한 듯 고개를 숙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하루라도 더 빨리 강해지는 것!



---



스윽-


일단 팔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팔겠다는 내 말에, 약방 주인은 이끼 꾸러미에서 조심스레 산삼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 잔뿌리 하나 다치지 않게 다루는군.“


과연 감탄할 만한 솜씨였다. 약방 주인은 오랜 시간 한약방을 운영해온 덕에 약초 다루는 요령만큼은 능란했던 것이다.


“후······. 열 뿌리 다 옮겼소이다.”

“좋소. 산삼 열 뿌리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 거요?”

“가만 보자······. 음······.”


그는 가지런히 놓인 산삼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허리를 숙여 뭔가를 주섬주섬 찾았다.


스윽-


이윽고 그는 불룩한 전낭 두 개를 스윽 내려놓았다.


전낭 안에는 은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산삼 열 뿌리니 이 정도면 값을 치르고도 남을 것이오.”

“······”


나는 태생이 산골 마을 출신이었기에, 산삼의 값어치를 대략 알고 있다.


은자가 가득 든 전낭 두 개.


이 정도면 산삼값은 충분했다. 약방 주인은 양심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딱 맞는군. 고맙소이다.”


이만하면 여비는 넉넉하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나는 두 개의 전낭을 잘 동여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별안간 약방 주인이 덥석 내 손을 잡는다.


“자, 잠깐! 부, 부탁이 있소······.”

“부탁이라니?”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상림(桑林)촌이 있소이다.”

“······”

“무례한 부탁인 건 알고 있소. 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간청하오. 상림촌에 산삼을 팔아주시면 안 되겠소이까?”

“······아까 내 말을 듣긴 한 거요?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사실 요즘 여산에 귀한 약재의 씨가 말랐소이다······. 산삼이나 하수오 같은 약초를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 막막하단 말이오······.”

“······”

“이렇게 애원하오. 약방과 의원에 약재가 없어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소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처절함이 묻어 있어서, 야박하게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상림촌에는 나와 친형제나 다름없는 친우가 살고 있소. 설백이란 놈이오. 그놈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약재술을 갖고 있소이다······. 분명 약재 품귀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오.”

“······”

“내, 내가 꼭 비싼 값을 맞춰주라는 서신을 써 주겠소. 부탁하오······.”


‘고민되는군······.’


냉정하게 말해서 약방 주인의 사정은 내 알바가 아니다.


상림촌에 누가 앓든 말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 냉정하게 뿌리치고 나온다면 왠지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흠······. 어떡하지?’


약방 주인의 말대로 상림촌이라는 곳이 그렇게 멀지만 않다면, 그곳에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가만 보자. 여산에 약재 씨가 말랐다는 게, 내가 약초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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