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악령군 님의 서재입니다.

괴인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악령군
작품등록일 :
2023.05.10 10:30
최근연재일 :
2024.05.06 15:45
연재수 :
214 회
조회수 :
92,030
추천수 :
3,095
글자수 :
1,538,946

작성
24.03.04 15:45
조회
207
추천
10
글자
26쪽

189화

DUMMY

의견은 분분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명문이라는 자격과 함께 미다스가 포기한 것들이 자세히 알려진 점과.


블랙마켓과 마녀집회, 변절한 미다스의 상인들에 의해 벌어진 피해 전부를 미다스가 감당했기 때문이다.


미다스는 그 이름에 걸맞은 엄청난 자원을 세상 전체에 쏟아부었고 어떤 거래를 했는지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던 ‘마키나’의 힘까지 동원했기에.


세상은 오션 웨이브와 세 집단이 벌인 소란이 있기 전보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 ‘마력통신망’이 깔렸고.


작은 마을은 무리여도 규모가 있는 마을에는 ‘마력원’까지 설치되었다.


이 모든 일이 상왕이 생환하고 소란이 끝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이루어졌기에 사람들은 비난과 비판보다는 미다스를 칭찬하는 쪽으로 변해갔다.


소란 이전의 상왕은 암상에 비해 그 존재감이 떨어지는 존재였으나 현재의 변화를 이끌어낸 후로는 그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렸고.


상왕은 사람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었으니.


바로 세계 곳곳에 자리한 미다스의 지점들을 방문해 직접 점검하겠다고 발표한 것.


그런 상왕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한국이었다.


그녀의 생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미 많은 소문이 퍼졌기에 사람들은 당연한 행동이라고 보았고.


상왕은 엄청난 선물 행렬과 함께 한국의 신서울 지부를 찾아갔다.


표면적으로는.





“그래서 어디로 갔데요?”


“뭐가?”


“상왕이요.”


“알아서 뭐하게?”


“그래도 고생을 함께한 사이인데 선물만 달랑 보내고 사라진다는 것이 좀....”


“네 눈엔 저게 선물만 달랑 보낸 거로 보이냐?”


“.... 왕창 보내기는 했죠.”


한국 신서울 지부의 ‘화령부대’에게 새롭게 배정된 사무실에서 장한철과 김진태가 대화를 나누었다.


지부의 입구로 줄줄이 들어오는 엄청난 선물 행렬을 바라보면서.


장한철이 창가에서 물러나 넓은 사무실 중앙의 소파로 향하자 김진태가 따라가며 물었다.


“지부장님은요?”


“있지도 않은 상왕이랑 회의 중이지.”


“...근데 정말 대단하기는 하네요.”


“뭐가?”


“미다스 말입니다.”


김진태가 말하며 새롭게 배정된 사무실을 주욱 가리켰다.


“이거 다 새것이잖아요. 사무실만이 아니죠. 저희 전용으로 훈련실부터 회복실까지 싹 바꿔줬잖아요. 거기에 지금 들어오는 선물들까지.”


“.... 허울뿐인 조직이었어도 힘까지 가짜는 아닌 것이지. 또, 너도 그 보물고에서 얻은 것들을 함께 봤잖냐?”


“하긴....”


“그보다 넌 가서 훈련 안 하냐?”


소파에 앉은 장한철이 김진태의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충분히 익숙해진거야?”


“어..., 조금?”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유린이랑 연화는 오늘도 훈련실에 박혀서 훈련 중인데 너는!”


“이유가 있다구요! 그리고 형님은요?!”


“뭔 이유! 나는 이미 충분히 익숙해졌고 혹시나 지부장이 찾을 수도 있어서 대기하고 있는거지!”


“아, 정말 이유가 있다니까요!”


“...혹시 버겁냐?”


“그건 아니고....”


“그럼 가서 훈련해!”


장한철이 소리지르자 김진태가 미적대던 이유를 말했다.


“유린이랑 협의한 사항이에요!”


“...유린이랑? 왜?”


“저희가 얻은 장비말입니다. 이게 그러니까....”


“뭔데?”


“그...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


“같이 훈련을 하면 혼자 할때보다 이상하게 효과가 증폭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래서 저번에 훈련용 장비가 여럿 박살난 거구나.”


“예. 형님은 그, 연화랑 뭐 없었습니까?”


“흐음....”


김진태의 말에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다.


“있었지. 하지만 그것도 제어할 수 있어야지. 그러니까 약한 소리하지 말고 가서 훈련이나 해!”


“아니, 형님. 그래도 새 훈련장인데 벌써 박살내기에는....”


“그거 신경쓰지 말고 가서 훈련하라고. 너나 유린이나 가끔 이상한 곳에서 바보같이 행동하더라. 부대시설 새로 받을 때 지부장이 한 말 잊어먹었냐?”


“...?”


“잊어먹었구나....”


“....”


“앞으로 평생! ‘화령부대’에서 소비되는 모든 것은 미다스에서 감당한다! 그걸 어떻게 잊어먹어!”


“그랬어요?”


“어휴! 가서 유린이한테도 말하고 훈련이나 해!”


“네!”


- 후다닥!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김진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장한철은 한숨을 쉬었다.


“어휴.... 어떻게 사람이 변하지를 아니, 되려 멍청해졌냐?”


그리 중얼거리던 그는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김진태가 처음 물었던 상왕에 대해 떠올렸다.


엄청난 선물 행렬이 들어오는 지금으로부터 바로 하루 전.


지부장인 조연무와 장한철은 따로 상왕과 만났다.


원래는 저 행렬과 함께 도착하기로 했던 상왕이 홀로 두 사람을 만나러 온 것.


예전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그녀에겐 몸을 보호할 수단과 정말 강력한 호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 거래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연무와 장한철을 만나자마자 나온 상왕의 말이었고.


그녀가 말한 거래가 무엇인지 두 사람은 알았다.


주술사와의 거래로 얻은 황금패의 원주인.


일행을 도와주고 사라진 주술사는 보물고의 열쇠인 황금패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원주인에게 돌려달라고 했었다.


‘황금패의 원주인을 찾으신 겁니까?’


‘예.’


‘저희만 만나러 오신 건....’


‘죄송합니다. 이건 저와 미다스에도 중요한 일이라 이야기가 커지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도움은..., 그저 하루에서 이틀만 시간을 끌어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술사님은 아직도 ’환영미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말입니까?’


‘네. 그와 관련해서 다방면으로 조사했지만 혹시 지부에서는....’


‘세계정부가 거의 무용지물해진 지금 자세한 정보는 얻기 힘들지만 ’환영미궁‘에 두 달 넘게 머물렀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


‘....’


‘....’


잠시 침묵이 세 사람 사이에 내려 앉았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네. 말하신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함께 그곳에 다녀왔기에 상왕님이 가진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몸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두 사람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함과 동시에 회색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주술사는 아직도 미궁에 있고, 황금패의 주인은....”


‘한국에 있다라.’


말하지 않았지만 겨우 하루이틀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황금패의 원주인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상왕과 미다스에도 중요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황금패.


미다스가 자신들에게 큰 이득을 준 자에게 주는 패.


표면적으로 세상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다스가 인정할 정도의 큰 이득이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인정을 받고 황금패까지 소유했다면,


‘그리고 그 패를 어떤 소문도 없이 누군가에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존재일 것이 분명했다.


황금패를 거래했던 주술사의 태도로 보건데 강제로 빼앗은 것도 아닐테니까.


- 똑똑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계속 이어지던 장한철의 생각은 끊어졌다.


“...뭐야?”


“장한철 대장님? 계셨군요. 지부장님이 부르십니다.”


“지부장님이? .... 잠시만.”


소파에 파묻히듯이 앉느라 구겨졌던 옷을 피며 장한철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의논 하실 것이 있다고 밖에는....”


“...가지.”


‘의논이라..., 아직 상왕이 돌아오지 않았군.’


장한철과 조연무를 만난 상왕이 황금패의 원주인을 만나러 떠난 지 벌써 이틀.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전라도의 한 섬에 위치한 야가미의 대저택.


대저택의 별채 중 한 곳에서 게센은 작은 책자을 넘겨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별채는 아니었다.


처음 지을 때부터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주축돌 하나에까지 회복진이 새겨진 별채였고.


게센이 책자를 보는 바로 옆방에는 쿠즈노하 레이무가 잠들어 있었다.


귀기서린 검에 베이고 겨우 살아난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잠드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제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곳 별채에서 보내고 있었다.


“으음....”


책자를 넘기던 게센의 손이 레이무가 깨어나며 낸 소리에 멈췄다.


“일어났나?”


“게센? 내가 또 얼마나 잔 거죠?”


“...하루가 지났네.”


“....”


“불편한 곳은? 아니지, 우선 세이를 부르겠네.”


“고마워요. 세이는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


“게센.”


게센은 나지막히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미닫이 문을 젖히고 그녀를 바라봤다.


핏기가 없어 창백한 안색의 레이무가 문을 연 게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손님이 왔습니다. 아주 중요한 손님이요.”


“무슨 소리를....”


- 타다다다다!


자세히 묻기도 전에 빠른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고.


이어서,


- 드르륵!


“할아버지 손님이..., 할머니!!!”


- 와락!


문을 열어젖히며 세이가 들어와 손님의 방문을 알리더니 깨어나 있는 보고는 레이무에게 달려가 안겼다.


“잘 지냈니, 세이?”


“...네.”


“세이. 할머니는 괜찮으니 게센에게 전할 말을 끝내야지.”


“아! 맞다! 할아버지! 손님이 왔어요! 반드시 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면서요!”


“나를?”


“네!”


“흐음.... 알았다. 내가 나가보마.”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킬 생각이었던 게센이 문을 닫으면 방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보인 조손의 화목한 모습에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누구냐?”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으며 게센이 질문을 던지자,


“미다스의 상왕이 방문했습니다.”


그림자에서 불쑥 솟아난 이가 대답했다.


“상왕이? 방문한 이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게센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방으로 안내해라.”


“예!”


대답과 함께 사라지는 이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게센은 상왕이 안내되었을 방으로 향했다.


깨어난 레이무가 한 말을 제대로 묻기도 전에 그녀의 말처럼 세이가 손님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상왕이라.... 그 아이가 왜 나를 찾지?’


상왕을 아이 취급할 정도로 쿠즈노하 일가에게 말 한 것과는 달리 게센은 평범한 상인이 아니었다.


보고 있던 작은 책자를 다시 펼치며 놓친 정보가 있는지 확인한다.


작은 책자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은 야가미 가문의 닌자(忍者)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정보들이었고.


그곳에서 상왕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에 원하는 정보는 없었다.


‘그 아이가 날 찾아올 만한 이유는 없는데....’


- 손님이 왔습니다. 아주 중요한 손님이요.


레이무는 다짜고짜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상왕이 방문했다.


반드시 게센을 만나야겠다면서.


‘...만나보면 알겠지. 시덥지 않은 이유라면 돌려보내면 그만이고.’


생각의 마무리와 함께 명령을 내렸던 이가 상왕이 있을 방문 앞에 서 있다가,


“게센님이 도착하셨습니다.”


- 스르륵


게센의 도착을 알리며 조심히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 게센은 그를 기다리고 있던 상왕을 봤다.


어울리지 않는 회색 반가면, 고급스러운 옷과 허리에 주렁주렁 메달린 가방들.


예전 기억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기묘한 차림을 한 상왕이 그곳에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먼저 인사하는 상왕.


“그래. 오랜만이구나, 레인.”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며 게센이 자리에 앉았고 상왕도 그를 따라 자리에 앉자 그들의 앞에 놓인 작은 다탁 위로 차와 다과가 올라왔다.


- 후릅...


인사 후 조용히 차를 마시는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번에도 상왕이었다.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그 사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그런가....”


“예.”


“고생이 많았군.”


“....”


야가미의 닌자들이라도 알 수 없던 정보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게센은 덤덤히 상왕을 위로했고.


그 반응에 상왕은 침묵으로 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죽기 전 살길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보물고였겠군.”


“!!”


“그리 쳐다볼 필요없네.”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하지만 내가 미다스를 떠나기 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을 뿐이야.”


“...곳곳에 힌트를 남겼던 거군요. 그것도 모르고 전....”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난 자네에게 그 정도로 정을 줬다는 것에 놀랐네.”


“그렇죠. 저도 놀랐으니까요.”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고.


슬슬 어째서 찾아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게센이 입을 열려는 찰나 또다시 상왕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러면 이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 탁!


그녀의 질문과 함께 다탁 위에 올려진 물건.


그걸 확인한 게센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걸 어디서 났지?”


눈처럼 목소리와 기세마저 변한 게센을 따라 주변의 그림자들이 요동쳤다.


분명 밖은 해가 떠 있고 방 안도 밝은데 그림자가 주변을 잠식하고 어두워진다.


명백한 이상사태에도 상왕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거래를 했습니다.”


“거래? 말장난은 집어치우지.”


싸늘한 게센의 말에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움직인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정말로 거래를 했습니다.”


“...상세히.”


“어르신도 아실 겁니다. 그 사람이 쉽게 보물고를 주지는 않았다는 것을.”


“.... 그렇겠지.”


“황금패는 보물고로 가기 위한 증표이자 문을 열기 위한 열쇠였습니다.”


“....”


“하지만 저는 몰랐죠. 겨우 몸뚱이만 건사한 채 그 사람이 남긴 메시지를 따라 살기 위해 움직였으니까요.”


“신서울 지부의 도움만 있던 것이 아니었군.”


“네. 황금패를 가지고 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저희를 도와준 사람이죠. 어르신도 아실 겁니다. 참쇄의 주술사라는 이름을.”


“참쇄의 주술사라....”


‘주술사? 분명 그는....’


“그가 거래를 하자고 했습니다. 이 황금패를 줄테니 혹시 보물고를 모두 열고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원주인에게 전해달라고.”


“.... 내 흔적은 모두 지웠을텐데?”


“그래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변절자들이 일부 정보를 없애버린 탓도 있었구요.”


“그래서 이걸 전해주러 왔다?”


“처음에는 그 생각뿐이었지만....”


“지만?”


- 슥


게센의 반문에 상왕이 자세를 고친다.


양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그녀가 말했다.


“도와주세요, 어르신. 아니 은상(隱商)님.”


은상(隱商).


미다스가 표면적인 이유를 위해 만든 직위.


미다스가 변심하지 않도록, 블랙마켓의 힘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견제하는.


그 이름처럼 존재하지 않는 상인들.


그리고 그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주어진 직위.


“.... 난 이미 은퇴한 몸이야. 더는 미다스와 블랙마켓의 일에는 관련되고 싶지 않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떠난 사실을 안 뒤로 변절자들이 급증했습니다!”


“분명 후임을 남겨두었지 않나.”


“...죽었습니다. 그 이전에 그로부터 정보가 새어나가 변절자들이 나타난 것이구요.”


“그 놈이? 쯧! 내가 사람을 잘 못 봤구나. 그러니 더욱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패는 잘 받았네. 용무가 끝났으면 이제...”


- 타다닥!


상왕을 돌려보내려는 순간 다급한 걸음이 가까워졌다.


어느새 상왕에게서 물러났던 그림자들도 웅성거리듯 꿈틀거리더니 방 앞에 서 있었던 이가 튀어나오고.


그와 동시에 방 문이 열리며 세이가 들어와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게센님. 쿠즈노하님이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뭐라고...?”


그 소리에 게센은 상왕도 잊고 세이와 함께 레이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세이?!”


“모, 모르겠어요. 하, 할머니랑 이야, 이야기 중이었는데. 가, 갑자기!”


“울지마라, 울지말거라. 세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레이에게도 어서 연락을 보내!”


주변의 그림자에게 호통을 치며 세이와 함께 움직인 게센.


방에 도착하자 그림자들이 이미 의사들을 데려온 상태였다.


“어떤가?”


신중하게 진찰을 하고 있는 의사에게 물었다.


정신을 잃은 레이무의 자세를 바로하고 진찰을 하던 의사 중 대표인 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하신 겁니다.”


“왜,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걸 묻는 것이 아니지 않나!”


“....”


물은 것과는 상관없는 답을 해놓고는 침묵하는 의사를 지나쳐 세이가 레이무의 곁으로 향했고 게센은 의사들의 대표를 조용히 노려봤다.


게센의 눈빛에 의사가 식은땀을 흘렸지만 정말로 가망이 없는 듯 희망적인 말을 꺼내지는 않았고.


그 모습에 게센도 의사들이 정말 최선을 다했음을 깨닫고 맥이 풀렸다.


- 풀썩!


“게센님!”


“할아버지!!!”


맥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는 게센의 모습에 주변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레, 레이에게 연락은?”


“했습니다. 지금 연락을 듣자마자 오고 있습니다.”


“그, 그래.... 후우... 의사양반.”


“...네.”


“정말, 정말 깨어날 가망이 없는거요?”


“안타깝게도....”


“허어.... 이리,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게센의 눈이 레이무에게 향했다.


더욱 창백해진 그녀에게서 마치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환영이 보인다.


알고는 있었다.


현무라 불리는 능력자 덕분에 살아나긴 했으나 그녀가 살 날이 얼마되지 않음을.


‘그래도 아이들에게 작별의 시간은 있을 줄 알았건만....’


생각이 과거로 향한다.


은상으로 활약하던 게센은 쿠즈노하 레이무의 남편이던 친구의 부름을 받아 찾아갔다.


한창 블랙마켓을 엿먹이는 일에 대한 재미로 열정적으로 미다스에서 일하던 시절.


‘내가 죽거든. 아내와 아이를 부탁하네.’


‘뭔 개소린가?’


‘약속해주게.’


‘아, 뭔 개소리냐니까!’


‘난 곧 죽네.’


‘이런 미친놈이!’


‘그러니 믿을 수 있는 자네에게 부탁하네.’


친구는 갑자기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야! 이 미친놈아! 살 생각을 해야지! 죽을 생각을 왜 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녀와 결혼하며 내가 짊어지기로 한 일이니까.’


‘설마..., 하지만 그건 분명!’


‘사라졌다고? 아닐세.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짊어졌지. 그리고....’


- 깡!!


곧 죽는다는 말을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모루를 힘껏 내려치며 웃는다.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야.’


‘자네!’


‘그러니 부탁하네.’


그 말을 듣고 얼마 뒤 친구는 정말로 죽었다.


게센은 친구의 부탁을 이루어주기 위해 쿠즈노하의 남은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레이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사카에서 떠날 생각이 없었고 그 아들이자 레이와 세이의 아버지였던 녀석조차 고집이 강했다.


게센은 한창 바쁘던 와중에도 틈틈히 쿠즈노하에 신경을 썼지만 블랙마켓과 싸우는 일은 약간의 방심으로도 죽음에 연결되는 일이었고.


미다스 내부의 감찰도 다른 이들의 미움을 받는 일이다보니 오히려 게센이 그들과 거리를 벌리는 것이 쿠즈노하의 안전을 위하는 일이 됐다.


문제는 그렇게 눈과 거리를 벌린 사이 레이와 세이의 부모가 죽었고 쿠즈노하에 대한 취급이 심해졌다는 것.


그 사실을 안 후.


가문의 닌자들까지 동원해 블랙마켓과 미다스의 일을 처리하던 게센은 모든 열정이 식어버렸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오사카에 만물상을 차린 채 쿠즈노하의 곁을 지켰지만.


‘결국 이리 되었구나. 미안하네....’


- 주르륵...


주름진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아직 살아있으나 곧 죽을 레이무를 바라보는 게센의 귀로 상왕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어르신. 거래를 하죠.”


“....”


“어르신.”


“말하게.”


“제게 저 분을 살릴 약이 있습니다.”


‘나랑 일하나 같이하지.’


그런 상왕의 목소리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겹치듯 들렸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힘 없이 풀렸던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상왕을 보았다.


다시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회색 반가면이 그 자를 떠올리게 한다.


“...닮았군. 그 자의 핏줄이 맞긴 했구나.”


“....”


“거짓은 아니겠지?”


“예. 제가 얻은 보물 중에는 분명 저 분을 살릴 약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거면 된다. 그래서 어떤 거래를 원하지?”


“저는 약을, 어르신은 다시 한번 미다스에 힘을.”


게센이 답하기 전.


- 쾅!


별채의 담벼락을 부수고 쿠즈노하 레이무가 있는 방까지 일직선으로 세 사람이 달려왔다.


“세이! 할머니는?!”


“이게 뭔 상황이야?”


“눈 부셔.”


이제는 은회색으로 빛나는 꼬리 아홉의 여우 수호령에 감싸인 레이와.


가벼운 언행과는 달리 쌍검을 꺼내든 이세진.


그 뒤에서 장궁을 겨누는 야가미 사야까지.


“무기 내려요!”


“왜?”


“세이. 선빵필승. 중요.”


“적이 아니니까 무기 내려요!”


“그런가?”


“....”


세이의 외침에 쌍검을 수습하는 이세진과 대답없이 모습을 지운 야가미 사야가 훌쩍 세이의 곁에 나타났다.


“세이, 할머니의 상태는?”


“갑자기 정신을 잃으셨어. 근데....”


“말해.”


“이제 가망이 없다고....”


“그래.... 그런데 이쪽은?”


레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게센이 했다.


“거래를 하자고 하더구나.”


“거래요? 설마....”


“그래, 레이무의 목숨을 연장할 약이 있다고 말이야.”


“....”


일순 레이의 몸에서 사기가 뿜어지려다 자취를 감췄다.


“후우..., 거래 내용은요?”


“내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너희가 레이무와 작별인사를 할 정도의 시간만 벌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래지만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


게센의 말에 여태 조용하던 상왕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장담은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원하시는 것이 저분의 영생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쿠즈노하 레이무가 지금껏 살아있던 것도 기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우선 약을 확인해보시죠.”


상왕이 허리에 주렁주렁 메달린 가방 중 하나에서 약이 담긴 병을 꺼내 내밀었고.


게센의 손짓에 그림자 중 일부가 빠르게 감정을 마치고 가져왔다.



[아이템 : 미완성된 부활포션

-1. 죽은 자를 생전의 모습 그대로 되살리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미완성에 그친 포션.

-2. 비록 미완성에 그쳤지만 그 효과는 아직 수명이 남은 자의 삶을 늘려주고 죽은 자에겐 하루의 시간을 부여한다. (수명 증가, 사망유예)

-3. 미완성이기에 효과의 적용이 랜덤하고 약간의 부작용이 존재할 수 있다. (사용 대상에 따른 효과가 무작위로 적용, 부작용도 무작위 적용)

-4. 수명을 늘리고 죽음을 미룰 수는 있어도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사용 시 늘어난 수명, 하루의 시간이 다하는 순간 무슨 짓을 해도 반드시 죽는다.)

-5.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기에. ]



감정 내용은 하나하나가 파격적이었다.


“이걸 준다는 말인가?”


“네.”


“이런 약이 더 있나?”


“아니요. 안타깝게도 그것 하나뿐입니다.”


“하긴 그 자가 생명줄을 여럿 남겼을리 없지.”


“그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몸을 지킬 수 있게 되었기에 거래의 대상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너희 생각은 어떠냐?”


“난 사용하고 싶어요.”


“....”


세이는 바로 답했고 레이는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뭘 고민하냐?>


생각에 잠긴 레이에게 여태 잠잠하던 헤티나 칼리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선생님.”


<인사도 없이 보낼 거야?>


“후우.... 잘 모르겠어요.”


“무슨 소리야, 오빠?”


“난 그 날 이미 인사를 끝낸 걸지도 몰라.”


<....>


“오빠....”


“세이. 할머니와 인사를 했니?”


“그, 그게 좀 이상한 소리를 하시기는 하셨어. 앞으로도 오빠랑 사이좋게 지내고 게센 할아버지한테 감사하며 살라고. 또, 또.....”


“인사를 했구나. 그런데도 저 약을 사용하고 싶니?”


“....”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약이야. 그런데도 사용해야 할까?”


<칫! 아직 어린 놈이 뭔 생각이 그리 많아!>


“선생님. 사령술을 익혀서 그런가. 그냥..., 그냥 그러네요.”


레이의 말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제 청년이 된, 강령군주라 불리며 막강한 사령술을 사용하는 자의 말은 무거웠다.


“콜록! 콜록! 레..이...?”


“할머니?!”


“할머니!”


“레이무!! 정신이 들었나?!”


기침과 함께 쿠즈노하 레이무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그때다.


“레이..., 많이 컸구나.”


“할머니.”


“세이도 많이 컸어.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어느새 모두 커버렸구나.”


“할머니이....”


“게센, 고맙네. 정말 고마워.”


“레이무, 난....”


“여러분도 정말 고맙습니다.”


“....”


“....”


“레이, 세이. 거인이 올 거다. 모든 것을 부수고 망가뜨리는....”


““할머니?!””


“그리고 거인을 .... 위해 모두에게 ....자가 ..... 그 사람을 잊지.... 우리를 구해준.... 그 ㅅ람.... 아아... 부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정신을 차리고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던 쿠즈노하 레이무는 예언과도 같은 마지막 말과 함께 영원한 잠에 들었고.


““할머니!!!””


그날 야가미 가문은 은밀히 가문의 모든 인원을 소집했다.


뿐만 아니라 쿠즈노하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도 소식이 전달되었으며 조용히 쿠즈노하 레이무의 장례가 치러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괴인전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70화 기준 주인공 상태 및 기술 현황 24.02.05 217 0 -
공지 비정기 연재로 바꿉니다. +1 23.09.04 115 0 -
공지 연재 시간은 오후 3시 45분 입니다. 23.08.15 952 0 -
214 209화 - 내용추가 24.05.06 105 9 20쪽
213 208화 +1 24.04.30 120 10 17쪽
212 207화 24.04.23 126 9 14쪽
211 206화 +1 24.04.20 135 10 23쪽
210 205화 24.04.17 138 10 15쪽
209 204화 24.04.15 142 7 13쪽
208 203화 24.04.13 143 8 14쪽
207 202화 24.04.11 143 10 13쪽
206 201화 +1 24.04.06 152 11 14쪽
205 200화 +2 24.04.02 169 11 16쪽
204 199화 24.03.29 170 12 15쪽
203 198화 24.03.26 166 10 14쪽
202 197화 +1 24.03.25 161 10 14쪽
201 196화 +2 24.03.22 170 10 15쪽
200 195화 24.03.20 173 12 16쪽
199 194화 24.03.19 166 11 15쪽
198 193화 +1 24.03.15 181 12 14쪽
197 192화 24.03.14 178 11 14쪽
196 191화 24.03.12 186 11 21쪽
195 190화 +1 24.03.07 211 10 14쪽
» 189화 24.03.04 208 10 26쪽
193 188화 24.03.02 205 12 15쪽
192 187화 +2 24.02.28 202 12 13쪽
191 186화 +1 24.02.23 206 12 14쪽
190 185화 24.02.20 202 11 16쪽
189 184화 24.02.15 222 11 13쪽
188 183화 24.02.14 195 13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