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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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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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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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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9.0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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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3

DUMMY

2부. 마이 스위트 홈


이른 아침 행복 2단지의 240동 아파트. 사다리차가 아파트 앞에 멈춰서 있었다.

"여기, 여기. 아니 좀 더 올려!"

이삿짐센터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저마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애는 들뜬 기분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드디어 해냈어. 드디어 해냈다고."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겨우 삼년 만에 내 집을 마련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수애와 남편 진호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 뿌듯했다. 무려 20평이나 되는 집이었다. 추운 겨울날 보일러에 드는 기름을 아끼려고 두꺼운 옷을 입고 버티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막 문이 닫히려는 찰나, 저 멀리서 단발머리의 소녀가 달려왔다.

"잠깐만요."

소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수애는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다. 아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고맙습니다."

소녀는 수애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수애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아이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서 있었다.

"행복중학교 다니니?"

"아, 네."

아이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여전히 아이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3학년이에요."

"그래? 곧 졸업하겠구나."

"네."

아이는 중학생답지 않게 앳된 얼굴이었다. 수애는 아이를 살펴보았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며 동그란 얼굴, 검은색 배낭, 노란 메니큐어를 칠한 새끼손가락이 보인다. 아이, 아이라. 수애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드리워졌다. 결혼하기 전 수애와 진호는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었다. 그게 벌써 삼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시댁과 친정에서는 언제 아이를 가질 것인지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수애는 이런저런 변명을 해야만 했다. 진호 씨가 직장에 자리 잡을 때 가지려고요, 요새 그이가 많이 피곤해요, 네 곧 가질 거예요.

어느새 시댁에서는 수애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혹시 며느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이 오가는 것 같았다. 친정에서도 넌지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애와 진호가 결혼했을 때 두 사람다 서른을 넘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진호와 수애모두 형제 중 맏이였다. 부모들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보일러 값을 아끼려고 영하에도 틀지 않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곧 아이가 생길 것이다. 부모들의 걱정도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수애는 진호 몰래 장롱에 넣어둔 종이상자를 떠올렸다. 상자 안에는 고무젖꼭지며, 우유병, 기저귀 등의 육아 용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언제고 쓰려고 수애가 사둔 것이었다. 집을 가지는 것 때문에 잠시 미뤘지만, 꼭 아이를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분이시네요?"

아이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수애는 빙그레 웃었다.

"응. 오늘 이사 왔거든."

"그래요? 몇 층이신데요?"

"15층."

"어, 저도 거기 살아요."

"어머, 그럼 자주 보겠구나."

때앵.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도착했다. 행복동 2단지의 아파트는 복도식아파트로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복도가 있었다. 아이는 왼쪽복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애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505호. 수애는 명패 옆에 달린 번호표를 바라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현관문을 열자, 이삿짐센터직원들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운 바닥이 보였다. 그것조차도 수애에게는 기분 좋게 여겨졌다.

"사모님, 이 소파는 어디에다 둘까요?

직원하나가 수애에게 다가와 물었다. 수애는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다 놓아주세요. 그리고 텔레비전은 저기 탁자위에다 올려놓아주세요."

수애는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수애는 다시 한 번 흐뭇한 표정으로 거실과 안방을 둘러보았다. 작은방은 한동안 비어있을 테지만 곧 쓸 일이 생길 것이다.

이사는 저녁 8시가 다되어서야 끝났다. 수애는 직원들에게 저녁식사로 자장면을 배달해주었다.

사실 이 집을 사려고 했었던 건 아니었다. 수애는 남편의 발령으로 전 세집을 내놓고 다른 전세를 얻으려고 부동산을 찾았다가 우연히 급매물로 나온 이집을 발견했던 것이다. 당시 부동산중개업자는 매우 싼 가격에 이집을 추천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집값이 싼 거예요?"

보통 20평짜리 아파트 가격에 비해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헐값이었다. 겨우 1억 2천만 원이라니. 다른 곳은 몰라도 수애가 살던 지역에서는 보통 2억이상은 넘었던 것이다. 수애의 질문에 부동산 중개업자는 불편한 웃음을 지으면서 두 손을 마주 비볐다.

"사실, 그게 그 지역에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요. 하지만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그다지 아는 사람도 없어요."

"무슨 소문인데요?"

부동산중개업자의 콧등에 걸쳐 쓴 안경테가 차갑게 빛났다.

"한때 그곳에서 여고생들이 자살을 한 사건이 있어서요. 신문에도 나고 그랬죠. 그렇지만 벌써 십 년 전 일입니다. 게다가 지금 집을 파는 분은 미국에 있는 따님이 초청해서, 급하게 팔려고 내놓은 겁니다. 그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상하네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 왜 지금 제게 이야기해주시는 거예요?"

수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매입하시려면 말씀 드리는게 낫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될지도 모르고요."

부동산중개업자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수애는 그 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남편과 함께 이집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나이든 노부부가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안노인은 여유롭고 편안한 미소로 수애에게 안방을 안내해주었다. 안방에는 가족사진과 미국에 있다는 딸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향이라서 겨울에는 무척 따듯해요."

안노인은 환한 미소로 말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정말로요."

수애는 안방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아늑하면서도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수애는 안방에 딸린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베란다의 너머로 놀이터가 보였다. 앙증맞은 크기의 시소와 정글짐. 수애의 눈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졌다. 아직 겨울철이어서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수애의 상상 속에서만 수애의 아이가 그곳에서 뛰놀고 있었다.

수애는 진호를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 진호는 이집에 들어서는 내내 침묵하고 있었다. 진호는 안방의 문설주에 기대서 수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수애가 아니었다. 진호는 수애의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이터, 놀이터를 보는 걸까? 수애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면서 뒤돌아보았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애는 다시 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는 수애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서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노인은 올해 이민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현듯 수애는 불안을 느꼈다. 그때 수애가 본 진호의 흑갈색 눈에서는 차가운 이질감이 묻어났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때의 진호는 수애의 남편인 진호가 아니었다. 수애가 알고 있는 진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수애는 고개를 저었다. 불안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결혼식 전날에도 수애는 어렴풋한 불안을 느꼈다. 시어머니의 왠지 모르게 흔들리는 것 같은 시선을 봤을 때 그랬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수애의 시어머니는 아침드라마(수애는 그것을 주부용 드라마라고 불렀다.)에서 나오는 괴팍하고 심술궂은 시어머니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애의 시어머니는 혼수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흔히 일어나는 지참금으로 인한 다툼도 없었다. 명절에도 시어머니는 수애와 함께 부침개를 부쳤고, 힘들어하는 기색이면 안에 들어가서 쉬라고 하곤 했다.

어쨌든 지금 수애는 1505호에 있었다. 비록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지만 지금 수애와 진호는 집주인이 되었다.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직원 한사람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수애도 인사말을 건네고 문을 닫았다. 수애는 자장면 그릇을 한곳에 모아서 밖에 내놓았다. 이제 직원들도 사라지고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수애는 상자를 풀고 식기를 꺼내 부엌으로 가져갔다. 수애는 미소 지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터였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불안감도 곧 사라질 것이다.

수애는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9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에서 아나운서는 40대 가장이 산책길에서 갑자기 떨어진 철심에 쓰러진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아침에 00구00동의 김준철씨는 산책 도중에..."

남자는 집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남자의 산책길 근처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현장을 감독한 감독관의 실수였는지, 아니면 무관심 때문이었는지, 건물에 친 안전망은 허술하고 약했다. 남자가 공사 건물을 지나칠 때 철심하나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기다란 철심은 안전망을 뚫고 그대로 남자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뉴스영상에서는 119 구급요원들이 남자를 구급차에 실고 있었다. 철심의 길이가 너무 긴 탓에 구급차에 싣기 어려워지자, 전기톱으로 철심을 일부 잘라냈다. 아직까지도 남자는 살아 있었다. 비록 의식은 잃고 있었지만 거친 숨소리가 여과 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물론 남자는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를 관통한 철심은 모자이크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곧 병원에 후송되었으나 끝내 김준철씨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나운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나 세상에."

수애는 깜짝 놀라서 리모컨을 떨어트릴 뻔했다. 뉴스는 경찰이 관련자를 소환해서 조사중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수애는 얼른 다른 채널로 바꿨다. 다른 채널에서는 보험회사의 광고를 하고 있었다.

한 여성이 담담한 얼굴로 차를 닦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서늘한 어조로 여자가 말했다.

"10억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편과의 약속임을 알기에...."

갑자기 소름이 온몸에 끼쳤다. 수애는 미친 듯이 버튼을 눌렀다. 다음 채널에서는 쇼핑몰 광고가 흐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광고가 이어졌지만 수애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철심에 꼬치처럼 꿰어죽은 남자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자이크 밖으로 튀어나온 기다란 철심, 그르렁거리던 마지막 숨소리....수애는 남자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가 산책 중에...그렇게 죽을 만큼 큰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10억을 받았습니다."

불쑥 보험광고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광고속의 여자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수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꺄아아악."

수애는 그만 비명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수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눌러버렸다. 팟하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졌다. 수애는 떨면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9시 40분. 남편이 올 시간이 지났다. 수애는 수화기를 들고 남편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받을 수 없는 상황이오니 메시지를 남겨주시거나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수애는 계속해서 핸드폰 번호를 눌렀지만 같은 말만이 반복되었다. 수애는 담요를 덮어쓴 채 소파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시계바늘은 거침없이 돌아서 10시와 11시, 12시를 지나쳤다. 수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마이 스위트 홈 노래를 지은 사람은 집없이 떠돌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모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노래입니다.

앞으로 수애와 진호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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