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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렉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쉬렉
작품등록일 :
2019.04.21 10:45
최근연재일 :
2020.05.14 09:32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826
추천수 :
9
글자수 :
255,461

작성
19.05.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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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부_21 사라진 사체

DUMMY

부르르


통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조민이었다.


-- 네


-- 집이 아니에요? 지금 집 앞인데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서.


-- 집이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젖먹던 힘까지 짜보려 했지만, 결국 일어설 수가 없어 출입문까지 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문의 문고리를 잡고 겨우 일어섰지만 걷을 수 없을 정도로 휘청거렸다.


철컥


바닥을 드러낸 기력 탓인지 문고리를 잡은 손을 부들거리며 간신히 문을 열자 문틈 사이로 조민의 얼굴이 보였다.


버티고 서있는 것조차 버거워 인사도 못 건네고 있는 초췌한 내 몰골에 놀란 조민의 커다란 눈이 더욱 동그래졌다.


“왜 그래요? 괜찮아요?”


“기운이 없어서 그래요. 나 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나를 부축해 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침대에 누우니 그대로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듯 몸뚱이가 축 늘어져 버렸다.


“끼니는 제때 챙긴 거예요? 잠은 확실히 제대로 못 잔 얼굴이네. 흐음..”


한숨을 길게 내쉬던 그는 주방으로 향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 조민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섰다.


“죽 끓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그를 보자 안도감이 밀려오며 눈동자엔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줄기가 되어 내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방울을 본 조민은 당혹스럽고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는 지성인답게 별무리가 괜찮을 거라는 알맹이 없는 위안은 하지 않았다.


“아직 새로운 소식 없지요?”


“네. 방송 탄 이후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어요.”


누군가의 추격을 받던 형사가 부상 당한 채 도주하는 영상이 공개된 후 주변 수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낚시터 저수지에 투입된 잠수부원 중 한 명이 별무리의 신분증이 들어있는 점퍼를 물속 바위틈에서 발견했다.


“그 점퍼 오빠 거 맞아요. 내가 선물해준 점퍼예요.”


방송에서는 점퍼 주머니에서 신분증이 나왔다는 이유로 별무리의 점퍼로 추정되는 점퍼라고 발표했지만, 그 점퍼는 오빠 것이 확실하다.


내가 그 점퍼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가 직접 구입해서 내 손으로 입혀 주었던 점퍼였으니까.


하필이면 마음 아프게 사고 당일 오빠는 그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저수지가 넓다고는 해도 벌써 이틀째 수색 중인데..”


다음 말은 차마 이을 수가 없었다.


3명의 잠수부원이 벌써 이틀 동안 수색 중이었지만 신분증이 있는 점퍼만 건졌을 뿐 그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그 정도 수색을 했는데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건 저수지에는 홍 형사님..”


그도 차마 내 앞에서 홍은하의 사체라는 말을 언급할 수는 없었다.


“여태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건 그 장소에는 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봐야 줘.. 아! 참..”


끓이고 있는 죽이 떠오른 것인지 그는 부리나케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솜씨 좋게 죽까지 끓여 온 조민은 입에까지 떠넣을 기세였다.


“혼자 먹을 수 있어요.”


그건 마음뿐이었다. 대체 사람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급작스럽게 쇠할 수 있는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베개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조차 힘에 겨웠고 숟가락을 들어 올리던 팔은 뜻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들어 올리던 숟가락을 내려놓자 조민이 내 손에서 빼앗은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내 입속에 넣었다.


“후딱 먹고 치웁시다. 잠을 못 자서 몰골이 말이 아니에요. 얼른 먹고 눈 좀 붙여요.”


그의 말대로 어서 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됐고 잠시나마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


비록 악몽에 시달릴지라도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단했다.


마지막 죽 숟갈을 받아먹은 후 난 깊은 나락으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소음에 눈을 뜨자 여전히 방안은 깜깜했지만 나를 위한 조민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린 애처럼 놀라 당황할 날 위해 조민이 스탠드 불빛을 밝혀 놓았다.


“대체 몇 시가 된 거야?”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탈진한 몸뚱이는 여전히 내 것이 아닌 양 주인의 지시를 외면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생수병조차 제대로 건사를 못하고 떨어뜨렸다.


“일어났어요?”


물병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조민이 달려와 나를 부축해 앉혔다.


“지금부터 주는 대로 열심히 받아먹어요. 안 그러면 낼 병원 가서 링거 맞힐 거니까.”


피식


그 목소리가 하도 비장해서 그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이런 처지에도 웃음이 나오고.’


“혹시 경찰청에 연락해 봤어요? 새로운 소식 있데요?”


“동료 형사와 통화했는데..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어요.”


조민과 지금까지의 사건 일지에 관한 이런저런 잡담이 오간 후 난 다시 눈을 감았다.


꽤 오랜 시간 잠을 청했던 것 같은데 또다시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렇게 속절없이 4일이란 시간이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흘러가 버렸지만 내 남자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건은 점차 미궁에 빠지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조민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다녀왔다.


“원만하게 처리돼서 다행이네요.”


며칠 병가를 내려던 나는 잘릴 각오로 휴직계를 내던졌다. 회사 출퇴근 행위는 더 이상 내게 무의미했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을 건 불 보듯 뻔했고 출근 후 하루하루가 지옥일 게 틀림없었다.


속이 시원했다.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그나마 숨통이 트이자 살 것 같았다.


“나도 당분간 백수되고 싶다.. 완전 부럽네.”


피식


“낼부터 회사 출근 안 해도 된다 생각하니까 힘도 솟고 정말 밥맛도 도네요.”


“그럼 외식하고 들어갈까요?”


“네. 집에 가야 먹을 것도 없어요.”


“근데 앞으로 뭐 하려고 병가가 아닌 휴직계를 던지고 나온 거예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근데.. 오빠.. 시신이 발견 안 돼서 실종 처리 상태잖아요. 그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실은.. 문성열 검사님께서 은밀하게 조사 중이세요. 조만간 사건의 윤곽이나 배후를 캐낼 수 있을 겁니다.”


“오빤.. 살아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놈들이 낚시터에서 살인 후 시신을 다른 데로 유기한 걸까요?”


입에 담기조차 두려웠던 시신이란 단어를 이젠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을 정도의 강단이 생겼다.


꼴통 홍은하의 여친으로 살아온 반년간 저절로 체득된 내공이라고나 할까..


“흐음.. 어느 것 하나 단정 지을 수가 없네요. 현 시점에서는..”


그랬다.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내 남자의 운명인지도 알 수 없었고, 살아있다면 대체 어디로 잠적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잠적도 아니라면 지금 그는 납치된 것일까?


혼돈 속 블랙홀에 빠진 그의 실종사건은 단서 하나 없는 상태로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조금씩 알아보고 싶었다. 대체 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문득 그가 휴게소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빠 멋져질까?”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말이 ‘오빠 사고 칠까?’로 들린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사고 칠 준비를 하고 있던 그가 실종됐다. 아니 어쩌면 납치됐을 수도 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당장 아무것도 없는데 내 의지만큼은 활화산의 분화구만큼이나 뜨거웠다.


내 남자의 흔적을 추적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 상상은 무모한 결단력을 생성시켰다. 마침내 휴직계를 내던지는 용기로 발전했고 드디어 난 잠정적 백수가 되어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네?”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제가 수행할 수 있을까요? 심각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민간인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지금 시점에선.”


난 그냥 민간인이 아니다. 사라진 내 남자의 여친이다. 그리고 유능한 해커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남들이 깜짝 놀라 다시 쳐다보는 유능한 해커인 내가 파헤칠 수 있는 쥐똥만한 사건 해결의 실마리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을 추적하는 시도. 그것이 그렇게 불가능한 도전일까?


난 그간 해온 업무 특성을 살려 사건의 프로파일링을 해 보기로 작심했다. 내 남자를 찾기 위해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방법을 나만이라도 덤벼 볼 예정이다.


“그 표정 뭔가 묘하네.”


“조민씨.. 나 멋져질까요?”


그는 내 얼굴이 뚫어지도록 빤히 쳐다보았다.


“그 얘긴 마치 나 사고 칠지도 몰라요, 로 들리는데요.”


“푸후후훗.”


“그 말이 그렇게 우스워요?”


당근 우습고말고. 사람 머리가 다 거기서 거긴가 보다. 어찌 그렇게 생각하는 게 판박일까?


“저희가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뭉쳐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사람 생각이 다 비슷한 걸까요?”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사실 그 말.. 오빠가 제게 했던 말이에요. 당시 들을 때도 내 귀엔 오빠 조만간 사고칠 거다, 로 들렸는데.. 푸훗. 조민씨도 같은 생각을 하네요.”


“흐음.. 그랬구나.”


조민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무모한 작심에 나도 동참할까요?”


무심하게 툭 던진 그 이야기가 신소리가 아님은 그의 진중한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당신까지 이 이판사판 뒷조사에 끌어들이고 싶진 않아요. 그러다 정직은 애교로 당하고 오지게 재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면 옷을 벗을 수도 있어요.”


“나, 옷 벗어도 오라는 데 많아요. 푸훗.”


하긴.. 능력 있는 사람인데 잘리는 게 대수는 아니지. 내 남자가 잘리면 경비업체 취직해야 하는 처진 거지.


잘리기도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고를 당한 박복한 불운아가 돼버렸지만.


“일단 내가 먼저 후배인 김 형사님을 만나 볼게요. 내부인들만 알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캐볼겸..”


예상외로 조민이 적극적으로 돌변하자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의 똘똘한 눈망울과 마주치자 당혹감은 이내 든든함으로 변신 중.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나도 뒤쫓기 힘들 만큼 머릿속이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이었다.


“전..”


덜컥 휴직까지 했지만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일도 잡히질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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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부_26 강아지녀의 등장 19.05.11 4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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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부_23 측전무후와의 첫 만남 19.05.08 39 0 10쪽
22 1부_22 내 남자의 흔적 쫓기 19.05.07 32 0 11쪽
» 1부_21 사라진 사체 19.05.07 47 0 11쪽
20 1부_20 다시 사라진 내 남자 19.05.06 46 0 11쪽
19 목을 조여오던 긴박함 19.05.06 30 0 10쪽
18 고속도로 위의 추격자 19.05.05 34 0 11쪽
17 안타까움의 다른 표현 19.05.05 34 0 11쪽
16 내 마음 속 영웅들 19.05.04 39 0 11쪽
15 내 남자는 무사할 수 있을까? 19.05.04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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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열려라, 뒷문 19.05.02 41 1 12쪽
12 날아가는 거 전문인 검사와 형사 19.05.01 45 1 12쪽
11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19.05.01 43 0 9쪽
10 내 남자가 사라지기 한 달 전 19.04.29 46 0 12쪽
9 벗겨진 양파 껍질 19.04.28 46 0 12쪽
8 편하게 고기 먹던 인연, 문성열 19.04.27 42 0 10쪽
7 뜬금포 MOON 19.04.26 47 0 10쪽
6 매정한 수컷들 19.04.25 70 0 10쪽
5 요상한 프레임 19.04.24 72 1 12쪽
4 예상 밖의 전개 19.04.23 69 1 11쪽
3 또 다른 침입자 19.04.22 87 1 10쪽
2 예쁜 남자, 조민 19.04.22 109 1 10쪽
1 실종된 지 2주째 +2 19.04.21 2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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