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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군 님의 서재입니다.

괴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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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군
작품등록일 :
2023.05.10 10:30
최근연재일 :
2024.05.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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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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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206화

DUMMY

‘오라클’에게 어떤 규칙이 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예언을 한 이들의 업적과 이름은 반드시 그 내용과 함께 세상에 알렸다.


현무가 2명의 예언가에 대해서 아는 이유도 튜토리얼에서 그 이름을 항상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리안’이라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세례자’의 등장과 함께 그 힘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조사했다.


두 예언가가 그의 자식이라는 것도 그 조사에 의해 널리 알려진 정보였지만 ‘모리안’에 대한 것은 없었다.


괴인이라 배척받던 현무가 중요한 정보에 접근하기 쉽지는 않았으니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지구에서 소녀를 만나고 느낀 감각은 이 존재가 실제했을 거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고,



- 저도 가끔 아니, 자주 감각이 속삭이곤 해요. 세상이 감춘 이야기가 있다고.


‘페인’의 말이 떠오른 것도 그 순간이다.


그래서 튜토리얼의 기억을 계속해서 뒤적였다.


‘제정신이 아니던 시기의 기억은 존재조차 하지 않기에 무리지만....’


기술의 변화로 튜토리얼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더 쉬워진 상태였기에 잊고 있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의문을 가지고 끄집어낸 기억을 하나씩 살피자.


보고도 지나쳤던 혹은 들었음에도 어떤 의미도 두지 않았던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듀크 아키텍트가 몸에 지닌 세 개의 팔찌.


‘하나는 끊어져 손에 쥐고 있었지만, 세례자도 같은 것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 ‘세례자’와 접점이 많았던 ‘페인’에게 들었던 이야기,


‘세례자는..., 소중한 것을 잃었어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습니까.’


‘예, 그렇죠. 하지만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 기억이 저를 미치게 만들지만 잊을 생각은 없어요.’


‘....’


‘그러나 그는..., 그 기억마저 잃어버렸어요. 대신 남은 흔적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더군요. .... 이 증오스러운 감각이 아니었다면 저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라진 기억과 그것에 대한 흔적.


또, 특별한 자들이 과거와 미래를 보는 대가.


‘오라클’이 존재하기 전의 사례로 과거를 볼 경우에는 수면시간이 늘어나는 정도라고 알려졌다.


‘물론 추악한 이유로 감춰진 과거를 보다가 미쳐버리는 일이 파다했지만....’


미래의 경우엔 그 대가가 심했다.


대부분이 생명력의 급격한 소모를 동반하며 그로 인한 노화 또는 목숨 그 자체가 대가였으니.


2명의 예언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만 같은 무수한 예언을 했기에 그 이름은 ‘오라클’의 알 수 없는 규칙에 의해 끝없이 알려졌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 대가를 이미 누군가 지불한 것이라면?’


그들을 구한 날, 그리고 오늘도 얼굴을 본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 중 유독 ‘모리안’만이 몸이 불편했다.


그날 듀크 아키텍트를 비롯해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이들이 소녀를 걱정했고,


‘그 걱정 속에 미안함이 있었지. .... 그 소녀는 남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본인이 지불할 수 있는 거야.’


다시 듀크 아키텍트가 몸에 지닌 팔찌로 생각이 돌아간다.


아이들의 머리카락 색과 동일한 색의 팔찌들.


‘붉은색이 마하, 파란색이 바이브라면....’


현무가 그 목숨을 앗아가기 전까지 죽은 두 아이를 끌어안은 채 웃으며 절규하던 ‘세례자’.


그런 그가 죽은 이후에도 움켜쥐고 있던 끊어진 팔찌의 색은 소녀의 흑발과 같은 검은색이었다.




이제는 멀리서 감시하던 감시자가 숙소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이때였다.


- 똑똑.


“저어.., 풍류님? 지인이라는 분이 방문해도 괜찮은지 연락이 왔습니다만....”


‘지인...?’


“지인 말입니까?”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문을 열어 감시자에게 물었다.


“네! 그..., 결혼식이라고 하면 알 거라고....”


‘결혼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들은 그들뿐이다.


“.... 지인.., 맞습니다.”


“그럼 방문에 대해서는...?”


“알겠다고 전해주세요.”


“네!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


감시자는 방문에 대한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숙소에서 멀리 떨어졌고.


현무는 네 번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잠시 후.


현무의 지인이라 자칭한 이가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찾아온 지인, 프람을 안으로 들여보낸 후.


어깨에 앉아있는 사령을 문밖에 내려놓고 ‘안전지대’를 펼쳤다.


전에 방문한 이들과 다르게 프람과의 대화는 ‘교수’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령이 당황하는 모습을 무시하며 안전지대를 펼쳐도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프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일 거라 생각했냐고요?”


“네.”


“인형. 당신이 ‘테라’에 뿌린 인형들을 통해서 눈치챘습니다.”


“....”


“당연히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 감각이 속삭이더군요. 인형을 움직이는 마력이 기억에 있다는 것을.”


“그렇군요.”


“쉽게 믿으시는군요. 린드는 아무리 말해도 잘 믿지 못하던데?”


‘그럴 수밖에....’


감각이 속삭인다, 주장한다 등.


‘초감각’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튜토리얼에서 페인과의 만남을 피해 도망치다 잡힌 현무는 그 말을 정말 자주 들었다.


‘모리안’의 존재에 대한 실마리도 튜토리얼에서의 프람, 그러니까 ‘페인’이 했던 말을 통해서였으니까.


그렇다고 지금이 아닌 튜토리얼이라는 세상에서 만난 당신에게서 자주 들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


“프람님이 딱히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가요?”


현무의 대답에 감각적으로 뭔가 걸리는지 미심쩍게 바라보는 프람이었지만.


페인일 때처럼 추궁하지는 않았다.


“흠흠! 그래서 현무님은 잘 지내셨나요?”


“...잘 지냈습니다.”


“정말로 말입니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날카로워진, 튜토리얼의 페인에 가까운 눈매로 프람이 되물었다.


‘...같은 사람이니 똑같은 것은 당연한가.’


이런 대화도 어딘가 비슷했다.


현무가 잘 지내고 있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찾아올 때마다 질문했고 제대로 대답할 때까지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 실례했습니다!”


뒤틀리지 않은 프람은 곧바로 사과했지만.


그런 프람에게 다시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잘 지냈습니다. 감각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가장 부족했던 부분도 얻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잘 지내셨다니 다행입니다.”


“프람님은 어떻게?”


“저와 린드도 잘 지냈습니다. 현무님이 남기신 수련법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었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그 힘을 더 갈고 닦을 수도 있었지요.”


“‘테라’에 계신 것도...?”


“오션 웨이브 직전에 들어왔다가 지금까지 머물게 되어버렸지만, 본래 방랑사제와 수호기사가 정기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임무입니까?”


“네, 이미 인형을 통해서도 보셨듯이 ‘테라’ 남부의 정리가 저희의 정기적인 일입니다.”


“...처음 알았네요. 세상을 떠돌며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하하! 이 일도 그 일환의 하나입니다. 현무님, 방랑사제와 수호기사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모르겠군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다.


‘그러고 보니 항상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두 집단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얻을 방법이 있나?’


그 생각을 꿰뚫어 보듯 프람이 말했다.


“이곳에서 얻은 자원을 통해 확보합니다. 또, 남부의 정리를 돕는 일 자체가 소속원들의 단련이기도 하구요.”


“그럼 장비들도 이곳에서?”


“네, 방랑사제와 수호기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쭉 이어진 일이지요.”


“....”


“때문에 저희는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지요. 자급자족해서 얻은 걸로 남을 도우니까요.”


“후원은 아예 없는 겁니까?”


“.... 있기는 합니다만, 저희의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보답으로 하는 것 뿐입니다. 다른 조직이나 세력은....”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서 말은 필요 없었다.


그 뒤로도 프람과의 대화는 계속되었는데 별로 대단할 것 없는 대화에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도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예전보다는 선명해진 해가 저물 무렵까지 대화하던 중 프람이 생각났다는 듯이 외쳤다.


“그보다! 현무님에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


“린드가 임신한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어?”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자 그것이 큰 경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왜 현무에게 알리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축하의 말을 꺼냈다.


“축하드립니다.”


“모두 현무님 덕분입니다!”


“?”


앞선 말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아이를 가진 것은 두 사람의 결실이지, 그게 왜 현무 덕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을 느낀 듯 흥분을 가라앉힌 프람이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날 당신이 저희를 구해주었으니까요.”


한 점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 담긴 말이었고.


“린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노을이 창을 뚫고 들어와 감사를 전하는 프람을 감싼다.


그 모습이 눈이 부시고 어지러웠다.


프람은 린드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경위와 감사를 전한 후 다음에는 린드와 함께 오겠다며 돌아갔다.


‘.... 어지러워.’


머리가 어지러웠다.


감사 인사를 들었을 뿐인데 마치 거인의 주먹에라도 맞은 듯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왜...?”


평소라면 속으로 중얼거렸을 말들이 빠져나와 허공을 맴돌았다.


그저 감사 인사를 받았을 뿐이다.


튜토리얼과 달리 진짜 지구에서는 수 없이 많이 들은 감사였다.


“무슨 차이지...?”


진심의 차이?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목숨을 구해준 이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러니까 진심이 담겼나 안 담겼냐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멍하니 프람이 떠나간 탁자 앞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마지막 손님이 올 때까지.




- 통! 통!


생각에 빠져있던 현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안전지대’의 결계를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사방이 컴컴한 상태였고.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기억 속의 노신사가 서 있었다.


기억 속보다 강대한 힘을 가진 채.


“‘교수’....”


“정신을 차렸군. 생각에 깊이 빠져있어서 조금 기다렸다만, 이쪽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말일세. 결계를 치워주겠나?”


“그러죠.”


‘안전지대’를 거두자 ‘교수’보다 먼저 작은 사령이 뽀르르 달려와 어깨 위로 올라왔다.


“호오..., 자네가 제법 마음에 들었나 보군.”


“그런가요?”


“그리 보여도 성깔이 사나운 아이네.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내가 명령한 감시가 아니라 저주부터 퍼부었을 테지. 물론 자네에겐 큰 영향이 없었겠지만....”


“그렇군요.”


노신사와 대화를 나누며 어두운 숙소에 불을 밝히고 괜찮은 차를 찾아 끓였다.


- 스윽.


“고맙군.”


차를 놓기 전까지 현무를 뚫어져라 보던 노신사가 앞에 놓인 차에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 달그락.


찻잔을 들어 올리는 노신사의 방문은 예상한 바였다.


‘영안’과 ‘네크로맨시’가 없는 이상 볼 수 없는 혼을 붙여 감시했더니.


보는 것을 넘어 붙잡기까지 하는 존재를 가만히 둘 수 있을까?


그것도 영역을 중시하는 ‘네크로맨서’가?


하지만 진짜 정체 등을 물어 올 것을 각오하면서도 그의 도움은 필요했다.


프람과 린드가 속한 방랑사제와 수호기사가 그리 쉽게 당할 집단은 아니지만.


‘교수’가 사전에 방지한다면 어떤 피해도 없이 ‘오라클’의 수작을 막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만약 ‘교수’에게 상황을 전달하지 않았다가 프람과 린드가 다치기라고 했다면.... 끔찍하군.’


이제 막 잉태된 생명을 가진 이들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를 한 모금 마신 노신사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무슨 고민을 그리 오래 했나?”


“예?”


“어떤 고민이길래 그리 깊이 고민했냐고 물었네.”


“그....”


“말해보게. 보시다시피 내가 자네보다 훨씬 오래 산 연장자 아닌가? 연장자로서 젊은이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도 의무지.”


“....”


현무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어서 말해보게.”


그 재촉에 현무는 머뭇거리면서도 생각하던 것을 말했다.


“‘교수’님이 오기 전에 지인이 왔다 갔습니다.”


“그렇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가 끝나갈 즈음에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더군요.”


“음....”


“반려자가 임신한 사실을 저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기쁜 일이군. 그리고 그만큼 그 기쁨을 자네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고.”


“그.... 런가요?”


“그런걸세. 그래서? 자네의 진짜 고민은 다른 곳에 있지 않나?”


“.... 그게 제 덕분이라더군요.”


“혹시 두 사람의 사이를 맺어준 것이 자네인가?”


“아닙니다. .... 그저 결혼식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도와주었을 뿐입니다만....”


“그리고?”


“감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태 들어온 감사와 달리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가 어지럽더군요.”


“왜 그런 것 같나?”


“그걸 모르겠습니다.”


“아니, 자네는 알아.”


“....”


“자네의 삶과 관련이 있으니까.”


이상한 말이었다.


현무의 삶과 그 감사 인사에 무슨 상관이....


“정말 모르겠나? 자네로 인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으니 그런 거지.”


“아...!”


노신사의 지적이 옳았다.


현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하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인간이 아니다.


아무튼 그의 삶에는 오직,


“죽음 그 자체인 삶, 네크로맨서인 나보다 더 죽음과 가까운 것이 자네의 삶이었으니까.”


“!!!”


“놀라지 말게, ‘풍류’. 아니, 꿈에서처럼 ‘이름을 잃어버린 자’라 불러야 하나?”


“꿈....”


“그래, 꿈일세. 자네가 일부러 들려준 듀크와의 대화처럼, 나도 꿈을 보았지.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고 상처 입은 채 떠돌다, 사령의 땅을 자네와 함께 정화하던 꿈을....”


“....”


“고약한 악몽이지. 지금과 달리 끔찍한 일만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자네의 반응을 보면 진짜로 있었던 일 같군.”


노신사의 말처럼 혹시나 하고 듀크와의 대화를 사령에게 들려주었다.


‘그레이맨’과 ‘세례자’.


현무가 아는 것은 겨우 두 개의 사례지만 모두 튜토리얼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이들이었고.


사령의 땅이 된 일본을 목숨과 바꿔 정화한 ‘교수’의 영향력이 앞의 두 사람과 비교해 작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의 방문은 예상한 바였다.


정체를 추궁하러 혹은 꿈과 관련해서라도 반드시 올 테니.


그걸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은 전혀 몰랐지만.


“끔찍한 악몽 속의 자네보다 지금의 자네가 훨씬 보기 좋군. 차이라고 하면..., 그건가?”


“.... 그게 보입니까?”


“잘 숨긴 것 같지만, 보이네. 자네에게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것들이.”


“....”


“고생이 많았군. 빠르게 힘을 얻는 방법을 알면서도 그 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금의 힘을 쌓기까지 말이야.”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 할 것이 뭐가 있나? 모두 자네가 쌓아 올린 것들인데.”


“....”


- 후르륵...


남은 차를 다 마신 그가 일어선다.


“차, 잘 마셨네. 이만 가보지.”


“아, 저기....”


“아카데미 도서관에 가보게.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조처했으니 자유롭게 볼 수 있을걸세.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부족한 건 채워야지. 채워두면 언젠가 쓸 때가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하하! 아까도 말했듯이 감사할 것 없다니까. 고생한 자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일 뿐이니까!”


문으로 향하는 노신사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간다.


“아!”


문을 나서기 전, 노신사가 걸음을 멈추고 현무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여태 서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군!”


“.... 제 이름은 현무입니다. 현무(玄無).”


현무가 먼저 마력으로 문자까지 써 가며 이름을 밝히자.


“독특한 이름이군. 내 이름은 테오도르일세. 그럼, 현무. 또 만나도록 하지. 그때는 본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예. 다시 만나기를, 테오도르 교수님.”


튜토리얼에서도 몰랐던 이름까지 알고 난 후.


모든 용무가 끝났다는 듯이 테오도르는 문을 빠져나가 기다리고 있던 거대한 유령마에 올라탔고 금세 어두운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 퍼엉!!!!


- 펑!


그리고 테오도르가 사라진 밤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축제의 끝을 알리는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테라’에서 개최된 축제는 현무를 찾아온 마지막 손님이 떠나는 것과 함께 끝났다.



************



<소름 끼치는 존재야.>


거대한 유령마를 탄 채 밤하늘을 달리는 테오도르에게 밤하늘과 동화된 듯한 존재가 말을 걸었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해도 되나, 그림(Grim)?”


‘교수’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테오도르는 익숙한 듯 그 존재의 말을 받아쳤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네크로맨서보다 죽음에 밀접한 존재라고. 그것도 그 정점인 자네보다.>


“그랬지.”


꿈이나 현실이나 그 아이는 안타까울 정도로 죽음과 가까웠다.


테오도르의 수긍에 그림(Grim)이라 불린 존재가 이어서 말했다.


<근데 그 말은 틀렸어, 테오도르.>


“?”


<저것은 사신인 나보다 더 죽음과 가까운 존재야.>


“.... 그 말 꿈에서도 했었나?”


<흐흐흐, 궁금하나? 그럼 싱싱한 영혼 하나만 주게, 테오도르.>


“쯧!”


<흐흐흐! 장난일세, 테오도르. 자네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그랬지. 상처 때문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자네가, 죽을 자리로 일본이라는 섬나라에서 저 존재를 만났을 때 말이야.>


그림(Grim)의 대답에 테오도르가 중얼거렸다.


“꿈은..., 역시 있었던 일인가.”


<흐흐흐! 자네도 알지 않나, 테오도르! 항상 똑같은 꿈은 있을 수 없어!>


“그래, 그렇지....”


유일하게 보이는 해골가면을 일그러뜨리며 그림(Grim)은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끝이 다가오니 편하군. 아직 제약이 많지만 예전보다는 답답하지 않으니, 흐흐흐.>


그런 그림(Grim)에게 궁금했지만 여태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죽은 후 어떻게 되었나?”


<그건 모르네, 테오도르. 나는 자네가 책을 집은 순간부터 하나로 엮인 존재. 자네의 죽음과 함께 나 또한 죽음에 가까운 잠에 빠지니까.>


“음....”


<여태 망설이던 질문이 그거였나, 테오도르?>


그림(Grim)의 말에 대답하자면.


“아니, 정확히는 저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어.”


그런 테오도르에게 그림(Grim)의 얼굴이기도 한 해골가면이 가까워졌다.


<왜 그리 신경을 쓰나, 테오도르? 저번에 만난 작은 왕조차 이리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서.>


그림(Grim)이 말한 작은 왕은 ‘강령군주’라 불리는 아이였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알려주기 힘든 네크로맨서만의 단련을 위해 초청을 받아서 만났다.


그렇게 만난 아이는 누가 붙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 이름에 걸맞는 강력한 네크로맨서였고.


아직 불안정했으나 이미 완성된 길을 걷고 있었다.


몇 가지 조언만으로도 금세 길을 찾아갔기에 테오도르가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저 존재는 강하다네. 산 자면서도 사신보다 더 죽음에 가까운, 다른 존재의 죽음을 먹으며 강해지는 괴물이니까!>


“....”


꿈에서 그리고 실제로 만나서 본 것이 있기에 그림(Grim)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식인’이라는 금기를 범하지 않은 정도?


꿈과 달리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편한 길보다 많은 노력 끝에 지금의 힘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고.


테오도르는 그런 노력을 좋아했다.


“그림(Grim).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아도, 나는 처음부터 잘난 놈보다 조금 모자라도 노력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네! 자네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흥! 정말 이해하기 힘든 말이군!>


테오도르의 취향에 대해서 언제나 비꼬는 그림(Grim)이었기에 이해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림(Grim)의 말은 놀라웠다.


<하지만.... 자네의 말이 옳을지도 몰라. 저 존재는 나조차 소름 돋는 존재지만, 그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니까.>


“그림(Grim)!?”


<.... 빛이 거슬리는군. 나는 이만 책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테오도르.>


“이보게?!”


변명 아닌 변명과 함께 그림(Grim)이 사라졌다.


“허, 참! 자네가 내 말을 이해하는 날이 올 줄이야.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래도,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림(Grim)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테오도르도 그에게 주어진 장소에 도착했다.


‘묘지.’


세상이 엉망이 되면서 매장(埋葬)보다 화장(火葬)이 중요시되었지만.


‘테라’에서는 여전히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워 기일마다 이 묘지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테오도르는 그런 묘지를 지켰고 도움이 필요한 생도를 도왔다.


수십 년 동안, 한자리에서 그런 일을 하다보니 ‘묘지의 교수’라고 불렸고.


그것이 ‘교수’라는 명칭으로 굳어지며 정식으로 아카데미에 소속된 교수가 아님에도 아카데미 소속으로 여겨졌다.


‘그만한 영향도 끼칠 수 있고 말이지.’


묘지는 그가 없어도 다른 묘지기들이 관리했지만.


혼자서 수십 수백 명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테오도르만 못했다.


- 딱!


유령마를 책으로 돌려보낸 후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자 테오도르의 그림자에서 일꾼들이 나타나 다른 묘지기들이 지나친 부분들을 정리했다.


깔끔해진 묘지를 확인한 후 그의 집이기도 한 묘지관리소로 향했고.


집으로 들어가며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꿈에서처럼 그걸 만들어 볼까? 재료는....’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도 테오도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고.


현무는 꿈에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노력파였으니 보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부족한 건 주문하면 되고 필요한 건 시간인데, 언제까지 ‘테라’에 머무르지? 흠..., 이건 ‘작은 새(Small Bird)'를 통해서 물어봐야겠군.’


‘식인’이 아닌 방식으로 힘을 키운 현무에게는 이제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꼭 큰 도움이 되어야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 생각하며 테오도르는 기분이 저조했다가 다시 활력을 얻은 총관에게 연락했다.


축제의 마무리로 한창 바쁠 총관에게.


작가의말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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