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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날로먹는 무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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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당
작품등록일 :
2021.10.16 21:59
최근연재일 :
2021.11.08 23:0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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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80
추천수 :
187
글자수 :
97,151

작성
21.10.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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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5화. 상림촌(桑林村) (4)

DUMMY

“흑파천(黑破天)이 무서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요.”

“두 가지?”

“첫째는 전반적인 무력 수위가 말도 안 되게 높다는 것이오. 이건 비단 흑파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도팔문(魔道八門)의 그 어떤 단체를 대입해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오.”

“그렇겠지······.”


사실이다.


마도팔문은 사파의 대표 격인 단체로, 그 집단 하나하나가 웬만한 대문파의 전투력을 상회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초 거대 문파가 아니라면, 단일 집단으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는 상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한 개인이 마도팔문의 한 축과 맞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무리 절정고수의 내공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결된 힘을 가진 단체와 맞선다는 건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


설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그들과 맞서선 안 되오. 그대가 초절정 고수 정도나 되면 모를까.”

“그럼 그 때까지 도망다니란 소리요? 그럴 순 없잖소.”

“끝까지 들어 보시오. 이제부터가 중요하니까. 먼저 그대가 어느 문파 소속인지 알려주시오. 얼핏 보니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던데, 어디 문파 소속이오?”

“······”

“말해 보시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대형 문파가 아니어도 좋소. 어차피 그럴 거라고 기대도 안 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랬다면 애초에 고민도 안했겠지.”

“나는 소속된 문파가 없소. 독학으로 수련했소이다.”


순간 설백의 얼굴에 불신의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거짓말할 때가 아니오. 그대의 내공이 족히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데 문파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소.”

“진짜요. 나는 소속된 문파가 없소. 산속에서 2년 동안 혼자서 수련한 게 전부요.”

“······”


설백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연히 내가 어떤 문파에 소속돼있고 그곳에서 무예를 단련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계획이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는 걸 깨닫고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아니······. 문파가 없고 혼자서 수련했다는 게 말이 되오? 하다못해 동굴에서 만난 은거 기인이라든가 하는 것도 없소?”

“난 여태껏 아버지가 선물해준 무공서 하나로 혼자서 수련해왔소. 정말이오.”

“이런, 제기랄······”


설백은 입을 꾹 닫고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건 그가 머리를 굴릴 때 나오는 버릇인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싸매고 있는 설백에게 첨언했다.


“안 그래도 더 높은 무학(武學)을 탐구하기 위해서 태극문이라는 문파를 찾아가고 있었소.”

“태극문이라면······. 낙양 근처에 있는 문파를 말하는 건가?”

“사실 태극문이 어딨는지 나는 잘 모르오. 그럼에도 태극문을 찾아가려는 이유는 내가 지금껏 태극기서(太極奇書)라는 무공서로 수련해왔기 때문이오. 어쨌든 마음 속으로는 내가 태극문 소속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가려는 거요.”

“으음······. 그렇군. 아직 태극문 소속은 아니나, 태극문의 제자나 마찬가지라는 말이군.”

“그렇소이다.”


설백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군. 그대는 반드시 태극문에 입문해야 하오. 그것도 흑파천이 그대를 찾아내기 전까지 말이오.”


설백은 명쾌한 듯 말했지만 나는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는 지금 절정에 이른 내공을 갖고 있으므로, 사실 어느 마음만 먹으면 적당한 문파를 골라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무림은 강자존(强者尊)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정고수씩이나 되는 내공을 가진 나를 못 본 체 할 리 없다.


또한 나는 태극기서로 기초를 제대로 닦아 놓았기 때문에, 태극문에서만큼은 나를 받아 줄 확률이 높았다.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않더라도, 내쫓지는 않을 거라는 소리다.


하지만 내가 사파의 고수들을 추살하고 도망치는 신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태극문에 도착해 운 좋게 입문하고 같은 문파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결코 그들의 식구는 될 수가 없다.


그들과 지낸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 나는 엊그제 막 들어온 신입이기 때문에, 같은 식구라기보다는 잠시 몸을 의탁하는 빈객(賓客)처럼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흑파천의 초고수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나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지만, 네가 알아서 하라며 수수방관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하물며 더 심하면 나 몰라라 하며 나를 던져버리고 자신들의 세력을 온존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설백의 계책에 심각한 맹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말이오. 내가 태극문에 입문한다고 해서 그들이 내 목숨을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지 않소? 어떻게 보면 외인(外人)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지켜야 할 이유는 없지 않소이까. 멸문당할 위기를 감수하고서 말이지.”


그러자 설백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었다.


“잘 알고 있군. 정파(正派)라는 탈을 뒤집어쓴 무리는 결코 정의롭거나 한 인간들이 아니오. 게다가 그대는 사실상 생판 남이나 다름없으니, 일말의 인정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오.”

“그럼 왜 태극문에 입문하라는 거요?”

“하하······. 그게 이 계책의 핵심이지.”


설백은 그 말을 남기고 어디선가 물을 떠왔다.


그가 잔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낙양 시내에 소문을 퍼트릴 거요. 마도팔문에 속한 어느 사파의 무리가 지독한 원한을 가진 채 어느 중소 문파를 멸문(滅門)시키고자 칼을 갈고 있다는 소문을 말이오.”

“소문이라니?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나는 반문했다, 그러자 설백은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낙양과 그 근처에 있는 문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함이오. 사람들은 의외로 불확실한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오. 그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뜬소문이라도 마찬가지요.”

“호오·····.· 두려움이라.”

“사람들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더 잘 기억하오. 더구나 생명이 걸린 일이라면, 슬쩍 운만 띄워 놓더라도 알아서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 분명하오. 그만큼 마도팔문이 극악무도한 놈들이라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설백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자, 낙양 시내 곳곳에 사파가 곧 쳐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오.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소이까?”


나는 설백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음······. 아마도 소문이 사실인지 알아볼 것 같소이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옳거니! 바로 그거요. 사람들은 소문이 사실인지, 누가 사파의 원한을 샀는지 이 잡듯 뒤질 게 분명하오. 그다음에는 각자 과거의 은원(恩怨)을 살펴보며 사파와 척을 질 만한 행동을 한 게 있는지 고뇌하겠지.”

“······!”


나는 그제야 설백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헛소문을 퍼트린거지만, 사람들은 흑파천의 침공을 대비 할 수 밖에 없을거요. 그럴 수밖에 없소. 이권을 놓고 서로 투닥거리는 사이 우리가 모르는 온갖 일들이 벌어졌을테고, 은원은 이미 산더미처럼 불어났을 테니 말이오. 뒤가 켕기는 몇몇 문파 장문인들은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지경이겠지.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다 온 거요.”

“다시 말해 소문을 퍼트림으로써 남들에게 흑파천을 견제하도록 하자는 말이군,”

“하하. 맞소이다. 상황이 거기까지만 흘러간다면, 십중팔구 무림맹이 움직일 거요. 뭐 각 문파 장문인들끼리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겠지. 결국에는 둥그런 탁자에서 사파의 습격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결의로 끝나겠지만 말이오.”

“오오······.”


실로 설백의 계책은 엄청난 것이었다.


도저히 활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림맹까지 끌어들일 묘안을 생각해 내다니!


물론 아직 계획일 뿐이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웠던 건, 낙양 시내에 사파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어떻게 퍼트리는지였다.


내가 설백에게 그 부분을 지적하자, 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시장기가 돌았다. 서로 배고픈 눈치였기에 남은 이야기는 근처 요릿집에서 마저 하기로 했다.


밥먹으러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설백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다.


“하하, 그러고 보니, 그대의 이름도 아직 모르고 있었군. 이름이 어찌 되오?”

“나는 장건(張健)이라 하오.”

“음. 좋은 이름이군······.”


요릿집에 도착한 나와 설백은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우리는 볶음국수와 만두를 시킨 다음, 술을 한 잔 할까 고민했다.


“혹시 술 좋아하시오? 죽엽청이라도 한 잔 드시오. 내가 사겠소.”

“아니오. 나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술을 즐기지 않는 건 피차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따로 주문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고, 설백은 질질 흘리며 열심히 먹어댔다.


그가 흘린 부스러기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설백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


“뭘 보시오? 국수 안 먹소? 안 먹을 거면 주시오. 내가 먹을 테니······.”

“먹을 거요. 탐내기는······.”

“쩝······.”


음식을 얼추 다 먹어가자 설백이 슬쩍 말을 꺼냈다.


“장건. 독에 중독됐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말해보시오.”

“음······. 아주 괴로웠소.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웠소.”

“맞소. 그게 신경독의 특징이오. 문제는 적이 독으로 공격해오면 대처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오. 그대도 맹독을 묻힌 암기에 죽을 뻔하지 않았소이까?”

“그랬었지.”


아직도 그 때 생각만하면 지금도 눈 앞이 캄캄하다.


“그놈들은 암기를 다루는데 상당히 능숙해 보였소. 대부분 피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지금쯤 죽었을거요."


내가 한숨을 내쉬자, 설백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이제는 그런 일이 다시는 없을거요. 내가 그대를 만독불침(萬毒不侵)으로 만들어 줄 테니 말이오.”

“······!”


만독불침.


세상 어느 독에도 침범당하지 않는다는 전설의 경지.


고절한 무공을 가진 초고수들이 간혹 그 경지에 올랐다는 소문은 가끔 듣곤 했으나, 실제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설백은 씨익 웃었다.


“나를 믿으시오. 내가 괜히 중원 최고의 명의겠소?”



***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의원으로 돌아왔다.


설백은 탕전실을 보여준다며 나를 어디론가 끌고갔다.


탕전실에는 수십 개의 서랍이 달린 약장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서랍에 저마다 약재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같은 약재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설백이 짐짓 자랑하듯 말했다.


“이곳에는 천 종류가 넘는 약재들이 있소. 지금부터 약재를 조합하여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맹독을 만들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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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산중낙원(山中樂園) (1) +1 21.10.17 956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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