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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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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508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8.26 22:53
조회
502
추천
7
글자
12쪽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6

DUMMY

"으윽, 푸핫. "

주희는 목을 움켜쥐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물을 마시고 잇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생생한 꿈은 처음이었다. 옆에서는 남편이 놀란 눈으로 주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왜그래요?"

주희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아까...나한테 뭐라고 했어?"

"아뇨. 아무 말도."

"거짓말. 그사람들이 온다고 했잖아! 그여자가..."

"여자? 당신 혹시 여자가 있었어요?"

주희의 날선 목소리에 남편은 주춤거리더니 거실로 나갔다.

"여보! 어디가요?!"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집을 나섰다. 주희가 채 잡기도 전에 남편은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새벽 1시를 넘어서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주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인간이!"


"엄마 그거 어디 있어?"

연지는 벽장을 뒤적이다말고 소리 질렀다.

"그거라니 뭐 말야?"

구영은 고무장갑을 양손에 낀 채 연지의 방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앨범 말이야, 앨범! 중학교 졸업앨범!"

"얘가 왜 갑자기 앨범을 찾아? 네가 버리라고 해놓고는?"

"그걸 왜버려!"

연지는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구영은 기가막힌 표정을 지었다.

"애가 어디서 목청이야? 몰라. 어디 있겠지. 베란다 쪽에 있는 벽장에서 찾아보던지."

구영의 말에 연지는 서둘러 베란다쪽으로 달려갔다. 창고처럼 쓰는 벽장이 한켠에 있엇다. 한참을 뒤적인 끝에 연지는 두꺼운 앨범을 꺼내들었다. "행복중학교" 큼지막한 글씨가 양장앨범에 박혀 있었다. 연지는 방문을 걸어잠그고 앨범을 펼쳤다.

3-2라는 글씨를 찾아 연지는 앨범을 넘겼다. 웃고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지나갔다. 마침내 연지는 찾고 있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3-2라는 글자 밑에는 졸업을 앞두고 찍은 단체사진이 있었다.

벌써 단짝이었던 지애와 연지가 한 구석에서 함께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그런데 맨 뒷줄에 서있는 여자아이의 얼굴부분은 동그랗게 오려져 있었다. 연지는 단체사진을 넘겼다. 개인사진이 배열된 부분에서 연지는 역시 얼굴이 오려진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연지는 서둘러 사진 밑을 바라보았다.

"이현아."

얼굴이 없는 사진 밑에는 이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남편은 사흘 내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에 연락을 해보아도,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주희는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질겅였다. 일상과 전혀 다른 날들이었다. 화가 났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되는 것 없는 인생이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궤도를 벗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짧은 조례를 마치고 주희는 다음 시간을 준비하려고 교탁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주희의 시선이 교실의 구석자리에 꽂혔다. 교실에는 며칠 전 지애의 빈자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치웠기 때문에 빈자리가 남아있지 않아야했다.

"저기 누구자리니?"

주희의 말에 껌을 질겅거리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연지 자리네요."

"오늘 학교 안 나왔니?"

"네."

주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출석부에 체크를 했다. 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아무도 받지 않았다.

"왜 연락이 안 되지?"

전화코드라도 뽑아버린 건가?

"혹시 연지하고 친한 학생 있니?"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지애 말고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고 했다.

'충격 때문인가?'

친한 친구가 지애밖에 없었다면, 지애가 죽은 것이 충격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같은 중학교출신의 다른 학생도 죽었으니. 그렇지만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찾아가야하나."

연지의 주소록을 확인하니 주희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주거지가 있었다. 오늘도 일찍 집에 들어가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주희는 잡무를 끝내고 연지의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같은 아파트단지이니 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았다. 주희는 엘리베이터의 15층 버튼을 눌렀다. 기이잉. 심한 금속성 소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땡. 잘 올라가던 엘리베이터 갑자기 5층에서 멈춰 섰다. 문이 열렸을 때, 텅 빈 복도가 나타났다. 누가 눌러놓고는 그냥 가버린 모양이었다. 주희는 기다렸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주희는 연지에게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가서 뭐라고 말하지? 충격을 받은 건 알고 있지만 고 2니 학교에 빨리 나와야한다고 말할까? 아니면 좀 더 쉬었다가...'

주희의 상념은 중간에 끊겼다. 다시 예의 그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주희는 버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7층이라는 번호가 액정판위에 떠올라 있었다. 주희가 가려는 15층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땅거미가 내려 어두워지고 있는 복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탑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곧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뭐야, 누가 장난이라도 치나. 정말 짜증나네. 그렇잖아도 기분이 안 좋은데.'

주희는 투덜거리면서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엘리베이터의 좌우의 벽에는 거울이 붙어있었다. 그래서 두개의 거울은 서로를 비추면서 통로처럼 끝없이 같은 풍경을 찍어내고 있었다. 주희의 얼굴도 수십여 개가 같은 사진을 복사한 것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낯익어야할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주희는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그러자 십여 개의 굵고 가는 주름이 눈가에 몰렸다. 콧등과 이마에 퍼져있는 주름과 콧잔등에 돋아난 사마귀, 두툼한 입술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같은 얼굴인데도 거울에 찍혀진 여러 개의 얼굴은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가하면 그 뒤의 얼굴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도 안 돼.'

주희는 고개를 저었다. 주희는 얼굴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지만, 자꾸만 거울 쪽을 흘끔거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희는 빨리 15층에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땡."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13층이라는 층수를 알려주는 글자가 보였다. 이제 완전히 복도는 어두워져 있었다. 주희는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 저멀리서 희뿌연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두운 탓에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비닐봉지겠지.'

주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그 하얀 물체는 점점 다가왔다.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주희는 닫힘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문은 닫히지 않았다.

"아아."

주희는 그제서야 전기를 절약한다는 이유로 닫힘버튼쪽의 전류를 끊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지난달 반상회에서 결정된 내용이었다. 이제 그것은 주희와의 사이에 몇걸음을 앞두고 있었다.

"제발...제발 닫혀라..."

주희는 미친 듯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형체가 보일만큼 다가설 무렵,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쾅하는 소음이 뒤에서 들렸다.땡. 이번에는 정말로 15층이었다. 주희는 서둘러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주희는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내고 1505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다. 주희는 문에 걸린 도어셔터를 바라보았다. 그좁은 틈으로 연지의 창백한 얼굴이 나타났다.

"연지구나? 오늘 너 학교에 안와서 걱정이 되어 들렀단다. 부모님 안에 계시니?"

주희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내려고 노력하면서 물었다.

"지금 안계시는데요. 아버지는 출장가셨고, 어머니는 시장에 가셨어요."

"그래? 어머니는 언제 오시는데? 선생님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주희는 문틈 사이로 집안을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실내에는 불이 꺼져 있어 몹시 어두웠다. 그래서 제대로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몰라요."

연지는 차갑게 대답하고 문을 닫았다. 문 뒤에서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 연지야. 잠깐만.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하자."

주희가 문을 두드렸지만 한번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희는 문 앞에 서서 연지의 어머니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희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경계하는 얼굴의 중년 여자가 나타났다.

"저기 죄송한데요. 옆집에 찾아온 사람인데, 어른이 없나봐요. 옆집 엄마가 잠깐 나갔다고 하는데 언제쯤 돌아오는지 아시나요?"

여자의 얼굴에는 주희를 이상하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잘 모르겠어요. 며칠째 그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걸 본적이 없어서요. 맨날 불만 꺼져 있고요."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한 사흘 전부터인가? 그때부터인데요.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요?"

"아뇨. 그냥 뭐 좀 알고 싶어서요."

쾅. 문이 닫혔다. 참 별 이상한 사람 다 봤네. 왜? 무슨 일인데? 웬 낯선 여자가 말이야, 글쎄...문 뒤에서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주희는 입술을 달짝거렸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15층에 멈춰서 있었다. 주희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만지작거리다가 계단 쪽으로 돌아섰다. 왠지 엘리베이터 타기가 찜찜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경찰에 연락했다가 아무 일도 없으면 좀 그렇잖아. 내일도 안 오면 그때 연락해봐야지."

주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서는 그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계단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다리가 몹시 아팠다. 주희는 잠시 층계참에 멈춰 서서 하이힐을 벗어들었다. 그리고는 하이힐 굽을 바라보다가 굽을 계단에 두드려서 빼냈다. 그렇게 굽을 떼어내 핸드백에 넣고 주희는 절룩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겨우 344동을 빠져나온 주희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 앞에서 주희는 흰색 차양이 벌려진 광경을 발견했다. 아파트에는 간혹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고, 그때 모여드는 조상객들을 이렇게 임시로 친 차양아래에서 맞았다.

"무슨 일이에요?"

주희는 정민엄마를 발견하고 물었다. 정민엄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1402호 김 씨 할머니 있잖아. 어제 세상을 떠났대. 사람들이 발견했다더라고. 사흘전만해도 반상회에서 볼 정도로 멀쩡했는데, 쯧쯧. 정말 나이 드신 분들은 언제 갈지 알 수가 없다니까."

정민엄마는 반상회에서 심하게 꾸지람을 들은 일을 잊어버린 듯했다. 그녀는 혀를 차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이렇게 된 거야."

차양 밖에서 노인하나가 소주병 뚜껑을 따고 있었다. 주희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노인에게로 향했다.

"결국에는 그들이 찾고 만 거야."

"저기,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이시죠?"

주희는 노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얼마 전에 자주 꾸었던 꿈속에서도 주희는 "그들이 온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었다. 사흘 전에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하면서 집을 나가버렸다. 주희는 혹시 그것과 상관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 불과할지도 몰랐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검버섯으로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사흘 전에 찾아오셨던 분인가요? 그때 반상회에서 김 씨 할머니를 뵈었거든요. 김 씨 할머니는 찾는 분들이 계시기에 집을 가르쳐 드렸었는데, 혹시 그때 오셨던 분인가요?"

주희의 말에 노인의 입술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괜찮으세요?"

주희는 깜짝 놀라서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그년이, 그년이 데려간 거야. 그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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