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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렉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쉬렉
작품등록일 :
2019.04.21 10:45
최근연재일 :
2020.05.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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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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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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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영웅들

DUMMY

지난 547일 동안 일방적으로 내가 들이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전 남자는 그런 나의 돌진을 싫어하지 않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은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애정 표현이었다.


지금도 그 남자는 옅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을 것이다. 잔망스럽기는.. 당신이 더 엉큼해. 문성열. 좋으면 좋다고 확 까면 되지.. 음흉하게 숨기기는.


애정 표현이 서툰 남자다.


용서해 줄게요. 언젠가는 당신의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인연을 꼭 만나요. 바보처럼 다 잡은 고기 놓치지 말고. 덩치만 큰 쑥맥. 그게 바로 당신이에요. 수사만 잘하는 쑥맥.



나른한 토요일 오후.


‘나장해’가 실소유주인 유흥업소의 어느 구석진 방.


“실력이 좋아도 너무 좋으네. 이렇게 우리 쪽 사람들이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후훅~ 날아갈지 몰랐는데. 참. 인생무상입니다, 형님.”


“위장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 자료들이 조작된 거란 걸 그놈들이 알고 본사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컴퓨터도 압수한 걸 가요? 어차피 본사도 압수수색 당할 예정이었지만, 위장 사무실 뒤지자마자 다음 날로다가 겁나 또 들이닥쳤잖녀. 그것도 그 이른 아침부터. 표적 압수 분위기 마냥.. 뭔가 찾는 물건이 있었던 건가?”


“글쎄. 어차피 본사도 압수수색 받게 돼 있었지만.. 압수한 위조자료 졸라 빡치며 분석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다시 압수 수색했다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 혹시 우리 쪽에 의심 가는 놈 있어?”


“허튼짓하던 놈, 홍 형사 집 털러 들어갔다 내려오면서 차에 받혀 이미 잡음 없이 해결됐는데.”


“뭔가 석연치 않으면 계속 알아봐.”


“우리가 그 사건 덮어씌우려던 홍 형사 여친 계집애가 좀 이상한 애긴 한데..”


“뭐가?”


“맹하게 생긴 애가 무슨 컴퓨터 천재래요. 그때 사건 수사 정보 슬쩍 들어보니까 걔 땜에 다들 놀랐더만.”


“컴퓨터 천재?”


“그 뭐냐.. 해킹인가 그런 거 잘하는 애들 있잖아요. 사이버 수사대 애들처럼 컴퓨터만 끼고 사는 애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홍은하가 어떻게 그런 여자애를 다 물었냐.. 푸훗. 괜히 쑤시고 다니다 홍은하 귀에 들어가지 않게 그 계집애 신상과 관련된 건 은밀하게 알아봐. 절대 티 나지 않게.”


“그래야죠. 그 또라이 귀에 지여자 쑤시고 다닌다는 소리 들어갔다가 또 무슨 짓을 할까 봐 나도 무서워. 그 새끼는.”


“에휴.. 어쩌다 폭탄 둘을 붙여놔서 저렇게 사건을 들쑤셔대는지. 대책이 없네. 대책이..”



어둠이 사물을 뒤덮기 시작한, 늦은 저녁 시간.


끼이익, 끼익.


스르릉, 탁.


작은 소음도 지하 주차장에선 공명 되어 꽤 음산한 음향효과를 내곤 한다.


“아후.. 매번 느끼지만, 항상 기분 나쁠라 그래. 지하 주차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차에 놓고 온 쇼핑 물품들을 트렁크에서 꺼낸 후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주차장 불 좀 더 밝게 하면 안 되나? 절전도 좋지만, 주민 안전이 더 우선이지. 아후.. 음산해. 공포 영화 세트장이야.”


때마침 맛이 간 형광등이 있는지 희미한 불빛이 파르르 떨리며 기분 나쁘게 불빛이 시야에서 어른거렸다.


“공포 영화에선 이럴 때 꼭 맛이 간 전구가 터지면서 기막힌 타이밍에 괴한도 나타나던데.”


그런 생각을 했더니 희미한 불빛 탓에 어둑한 주변이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날도 쌀쌀해져 공기마저 싸늘한 게 기분이 으스스해 잰걸음으로 출입구를 향해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린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라도 나야 덜 긴장이 될 텐데.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내 숨소리 외에는.


정적이 내 심장을 더욱 쫄깃하게 했다. 괜스레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더욱 빠른 걸음으로 불빛이 환한 출입구를 향해 뛰고 있었다.


아파트 안으로 진입한 후 출입문에 도어락이 설치돼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10층


하필 엘리베이터는 10층에 머물러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제대로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슬쩍 삐딱하게 고개를 틀어 출입문을 응시했다.


다행히 사람의 형체는 찾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이제 막 3층을 지났다.


산행 중, 조난 당해 절벽 아래서 생명줄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심정이 이런 걸까?


5분도 안 걸린 시간이 분명한데 기다리는 내내 한나절이 흐른 기분이다.




“다행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전신에 전기가 오른 듯 찌릿찌릿했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휴우,,”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잠시 엘리베이터 밖 동태를 살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휴우..”


다시 큰 숨을 내쉬었다.


텅 터엉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출입구 복도에 엘리베이터 문이 뭔가에 부딪히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들고 있던 쇼핑백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간신히 풀려버린 손가락을 다시 꽉 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거의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함께 타고 가시죠.”


씨익


웃는 입술 사이로 잇몸까지 훤히 드러났다. 요즘은 치과 의술도 발달했는데 옛날 사람처럼 그의 치아에는 덧입힌 금이 번뜩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흉기라도 되는 양, 날 위협을 하며 빛을 받아 번들번들 반사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시나. 흐음.. 나, 나쁜 사람 맞긴한데. 푸흐흐. 그렇게 겁먹을 필욘 없고 초면이니까 인사 먼저 할까? 강보람씨.”


그때 다른 사람의 형체가 그의 등 뒤에서 감지됐다.


그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 흉측한 몰골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자고 하니까 아파트 주민이 기겁하는 거 아냐, 새끼야.”


“뭐야!”

금니 놈이 채 돌아서기도 전에 내 맘에 쏙 드는 찰진 파열음이 드렸다.




터엉 텅




의문의 남자는 보란 듯이 한 대 후려치며 금니를 내 앞에 거꾸러뜨렸다.


그였다. 내 마음의 슈퍼맨.


내 남자, 별무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허억, 컥. 하아..”


꿈이었다. 신은 땀까지 뚝뚝 흘리며 꿈을 꾸고 있었다. 비록 슈퍼맨이 등장하긴 했지만 급박한 상황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협당하는 꿈.


수사팀의 극한 직업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이 콩알만한 난, 그때 이후로 종종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곤 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베개가 흥건할 정도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만큼 꿈속에서의 상황은 늘 다급하고 처절하게 도망치는 현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꿈에서도 듬직한 두 남자가 늘 나의 방패가 돼주었다. 오늘 꿈에서도 어김없이 홍은하가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 그게 남들이 문 검사와 홍 형사를 부르는 호칭이지만 내게 그들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슈퍼맨이다.


그들은 내 마음속 영웅이었고 인생 선배로서 존경하는 인물이 됐다.


비록 꿈에서 늘 쫓기는 신세가 됐지만,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내겐 큰 꿈을 이룬 것이다.


희준이가 그 나이를 먹도록 아이언맨이 되어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상상을 하듯 나 또한 원더우먼이 되어 사회악과 맞서는 상상을 하곤 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원더우먼이 된 기분이었다. 사회악과 맞짱 떴다는 짜릿함을 느꼈다.


디링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하신 몸, 홍은하의 톡이다.


“푸훗, 그래도 톡은 열심히 하네.”


‘낼 밥 먹자. 뭐 먹을지 생각해 놔.’


‘열심히 고민해 볼게요.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나도. 보고 싶다.’



아파트 단지 내 중앙 공원.


오늘따라 유난히 눈이 부신 햇살과 하얀 구름 한 덩이만 두둥 떠 있는 바다색 하늘이 그림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흐음.. 시원하다. 답답하던 마음이 탁 트이네.”


갑갑해서 단지 내 중앙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뭐해요?~”


“어엉? 어디 다녀와요?”


조민이었다. 어디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이제 퇴근하는 길인 건가?


핼쑥한 얼굴로 그가 예의 그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아직도 그렇게 할 일이 많아요?”


“거의 마무리예요. 자료가 끝이 안 보이는 바다 같아요. 풋.”


“나도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요. 나도 보람씨 아쉬울 때 많아요.”


“혹시 상부의 이상한 조짐은 안 보이나요?”


“별로 그런 낌새는 없어요. 막상 뚜껑 열어보니 수사팀도 윗선도 완전 깜놀. 한마디로 전대미문의 비리종합세트. 윗선도 이런 비리 총망라 사건은 처음인가 봐요. 건설부지 불법 용도 변경으로 시발점이 된 ‘시’부터 시작해서 시공사, 금융권. 어느 분야 한 군데도 비리에서 비껴간 데가 없어요. 얽힌 공직자들 네트워크가 정말 왕거미가 짜놓은 거미줄 같아요. 자괴감마저 드네요.”


“수사 종결되면 오빠랑 문 검사님 정말 별 탈 없는 거겠죠?”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수사라서 대놓고 보복성 인사조치 못 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자~ 걱정 그만하고 대낮부터 치맥 한잔?”


“푸훗. 그래요. 내가 쏠게요, 무척 초췌해 보여서.”


“감사~”


꾸벅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늘 공통 관심사가 대화 주제였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다.


항상 둘로 시작하지만, 마무리는 셋으로 끝난다.


희준이까지 합류하면 완벽 멤버 결집이 되는 순간, 모임 명칭을 짓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글세, 뭐가 좋을까..”


“뭔가 유니끄하면서도 쿨한 거. ‘애니띵 파서블, anything possible’ 어때?”


“사실 우리 셋 합치면 거의 모든 게 가능하지 않을까? 안 그래?”


“그건 그렇죠.”


“고민할 것도 없네. 당첨. 시스템으로 발생한 사회악을 뿌리 뽑는 X맨 집합체. 줄여서 ‘PSB’ 캬아~ 느낌 살아있네~ 느낌 오죵? 이게 창단식인가?”


“너무 조촐하긴 한데 우린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잖아, 아우~”


희준이와 조민의 브로맨스가 시작된 건 한참 전이다. 둘은 죽도록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야근하는 경우를 빼고는 일주일에 7일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붙어 다니며 둘이 뭘하는 지는 함께 사는 나도 모르겠다.


늘 시시덕거리며 좋아 죽는다.


“저러다 결혼은 정말 물 건너가겠네.”


죽마고우인 희준이 어머니의 근심을 알기에 희준이가 혼밥, 혼술하며 사는 것에 마냥 찬성하거나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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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부_23 측전무후와의 첫 만남 19.05.08 39 0 10쪽
22 1부_22 내 남자의 흔적 쫓기 19.05.07 33 0 11쪽
21 1부_21 사라진 사체 19.05.07 48 0 11쪽
20 1부_20 다시 사라진 내 남자 19.05.06 46 0 11쪽
19 목을 조여오던 긴박함 19.05.06 31 0 10쪽
18 고속도로 위의 추격자 19.05.05 34 0 11쪽
17 안타까움의 다른 표현 19.05.05 34 0 11쪽
» 내 마음 속 영웅들 19.05.04 40 0 11쪽
15 내 남자는 무사할 수 있을까? 19.05.04 39 0 12쪽
14 은밀하게 위대하게 19.05.03 50 0 10쪽
13 열려라, 뒷문 19.05.02 41 1 12쪽
12 날아가는 거 전문인 검사와 형사 19.05.01 46 1 12쪽
11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19.05.01 43 0 9쪽
10 내 남자가 사라지기 한 달 전 19.04.29 46 0 12쪽
9 벗겨진 양파 껍질 19.04.28 47 0 12쪽
8 편하게 고기 먹던 인연, 문성열 19.04.27 43 0 10쪽
7 뜬금포 MOON 19.04.26 47 0 10쪽
6 매정한 수컷들 19.04.25 70 0 10쪽
5 요상한 프레임 19.04.24 73 1 12쪽
4 예상 밖의 전개 19.04.23 71 1 11쪽
3 또 다른 침입자 19.04.22 88 1 10쪽
2 예쁜 남자, 조민 19.04.22 109 1 10쪽
1 실종된 지 2주째 +2 19.04.21 25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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