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513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8.25 20:06
조회
649
추천
6
글자
12쪽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3

DUMMY

언젠가 한 번 주희는 대여섯 명의 여자애들을 복도바닥에 꿇어앉힌 적이 있었다. 뭐 한두 시간도 아니고, 십오 분 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 다음날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우리 딸내미 허벅지에 멍이 들었더군요. 담임이 이상한 사람이네요. 혹시 체벌 교사 아냐?"

교감에게 한 소리 들은 건 물론이요, 약 일주일간 주희는 익명의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2학년 2반 담임은 체벌 교사예요. 야구빠따로 애들을 팬다니까요. 다리만 때리는 게 아니에요. 네, 네. 허벅지며 팔이며 안 가리는 곳이 없다니까요? 뭐 이런 체벌교사가 다 있어요?"

정말 열 받는 사실은 주희가 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 학교에 그런 교사가 한 명 있었다. 그 교사는 3학년 담임이었다. 수학교사였는데, 여학생 남학생 안 가리고 체벌하는 게 일과였다. 심지어 여학생의 경우에는 치마를 걷게 해서 성적인 수치심까지 주는 교사였다.

그런데 애들은 그 교사에 대한 분노를 주희에게 풀었다. 주희는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그 수학선생이 맡은 반은 항상 대학진학률이 높았으니까. 성적과 폭력에 겁먹은 아이들은 그 교사대신 만만한 교사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당시의 주희도 아이들만큼이나 어렸다. 어리석게도 아이들을 친근하게 대하고, 고민상담도 받아주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애들을 따로 모아서 방과 후 공부도 지도해주곤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주희는 어느새 애들에게 "편안한"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 편안함은 아이들에게는 만만함, 즉 약함, 다시 말해서 마구 물어뜯어도 되는 교사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 끔찍한 일주일 동안 주희는 잠 잘 때마다 펑펑 울었다. 교사 일을 때려치울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만약 남편이 갑자기 그렇게 많은 빚을 지지만 않았어도, 친정식구들이 짐승처럼 뜯어먹으려고 달려들지만 않았어도, 주희는 직장을 때려 치고 말았을 것이다. 주희는 억지로, 정말 억지로 직장에 남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주희가 아이들을 서류상의 기호로만 대하게 된 것은. 기호 너머의 아이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역겨운 존재들이었다.

'징그러운 것들.'

주희는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저 아이들 하나하나가 발톱을 세운 괴물 같았다. 아니, 지금 주희의 눈에서 아이들은 뭉쳤다, 흩어졌다하면서 이상한 형상으로 변해갔다.

주희는 고개를 저으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이 부족한 탓이야, 잠이.'

요새 들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젠장할. 무슨 놈의 집이...집같지도 않아.'

주희가 살고 있는 집은 1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복도 맨 끝에 있는 집인데도 매일 밤 소음으로 가득했다. 무엇 때문인지 주희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동에서는 엘리베이터의 소음이 심하다고 관리실에 항의를 했다는데 주희의 생각은 달랐다. 엘리베이터 때문이라니. 만약 그렇다면 엘리베이터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주희의 집에까지 들릴 리가 없지 않은가.

'옥상에서 나는 소리가 틀림없어.'

주희는 이렇게 단정 지었다. 사람들은 옥상에다가 고추니 무말랭이니하는 것들을 펴놓고 말리곤 했다. 주로 할 일없는 할머니들이나 전업주부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까짓 거 뭐 소중하다고 사람들은 비바람에 날아가지 말라고 펴놓은 무말랭이위에 비닐을 씌우고 벽돌까지 올려놓아 고정시키곤 했다.

아무리 그렇게 해놓아도 비바람이 심한 날에는 벽돌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날에는 벽돌은 덜그럭거리면서 굴러다니기 마련이었다.

'내가 반상회에서 한번 말해봐야겠어.'

벽돌 따위좀 올려놓지 말아달라고. 주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서류를 뒤적였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빠져나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주희는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졸음에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옆에 앉아있던 동료교사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부끄러움이 밀려들었지만 도무지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말자 씨. 나 조금 있다가 한 십 분 후에 깨워줘요. 알았죠?"

"알았어요."

주희는 잠시 눈을 붙였다.


주희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역시 주희의 생각대로 옥상에는 사람들이 두고간 벽돌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일부 질나쁜 아이들이 놓고 간 부탄가스통이며 본드가 보였다. 누군가 피다 버리고 간 꽁초들도 수두룩했다. 주희는 혀를 차며 옥상을 둘러보았다. 옥상 난간 쪽에 젊은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거기서 뭐해요?"

주희는 햇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남자가 돌아보았다. 햇빛 때문에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앳돼보였다.

"누, 누구를요?"

"그들을요. 곧 그들이 올 시간이에요."

우당쾅쾅. 예의 낯익은 소음이 천둥처럼 울려댔다. 남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주희 씨? 일어나봐."

누군가가 어깨를 흔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주희는 번쩍 눈을 떴다.

"괜찮아? 왜 그렇게 자면서 잠꼬대가 심해?"

말자가 걱정스럽게 주희를 바라다보았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글쎄? 웅얼거리는 소리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냥 뭐, '그 사람들이 와.'라고 하는 소리만 들었어."

갑작스럽게 냉기가 느껴졌다. 주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모님이 학원을 쉬라고 했지만 연지는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질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축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고 2라는 압박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연지는 책상에 문제집을 활짝 펴놓고 있었다. 그날 학원에 가지 않은 바람에 진도가 뒤쳐졌음이 틀림없었다. 열심히 수학공식을 훑어보았지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연지가 전혀 모르는 마법의 언어만이 잔뜩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 졸음이 밀려들어왔다.

'피곤해서 그런가? 하지만 진도를 맞춰야하는데.'

그런 연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머리가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스르르 연지의 의식이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무언가 썩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연지는 마루에 서있었다. 도배하지 않은 시멘트벽과 아직 싱크대가 들어오지 않은 부엌풍경이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연지는 천천히 문이 열려있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왱왱거리는 파리의 날갯짓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베란다바닥에는 그것이 엎드려 있었다. 오랫동안 있었던 탓인지 그것은 형체를 잃고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한때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은 머리카락과 손톱뿐이었다. 연지는 시선을 돌렸다. 그것의 손목에 차고 있는 로렉스 시계가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루이비통상표가 붙어있는 가방과 샤넬 상표의 옷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정교한 모조품이었다.

"난 가짜밖에 몰라."

여자의 쉰 목소리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가짜로 진짜를 사려고 했으니, 벌 받아 마땅하지? 하지만 자살은 아니었어."

연지는 그대로 그곳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달리 연지의 고개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썩은 냄새가 점점 심해졌다. 고개를 완전히 돌렸을 때, 그곳에는 여전히 도배하지 않은 시멘트벽만이 눈에 들어왔다.

또각또각. 규칙적인 하이힐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면서 나를 이곳에 불렀어요. "

여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아마 그 남자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말다툼이 심해지자, 생각이 바뀐 거예요."

"그래서 그는 당신을 바닥에 밀쳤군요."

"남자는 내가 머리에 피를 흘리자 겁이 나서 도망쳤죠. 하지만 난 그때 아직 죽지는 않았어요. 만약에 그 남자가 돌아와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기만 했으면 살았을 거예요. 난 몇 번이고 남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어요."

"난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어요."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그냥 단순한 놀이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르죠. 정말 사람이란 알 수 없어요. 일 년 전만해도 내 친구였던 애들이...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그렇지?"

"그래요. 용서할 수 없어."


쿵광쾅. 금속성 소리가 거칠게 연지의 귀를 울려댔다. 연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책상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연지는 천천히 손을 뻗어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연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연지니? 나 지애야."

평상시 지애답지 않은 목소리였다. 차갑고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왜 그래?"

"그들이 오고 있어."

뚝. 전화가 끊겼다. 연지는 지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지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들이 오고 있어."

그것은 지애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연지는 다음날 지애의 빈자리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지애대신 하얀 국화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희는 신경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주희가 담임을 맡고 있던 반 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유서도, 남긴 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말밖에 남긴 게 없니? 혹시 뭐 다른 행동 같은 거 하지 않았니? 우울해보였다거나 애들한테서 따돌림 당했다거나..."

주희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해서 물어보았지만 눈앞의 아이는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물고 앉아있었다. 주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서에서 제가 했던 말이 전부에요. 이제 교실로 가 봐도 되요?"

연지는 조급하게 물어보았다. 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봐도 된다."

드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주희는 털썩 책상 앞에 주저앉았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그래도 20년이나 버텨온 직장인데. 가끔 산부인과 진단서를 끊어오는 애들이 있긴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죽으려면 일 년 전에 죽든지 아니면 전학 가서 죽든지 했어야했다. 왜 하필이면 주희가 담임을 맡고 있을 때 죽을게 뭐란 말인가? 벌써 주희는 교장과 경찰사이를 번갈아 불려갔었다.

요새 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그 쿵쾅거리는 소음이 들리는 듯했다. 주희는 핏발선 눈을 비볐다. 따끔거리는 감촉이 안구전체에 퍼져나갔다.


주희는 옥상에 있었다. 주위에는 주희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담배꽁초와 빈 술병들이 널려 있었다. 깨진 벽돌이 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옥상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옥상 난간앞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누구니?'

주희는 조심스럽게 학생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학생이 돌아보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생이 입고 있는 교복은 주희의 학교의 교복이 아닌 옆에 있는 중학교의 교복이었다.

'여기서 뭐하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선생님도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닌가요?'

주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쿵쾅거리는 또 한 차례의 소음이 귓가를 울려댔다. 여자아이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옥상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 선생, 이 선생!"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그대로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주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모진 얼굴의 교감이 못마땅한 얼굴로 주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하는 짓이군. 지금 자는 게 말이나 되?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이 죽었는데? 혹시 체벌한 거 아냐?"

"체벌이라니요. 그런 건 없었어요."

주희는 자신도 모르게 발끈해서 소리 질렀다.

"체벌이 가능이나 해요? 걔네들이 가만히 앉아서 맞는 애들인가요?"

교감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교감이 아는 주희는 그저 눈에 띄지 않는 중년의 여교사일 뿐이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요. 누구는 좋아서 이 짓 하는 줄 알아요?"

교감은 서둘러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래?"

주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왜 이러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동 아파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3 10.09.01 430 5 12쪽
12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2 +1 10.08.31 447 6 12쪽
11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1 +1 10.08.31 533 13 13쪽
10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0 10.08.31 436 6 13쪽
9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9 10.08.30 446 6 13쪽
8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8 10.08.30 393 5 14쪽
7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7 10.08.30 416 6 8쪽
6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6 10.08.26 503 7 12쪽
5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5 10.08.26 464 5 10쪽
4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4 +2 10.08.26 529 5 9쪽
»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3 10.08.25 650 6 12쪽
2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2 +2 10.08.25 804 9 15쪽
1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 +6 10.08.25 2,435 8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