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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지저씨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의 성자, 이단의 괴수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지저씨
작품등록일 :
2024.03.01 11: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8:3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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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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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36,245

작성
24.03.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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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7)

DUMMY

“암만 그래도 이렇게 맛탱이가 가버리는 건 문제가 있는데요. 이래 보여도 가족은 가족이라구요.”


“······.”


나는 소녀의 눈총이 견디기 힘들어 고개를 슬쩍 돌렸다.


“헙···.”


그러자 내 시선이 맞닿는 곳에 앉아있던 엔도가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과장스럽게 몸을 웅크렸다.


“아이, 좀! 똑바로 앉으라고.”


틈만 나면 엔도가 내 발 앞에 엎드리려고 드는 통에 소냐가 엔도의 뒷덜미를 강제로 틀어잡고 있었다.


“하늘에 맹세코 나는 엔도에게 위해를 가한 적이 없다.”


“그 말은 때리지는 않았는데 다른 건 했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


날카롭네···.


소냐의 정확한 지적에 나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뭐야? 내가 없는 사이에 남자 둘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길래 이 사달이 난 거야?”


곤란하다. 이 애까지 성질이 폭발하면 손도 발도 쓸 수 없다.

다만 그녀는 평소와 달리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해 봐요. 차라리 흠씬 두들겨 팬 거면 이해라도 하지. 그것도 아닌데 얘가 왜 이렇게 쫄아 있냐구요. 내 평생 이런 꼴을 본 적이 없는데?”


“어··· 그게 말이지. 내 생각엔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니고···.”


나는 할 수 없이 그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어이가 없네···. 그게 배우고 싶다고 그렇게 간단히 되는 거예요?”


“간단한 건 아니었고···. 이게 꽤 심오한 과정을 거쳤거든···.”


“그건 잘 모르겠구. 어쨌든 뭐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소냐는 답답해하면서 엔도의 뒷덜미를 이리저리 마구 흔들었다.


“그, 그러면 안 돼, 소냐. 시, 신 님이야. 네가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될 분이 아니야. 아, 제나스. 제나스신가?”


엔도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면서 소냐 뒤에 숨어 나를 힐끔거렸다.


“아니, 잘못된 건 아닐 텐데···.”


그렇다. 내 눈에는 엔도의 변화한 모습이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씨앗이 잠들어 있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움터 양분을 빨아들이는 모양새.

엔도 몸 안의 빛의 맥동이 여기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힘을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문제는···.


“나 때문인 거 같은데···.”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엔도는 안 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내 움직임에 따라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흠···. 혹시나 해 집 밖으로 나가본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창문 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음···. 역시나 기척을 최대한 죽였는데도 귀신같이 내가 있는 곳을 알아채네.

소냐는 엔도가 내게 시선을 돌린 후에야 무슨 일인가 멀뚱거리는데 말이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가 있으면 엔도가 불안해하는 건 맞는 거 같구나.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이 집에 있는 건 안 좋을 것 같다.”


나는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소냐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러면 방에 데리고 가서 재우면 되죠. 밤도 깊었는데 어디를 가려고 그러세요.”


소냐는 눈을 크게 하며 나를 말렸지만 난 아직 현관문도 채 닫지 않고 서 있는 중이었다.


“괜찮다. 오늘 같은 날은 마을 외곽의 경비를 신경 쓰는 게 좋겠다. 듣자 하니 하워드와 케이트도 아직 소식이 없다고 했잖니. 나라도 깨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문을 나서는 내게 소냐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곁의 엔도를 힐끗 보더니 끝내 발을 떼지는 못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문을 닫았다.


**


“진짜 나갔네···. 에휴. 됐다. 엔도, 이제 이거 놔. 정신 차려. 응? 오빠.”


그리안이 사라지자 곧 체념한 소녀는 오라비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였다.


“넌 저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


그런데 지금껏 넋이 나간 것처럼 굴던 엔도가 고개를 홱 돌려 소냐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 어···?”


훅하고 들어온 질문에 그녀는 드물게 당황하여 말을 잃었다.


어떤 분이라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설마 그가 성자 그리안이라는 걸 눈치챈 걸까?

하지만 무슨 수로? 얼굴도 몰랐으면서 인제 와서 이렇게 갑자기?

혹시 둘만 있는 사이 그가 말한 걸까?


소냐는 한 번에 밀려오는 두통에 밀주(蜜酒)를 달다고 홀짝거리다 숙취로 고생했던 때가 떠올랐다.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지금 그녀도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다른 문제는 다 제쳐둬도 그리안의 문제만 해도 줄줄이 골치가 아팠다.

흉흉한 소문에 몇 년을 모습을 감출 때는 언제고 갑자기 나타나더니, 이제는 그 빛의 성자 그리안이 신성은 어디다 팔아먹고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힘을 쓴단다.


“그래, 네가 알 리가 없지. 어떻게 알겠니.”


소냐가 여러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는 사이 엔도는 흥미가 식었는지 이내 그리안이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 웃기지 마. 그러는 너야말로 저 사람에 대해 뭘 안다고···.”


소냐는 그런 중에도 자신을 무시하는 엔도의 말에 발끈했다.


“관두자. 너랑 싸울 기분 아니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야, 어디가! 네가 먼저 말 걸어놓고!”


소냐는 휘적휘적 사라지는 엔도의 뒤통수에 집히는 걸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그러나 저 인간이 드디어 경지에 이르렀는지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피하곤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뭐야, 진짜···.”


거실에 덩그러니 남은 소냐는 어처구니가 없어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


“앞으로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동이 막 틀 무렵. 새벽의 어스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간.


만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겉모양만큼은 멀쩡해진 목책 위에서 망을 보고 있노라니 엔도가 나를 찾아와 무턱대고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그게 무슨 말이냐?”


“어제는 경황이 없어 사리판단이 제대로 안 됐습니다. 지금은 정신 차렸습니다.”


다짜고짜 엎드리기에 어제의 연속인가 싶었으나 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그도 나처럼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는지 눈가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으나 말한 대로 정신은 맑아 보였다.


“스승님, 여기 이것 좀 봐주십시오. 제가 어제 밤새도록···.”


“아니,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라.”


나는 무언가 시작하려고 하는 엔도를 다급히 말렸다.


“스승님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어울리지 않게 적응되지 않는 저 극존칭은 또 무엇이며.


나는 손짓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를 일어나라 했으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예, 좀 그렇죠? 스승 정도가 아니라 은사님, 은인님, 사자님···. 무슨 호칭을 쓸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도 앞으로 저희 관계를 생각하면 역시 스승님이 맞지 않을까 하고···.”


앞으로의 관계? 무슨 관계? 환장하겠네.


“그래, 그래. 일단 알겠다. 알겠으니까 우선 일어나라. 똑바로 앉아서 얘기하자.”


“예, 스승님.”


“아니. 스승님··· 말고. 차라리···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해라.”


별의별 호칭을 다 들었지만 스승은 또 처음이다.


휴···. 그래도 처음부터 엔도가 이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볼 생각이었으니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할 수도 있긴 할 것이다.


“우선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자.”


조금 덜 어수선하고 넓은 장소가 좋을 것 같아 앞장서서 목책을 내려갔다.


“그래서 밤새 뭘 했다고? 어때, 힘은 잘 그러모아지더냐? 너도 이제 이 빛이 보이는 게 맞지?”


이런저런 일이 있기는 했어도 나도 설레는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지금껏 잠깐이라도 멈추면 생각에 삼켜질 것 같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가슴이 답답했다.

함께 의논하려고 했던 모페드와는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런 도중 처음으로 수수께끼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게 아니겠는가.


나는 엔도에게 하려던 것을 어서 해보라며 뒤를 재촉했다.


“네, 선생님. 그러니까 이 힘···. 아, 그런데 이것에 이름은 있나요? ···그런가요. 아직 없군요. 나중에 이름을 지어야겠네요.

하여튼 이것과 저와의 연결···이라고 할까요. 마치 지금까지 눈앞에 덧대고 있던 걸 벗긴 느낌입니다.

선생님이 보시는 세상과 같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서로 얘기를 통해 비교해 봐야 될 것 같은데···.”


엔도의 말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온갖 설비를 거의 혼자 설계했다던 그의 두뇌는 확실히 명석했다.

그가 한나절도 안 돼서 분석하고 정리한 내용과 가설은 내가 지금까지 고민하던 것에 대한 답이 될 정도로 깊이가 있는 부분도 있었다.


“맞다, 맞아. 내 생각에도 이 힘은 우리가 지금 새로 얻었다기보단 원래 있던 것을 이제 자각한 것이 맞아 보인다. 그래, 이론은 차차 또 의견을 나눠보자. 혹시 이 힘을 다룰 수는 있겠느냐?”


“예, 그게 말인데요. 아무래도 선생님처럼 따라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쿠알을 잡으실 때 눈앞에서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제가 보는 눈이 없어서 직접 봤다고 하기도 그렇구요···.”


“그렇겠구나. 나도 여러 사람에게 이 힘을 보여줬지만 나와 같은 것을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 기회에 너를 통해 알아보면 되겠구나! 자, 내가 시험을 보일 테니 여기를 봐···.

아니, 그런데 아까부터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냐? 예의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니 여기를 봐라.”


어차피 기사단에 있을 때부터 그다지 예의를 따지는 성격도 아니었다.

가까운 녀석들은 대장님이니 뭐니 자기 마음대로 부르는 놈들도 적지 않았지.


“아, 그게 말이죠. 예의도 있는데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거든요.”


“근본적인 문제?”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그는 여전히 내 발끝만을 보고 있었다.

구태여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어젯밤부터··· 아니, 그가 새로 눈을 뜬 그때부터 나를 이런 태도로 대하는 이유가 있을 터.


“혹시··· 자각이 없으십니까?”


“자각? 뭘 말이냐?”


내 자아 성찰은 뛰어난 편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모르고 계신 것 같군요. 그게···, 선생님께서 너무 밝으십니다.”


밝아···?


“네, 선생님께서 가지신 빛이 너무 커서 사실 똑바로 마주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처음에 선생님을 보며 혼동한 것도 이 때문인데요. 맙소사. 설마 했는데 진짜 모르고 계실 줄은.”


허허. 내가 무슨 하늘의 태양도 아니고 눈이 부셔서 쳐다보기 힘들다니.

전설로 내려오는 성인들의 연대기 한 장면 같은 소리다.


“선생님, 혹시 저는 어떻게 보이십니까?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이시나요?”


“아니, 그렇지 않지.”


자기를 봐달라며 두 팔을 벌린 엔도.


아, 그런가.


아마도 엔도가 저 멀리 인파 속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나는 한눈에 그가 있는 곳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엔도는 빛의 싹이 텄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 비해 내뿜고 있는 빛이 훨씬 생동감 있다.

나와 대화하고 있는 사이에도 공기며 흙이며 주위에 있는 빛들이 그의 몸 안을 드나들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볼 때에도 아마 다르지 않겠지. 그렇다 해도 얼굴을 못 들 정도라는 건 과장이 아닌가 싶다만.


“으흠. 그래도 이렇게 보려면 억지로 볼 수는 있거든요? 햇빛처럼 눈이 따갑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선생님 얼굴도 똑바로 보이고요.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네요.”


얼굴을 억지로 든 엔도의 표정이 제법 힘겨워 보였다.


“아무래도 이건 제가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이겠죠? 이겨내 보겠습니다, 선생님. 그러니 한번 거하게 보여주시죠!”


“어어, 그래.”


엔도는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이 언젠가 아카데미에 초청받은 강연 자리에서 보았던 예비 기사들의 눈을 떠올리게 했다.


뭘 하려던 참이었지? 아, 힘을 쓰는 걸 직접 보여주려고 했지.


“뒤로 물러나라, 엔도. 제대로 보여주마.”


좋아. 까짓것 한 번 보여주도록 하지.


나는 어쩐지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자세를 잡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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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0) 24.03.29 2 0 13쪽
22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9) 24.03.28 4 0 12쪽
21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8) 24.03.27 4 0 12쪽
»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7) 24.03.26 6 0 12쪽
19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6) 24.03.25 5 0 14쪽
18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5) 24.03.23 5 0 13쪽
17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4) 24.03.22 5 0 12쪽
16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3) 24.03.21 5 0 12쪽
15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2) 24.03.20 5 0 15쪽
14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 24.03.19 6 0 14쪽
13 ep4.썩은 땅콩의 수난(6) 24.03.18 6 0 13쪽
12 ep4.썩은 땅콩의 수난(5) 24.03.16 5 0 14쪽
11 ep4.썩은 땅콩의 수난(4) 24.03.15 5 0 15쪽
10 ep4.썩은 땅콩의 수난(3) 24.03.14 5 0 12쪽
9 ep4.썩은 땅콩의 수난(2) 24.03.13 5 0 15쪽
8 ep4.썩은 땅콩의 수난(1) 24.03.12 5 0 13쪽
7 ep3.벌거벗은 기사(2) 24.03.11 7 0 13쪽
6 ep3.벌거벗은 기사(1) 24.03.09 7 0 13쪽
5 ep2.노래하는 자들 24.03.08 11 0 13쪽
4 ep1. 성전, 그리고 부활(4) 24.03.07 8 0 14쪽
3 ep1. 성전, 그리고 부활(3) 24.03.06 8 0 12쪽
2 ep1. 성전, 그리고 부활(2) 24.03.05 10 0 12쪽
1 ep1. 성전, 그리고 부활(1) 24.03.05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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