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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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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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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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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8.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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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0

DUMMY

연지는 이틀 동안은 학교를 나갔다. 연지가 학교에 나간 사이 준철은 이웃에 도움을 청하려고 시도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전축에 다가가 라디오를 큰소리로 틀어놓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집에 돌아온 연지에게 그 사실을 들킴으로서 연지의 경계만 강화시킨 것이다. 이제 연지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 남아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 매일 밤 커다란 소리가 들린다고."

때때로 연지는 식탁 앞에 앉아서 중얼거리곤 했다. 연지는 신경질적인 얼굴로 복도 쪽의 창문을 쏘아보았다. 준철은 딸애가 말하는 커다란 소리란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준철은 연지가 말한 소음을 듣지 못했다. 연지의 방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쪽에 면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하는 생각에 몇 차례 관리사무소에 항의를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런 불만을 듣지 못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띵동. 결석 이틀째에 초인종이 울렸다. 연지는 경계어린 표정으로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연지는 안전 고리를 채우고 살짝 문을 열었다.

"집에 부모님 계시니? 어머니는 언제 오셔?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할래?"

담임교사인 모양이었다. 준철은 몸을 뒤틀어보았지만 워낙 단단하게 묶여있어서 소용이 없었다. 아내 구영은 소리를 지르려는 듯 턱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렇지만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뿐 살려달라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구영은 몸부림치다가 구석에 놓여 있던 핸드백을 걷어차고 말았다. 그 바람에 핸드백에 담겨 있던 화장도구가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파우더를 담아두던 콤팩트의 뚜껑이 열리면서 거울에서 반사된 한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현관을 비추었다.

'됐어. 희망은 있어.'

구영의 얼굴에 희색이 어렸다. 그 순간 담임교사는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 집을 감쌌다. 연지는 현관 앞에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구영은 몸부림치다 지쳐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준철은 아내와 달리 잠에 빠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한다, 그리고 딸을 정상으로 되돌려야한다, 이 생각이 준철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당쾅쾅."

그때 시끄러움 소음이 밖에서 들려왔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복도를 달리는 듯했다. 아내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이 시간에 달리기라도 하는 건가?'

준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어두운 것으로 보아 한밤중인 듯했다. 이렇게 큰소리에도 이웃들이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현관에 기대앉아 있던 연지의 몸이 긴장으로 움찔거렸다. 밖의 소음과 달리 집안은 숨 막힐 듯 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됐어. 지나갔어."

소리가 그치자 연지가 중얼거렸다.

"제발...이제 그만해...난 죽고 싶지 않아."

연지가 훌쩍거렸다. 준철은 의아한 눈으로 연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준철은 딸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날도 연지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주희는 텅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청소당번과 주번이 남아서 교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저 선생님, 청소 다 끝났는데요?"

아이들이 쭈뼛쭈뼛 다가와서 말했다. 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가도록 하렴. 주번도 정리 끝났으면 집에 가봐."

주번마저도 교실을 빠져나갔다. 주희는 연지의 빈자리에 앉아보았다. 왠지 계속해서 이 자리가 신경이 쓰였다. 의자의 딱딱한 등받이가 닿았다. 주희는 책상을 바라보았다. 거칠고 투박한 합판위로 지저분한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 수학은 재미없다, 오늘따라 담임이 미친것 같다 등등...주희는 피식 웃었다. 이 나이또래의 아이들다웠다. 미칠 것처럼 답답한 공부시간과 사춘기 특유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 주희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운동장이 보였다.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운동장의 모래알을 쓰다듬고 있었다. 교정의 키 큰 은사시나무들은 잎사귀를 손수건처럼 흔들고 있었다. 은빛과 푸른색이 번갈아 빛나는 것이 꼭 카드섹션을 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이 자리에 앉아보는 게."

주희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세상이 굉장히 낯설게 보였다.

"왜 학교에 안 나오는 걸까? 공부가 싫어서?"

주희는 연지를 떠올려보았다. 연지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조용하고 말이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 억지로 이름과 얼굴을 외우지 않으면 기억하기 힘든 아이였다. 그 점만 빼면 다른 평범한 학생들과 똑같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빡빡한 수업을 소화했고, 학교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달려갔다.

아니, 다른 것이 또 있었다. 이주일 전쯤에 세상을 떠난 지애와 같은 반이었다. 아이들 말로는 단순히 같은 반인 게 아니라 친한 친구였다고 했다. 그리고 또 며칠 전에 죽은 재영이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아이였다.

주희는 그날-그러니까 재영이 옥상에서 추락한 날, 경찰관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갓 발령을 받은 듯 새파란 얼굴의 젊은이였다. 그는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고는 한마디 했다.

"참 이상한 일인걸요. 통화기록을 보면 오전 0시 2분에 통화한 것으로 되어있는 데 말입니다."

말입니다..군대식 어투였다. 주희는 그날 유달리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경찰이 학교에 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주희가 맡고 있는 학급의 학생이 연루되어 있었다. 반에 한둘씩 말썽을 부리는 애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건 그런 종류의 말썽과는 다른 종류의 말썽이었다. 그렇잖아도 이주일전에 지애라는 이름의 아이가 자살했는데,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런데 재영 학생의 사망시각은 0시 정각이었단 말입니다. 휴대폰은 부서지지 않았더군요. 어느 회사 제품인지 정말 대단하네요."

이 경관은 애송이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함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요?"

주희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 정말이지 죽은 그 애와 자신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어쩌다가 우연히 주희의 학생이 그 애의 친구였을 뿐이었다. 연지도 운이 없었고, 주희는 더 운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어서, 주희는 경관의 말을 주의 깊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째서 몰랐던 것일까. 주희는 운동장에 드리운 황금빛 햇살이 보라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눈을 크게 치떴다. 차가운 무언가가 주희의 가슴을 스쳐지나갔다. 얼음송곳으로 가슴이 휑 뚫린 기분이었다. 주희는 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날, 그날, 기분이 나빴던 것은 단지 자신의 평온한 삶이 엉망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귀찮은 일에 끼어들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날, 주희는 죽은 아이를 최초로 목격한 목격자였다. 아침 조깅시간에 화단에 떨어진 그 애를 보았고, 그래서.....

어째서, 어째서 몰랐을까! 그 전날 밤에도 아파트 계단에서 그 애를 만났지 않았던가. 주희의 얼굴은 이제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희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차가운 금속성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대체 그게 무엇일지 주희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주희는 비틀거리면서 걸상에서 일어섰다. 이제 교실에는 무서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주희가 어떻게 해서 학교를 빠져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희는 이주일전에 죽은 지애라는 소녀를 떠올렸다. 하얗고 조그만 얼굴의 아이. 창백하고 어두운 표정의 아이. 지애는 자신과 꼭 닮은 연지와 함께 다녔다.

"아아...세상에...."

주희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 순간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어졌다. 주희는 행복 2단지로 걸어들어갔다. 회색빛의 사각형 건물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건물 사이로 차가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분명히 이곳에는 뭔가가 있었다. 남편도 말하지 않았던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곳으로 이끌려 왔다고. 주희도 남편도 연지도 모두 얽혀 있었다. 어떻게 무엇으로 얽혀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희는 지애의 집을 찾아갔다. 주희는 지애의 현관문 옆에 붙어있는 하얀 사각형 버튼을 노려보았다.이 사각형 버튼을 누르면 벨이 울릴 것이고, 지애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낭로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고, 지애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지애와 너무나 닮은 연지의 작고 하얀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를 위해서야.'

그리고 남편. 살붙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던 남편. 그는 주희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가족이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하여. 주희는 검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벨을 울렸다.

"띠리리리."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중년부인이 문을 열었다. 지애의 어머니였다. 주희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주희는 작은 케이크상자를 내밀었다. 마치 집들이 선물인마냥 케이크상자는 앙증맞은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억하시죠? 저 지애의 담임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지애의 어머니는 초췌한 얼굴로 물었다. 자식 잃은 어머니의 서늘한 슬픔이 그대로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주희는 케이크상자 외에도 쇼핑 가방을 하나 더 내밀었다.

"지애의 사물함에서 가져왔어요."

쇼핑가방안에는 지애의 머리핀과 책등이 담겨 있었다. 지애의 유품인 셈이었다. 지애의 어머니는 망설이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지애는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제일 먼저 거실겸 식당이 보였고, 안방과 작은 방이 보였다.

지애의 어머니는 주희를 지애의 방으로 안내했다.

"얼마나 상심이 크세요."

주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직하면서도 걱정이 어린 목소리였다. 자신이 이렇게 남에게 배려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주희는 살짝 놀랐다. 지애의 어머니는 말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지애는 참 얌전하고 착한 학생이었죠. 다른 애들도 그랬으면하고 바랄 정도였어요.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후우. 지애의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못된 기집애죠. 이 어미를 내버려두고 옥상에서 뛰어내렸으니."

지애의 어머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잔뜩 흐려 있었다.

"저도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떻게 지애가...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는지...혹시 짐작가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주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라도 지애의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글쎄요. 워낙 애가 말이 없어서....."

"담임인 제가 봤을 때 지애가 얌전한 편이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충돌하는 건 본적이 없었거든요."

지애가 다른 아이들과 싸운다? 지애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주희는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연지를 제외하고는 지애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이 없었다는 것을. 무시도 왕따의 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즉, 악의는 없었다.

"지애가 워낙 착하고 어른스러워서요."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희는 지애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요. 지애가 참 착한 아이죠. 얼마나 착하고 예쁜 아이였는데...."

지애의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한바탕 울음이라도 터트릴 기세였다. 주희는 지애의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할까 말을 고르고 있었다. 지애의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리기보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차를 내올 모양이었다. 그 사이 주희는 지애의 방을 둘러보았다. 방 한구석에 책상이 있었다. 주희는 책상의 책꽂이에서 검은색 앨범을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꺼냈는데, 중학교 졸업 앨범이었다.

"저, 선생님. 커피 드시겠어요?"

"아유, 경황이 없으실 텐데, 커피라뇨."

"그래도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냥 맹물이면 되요.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요."

주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앨범을 펼쳐보았다. 공교롭게도 앨범을 펼치자마자 3학년 2반의 단체사진이 나타났다. 주희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사진 속에는 연지와 죽은 지애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왼편으로는 지난번에 아파트 계단에서 만났던 그 소녀-재영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주희의 시선이 맨 뒷줄로 옮겨갔다. 그곳에는 얼굴대신 검은 구멍이 있었다. 누군가 오린 흔적이 역력했다.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주희는 자신도 모르게 졸업앨범을 핸드백 속에 넣었다.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도둑질이었다. 그것도 죽은 아이의 물건을 훔치다니. 주희의 뺨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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