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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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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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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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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8.3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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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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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12

DUMMY

"지금까지 두 명이 죽었단다. 두 아이 모두 이 현아라는 아이와 관련이 되어 있지. 그중 재영은 학교는 이곳에서 다녔지만, 이곳 사람이 아니었지."

"그래서 이제 내 차례다, 이건가요?"

연지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벌써 연지는 대화에 응하는 것만으로 반쯤 저항을 풀고 있었다.

"이 파일에 너희들에 관한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어."

주희는 파일을 내밀며 말했다. 기사는 행복동에서의 잇따른 여고생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여고생들의 죽음, 왜인가?'

다분히 흥미성위주의 기사는 여고생들의 죽음의 원인을 부모의 이혼 등의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누구도 누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자식도 부모도, 친구도 다 남이지.'

"계속 여기 이러고 있을 거니?"

주희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렇게 단단히 걸어잠그고 앉아있을 거니? 그애가 찾아올때까지?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나가자."

"어디로요?"

"현아의 납골당에."

"싫어요!"

연지는 소리치며 문에서 멀찌감치 물러섰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화장을 할 수 있고 술을 마셔도 된다는데 있는 게 아니란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있단다. 이제 네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때가 되었어. 어서 나오렴."

"현아는 날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연지가 울먹였다.

"용서받고 안받고의 문제가 아니야. 너는 그럼 평생 그렇게 갇혀서 있을 거니? 되든 안되든, 현아한테 가보는 게 낫지 않겠니?"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연지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었다.

"지애한테 해주었어야했던 이야기였단다. 지애 같은 수십 명의 아이들에게.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그래서야."

주희는 씁쓸하게 웃었다.


달칵. 문에 채워졌던 잠금쇠가 풀렸다. 연지의 부모도 포박이 풀렸다.

"후우. 정말 큰일날뻔했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주희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간단하게 풀려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주희는 대답대신 연지를 가리켰다.

"연지와 함께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가도 되겠죠?"

잠시 후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중고차야. 그리고 내차가 아니라 남편차야."

주희는 짧게 대답하고 시동을 걸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교외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주희는 잔뜩 긴장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사다운 행동인지도 몰랐다. 왜 갑자기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주희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쩌면 남편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지도 몰랐다.

저녁 무렵에서야 두 사람은 납골당에 도착했다. 연지는 현아의 유골이 담긴 작은 상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주희는 앨범에서 오려낸 현아의 사진과 향을 태웠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주희는 희미한 기억너머 외할머니가 했던 의식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외할머니는 무당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놀라울 정도로 앞일을 잘 알아맞히곤 했다. 아직 어린 주희에게 등에 업혀 있는 남동생 주남이가 요절할 것이라고 예언한 일이나, 아파서 몸져누워있는 어머니에게 상갓집에서 살이 들렸다며 일종의 퇴귀의식을 해준 일을 보았을 때, 아주 무당쪽과는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외할머니의 부모나 친척 쪽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주희가 부산을 떠는 한편에서 연지는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미안해."

연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해서는 안된다는 걸 몰랐어. 그렇게 큰 죄인지도 몰랐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잘못인지도 몰랐어. 너한테 한일들, 정말로 미안해."

의식을 끝마친 뒤, 두 사람은 연지의 집으로 향했다.


자정을 알리는 알람음이 울렸다. 주희와 연지는 긴장된 시선으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연지의 부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희는 하룻밤 이곳에 있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아들은 도서관에 있을 테고, 딸애는 수련회에 간다며 나가서 집에 없었다.

차가운 한줄기 바람이 지나갔다. 복도는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시간이 흘러갔다. 마침내 새벽이 찾아왔다. 푸른 새벽빛이 방으로 스며들자 두 사람은 환호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주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 집을 떠났다.


종남은 마시던 술잔을 바닥에 턱 내려놓았다. 술기운때문인지 열이 머리까지 치솟아 올랐다. 종남은 아직까지도 재산배분문제를 둘러싸고 토론중인 조카들을 향해 술병을 내던졌다.

"이 후레자식들. 돈밖에 모르는 것들. 그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여기서 돈이나 챙기고 있어? 생전에는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그래 죽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아? 어머니가 어떻게 사셨는지는 봐야할 것 아니냐, 이놈들아."

난데없이 벼락을 맞은 조카들은 곧바로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아니, 저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나?"

"그럼 지는 왜 어머니 살아생전에 찾아오지도 않은 거야? 오빠라면서?"

종남은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라이, 이 드러운 놈들아. 자식 놈 키워봤자, 헛일이여, 헛일. 돈이나 챙길 생각밖에 안하지, 에잉."

종남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면서 천막을 나섰다. 종남의 오른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그려, 그려. 내라도 가봐야지."

종남은 점례의 집에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내는 마누라도 자식도 도망친 지 오래여. 점례도 그렇고. 우리 형제 중에서 그 돈가지고 잘된 사람 없어. 오히려 고생만 죽도록 했지. 근데, 그렇게 고생한 것도 모자란겨?"

종남은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땡. 엘리베이터가 7층에 가 멈춰 섰다. 술에 취한 종남의 눈에 흐릿한 남자의 형체가 들어왔다. 남자는 종남의 옆에 가 섰다.

"독한년. 독한년이여. 뭐가 그렇게 한이 남아서 늙어서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거여? 우리 누나 언년이가 목매달고 가더니만, 그년이 데려간 겨. 그거면 되었지, 뭐가 또 그렇게 한이여? 한은? 이 세상에 한없는 사람 있나? 충분히 우리는 다 갚았제, 아, 갚았고말고."

땡, 또다시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멈춰섰다. 루이비통가방을 맨 여자가 탔다.

"독한 년, 참으로 독한 년. 그만하면 되었지. 그만하면 된 것을...흐흑."

종남을 흐느끼며 술을 마셨다. 땡. 또다시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멈춰섰다. 행복중학교라는 큼지막한 마크가 찍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올라탔다.

마침내 14층이 되었다. 종남은 흐느적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복도를 걷는 종남의 뒤로 또각거리는 하이힐소리와 뚜벅거리는 구둣발소리가 따라왔다. 종남이 문을 열고 1402호로 들어가자 그 소리는 뚝 그쳤다. 종남은 문을 걸어 잠갔다. 점례의 집은 싸늘했다.

종남은 점례가 죽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흐흐흑."

쏴아아. 어디선가 환청처럼 물소리가 들려왔다. 종남의 술취한 눈에 방안가득히 들어온 사람들이 보였다.

"아, 워쩐일이여? 왜 이렇게 많이들 온 거여?"

그림자들은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여자와 아이들,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메우기 시작했다. 종남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여러사람의 웃음처럼 들리던 소리는 점점 한목소리가 되었다. 그것은 종남이 알고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오, 오옥자야."

닫힌 물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안방은 금세 물로 가득 찼고, 격류가 생겨났다.

"마, 말도 안돼. 어째서 이런 일이."

종남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아파트는 사라지고, 그날 그토록 격렬하게 흐르던 개울로 풍경이 변해있었다.

"사, 사람 살리유..."

종남은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종남은 하염없이 물결에 떠내려갔다. 비린 물이 입과 코로 들어왔다. 종남은 고통 속에서 의식을 잃어갔다.


앰뷸런스가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70이 넘은 노인이 안방에서 익사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상식 밖의 일이었다. 물에 부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노인의 이름은 김종남. 그날 김점례의 장례식을 보러 온 사람이었다.


"용서를 빌면 될지도 몰라."

주희는 생각했다. 주희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잔정이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부부이지 않은가? 게다가 가은과 가훈이를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되게 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주희는 죽은 남편의 애인의 무덤에 손수 찾아가 용서를 빌고 왔다.

주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떙. 엘리베이터는 7층에서 멈춰 섰다. 주희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는 올라갔고 9층에서, 13층에서, 14층에서 멈춰 섰다. 15층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주희는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나왔다. 그때, 연지의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와 같은 소름이 돋아났다. 주희의 등 뒤에서 여자의 하이힐 소리와 남자의 구둣발소리가 들려왔다. 열쇠가 자꾸만 미끄러졌다. 주희는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뛰어들었다. 뚝. 주희가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소리가 멈췄다.

남편이 놀란 얼굴로 주희를 바라보았다.

"여보, 집에 이제 온 거에요? 난 당신이 오늘도 안 올 줄 알고 얼마나 걱정..."

'아아, 안돼..."

남편은 뒷걸음쳤다.

"왜, 왜 그래요?"

남편은 베란다로 도망쳤다. 주희는 그런 남편을 따라갔다. 남편은 벌써 상반신을 베란다밖에 내밀고 있었다.

"아악, 안돼요! 여보!"

주희의 비명이 울렸다. 남편의 육신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주희는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그때 주희의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킥킥킥.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주희가 한 모든 일에 대한. 연지를 찾아가고, 현아의 영혼에게 용서를 빈일, 남편의 옛 애인에게 사과한일에 대한. 그들은 그렇게 주희를 비웃고 사라져버렸다.


연지가 죽었다. 부모들이 말릴 새도 없이 뛰어내렸다고 했다. 주희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20평 남짓한 아파트를 팔게 되었다.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어른들은 산 능선에는 집을 짓지 말라고 했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신의 길"이었다.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다니는 길이었기에, 인간이 그곳에 집을 짓고 살거나 잠을 자면 반드시 죽게 된다고. 그 능선처럼, 아파트 밑에서 흐르고 있는 개울도 그 "신의 길"이 아니었나하고 주희는 생각했다. 개발로 인해 그 개울을 막아버리면서,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것이 아닌가하고. 어쨌든, 주희는 다시는 행복동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주희는 때때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아를 괴롭힌 것은 모두 네 명이었다. 벌써 세 명의 아이가 죽었다. 아직 한명이 죽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주희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신문을 샅샅이 읽는 버릇이었다. 그것도 색연필이나 요지경 같은 토막기사를 읽고 스크랩하곤했다.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주희는 성적표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폭풍을 기다리는 섬주민처럼 초조한 심정으로 신문을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신문을 접고 한숨을 내쉬고는 스탠드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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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부가 끝났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앞으로 2부 마이스위트홈, 3부 푸른 수면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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