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5.29 18:00
연재수 :
266 회
조회수 :
117,831
추천수 :
2,402
글자수 :
1,791,531

작성
24.04.04 12:00
조회
184
추천
4
글자
16쪽

69화. 진의(眞意) (1)

DUMMY

그때 아찰라나타(不動明王)가 주규 앞으로 다가왔다.


“법왕께 드리는 선물이오.”


멍하니 있던 주규는 얼떨결에 부동왕이 내민 물건을 받아 쥐었다.


그것은 옥새였다.


그러나 주규가 알고 있던 옥새, 곧 고황제께서 경옥(硬玉)으로 빚은 황제봉천지보(皇帝奉天之寶)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규가 알기로 황제봉천지보는 깨진 모퉁이를 금으로 때우거나 한 일이 아직 없었으니 말이다.


주규가 알기로 벽(璧)을 깎아 만들고, 깨진 모퉁이를 금으로 때운 옥새는 하나뿐이었다. 주규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뒤집어 새겨진 글귀를 확인했다.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


주규는 저도 모르게 손에 들린 옥새를 꽉 틀어쥐었다.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기 때문이다.


“···진품이오?”


아찰라나타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소녀의 뒤로 물러가 시립했다. 하긴, 너무 멍청한 질문이었다. 주규는 스스로 자책했다. 그도 그렇다. 지금까지 본 것들이 무엇이었던가? 애당초 세상에 없는 생명체를 온갖 휘황찬란한 방법으로 ‘만들어’ 내보이는 마당에, 세상에 실존했던 물건을 가져오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이 제아무리 수백 년 전 소실된 전국옥새(傳國玉璽)라 할지라도.


“···당신의···.”


주규는 힘겹게 입술을 뗐다. 백련교의 성화, 아니 성화가 된 한성채에게 조롱당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만이 아니다. 이 상황 자체가 조롱이며 모욕이 아니겠는가? 그간 호법들은 적어도 주규를 사바인의 법왕(法王), 곧 중원의 천자가 될 이의 직분에 맞는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성화가 나타나자마자 마치 셋방살이 쫓아내러 온 것마냥, 이리도 무례하게 군단 말인가? 이것은 성화가 아닌, 한성채의 의사가 개입되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간 백련교에서 주규, 아니 정덕제와 그의 아들을 우대했던 것이 전부 성화를 되찾기 위함이었다는 걸 주규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처음 계약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백련교는 성화를 되찾고, 정덕제의 혈통은 천하를 되찾는다. 서로가 만족하고, 모두가 승리하는 계약 말이다. 그리고 그 계약은 성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효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익선관과 전국옥새는 천자를 상징하는 가장 위엄 있는 보물들이다. 문제라면─ 상징만으로는 중원의 하늘, 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권을 쥐기까진 아직도 머나먼 길이 남았는데, 달랑 이따위 물건들을 내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저잣거리 장돌뱅이가 떨이하는 것도 아니고, 이래서야 마치 손절(損切) 당하는 기분 아닌가?


주규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군주는 치욕을 당할지라도 위엄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한성채가 아직 저 소녀 안에 있고 여느 호법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의사가 성화의 의지에 강하게 반영된다면, 그녀의 진의를 확인해야만 한다.


한현보의 한성채로서 백련교의, 아니 주규의 대업을 가로막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백련교의 성화로서 약조를 지킬 것인지를!


“당신의 진의(眞意)는 무엇이오?”


<진의?>


“성화가 아닌 한성채의 진의는 무엇이냔 말이오.”


<내 뜻을 묻는 건가요?>


“그렇소.”


소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소녀는 한현보의 작은 아가씨였다. 겉으로 보이기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주규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와 같은 신세임을 법왕께서 모르는 바 아닐 텐데요.>


목소리가 아님에도 자조적인 어조가 묻어나는 소녀의 말에 주규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한데도 나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성화의 행사에 나의 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지요?>


“그렇소.”


주규는 눈앞에 보이는, 소녀의 가늘고 연약한 목을 난폭하게 틀어쥐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미 한차례 일렀지만, 혹··· 만에 하나라도 성화의 그릇인 그대, 한성채의 의지가 본교의 과업, 아니! 나의 대업에 훼방을 놓을 가능성이 단 일 할, 아니! 단 일 푼이라도 있다면!”


주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말을 끝까지 다 내뱉고 나면 더는 이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주변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


힐끗, 시선을 옮기자 자신의 뒤에서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마익수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지팡이 끝을 노려보고 있는 우거가 보였다. 교랑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익수의 반응을 보아서는 이번에 내뱉은 말은 ‘없었던 상황’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우리의 계약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니까 말이오.”


<분명히 말씀하시니 이해하기가 편해서 좋네요.>


“알아들었다니 다행이구려.”


소녀는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지만, 경험이 주규를 신중하게 만들어주었다. 사소한 비웃음쯤이야, 이해조차 난해한 상황의 연속인 와중에야 차라리 반길 만한 일이다.


<법왕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는 경향이 좀 있으시군요.>


이번에야말로 주규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이 말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적(敵)」에게 들은 말이었기에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요. 나는··· 알아요. 알게 되었지요. 당신과 우리 오라버니의 일, 백련교와 천검의 일, 또 나와 득구의 일까지··· 모든 것을.>


“모든 것···?”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그 모든 것을.>


소녀는 차갑고도 쓸쓸한 미소를 띠었다. 소녀의 복잡한 심경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릿한 미소였다.


<법왕의 이야기와 그 결말에 나의 역할은 없어요. 내가 그것을 원한다 한들, 그렇게 되지는 않을 테지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당신의 대업은··· 원하던 그대로 이루어질 테니.>


주규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일평생 듣고 싶었던 이야기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바라마지않던 ‘예언(豫言)’이다. 그것을 이 소녀─ 한성채는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믿을 수가 없는 것인가?


“그 말··· 믿겠소.”


힘겹게 말하는 주규를 보며 소녀는 말했다.


<여(汝)는 미혹을 떨치었는가?>


“···다는 아니오만, 이미 말하였듯이 믿겠소.”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들어 자신 앞에 꿇어앉은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주규를 비롯한 그 일행들은 소녀의 시선을 올려다본 후에야 스스로가 꿇어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굽은 등 때문에 숙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한 우거까지도 아무런 저항감 없이 같은 꿇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백련도의 종복들아, 들으라.>


“오직 성화의 뜻만이 땅 위에 온전하리라.”


<도솔천이 곧 임하리니,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들은 그 길을 곧게 예비하라.>


“오직 성화의 뜻만이 땅 위에 온전하리라.”


소녀는 나비를 밟고 아주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렇게 날아올라, 다시 나비로 이루어진 옥좌 위에 올라앉은 소녀는 엄숙히 선언하듯 말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오직 여(余)의 뜻만이 땅 위에 온전히 서리라.>



* * *



설총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말의 엉덩이를 세게 후려쳤다.


“이랴!”


깜짝 놀란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설총의 뒤를 이어 자기 말의 엉덩이를 세게 후려친 양성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말들을 쳐다보았다.


“꼭 진짜로 돌려보내야 했나?”


설총은 어깨를 으쓱, 들고서 말했다.


“그러니 진즉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냥 대여로 하자고요.”

“쯧, 사내가 자존심이 있지!”


저 자존심은 마방(馬房)의 청지기가 상당한 미인이었기에 세우는 자존심이었을 테다. 마방에서도 젊은 사내들이 어여쁜 여인네들 앞에서 얼마나 멍청해지는지를 잘 아니까 그런 미인을 청지기로 세웠겠지. 설총은 피식, 웃고서 말했다.


“그런다고 멋진 사내라고 생각해줄 것 같진 않은데요.”

“···나도 알아! 제길,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 아닌가?”


설마 진심이었나? 설총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서 말했다.


“양 형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사내가 배필을 찾아 헤매는 것이 무에 그리 이상하단 말인가?”


양성진은 도리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무허 그 말코 놈도 그렇고, 종리 형도 그렇고, 일혼칠검(一琿七劍)의 일곱 머저리가, 황보언이란 한 여자를 두고 왜들 그렇게 들러붙어 다니는지 보면 뻔한 것 아닌가? 사람의 본능이야 어쩔 수 없는 게지.”


황보세가의 보옥(寶玉)이자, 화검 도종인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황보언은, 사실 일혼칠검의 일혼(一琿)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부터 나름 유명인이었다. 그녀가 바로 제갈세가의 제갈민과 함께 오묘화(五苗花)─ 선월빙설운(仙月氷雪雲)에 속한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황제조차 반하게 만든 미녀-라기보단 미소녀에 가까운 나이였지만-라는 명성은, 동년배 사내들의 뜨거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툴툴대는 양성진을 보며 설총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보면 볼수록 닮았군그래. 설총은 눈가를 엄지로 꾹꾹 찍어 내면서 말했다.


“아니, 양가장의 후계자라고 하면 객당(客堂)에서라도 힐끔거릴 양반들이 꽤 되지 않습니까?”

“뭐, 그때야 그랬지. 하나 지금은 후계자가 아니질 않은가?”


설총은 흠, 콧숨을 내쉬고 말했다.


“양가장의 소가주 자리는 양 형의 생득권(生得權)이질 않습니까? 그런 것은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요.”

“정론이긴 하네만, 나는 그 자리의 소유권을 행사할 생각이 없네. 양가장과 나의 인연은 이미 끊어진 것과 진배없음이야.”


설총은 가만히 양성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하던 양성진은 왈칵 성을 냈다.


“뭐가 문젠가?”

“음··· 글쎄요. 딱히 문제랄 것은 없습니다만.”

“그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인가?”

“그런 눈이라뇨?”


양성진은 허허, 헛웃음을 지었다.


“이 친구 보게. 내 분명 책망하는 눈빛을 보았거늘, 발뺌하시는 겐가?”

“발뺌이라뇨?”


설총은 씩, 웃고서 말을 이었다.


“저는 다만, 양 형께서 소가주의 위를 보실 때 단지 권리의 측면만이 아니라 책임의 측면에서 보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책임?”

“예.”


설총은 그제야 양성진에게서 시선을 떼고서 말했다.


“분명 양가장에는 소협과 생각을 달리 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같이하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그들 모두가 양가장의 그늘이 필요한 사람들 아닙니까?”

“···뭐, 계속해 보게.”

“소협께서도 동의하실지는 저야 알 수 없지요. 하나, 무릇 한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난 이라면,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 출생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음, 양가장에 비하면 횃불 앞에 반딧불의 수준이겠지만, 저 또한 한현보에서의 삶은 한현보에 속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누리는 삶이었지요.”


양성진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설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양성진의 행동에 설총은 씩,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자리를 권했다. 어차피 잠시 쉬어 가야 할 요량이었으니, 기왕 쉬는 김에 제대로 쉬어 가자는 뜻일 테다.


나무 그늘이 조금 지는 작은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설총은 한숨을 돌리고서 말문을 열었다.


“한때는 그것이 무척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야, 누구나 그렇게 말하니까요. 소가주님은 ‘가주님의 아들’이잖습니까, 언젠가는 그분의 자리를 이어받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요.”

“그게 사실이긴 하지.”

“하지만 말입니다.”


설총은 품을 뒤적여 육포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큰 조각 두 개를 꺼내 하나를 양성진에게 건넨 설총은 육포를 한 입 뜯어 잘 씹고 삼킨 뒤에야 말을 이었다.


“그건 결과잖습니까.”

“예정이라고도 볼 수 있잖은가? 결국 언젠가는 한현보의 가주가 될 사람이니, 우리가 당신에게 선대(先貸)한 만큼 우리에게 갚아 달라, 뭐 이런 것이겠지.”

“그런 심리도 있겠지요. 손익을 계산치 않고 베푸는 친절이란 아무에게나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혹 만약에라도 그런 제가 한현보의 가주 자리를 이어받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그들의 노고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글쎄···.”


양성진은 그 큰 육포를 한입에 와구와구, 쑤셔 넣고는 꿀꺽 삼키고 말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 의미를 따지진 않지.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요. 그게 핵심이지요.”


설총은 검지를 내밀어 양성진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고서 말을 이었다.


“선택은 특권입니다.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한현보에, 그리고 양가장에 식솔로 들어온 이들은 무사든, 집사든, 노비든, 혹은 제자든 간에 가주가 시키는 것을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자리를 보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주, 그리고 그 가주의 위를 이어받을 자인 우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주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하느냔 말입니다.”


복잡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씹던 양성진은 눈썹을 어긋매끼고 말을 이었다.


“그야, 우린 가주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군군신신부부자자, 곧 정명(正名)의 법도는 이 나라의 국본 아닌가.”

“정명의 법도.”


설총은 후후, 낮게 웃고서 말했다.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이 나라의 태조께서는 어떻습니까? 날 때부터 천자의 서광(曙光)을 타고 나신 분이셨습니까?”


설총의 말에 양성진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자네 지금, 그 말은 역모(逆謀)일세. 어디 들을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로군.”

“사람이 없으니 했지요.”

“무시무시한 소리나 하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비유를 드는 겐가?”


설총은 눈살을 찌푸렸다.


“음···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진의(眞意)를 보자는 이야기지요. 공자께서 논하신 정명의 법도는 말 그대로 원칙과 인륜, 질서를 말씀하신 겁니다. 군주의 자리에 있는 이는 군주답게, 아비 되는 자는 아비답게 행하며 다스리고, 신하와 자식들도 마찬가지의 도리를 따라 섬기고 배우라는 뜻이지요.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는 둥의 저열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양성진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쪽은 그렇게 깊이 생각해본 일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지금 드린 말씀만 이해하셨다면 충분합니다.”

“뭐, 대충은.”

“그럼 충분하지요.”


설총은 남은 육포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 꾹꾹 씹어 삼킨 후에 말을 이었다.


“즉, 정명론은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다면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다시 말하자면, 가주의 책임을 물려받는 것은 단지 핏줄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될 말이라 이겁니다.”


양성진은 피식, 웃고는 툴툴댔다.


“그럼 나는 더더욱 가주의 자리에 올라선 안 되겠군. 핏줄마저 이유가 될 수 없다면, 무엇이 나를 그 자리에 얽어맬 수 있단 말인가?”

“글쎄요. 양 형의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 섣불리 이렇다 하고 말씀을 드릴 순 없겠습니다만···.”

“자네가 시작한 이야기 아닌가. 자네 이야기라도 해보게.”

“후후, 그래보지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설총은 눈을 감았다. 아직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선명한 어느 날의 사건이 있었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게 됐는데... 저녁 5시만 돼도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게 진짜 체력이 많이 갔구나... 싶네요ㅋㅋㅋ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하고 살아야 하나 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극랑전(極狼傳)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2 74화. 피 냄새 (1) +2 24.04.24 147 2 17쪽
241 73화. 세 명의 신산(神算) (3) 24.04.23 143 2 15쪽
240 73화. 세 명의 신산(神算) (2) +2 24.04.22 157 2 15쪽
239 73화. 세 명의 신산(神算) (1) 24.04.19 167 3 15쪽
238 72화. 운예지망(雲霓之望) 24.04.18 157 3 15쪽
237 71화. 그런 신은 없다. 上 24.04.17 145 4 14쪽
236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6) 24.04.16 152 2 16쪽
235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5) +2 24.04.15 166 3 15쪽
234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4) 24.04.12 178 5 16쪽
233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3) 24.04.11 180 2 15쪽
232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2) 24.04.10 184 4 15쪽
231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1) 24.04.09 199 7 13쪽
230 69화. 진의(眞意) (3) +2 24.04.08 188 6 17쪽
229 69화. 진의(眞意) (2) +2 24.04.05 191 5 16쪽
» 69화. 진의(眞意) (1) 24.04.04 184 4 16쪽
227 68화. 부처님 손바닥 (4) 24.04.03 186 4 15쪽
226 68화. 부처님 손바닥 (3) 24.04.02 180 2 15쪽
225 68화. 부처님 손바닥 (2) 24.04.01 186 4 16쪽
224 68화. 부처님 손바닥 (1) 24.03.29 221 5 16쪽
223 67화. 잿더미 속에도 새싹은 튼다. (2) 24.03.28 210 6 15쪽
222 67화. 잿더미 속에도 새싹은 튼다. (1) 24.03.27 189 7 14쪽
221 66화. 정진(正進) (3) +2 24.03.26 196 6 16쪽
220 66화. 정진(正進) (2) 24.03.25 200 6 16쪽
219 66화. 정진(正進) (1) 24.03.24 192 7 13쪽
218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6) 24.03.23 191 6 16쪽
217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5) 24.03.22 191 3 16쪽
216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4) 24.03.21 191 8 17쪽
215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3) 24.03.20 185 7 14쪽
214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2) 24.03.19 187 8 14쪽
213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1) 24.03.18 198 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