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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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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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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09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8.2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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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추천
5
글자
9쪽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4

DUMMY

주희는 힘겹게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아파트의 어두운 복도풍경이 흔들렸다.

'왜 이렇게 어두워?'

주희는 긴장된 시선으로 주위를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계단주위에는 별다를 것 없는 세간살이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린아이가 타고 다니는 세발자전거와 녹슨 빨래건조대, 목마 따위가 복도에서 밀려나 계단 쪽 통로에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둠이란 참 요사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일상적인 풍경조차 음습하고 암울한 풍경으로 바꿔버리니 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넘어 다녀야 했던 산속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대한 피해망상과 광기로 가득한 비열한 살인자를 하나쯤 숨겨놓았을 법한 그런. 주희는 이제 쉰에 가까운 나이였는데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어머니는 일을 하러 다니셨고, 언제나 집에는 주희와 어린 동생들만이 남아 있었다. 가끔 집에 일찍 돌아올 때도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고개 넘어 할머니 댁으로 자주 심부름을 보냈다. 주희는 어둠이 정말 싫었다.

'엘리베이터 고장.'

무성의하게 쓰인 한 줄의 글귀가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 있었다. 언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어요? 수위는 무성의한 글귀만큼이나 무성의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몰라요. 내일이나 낼 모래쯤에 고쳐지겠죠. 주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꾹 참고 말했다. 15층 꼭대기까지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알아요? 빨리 고쳐주세요. 예에, 예. 수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검은 정장이 땀에 젖어 무겁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자살한 학생의 빈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학생의 아버지는 차가운 시선으로 주희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희는 죄지은 사람마냥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려야했다.

'애가 자살할 때까지 어떻게 그냥 내버려둘 수 있어? 그러고도 선생이야?'

아무도 입 밖에 이런 말을 내지 않았지만, 주희는 목덜미가 따끔거렸다. 그렇게 적대적인 시선으로 가득한 공간에 한 시간 이상 있어야했던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가은이니? 그래. 소금 준비해라."

인터폰을 통해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희는 인터폰을 끊고서 계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지애에 대한 주희의 기억은 반에서 중간정도의 성적에 서울내의 4년제 대학은 힘들겠다고 상담에서 말한 게 전부였다. 그 이외에는 주희가 지애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그다지 좋은 교사는 아니었던 듯했다. 그래도 사회생활 초년에는 성실함과 열정이 있었다. 진도가 떨어지는 애들을 모아놓고 개별지도를 하기도 했고, 반에서 소외되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모아서 상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가물가물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매년 그렇게 살 수 있는 교사는 없다. 그것도 일 년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맡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의 지도이외의 잡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았다. 결국 교사의 역할이란 "인생의 스승"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적 관리자정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언제 벗어나지.'

주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직장이 있어서 어디인가. 지난 IMF사태 때, 하나둘씩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교사들이 떠올랐다.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에 공무원들의 숫자를 줄이겠다고 공언했고, 그 결과 무수한 숫자의 소방대원, 경찰, 119구조대원들이 실직자가 되었다. 일반인들은 몰랐지만-아니 실직자가 된 그들 자신들도 몰랐겠지만, 그들도 공무원은 공무원이었다. 그 불똥은 교사들에게도 튀었고, 당시 나이가 많은 교사들은 아무 말 없이 사라져야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두려움이 약간 가셔지는 듯했다.

'가정에서 애를 잘 가르쳤어야지. 어떻게 애가 자살하도록 부모라는 사람이 모를 수가 있어? 어쨌건 내 잘못은 아니야.'

주희는 그렇게 자신을 달래고는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위층에서 여자의 하이힐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주희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텅빈 듯한 어둠속에서 여러 개의 인영이 떠올라 있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내가...온 거에요.."

"그 남자...이 근처.....거의 다왔...."

말이 토막토막 끊어져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시간에 이외로 사람들이 많은가보네.'

주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근처에 사람들이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고층에 사시는 분들인 가보죠?"

주희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네 보았다. 뚝. 하이힐 소리가 그쳤다. 인영들은 주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멈춰서있었다.

"아유. 정말 이렇게 엘리베이터가 고장날 때에는 아파트가 불편하네요. 정말 다들 힘들죠?"

역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에서 이질감이 묻어났다. 사람들은 주희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듯이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영들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런데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인영들은 뚜렷한 형체가 아닌 거뭇한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희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섬뜩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이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기운.

파밧. 주희가 계단의 한가운데에 서자 천장에 있던 등에 불이 들어왔다. 불빛 아래에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교복차림의 소녀가 서있었다. 주희가 다니는 학교와 같은 복장이었다.

"어머, 너 00고등학교 학생이니? 여기 사니? 그런데 아까 여기 있던 사람들 어디 갔니?"

여자아이는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주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놀랐다기보다는 신기한 동물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담겨 있었다. 주희는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00고등학교 학생이라면 국어교사인 자신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저 혼자뿐인데요."

마침내 아이가 대답했다. 여자아이는 주희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웃음처럼 느껴져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그러니? 이상하네. 누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봤나?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렴."

주희는 그렇게 말하고 여자아이를 스쳐지나갔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른들이 아이들 몰래 소곤거리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 죽으면, 근처에 있던 귀신들이 몰려든다고. 사자가 제대로 된 길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 그들 떠돌이 귀신을 위해서 따로 밥을 마련해두는 거라고. 가끔 상갓집에 다녀온 사람이 심하게 앓다죽으면, 사람들은 살을 맞은 것이라고 소곤거렸다. 그 떠돌이 귀신들이 따라온 것이라고. 주희는 그런 생각을 떨치려고 고개를 저었다.



촤악. 하얀 소금이 주희의 양 어깨를 내리쳤다.

"이런 거 꼭 해야 돼? 귀찮단 말이야."

딸이 칭얼거리면서 말했다. 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희는 서둘러 정장을 벗었다.

"여보, 나왔어요."

주희는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남편을 향해 소리치듯이 말했다. 남편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꼭 신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여느집 남자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겠지만, 남편은 신문을 샅샅이 훑듯이 읽는다는 점에서 별난 점이 있었다. 심지어 남들이 잘 읽지 않는 사설에서 색연필이나 요지경 같은 토막기사까지 남편은 빼놓지 않고 보았다. 주희는 그런 남편의 취미가 성가시기는 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어쨌든 남편은 신문을 다보고 나면 자신이 알아서 치웠으니까.

즉, 주희의 일이 아니었다.



캐논변주곡이 귓가를 울렸다. 연지는 이불속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연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중학교시절부터 같이 다니던 지애가 죽은 것이다.

"여보세요."

연지는 갈라진 목소리로 핸드폰을 받았다.

"연지니?"

"재영이?"

연지는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재영과 연지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한 번도 교내에서 마주친 적은 없었다.

"혹시...지애가 죽었니?"

"소식 들었나보구나."

하긴 같은 학교 안이니 못들을 리가 없었다. 통화기 너머로 조용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구나. 그 애가 와서 내게 말해줬어..그 애는..."

콰광. 요란한 소음이 둘의 통화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렇게 재영과의 통화는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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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5 10.08.26 464 5 10쪽
»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4 +2 10.08.26 529 5 9쪽
3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3 10.08.25 64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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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 +6 10.08.25 2,435 8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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