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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렉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쉬렉
작품등록일 :
2019.04.21 10:45
최근연재일 :
2020.05.14 09:32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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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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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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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벗겨진 양파 껍질

DUMMY

“그 두 사람만 특이한 건 아니지. 너도 별종이잖아. 푸흐흐.”


하긴 나도 정상 범주에 드는 부류는 아니지.


비록 침입자 사망 사건 피의자 혐의는 벗었지만,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나의 과거사는 엽기적인 성장 과정 왜곡이라는 오명을 쓰며 심리상담 권고를 받았다.


사실 그런 연극을 하며 산 이유는 단순했다. 난 희준이처럼 초딩 때부터 대치동, 미래탐사에 끌려다니며 처참한 어린 괴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얼큰하게 취해 귀가한 새벽 1시 반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희준이를 본 후, 엄마에게 했던 질문은 내 인생을 연극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새벽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괴물은 대체 누구니? 무슨 어린 애가 벌써 새벽까지 끌려다녀..”


“보람이 친구, 영재야. 보람이도 영특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데 내년에 영재 테스트 받아 볼까?”


엄마의 그 발언 이후 나는 나의 삶을 코디네이트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내게는 그 결정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여겨졌다. 희준이처럼 살다간 죽을 것 같았으니까.


“참, 심리상담은 받을 거야?”


“내가 유죈데 심신미약으로 형량 판결받아야 하는 거 아니잖아. 무슨 심리상담까지.”


그러나 어쩌다 보니 난 심리상담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골 때리는 이상한 미모의 여박사님에게.



수요일, 심리상담 일정이 있는 날.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박사님 곧 오실 거예요.”


“네.”


또각또각


방 안에서도 오만이 가득 실린 시건방 워킹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후.. 정말 들을 때마다 거슬려. 대체 저 킬힐은 왜 신고 연구원을 돌아다니는 거야? 꼬실만한 동료 박사도 눈에 띄지않는구만.”


어김없이 오늘도 저 오만 덩어리가 킬힐을 또각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뻑 등신..


내 케이스가 검증도 어려운 해리성 정체감 장애급이라고 우기는 미친년이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강보람씨를 만나고 있는 거 같네요.”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언제 강보람이 아닌 적이 있었니!’


나를 삼등분해서 분석하고 각각의 개체로 부르고 있는 건 저 오만 덩어리가 즐겨 하는 일이다.


내 실체와는 전혀 무관한 사실이건만.


여성스러운 흰 원피스와 머리핀을 꽂은 단정한 머리를 보고는 혼자 또 자뻑 상상 중인 것 같다.


미친년...


정체감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건 내가 아니고 너야... 사실 나도 정체감 장애는 아니지만.


맞은편에 자리 잡은 나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오만 덩어리는 나를 환자가 아닌 자신의 연구 대상 먹잇감으로 여기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담 진행을 이끌고 있었다


저 자뻑이 원하는 대로 상담을 이어간 나는 2시간 후 마침내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다음에 봐요. 남자친구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해피엔딩이면 좋을 텐데.”


내 남자가 검찰청 파견 수사관으로 수사 중 실종되었다는 은밀한 소문은 대체 어디서 귀동냥 한 건지..


범죄심리학 분야에서도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오만 덩어리는 경찰 쪽에 튼튼한 인맥을 보이는 은근 정보통이었다.


눈빛을 보니 저 말은 가식이 아닌 진심인 것 같아 고마웠다.


사실 자뻑만 아니면 그리 재수 없는 스타일은 아닌데 잊을 만하면 스멀스멀 튀어나오는 잘난 척에 어느새 이골이 났다.


하긴... 저 여자 탓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자타공인 네가 최고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탓에 겁나, 재수 없는 개버릇을 버릴 수 없는 전형적 나르시즘이다.


똑똑한 데다 예쁘기까지 하니 애초에 자뻑을 양손에 쥐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태생이랄까..


저 여자 잘못은 아니지. 부모님이 잘못했네. 애를 저렇게 완벽하게 낳아놓고.


“네. 다음에 봬요. 오 박사님. 감사합니다.”


오만한 여자가 성도 ‘오’ 씨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 순간 눈에 익은 구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짐작한 구두의 주인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조 형사님. 여긴 어쩐 일로?”


“진료 시간이 한결같네요. 수요일, 이 시간.”


“바꿀 이유가 없어서...”


“홍 형사님 연락 안 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네요. 어젯밤은 유난히 심란하던데..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에 잠깐 들렀어요. 저녁 함께해요.”


“네에..”


‘어쩌지.. 초콜렛과 함께 그의 메시지로 추정되는 쪽지를 받았다고 알려줄까? 아님 이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야 하나?’


사실 최근 나쁜 꿈을 꾸긴 했지만 조 형사처럼 날밤을 새운 건 아니다. 조 형사야말로 자괴감에 오히려 잠을 청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내 남자와 마찬가지로 수사팀에 파견된 팀 일원이었으니까.


차 안은 언제나 그렇듯 깔끔했다. 보통 형사 그러면 왠지 좀 지저분하고 거칠고 퉁퉁하고 뭐.. 그런 분위기일 것 같은데 그는 엄청 잘 생겼다.


그것도 임시원처럼 여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순결남 코스프레다. 키도 적당히 크고 몸도 다부지다. 형사라면 저래야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드는 탄탄한 피지컬.


그의 차 상태를 보면 그가 깔끔한 성격인 것은 금세 파악된다. 깔끔한 성격만큼이나 목소리도 정갈하다.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 보통 형사라면 걸걸한 탁성의 고함을 지를 것 같은데 그는 늘 차분하다.


하긴 그는 사이버범죄수사대 소속이다. 왠지 사이버 수사대 하면 강력계 행동대장보다는 지적인 이미지가 부각 되기는 하지만 실제는 어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사이버 수사대 사무실에는 컴퓨터만 있을 뿐 권총이나 수갑 등 경찰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그는 그런 사무실과 어울리는 수사관이었다.


“뭐 먹고 싶어요?”


“자리 옮기는 거 별론데 식사와 커피를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요.”


“그래요.”


우리의 공통 화제는 분명 사라진 내 남자와 관련된 주제였으나 우리 두 사람 중 섣불리 먼저 그 무거운 주제를 화두에 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보다 조 형사님이 더 심적으로 괴로울 수 있어요. 파견 수사관으로 한 수사팀에서 근무하던 중 발생한 일이니.. 동족의 실종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뭐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어제 한숨도 못 잔 거 보면.”


“아무도 그 사건을 들춰내려고 않는데 어떻게 혼자서 진실을 알아낼 수 있겠어요. 조 형사님 원망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그게 더 이상해요. 너무 조용해요. 마치 들춰낼 필요 없는 실종처럼.”


들춰낼 필요 없는 실종이라... 정말 그런 걸까?


그래서 내 남자는 사라진 후 나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종 후에도 그의 실종을 파헤치는 동료 하나 없이 모두 이 이상한 사건에 함구하고 있는 걸까?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도 알 수 없지만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미제 사건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 남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조심하세요. 섣불리 단독 행동하지 마시고...”


피식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왜 웃어요?”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경솔하게 일 저지를 만큼 배포가 크지 못해요. 나보다 당신이 더 걱정이에요. 별일 없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지...”


“정체감 인격장애 의심으로 낙인찍혀 심리상담까지 받고 있으니 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아요. 잠시 정신줄을 놓으며 주변인들에게 동조돼 이런 불필요한 상담을 선택한 건 후회막심이지만요.”


그 말에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그는 한동안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그만 봐요. 얼굴에 구멍 나겠네.”


“아! 미안해요.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혹시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 거예요?”


“글쎄요. 내가 너무 오바 하는 걸 수도 있고.”


사실 그 혼자만의 오바 일 리 없다. 나와 관련된 사건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그는 백방으로 나서서 상황을 알아보았으니 내가 겪었던 수사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된 건지 그게 검사든, 경찰이든 누군가의 작업으로 굴곡 됀 건지는 형사 몇 명이 모여 잡담을 해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던 사건 전개였다.


게다가 내 남자는 문 검사가 지휘하는 인지수사팀 일원이었으며 수사 대상이 어느 계층의 고위 권력이건 그들이 연루된 비리를 수사하던 중 실종됐다.


나의 이력 때문에 조사했던 수사팀은 나를 그저 단순히 그의 여자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내 직업 그리고 직업과 관련된 이력이지만 하필 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력이 도드라졌다. 그것이 그의 실종과 내가 엮인 사건과 맞물리며 내 뒤를 샅샅이 캐고 다니는 빌미를 제공했다.


지금 내가 이 꼴로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내 뒷조사와 수사과정 때문이었다.


나의 과거가 낱낱이 파헤쳐진 조사, 거의 내 과거 해부라고 해도 될 만큼 샅샅이 들춰진 뒷조사였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샅샅이 뒤져야 했는지 납득 할 수 없을 만큼, 지금도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조 형사는 그 모든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어쩌면 내가 모르는 플러스 알파도 알고 있기에 첫 번째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진 내 처지를 여전히 위태롭다고 여기는 듯 보였다.


논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는 그가 내 걱정을 하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불안했다.


나에 대한 조민의 걱정은 별무리가 내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수도 있다는 나의 의구심과 맥락을 함께하는 걸까?


내가 모르는 내 남자와 관련된 이 사건의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이제 갈까요? 집에 데려다줄게요.”


“경찰과 밥을 먹으면 신변 보호 문제가 해결돼서 좋네요.”


집 앞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몇 개 골랐다.


“혹시 중앙 경비실 경비 아저씨가 제가 안 보인다고 안부 안 물어보세요?”


“물어보세요. 그냥 해외 연수 갔다고 둘러댔어요. 나도 왜 갑자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풋.”


“이거 조 형사님 몫이에요. 아침 좀 챙겨 먹고 다녀요. 한 개는 들어가는 길에 경비 아저씨께 전달.”


내가 빵 봉지를 내밀자 그는 피식 웃기만 했다.


“또 연락할게요.”


“연락 안 기다려요. 내 주변 남자들. 연락한다는 사람치고 자주 연락하는 사람 없더라고요.”


“연락 기다렸어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말만 그렇게 하고 자주 안부 톡도 안 보내잖아요.”


“이제부터 자주 보낼게요. 부담스러울까 봐 일부러 안 하는 거였어요.”


피식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웃음으로 때웠다.


“조심해서 가요. 먼저 들어갈게요.”




집에 들어오니 먼저 들어 온 희준이가 그새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집도 좁은데 얘는 왜 이리 벌려 놔..”




“왔슈우~ 너랑 치맥하려고 오늘 일찍 왔더니 늦었네.”


집을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도 죄지은 놈은 반성이라는 걸 모른다.


“희준아..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갈까?”


“아파트?”


“조민이 사는 아파트, 서울이지만 옛날 아파트라서 대단지고 방 2개짜리 작은 평형도 있어. 지은 지 20년 넘어서 나무들도 크고 녹음이 우거진 게 단지 안이 꽤 운치 있어. 거기 어때? 거기서 잠깐 지내다가 오피스텔에 살려니 너무 답답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연스럽게 동거 되는 건데.. 사라졌던 네 남친이 컴백해서 껄끄러워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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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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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부_27 베일 속 여인, 왕마담 19.05.11 49 0 9쪽
26 1부_26 강아지녀의 등장 19.05.11 44 0 11쪽
25 1부_25 문성열의 추궁 19.05.09 3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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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부_23 측전무후와의 첫 만남 19.05.08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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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부_21 사라진 사체 19.05.07 48 0 11쪽
20 1부_20 다시 사라진 내 남자 19.05.06 46 0 11쪽
19 목을 조여오던 긴박함 19.05.06 31 0 10쪽
18 고속도로 위의 추격자 19.05.05 34 0 11쪽
17 안타까움의 다른 표현 19.05.05 34 0 11쪽
16 내 마음 속 영웅들 19.05.04 39 0 11쪽
15 내 남자는 무사할 수 있을까? 19.05.04 39 0 12쪽
14 은밀하게 위대하게 19.05.03 50 0 10쪽
13 열려라, 뒷문 19.05.02 41 1 12쪽
12 날아가는 거 전문인 검사와 형사 19.05.01 46 1 12쪽
11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19.05.01 43 0 9쪽
10 내 남자가 사라지기 한 달 전 19.04.29 46 0 12쪽
» 벗겨진 양파 껍질 19.04.28 47 0 12쪽
8 편하게 고기 먹던 인연, 문성열 19.04.27 43 0 10쪽
7 뜬금포 MOON 19.04.26 47 0 10쪽
6 매정한 수컷들 19.04.25 70 0 10쪽
5 요상한 프레임 19.04.24 72 1 12쪽
4 예상 밖의 전개 19.04.23 71 1 11쪽
3 또 다른 침입자 19.04.22 88 1 10쪽
2 예쁜 남자, 조민 19.04.22 109 1 10쪽
1 실종된 지 2주째 +2 19.04.21 25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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