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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514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8.26 22:52
조회
464
추천
5
글자
10쪽

[공포]행복동 아파트(1.추락하는 사람들)-5

DUMMY

주희는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을 뒤척였다. 또다시 소음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말 못 참겠네. 내일은 꼭 얘기를 해야지."

주희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남편이 무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이 소리가 안 들려요?"

"정말이지 유난 맞네!"

남편이 화를 벌컥 냈다.

"이이는. 대체 왜 그래요? 이 이야기만 꺼내면 화부터 내고?"

남편은 입을 꼭 다물고 등을 돌렸다. 언제부터인가 남편과 대화하는 횟수가 줄었다. 그나마도 이렇게 소음을 두고 화를 내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주희는 무심코 말을 꺼냈다.

"오늘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거 있죠? 내가 죽은 애 빈소에서 돌아오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걸어 올라와야 했잖아요.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도 들렸고요. 그래서 올려다보니까 여러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거기까지 가보니까 여자애 하나만 우뚝 서있는 거 있죠?"

"잘못 봤겠지."

남편의 말끝이 미미하게 떨렸지만 주희는 무신경하게 받아넘겼다.

"아니에요. 잘못 본 게 아니에요.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봤는걸요."

남편의 등이 가늘게 떨렸다. 주희는 그런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코를 요란스럽게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위이이잉. 응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앞 주차장을 울려댔다. 마침 그날 새벽 아파트를 나서던 주민의 목격담에 의하면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왔는데, 화단에 무언가 희끄무레한 인형 같은 것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붉은 피 웅덩이가 화단의 흙에 고여 있었고, 희미한 피비린내가 맡아졌다. 불길한 예감에 달려가 보니 여고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누워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는 것이 이사건의 정황이었다. 자살 이유로는 성적문제나 이성문제, 따돌림 등 흔한 소재가 떠올랐지만, 이번 여학생은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목격자가 만일 자신이 아니라면 주희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흘려들었을 것이다. 주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켰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본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주희는 교통사고가 난 남동생의 시신을 직접 찾으러 가기도 했었고, 노숙자로 살다 떠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차 영안실에 들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는 순간을 직접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이 덜덜 떠는 주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 남자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주희가 고개를 올려다보았을 때, 남편도 주희처럼 심하게 떨고 있었다. 주희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직접 목격한 것은 자신이지 남편이 아니었다. 더더구나 주말자신은 어제 바로 그 학생을 계단에서 만났다. 비웃음을 머금고 있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하지만 경찰 진술서에서는 성가실 것 같아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직도 두개골의 잔해가 화단 곳곳에 흩뿌려져 있어서 수위와 경찰이 치우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어제 봤던 그 애에요."

주희가 중얼거렸다. 남편은 주희의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은 멍하니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온 거야."

남편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경찰에 말해야할까요?"

"....온 거야."

주희는 남편과 대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직도 지애의 빈자리에는 국화꽃이 올라 있었다.

"야 소식 들었어? 이번에도 또 사람이 죽었대."

"344동이야?"

"아니 이번에는 340동이래. 우리 학교 여자애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대."

"자살이래?"

"아마 그렇지 않을까?"

연지는 무심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하는 말을 흘려들었다. 어쨌든 자신이 사는 동에서 벌어진 일은 아닌데다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과는 하등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어제 재영이 갑작스럽게 전화를 끊은게 찜찜했지만, 언제든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그날 통화상태가 안좋았다거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거나했을 것이다. 그날 수업이 끝났을 때, 담임선생이 따로 연지를 부를 때까지만 해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재영이가 죽었단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너였다고 하던데. 뭐 따로 한말 없었니?"

경찰의 말에 연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냥...지애가 죽었냐고 묻는 전화였어요. 아마 학교에서 들었겠죠. 그래서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고요."

연지는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했다. 연지와 재영은 그저 같은 중학교 출신일 뿐,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정말 아무 말도 없었니?"

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돌아가고 난후, 주희는 연지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틀사이로 죽은 애들이 연지와 같은 중학교를 다닌 애들이었다. 경찰들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늘 업무가 과중했고, 인원은 항상 모자랐다. 여고생들의 자살이외에도 할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너...정말 괜찮니?"

연지는 갑자기 살갑게 대하는 담임을 경계하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주희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상하구나. 모두 너와 같은 학교출신이네. 정말 괜찮니?"

"가 봐도 되는 거죠?"

"그 게..."

"가볼게요."

연지는 휑하니 교무실을 나서버렸다.


주희는 가까스로 반상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최근 반상회에서는 불참한 사람에게 무거운 벌금을 매기고 있었다. 주희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들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4층부터 15층까지 사는 세대들이 한꺼번에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 사람들로 금세 북적거렸다.

"정말 무서워죽겠네."

수다스러운 여편네 하나가 먹고 있던 참외 씨를 튀기며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어떤 여학생이 자살했다면서요. 이곳에 사는 애도 아니었다면서."

몇 사람이 여편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지만 여편네는 둔감한 건지,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을 계속했다.

"여기 아파트가단지 터가 센가봐. 그거 알아요? 순이 엄마? 개발되기 전에는 여기 밑에 시내가 흘렀대. 사람 많이 빠져죽었다면서. 그래서인지 가끔 비오는 날에 하얀 소복 입은 여자가 나타나기도 한대. 지금도 그러나?"

"이 여편네가,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왜 꺼내!"

마침내 참다못해 단지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주책없는 여편네야. 그 입 못 다물어? 집값을 아주 떨어트리는구먼, 떨어트려."

할머니가 심하게 여자를 나무랐다. 여자는 샐쭉해져서 입이 튀어나왔지만, 아무도 노파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노파에게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반상회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 바람에 주희는 가끔씩 울리는 소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겨우 한층 차이라서 주희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계단을 올라가기로 했다. 또각또각. 딱딱 끊어지는 규칙적인 하이힐 소리였다. 주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헐렁한 샌들을 신은 주부들이 앞서서 걷는 것이 보였다. 주희는 소리가 들리는 아래층을 향해 바라보았다.

"저 죄송한데요. 김점례 씨 댁이 어딘지 아세요?"

아래층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라고 알고 있는데요."

"잘 모르겠는데요."

"왜그래요?"

앞서 걷던 여자 한 명이 주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주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집 찾는 사람인가봐. 김점례 씨 댁이 어디냐고 묻는데요."

"김점례 씨? 혹시 김 씨 할머니 이야기하는 거 아냐? 거기라면 1402호인데. "

"김씨 할머니?"

주희는 반문했다.

"왜 아까 그 할머니 있잖아. 혼자서 사는 할머니, 그 할머니 집이야."

아까의 그 수다스러운 여자가 끼어들었다.

"쳇. 그 말좀 했다고 어찌나 욕을 하는지 얼마나 무안했다고."

여자는 투덜거렸다.

"1402호군요.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불어 그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던 다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찾았네요."

"그러게요. 그 할망구...고생 꽤나 시키는군요."

여러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 혼자 산다는 할머니 집에 이렇게 많은 손님이 갈일이 있는 건가? 주희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야? 내가 보기엔 아무도 없던 것 같은데."

정민이 엄마가 수다스럽게 물어왔다. 주희는 무슨 소리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 아까 여자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아니? 난 못 들었는데."

정민이 엄마도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주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가지. 내가 잘못 들었나봐."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주희는 꿈을 꾸었다. 장마로 인해 개울이 심하게 불어나 있었다. 주희는 살려달라는 얼굴로 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련의 사람들이 둑 위에 죽 늘어서 있었지만 모두 차가운 얼굴로 주희를 쳐다보기만 했다.

"진작 죽을 것이지. 독한 기집애."

머리에 쪽을 진 여자하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도 너무하시지. 어떻게 저년의 어미한테 홀딱 넘어가셔서, 저애한테 전 재산을 모두 줄 수 있어?"

두루마리차림의 청년이 옆에서 마찬가지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년팔자에는 이것도 과분한 일이지. 어디 술집작부 딸년이 저렇게 곱게 죽겠어? 저런 년은 분명히 첩살이 할 년이야. 지 에미처럼 말이지. 그렇게 살다가 본처한테 맞아죽을 팔자라고."

댕기머리를 한 여자가 중얼거렸다.

"어여 가자. 점례야, 사람들이 오기 전에."

쪽진 여자가 댕기머리 여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곧 그들은 주희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비릿한 흙 내음이 물씬 풍기는 물이 주희의 입과 코로 밀려들어왔다. 고통스러웠다. 주희의 핏발 선 두 눈이 마지막까지 세 사람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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