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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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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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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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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7쪽

65화. 진정이 아니라 가속을 택하였으니 (4)

DUMMY

“뭐야, 누구야?”

“무슨 일이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의 소림에서 비명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무허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리가 난 방향, 그리고 목소리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무허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염천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냐, 지금. 설마 너···!”


그놈을 혼자 방치해 둔 건 아니겠지? 염천호의 뒷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던 무허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설마하니 소림 내에서 이렇게까지 직접적인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던 탓이다.


“제길, 뭐 하는 거야! 당장 가 봐!”


염천호가 빽, 소릴 지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 무허는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군요.”


그 즉시 연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보문성 또한 몸을 일으켰다. 황보문성은 두 주먹을 가슴께에 쾅, 부딪히고서 말했다.


“현장에 직접 가보시려는가? 연화신산.”

“아뇨. 저희 방으로요.”


황보문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서?”

“살인이든 납치든··· 어느 쪽을 계획했든 간에 비명이 났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

“양동 작전이에요. 이목을 집중시킨 후, 본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겠죠.”

“본래의 목적?”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현시점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소란을 피운 뒤의 양동 작전이라면··· 아무래도 은밀함이 요구되는 일이겠지요.”

“가령, 예를 들면?”


염천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연화가 말했다.


“요인의 암살, 혹은 중요한 물건의 탈취 정도가 되겠군요.”

“암살과 탈취.”

“암살과 탈취.”


염천호가 그녀의 말을 곱씹듯이 한 번 되뇌자, 연화 역시 거기에 맞춰 자신이 내뱉은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암살이라면, 무공을 모르는 놈을 잡을 셈인가?”

“그편이 가능성은 높지만, 의외의 가능성은 충분해요. 하나 저는 그보단 탈취 쪽에 무게를 두고 싶군요.”

“탈취, 라.”


염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속이 뻔히 보이는 작전을 동원해서 탈취할 만한 물건이 있나?”

“하나 있지요.”

“뭔데?”

“약왕서.”


염천호의 미간의 골이 더 깊어졌다.


“그걸 굳이?”

“지금으로서는 그보다 가치 있는 물건이 없으니까요.”

“모르지.”


염천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남제현이 지금까지 어디서 무슨 꼴을 당하고 있었는지 우리 중에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 있었나?”

“짐작 정도야 했지만··· 그럴 줄은 몰랐죠.”

“으음···!”


하남제현, 한주윤의 이야기에 황보문성의 눈자위가 일그러졌다. 비록 하남제현과 사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군문세가 한현보의 약진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보여온 한주윤의 실적과 공명정대한 일 처리에 작게나마 호감을 느끼고 있던 터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나타나 천검의 일로 백배-더 정확히는 백하고도 사십사배라고 해야겠지만-사죄를 청하고 머리를 찧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멍해지는 건 어쨌든 기분이 썩 좋을 수만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불쾌했다. 그 주체가 아무리 존경하는 원종대사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 논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예상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어. 항상 생각 외의 수와 패를 들고 왔으니 말이야.”

“맞는 말씀이세요.”

“그럼 너는 너희 패거리를 돌보러 가라구. 나도 내 패거리를 돌봐야 하니까.”

“패거리요?”


설총을 제외하면, 염천호는 홀몸으로 올라오지 않았던가?


“내가 하오문주란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렇군요.”


하오문의 백단이 소림 본산에까지 설치되어 있었던가? 연화의 얼굴 위로 살짝이지만 놀라움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무당의 청풍칠주나 제갈세가의 신기비연 등 몇 문파의 정보 조직도 이곳 소림에 입산해 있기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림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나 하오문의 백단은 십비의 정보로도 그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정보 전달 방법이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한 술법을 사용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런 불확실한 것을 자문 내에서 활용하도록 동의할 문파는 없다. 그러나 지금, 염천호는 버젓이 백단을 활용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일종의 축객령이다. 하기야, 비단 하오문이 아니라 제갈세가라 할지라도 극비 중의 극비에 속하는 비전을 타 문파 사람의 눈앞에서 활용하진 않을 것이다.


“위험할지도 몰라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연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염천호의 생각은 알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던 탓이다.


“괜찮어, 괜찮어.”


영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휙휙, 내젓는 염천호를 보며, 연화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염천호가 고집을 꺾고 타협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다면, 지금의 염천호가 아니었으리라.


“부디 몸조심하시길.”


염천호는 헹, 콧방귀를 뀌면서 허리춤에 매단 세 개의 단봉을 툭툭, 두드렸다. 염천호의 타구봉법은 천하십이본의 비전 무공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친 무공이다. 스스로 안위를 지키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는 염천호 나름의 표현인 셈이다.


“그래도요.”

“말뿐인 염려는 필요 없어.”

“필요하시다면 저희 쪽의 호위를 좀 붙여드릴 수도···.”

“맞습니다, 문주님. 부디 저희 손길을 외면하지 마시지요.”


황보문성 역시, 한마디 거들며 나섰다.


“소림··· 아니, 정천맹이 주둔한 이 숭산에 몰래 침투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절대로 어지간한 놈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백련교의 대호법일지도 모르고···.”

“됐으니 신경 끄라니까. 귀하신 연화신산의 옥체나 잘 보전해야지, 무슨 다 늙어빠진 거지를 보호하겠다고 그래?”


염천호는 툴툴대며 괜한 신경질을 냈다. 분명, 염천호는 자기 한 몸 정도는 얼마든지 챙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불안감이 연화의 뒷골을 자꾸 당겨왔다.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완고한 염천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점이 연화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그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연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보문성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방문을 나서는데, 염천호가 곰방대 부리에서 딱, 소리를 냈다.


“아참, 한 가지를 깜빡했구만.”

“무엇을요?”

“너, 순득이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던데.”

“순득? 아, 청월공 말씀이신가요?”

“그래.”


연화는 굳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맞아요. 그 정도 실력의 야장이 젊기까지 하다면, 응당 세가에 영입해야죠.”

“지금은 못 줘. 한천작우는 지금 날만 세워놨지, 제대로 된 검이 아니야.”

“더불어서 그 칼날조차도 삼분지이뿐이니, 한천작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요.”

“잘 아는구먼.”


염천호는 미간을 찡그리고, 관자놀이를 곰방대 부리로 벅벅 긁었다.


“본래 빚어진 길이도 아닌 걸 억지로 날만 세워다가 손잡이를 붙여놔서 균형도 그렇고, 다 개판이야. 뭐 한 소가주 놈이 실력이 괜찮으니 잘 써먹고는 있다만··· 강도 외엔 볼 게 없지.”

“그런 것치고는 꽤 괜찮은 검입디다만.”


황보문성의 말에 염천호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뭐···. 칼이 잘 썰고 휘두르기 좋으면 그만 아닙니까?”

“어련하시려고.”


박투술의 대가답게 병기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황보문성의 반응에 염천호는 무안을 줬다.


“그 상황에서 날 세우고, 소재의 탄성을 잘 살려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실력을 발휘한 거지만··· 천하지회도 끝났으니 아예 녹여서 이참에 새로 빚는 게 나아. 휘두를 놈이 그 모양 그 꼬라지니, 일단은 연장이라도 좋은 걸 들려줘야 하지 않겠어?”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선약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뜻이지요?”

“그래.”


곰방대 부리에 붙은 허연 무언가를 후, 불어 날린 염천호는 곰방대를 꼬나물고 말했다.


“물론, 순득이가 싫다면 안 보낼 거야. 설득은 알아서 해.”

“그야 물론이죠.”

“그럼, 일단 제갈세가로 데려가.”

“···예?”

“일단 데려가라고.”


방금까지 안 보내준다더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이맛살을 구긴 채 골똘히 생각하는 황보문성과 달리 연화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래, 알았으면 됐다.”

“어? 잠깐, 뭘 알겠다는 뜻인가?”

“쟤가 알아들었으니 쟤한테 들어. 일단 나가.”

“예? 어르신?”

“일단 나가라고.”


순순히 방을 나서는 연화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입을 꾹 다문 염천호 사이에서 방황하던 황보문성은 연화의 뒤를 쫓기로 했다. 말없이 발을 채근하는 연화를 쫓아가는데, 신진삼세가 머무는 전각까지 절반쯤 남은 자리에서 그녀의 발이 우뚝 멈췄다.


“동호.”

“예, 소문주님.”


가까운 나무 그늘에서 삼비가 나타났다. 마치 그림자에서 솟구친 것으로 보일 정도로 깔끔한 신법이었다. 황보문성은 휘유, 휘파람을 불어 삼비의 실력을 칭찬했다. 삼비는 간단히 읍을 해보이는 것으로 답을 하고 연화의 말을 기다렸다.


“신기비연(神機飛燕) 중 가용 인력이 몇이죠?”

“지금은 가용 인력이 없습니다.”

“민아 쪽에 보낸 인원은 철수시키세요.”


연화의 말에 황보문성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삼비 역시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덧붙이는 말은 없었다.


“···그러면 세 명이 남습니다.”

“그 세 명은 각각 숭산에 두 명, 세가에 한 명 재배치하세요. 그럼, 숭산에 들어온 신기비연 중엔 두 명이 남죠?”

“예.”

“한 명은 염라왕 어르신, 한 명은 청월공에게 붙여주세요.”

“명을 받듭니다.”


삼비가 연화의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는데 연화가 그를 불러 세웠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분부하십시오.”

“세 명 모두 숭산으로 배치하시고, 다른 한 명은 무허자 쪽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적삼이란 자에게 붙여주세요.”

“···그 적삼이란 아이 말입니다.”


연화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설마, 죽었나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분근착골을 통한 고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잠시 생각을 정리한 연화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문제없겠군요.”

“명을 받듭니다.”


삼비가 사라지자, 황보문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민아에게 배치했던 신기비연을 철수시키다니··· 괜찮겠느냐?”

“소의당주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무슨 말?”

“신천옹을 날게 하는 것은, 그 날개가 아니라 믿음이라고요.”

“···음.”


연화의 입을 통해 나온 설총의 말을 곱씹던 황보문성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그 아이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던가? 음··· 그렇군.”

“숙부께선 이미 진즉에 언아를 그리 보내셨잖아요?”

“뭐, 나야··· 믿는 구석이 있어서 보낸 게지. 아무래도 도가 놈은 믿을 만한 사내니 말이다.”

“그 건에 대해서 말인데···.”


연화는 저도 모르게 말을 냈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니, 지금은 그 이야길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다. 황보문성이 아무리 공과 사가 분명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딸아이가 파문을 당한 데다 유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후, 그의 행보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살얼음판 위에서 그가 넘어진다면, 단지 황보세가만이 아니라 신진삼세 전체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아뇨, 제가 착각했어요.”

“···음, 그렇구나.”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황보문성이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기에 입을 다문 것이기 때문이다. 황보문성은 담하의 현 수제자이며, 연화신산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연화를 믿기로 했다.


“하나 궁금한 게 있구나.”

“말씀하시지요.”

“그 청월공이라는 야장 말이다.”

“그건 어르신의 우려이기도 하고, 동시에 배려이기도 해요.”

“우려이면서, 배려?”

“예. 청월공은 무공을 모르는 야장이니, 아무래도 작금의 숭산에 그대로 두는 것이 불안하셨을 테지요. 하니, 일단은 제갈세가로 옮겨서 보호하라는 뜻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배려는 역시···.”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세가에서 보호하는 동안 알아서 잘 설득해보라는 뜻이겠지요.”

“허허, 그렇군. 너도 그렇지만, 어르신께서 그 야장을 참 좋게 보신 모양이구나. 이거,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지는데?”

“숙부께선 병기를 안 쓰시잖아요?”

“나야 안 쓰지만 말이다.”

“세가에 찾아오시면 만나 뵙도록 해드릴게요.”

“···야박하구나.”


연화는 싱긋, 웃어 보였다.


“가지요. 시간은 금이니까요.”



* * *



“···쿨럭!”


염천호는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핏덩이를 바닥에 뱉어냈다. 핏물이 검게 변색된 것을 보아하니 독이다. 서둘러 몸 상태를 점검해 보니, 하복부가 아릿하고 코끝으로 살 썩는 냄새가 진하게 났다.


“···패혈산(敗血散)인가.”

“역시, 염라왕이시군요.”


턱만 드러나는 삿갓을 쓴 사내가 마치 도화지 위로 먹물이 떨어진 것마냥 돋아났다. 분명 얼굴을 다 가리는 삿갓이었지만, 흐릿해지기 시작한 염천호의 시선으로도 누군지 알아보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규··· 라고 했던가.”

“하하, 이런, 이런. 그리 빨리 알아채시면 곤란합니다.”

“지랄, 감출 생각도 없었으면서 무슨 개소리야.”

“욕지거리 한번 걸지게 잘 하시군요. 뭔가 입에 짝짝 들러붙는 맛이 있습니다.”


염천호는 울컥, 다시 한번 핏물이 솟구치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패혈산에 중독된 피는 썩은 내가 나기 때문에, 역한 냄새 때문에라도 더 피를 토해내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올라오는 대로 피를 다 토해내면 과다출혈로 더 빨리 사망하게 된다.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캐내야만 한다.


“···이렇게 쉽게 마각을 드러내도 되는 거냐?”

“마각? 마각이라니?”


주규는 빙글빙글, 입술을 굴렸다.


“패혈산은 천하만민이 잘 아는 대로 당문의 독이고··· 또 쌍비인의 성명절기인 구환살에 쓰이는 용린쌍조(龍鱗雙爪)에 발린 독입니다. 그리고 여기···.”


주규는 품속에서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작은 비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용린우조(龍鱗右爪)가 있군요.”

“···쌍비인의 짓이 될 거다?”

“정확합니다.”

“왜 나지?”

“그야, 방해되니까.”

“처음부터 나였나?”

“아뇨. 당신과··· 연화신산. 둘 중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산동벽수가 붙은 상황에서 연화신산을 먼저 처리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소거법으로 염라왕께서 낙점되셨다 이겁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얘기를 산뜻하게 내뱉는 주규의 얼굴을 보면서, 염천호는 더 이상 역함을 참지 못하고 칵, 핏물을 쏟아냈다. 입안의 역한 맛을 쓸어 뱉은 염천호는 입가를 소매로 훔쳐 닦고 이를 갈며 말했다.


“지랄, 낙점해줘서 고마워해야 하는 거냐?”

“본교에서 염라왕의 가치를 그 정도로 높게 사고 있었단 점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본교라.


“···이젠 감출 생각이 없군?”

“어차피 죽을 거잖습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더군요.”

“글쎄.”


염천호는 차갑게 비웃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증거를 남기는 법이지. 그런 염천호의 비웃음을 지켜보던 주규는 피식, 웃고서 정색했다.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뭐지?”

“백단을 넘겨주십시오. 그러면 살려드리겠습니다.”

“엿이나 먹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정색을 왜 했는지 모를 정도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주규를 보며 염천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 어차피, 하오문은 곧 마 문주가 장악할 테니까. 천천히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마익수?”

“그렇지요. 당신이 버린, 그 마익수 말입니다.”


염천호는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았는데 무언가를 본다는 건 이상하지만, 어차피 건물 안이라 하늘은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보는 셈으로 쳤다. 잠시 그렇게 마음속의 하늘을 쳐다보던 염천호는 눈을 떴다.


“네놈들 마음대로는 절대 안 될 거다.”

“여태까진 다 잘 됐습니다만?”

“두고 보면 알겠지.”


칵! 다시 한 번 염천호의 입에서 검은 핏물이 쏟아졌다. 조각조각 살점이 섞여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인 듯싶었다.


“예언을··· 하나, 하지.”

“뭐지요?”

“너넨 실패할 거야.”


그리고 마치 지푸라기처럼 염천호는 쓰러지고 말았다. 한 많은 세상을 아직은 떠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주규는 그런 염천호의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푹!


구환살을 펼쳐, 용린우조를 염천호의 가슴팍에 박아 넣었다.


“문주님의 그 저주··· 극복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규는 유유히 그 방을 떠났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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