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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지저씨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의 성자, 이단의 괴수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지저씨
작품등록일 :
2024.03.01 11: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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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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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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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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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0)

DUMMY

“크읏···! 거기 서라!”


놈을 놓치지 않으려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수십 마리의 쿠알이 내게 동시에 달려드는 통에 검로(劍路)를 틀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발치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케이트가 있다. 이대로 그녀를 두고 간다면 하워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 눈에 훤했다.

마을 사람들을 살리자고 눈앞의 생명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크크크. 크르륵. 어디 잘 따라와 봐라.]


놈은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듯 조소하며 유유자적 빠져나가 마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람. 첫 번째 검. 순풍(順風)!]


저 이리 같은 놈! 전황이 불리해지자마자 꼬리를 말고 내빼다니!


나는 놈을 쫓기 위해 다시 바람을 불러들였으나, 자연스레 흐르는 바람인 순풍을 사용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 번에 많은 힘을 끌어 쓰느라 나도 지쳤지만 내 곁의 바람 또한 일시적으로 힘이 빠진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평소와 같았다면 무한히 느껴지는 힘에 금방 회복했겠지만 이 정도의 급격한 소모에는 나도, 바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상황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흘러갔다.

그 잠깐 사이 놈은 마을을 지키는 목책을 도약해 뛰어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마을 사람들은 이제야 도망치기 시작했는지 몸을 숨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고를 했건만 마인이 어떤 존재인지 체감하지 못한 것인가.

용에 버금가게 위험하나 다들 실제로 맞닥뜨린 적이 없으니 위기감이 부족했던 것이리라.

마인에 대한 얘기는 터부시되기도 하고 겉모습만으론 거체를 가진 용과 달리 위압감도 적어 일반 백성들 사이엔 이런 실수가 잦았다.


젠장···. 연계를 맞출 동료만 있었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서둘러 케이트를 둘러업고 마인을 뒤따라 달렸다.


“꺼져! 이 금수 새끼들!”


마음이 급한 내 발목을 쿠알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어깨에 케이트를 멘 체,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짐승의 수가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 소형과 중형급 마물의 경계에 있는 쿠알의 공격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떼로 다니는 습성과 짐승의 예민한 감각 때문에 골치가 아플 뿐, 일반 성기사의 방어력조차 뚫지 못하는 게 쿠알의 이빨이었다.


실제, 하워드와 케이트도 이것들을 단숨에 소탕하는 것에 집중했지, 전투 위험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바람. 권(拳)의 형(形). 가만바람에 대목 꺾이는 줄 모르도다. 세풍절목(細風折木)!]


그러나 지금 나를 가로막는 이 쿠알들은 광분한 채로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 기어서라도 내 진로를 방해했다.

가벼운 연격으로 놈들을 떨궈내도 금세 다른 개체가 그 자리를 채워 들어왔다.

실내의 좁은 공간이었다면 수협난풍을 사용해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제기랄 놈의 마인. 하필이면 지금 때에 가장 골치 아픈 기술을···.


마법(魔法).

감염자가 마인으로 각성하며 얻게 되는 마기(魔氣)를 사용한 기이한 술법.


이것은 저 마인의 고유 마법임이 분명했다.

하위 마수에 대한 지휘와 통솔 계통.

전투 계열이 아니라 일대일에선 크게 주의할 필요가 없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끄아악!”


“사, 살려줘!”


“모두 빨리 도망쳐! 뒤돌아보지 말고 자기 사는 것만 생각해!”


예민해진 청각에 사람들의 비명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꾸물거리다간 모두가 몰살된 후에야 도착할 것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방패라도 준비해둘 걸 그랬다.


어쩔 수 없지. 케이트 경, 미안합니다. 조금 강행돌파를 해야겠습니다.


유야무야 시간을 끌다간 남은 힘까지 다 빠질 것은 염려한 나는 단 일격의 도박을 감행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갚을지니. 탐식의 아가리를 벌린 대가를 받으라.]


검을 길게 빼고 자세를 낮췄다.

풍왕군림보를 사용하고 난 뒤, 즉석에서 떠올린 아이디어.


[자업자박(自業自縛). 인과응보(因果應報). 멸망의 하수인 너는 업보는 심연에 삼켜져 승화될지어다.]


바람 그 자체가 될 기운은 부족하니 비는 부분은 육체 능력으로 충당한다!


[바람의 검. 비기(祕技). 비룡탄악(飛龍呑惡)!]


나는 검을 이용한 원심력으로 회전하며 크게 뛰어올랐다.

그러자 내게 달려들던 짐승들은 용오름에 삼켜진 나룻배처럼 오체분시가 되어 찢겨 나갔고, 아득히 높은 곳까지 올라간 나는 마침내 그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큭, 어지러워.


하지만 계획 없이 돌발적으로 떠올린 기술엔 부작용이 따랐다.

수십 바퀴를 회전하며 급하게 뛰어오른 턱에 현기증이 일며 균형을 잃은 것이다.


생각보다 높은 체공(滯空)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져, 품 안에 있는 케이트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쿠당탕!


“크윽···!”


목적한 망루 위로 떨어진 것은 좋았으나, 사정없이 처박히는 바람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다행히 몸이 저리는 곳은 없고 내가 먼저 등으로 떨어져 케이트도 무사해 보였다.


“파이 사제!”


서둘러 몸을 일으킨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파이였다.

그녀의 곁에는 성물인 일곱 촛대가 부러진 채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그 자신도 상태를 장담할 수 없어 보였다.


“으으···.”


다행이다. 크게 상한 곳은 없다.

내가 어깨를 붙들고 다그치자 그녀는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고 마인에게 제압만 당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듭니까?”


“사, 사람들···. 빨리···.”


하지만 그녀는 간신히 두 어 마디 말을 뱉었을 뿐, 일어날 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어떡하지···. 쿠알의 기세를 보아 여기도 이제 안전하지 않다.

하워드를 허무하게 잃은 지금, 케이트와 파이까지 무너지면 이 마을의 미래는 없다.


“가요···. 괜찮으니까 어서···.”


“···알겠습니다. 가능한 빨리 돌아올 테니 버티십시오.”


미약한 힘으로 내 손을 잡아 오는 그녀로부터 결의가 느껴졌다.


“···고난 위에 세울 것은 반석 같은 믿음이오. 네가 희생 위에 지은 집은 그가 거하실 집이니. 그와 함께 하는 너의 성전은 누구도 해하지 못하리라.”


아즈마리아 분파인 하워드, 케이트 경과 달리 누옌데 종파의 성도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사제 파이.

나는 케이트와 함께 그녀를 구석진 곳에 엄폐한 뒤 누옌데의 축언을 읊조리며 두 사람을 뒤로 했다.


**


“헉, 헉···. 괜찮아, 소냐. 조금만 더 힘내.”


꽉 잡은 소냐의 손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떨림이 전해져왔다.


엔도는 소냐를 데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마인. 마인이다.


그 모습을 처음 보고 깨달았을 때, 엔도는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스승의 외침으로 경직을 깨뜨린 엔도는 그 직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냐와 함께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엔도는 알고 있다. 저건 재해다.

지금껏 그를 극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 불가항력의 힘을 맞닥뜨렸을 때 그가 한 선택은 또 다시 도망이었다.


“······.”


옆을 돌아보니 소냐는 동공이 풀린 채로 엔도가 이끄는 대로 끌려오고 있었다.

줄 끊어진 인형처럼 넋이 나간 모습···.


엔도는 하릴없이 소녀의 손을 더 강하게 붙잡을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아, 하아···.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답지도 않게 오늘 얼마나 뜀박질을 하는 것인지.


그러나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이 그의 발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외면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도 못한 사람들을 그대로 버리고 왔다.

여태껏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척했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

이리저리 과장되게 행동해왔던 것도 자신을 속이기 위한 연극이었단 걸 엔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오늘까지 그를 움직인 동력원은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단말마의 진원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은 거리가 있다. 도망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예민해지는 감각이 본래라면 들을 수 없는 거리의 소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이 빛이 질타하는 듯 아른거려 그를 괴롭게 했다.


“걱정하지 마, 소냐. 내가 지켜줄게. 이번만큼은 내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켜줄 테니까.”


소년은 죄책감을 벗으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말이야말로 거짓은 없다.

설사 그의 몸이 뜻을 거스르고 도망치려고 해도 이 말이 족쇄가 되어 그 비겁함을 옭아매리라.


조그마한 오두막 집이 엔도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이 마을에 우연히 정착하게 된 후 마을 뒷 어귀에 지어 올린 그들의 보금자리.

처음에 마을엔 두 사람이 살만한 구석진 곳 작은 공간을 내어 달라 부탁했다.

어린 두 사람을 이런 곳에 둘 수 없다며 많은 이들이 말렸지만 엔도는 염치가 없다며 한사코 그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양이 아니라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한 엔도의 철저한 계산.

이는 소냐에게조차 비밀로 한 그의 어두움이었다.


“이제 다 왔어, 소냐. 집으로 가면 말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탈것을 내가 만들어놨···.”


잡동사니가 즐비한 창고 안에 바퀴를 이용한 탈것을 만들어 몰래 숨겨놨다.

그것을 타고 집과 가까운 개구멍으로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었을 터··· 였으나.


-끼이익···.


엔도가 집 앞의 짐승 발자국과 갈무리 하지 않은 독한 기운을 깨닫고 발걸음을 멈출 때쯤, 오두막 대문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르르···. 들어오지 않는 거냐? 애써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어, 어떻게···.”


괴물이 입을 열자 피 냄새와 누린내가 코를 찔렀다.


[내가 하나라도 도망치게 둘 것 같았냐, 꼬마야. 그것도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 극상품을 두고 말이야. 그르르···.]


분명히 비명소리는 뒤쪽에서 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란 말인가.


[으음? 킁킁. 인제 보니 너한테도 구린내가 나는군. 아까 그놈보다는 덜하지만 같은 냄새야. 그르르···. 열이 뻗치는군. 너는 필요 없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기 싫으니 저리 가라. 냄새가 배면 입맛도 다 떨어지겠어.]


“어? 억!”


분명 눈도 깜박이지 않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짐승의 속도는 엔도의 인지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고 그가 정신을 차리자 그는 이미 억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싫어어어어! 살려줘! 엄마. 아빠. 으아앙! 성자님··· 살려줘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소냐의 단말마가 그의 정신을 붙잡았다.

소냐는 우악스러운 짐승의 손에 붙잡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평소에 선머슴애처럼 성질을 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린애가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만둬. 이 개새끼야···! 소냐를 놔 줘!”


엔도는 바닥을 기며 소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카라락···! 건방진 애송이가··· 너도 내가 개처럼 보이나?! 냄새나서 건들지 않으려 했더니 너 먼저 죽여 줄까? 앙?]


무너져간다. 또다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져간다.

아무리 노력하고 대비해도 안 된다. 도망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어째서 악은 이리도 불합리한 폭력으로 우리를 괴롭히는가.

신이 살아있다면 어째서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 것인가.


[크르르. 아니지, 아니야. 너 이 계집애의 가족이냐? 아니면 애인? 크르르. 네 앞에서 이 계집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게 더 낫겠군. 어때? 그걸 보고 참는다면 너는 도망치게 해주지. 크카카카카!]


“웃기지 마···. 내가 아무리 겁쟁이라도··· 소냐를 두고 두 번 다시 등을 돌릴 거 같아?!”


몸이 부서져도 좋다. 이 자리에서 심장이 터져 죽어도 괘념치 않는다.

그러니 힘을 빌려주십시오, 빛이여. 내게 깃든 새로운 힘이여!

이제 단 하나 남은 가족을, 삶의 이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그륵? 지금 뭐하는···.]


소년의 가슴 속 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빛을 볼 수 없는 눈먼 자도 한 번 경험했던 이변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인외(人外)의 짐승이 이변이 일어나기 전 움직이려는 순간.


-콰앙!


커다란 폭발음이 귓가를 때리며 그를 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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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성자, 이단의 괴수가 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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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0) 24.03.29 3 0 13쪽
22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9) 24.03.28 4 0 12쪽
21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8) 24.03.27 4 0 12쪽
20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7) 24.03.26 6 0 12쪽
19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6) 24.03.25 6 0 14쪽
18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5) 24.03.23 5 0 13쪽
17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4) 24.03.22 6 0 12쪽
16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3) 24.03.21 6 0 12쪽
15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2) 24.03.20 6 0 15쪽
14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 24.03.19 7 0 14쪽
13 ep4.썩은 땅콩의 수난(6) 24.03.18 7 0 13쪽
12 ep4.썩은 땅콩의 수난(5) 24.03.16 5 0 14쪽
11 ep4.썩은 땅콩의 수난(4) 24.03.15 6 0 15쪽
10 ep4.썩은 땅콩의 수난(3) 24.03.14 6 0 12쪽
9 ep4.썩은 땅콩의 수난(2) 24.03.13 6 0 15쪽
8 ep4.썩은 땅콩의 수난(1) 24.03.12 5 0 13쪽
7 ep3.벌거벗은 기사(2) 24.03.11 7 0 13쪽
6 ep3.벌거벗은 기사(1) 24.03.09 7 0 13쪽
5 ep2.노래하는 자들 24.03.08 11 0 13쪽
4 ep1. 성전, 그리고 부활(4) 24.03.07 8 0 14쪽
3 ep1. 성전, 그리고 부활(3) 24.03.06 9 0 12쪽
2 ep1. 성전, 그리고 부활(2) 24.03.05 10 0 12쪽
1 ep1. 성전, 그리고 부활(1) 24.03.05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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