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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지저씨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의 성자, 이단의 괴수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지저씨
작품등록일 :
2024.03.01 11: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8:3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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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45

작성
24.03.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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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 성전, 그리고 부활(3)

DUMMY

해가 중천에 있는 대낮이 분명함에도 희뿌옇게 깔린 안개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커헉, 쿨럭!”


그러나 그보다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눈앞의 안개가 한 호흡 들이쉴 때마다 생명을 갉아먹는 독무(毒霧)라는 것이었다.


-후우웅, 쿵!


거대한 굉음과 함께 독풍이 몰아치고, 뿌옇던 하늘에 돌연 핏빛 태양 두 개가 떠올랐다.


[아해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개를 치켜드는 용맹한 작은 것아.]


하늘이 말을 하고 있나?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전 방위에서 크게 울리는 목소리.

그것은 가히 신의 음성으로 치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태양으로 착각할 만큼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

한눈에 다 넣기도 힘든 까마득한 몸체.


그래, 주둔지가 한순간에 전멸한 것이 이해된다.


사실, 가능성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이쪽이 유력했다.


단지, 그 희박한 확률을 무시하고 외면했을 뿐.


“크윽. 모두 일어나라! 고작 기습 한 방에 자빠져 있을 생각이냐!”


종말이 낳아 그와 닮은, 끝이 오기 전의 고통과도 같은 존재.


그것은 용이었다.


“서, 성자님···. 이게 무슨···. 헉! 저게 뭐야.”


“오, 맙소사. 제나스시여.”


용종(龍種)은 다른 마물과는 궤를 달리한다.


짐승처럼 땅을 기는 지룡(地龍)조차 막기 위해선 최소한 사단급 병력이 필요하다.

날개라도 있어 비행 능력을 갖추기만 해도 군단급의 병력이 아니면 상대할 수도 없다.


그런데 저 녀석은···.


“마룡(魔龍)종이다. 모두 정신 차리고 태세를 갖춰라. 여기서 전멸하고 싶지 않다면.”


인지(認知)와 언어 능력이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마룡.

그 개체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며 대책 없이 상대했다간 한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대.


나조차도 마룡의 상대는 그 숫자가 손에 꼽는다.


성전을 선언한 계기도 굉염룡, 엔투논을 꺾고 더는 활동 중인 마룡이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의 이름은 그리안. 빛으로부터 너희를 멸하라 계시를 받은 성자. 간악한 종말의 악종아, 높으신 분의 이름으로 가로되 네 이름을 밝히라.”


이름이 알려진 마룡 중, 미퇴치 종이 뭐가 있지?


타오르는 하늘? 시린 칼날?

하룻밤 사이에 작은 왕국을 무너뜨렸다던 침묵하는 아침인가?


아니, 아니야.


그 어느 놈도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마룡과 특징이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 너희, 스러질 것들을 위한 신의 안배. 그러니 찬양하라. 축복하고 경배하라. 오늘 이 자리. 나, 부패(腐敗)의 손톱 디르필에게 죽음으로 영광을 올릴지어다.]


···부패? 부패의 손톱···?


역시 당장 생각나는 미퇴치 마룡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눈앞의 있는 저놈 때문이라는 건 알았다.


덕분에 성전(聖戰)을 위해 준비한 물자와 부대가 전멸.

무엇이 됐든 이 사실을 어서 본대에 알리고 후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시점에 마룡이 아군의 요충지를 타격한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놈이 가진 스스로의 지혜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거대한 움직임의 시작인가.


“거짓으로부터 태어난 오만한 자여. 내가 너에게 줄 것은 제나스의 이름으로 단죄할 죽음뿐이니! 지금이라도 네 죄를 뉘우치고 내 발아래 엎드려라!”


그러나 상황은 쉽지 않다.


상대는 너트람의 국경수비대를 단신으로 무너뜨린 강력한 마물.


실제, 디르필이 가한 기습은 하늘에 떠 있던 거체를 땅에 처박을 뿐인 단순한 것이었으나, 그 인사치레에 아군 기사들 대부분이 중상을 입었다.


만약 처음부터 그가 마음 먹었다면 우리는 매에 낚아채인 토끼처럼 발톱이 심장을 관통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우스꽝스럽구나. 내가 너희에게 내릴 은사가 곧 죽음이건만. 작은 것아, 너는 나를 축복할 권능이 없음을 알아라. 그저 삿된 마음을 버리고 내가 주는 고통을 받아들일지어다.]


디르필이 그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자, 하늘이 가리웠다.

그의 활갯짓에 한 번 물러갔던 독무가 다시 몰려들었다.


객관적인 전투력 차는 절망적이다.

이 정도 상대라면 철저한 준비와 함께 공성전을 해도 모자라다.


하지만 현세(現勢)는 돌파가 특기인 기마부대 하나가 전부.


살아남는 것마저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


“야! 너네 아직 멀었냐?! 이제 말로 시간 끄는 것도 더 못 하겠는데?!”


그러나 본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내 직업이다.


“전원 회복 완료. 축복 기도도 끝났으니 이제 시작하시면 됩니다.”


기적은 시련이 있기에 비로소 일어나는 것.


“야이씨, 이제 준비 끝났다. 기다려줘서 고오맙다. 이 도마뱀 새끼야.”


시련 하나나 둘쯤, 간단히 넘어 보이겠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


“하! 전원 산개(散開)!”


말의 배를 차며 기사단에 명령했다.

신성으로 강화된 말들이 나를 따라 빠른 속도로 평야를 달린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쌓인 마물과의 전투법 중 기본. 그것은 거리감.

저렇게 커다란 놈들과 싸울 때는 공격 거리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육탄 공격 회피 거리 유지! 원거리 공격에 유의하라!”


팔다리 한 번 휘두르는 것부터 치명적이다.

신성의 도움 없이 맞았다간 눈 깜짝할 새 다진 고기가 되기에 십상이다.


우리는 직접적인 공격 범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마룡을 원형으로 포위했다.


그러나 정작 디르필은 신기한 볼거리라도 보는 양, 흥미로운 눈을 할 뿐 요지부동이었다.


“흥, 그렇게 마음껏 깔봐라. 워터스! 이리 와서 선두에 서라.”


나는 바로 뒤에서 달리던 기사를 불러 내 말고삐를 넘겼다.

그가 말없이 고삐를 넘겨받자, 나는 투창을 하나 꺼내 자세를 잡았다.


[믿음의 성인 후르가토리오가 가로되, 사람의 길은 정함이 없어 굽이쳐 돌아가나]


혀를 깨물지 않게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올바른 믿음의 길은 오직 한 점으로 뻗어나갈지니.]


최대한 탄력을 주기 위해 허벅지에 힘을 주고 낙마하기 직전까지 몸을 젖힌다.


[내가 지금 보일 것은 나의 그 믿음이라.]


노리는 것은 심장.


[고개를 들어 빛을 보아라. 이 곧음이 너를 평안케 하리라. 레크타 피데스(recta fides)!]


녀석의 사각에서 비스듬히 내던진 창은 포물선 따윈 그리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최단 거리로 쏘아진다.


뒤로 휘었던 내 허리가 돌아오는 힘에 달리던 말의 뒷다리가 휘청거리고, 창이 날아간 궤도를 따라 파공음(破空音)이 따라붙는다.


-쩡!


머잖아 커다란 쇠붙이끼리 부딪친 듯한 소리가 고막을 아프게 때렸다.


[하찮구나.]


그러나 쏘아진 빛에 디르필은 어깨에 앉은 벌레라도 보듯 몸을 한 번 털 뿐이었다.


그 천대(賤待)에 투창은 나아갈 관성을 잃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바스러졌다.


“흥, 나도 시작 전에 인사 한번 나눈 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혀를 차고 말았다.


용을 상대하는 데 가장 까다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방어력.


상대의 공격이 치명적인 것은 약자인 우리들에겐 항상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싸움은 언제나 결사 항전.

이 한목숨 덧없이 사라져도 동귀어진의 각오로 그 등에 칼이라도 꽂는 그런 싸움이다.


그런데 이 망할 파충류 새끼들. 단단해도 너무 단단하다.

수성(守城)용 발리스타를 꽂아도 콧방귀를 껴대는 놈들.


모든 걸 내던진 공격이 씨알도 안 먹히는 것처럼 전의가 꺾이는 일은 없다.


“포박조, 준비!”


하지만 우리도 용잡이에 익숙해진 전문가.

모두 내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도 당황하는 이 없이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발사!”


장전된 석궁에서 무게추와 포승줄이 달린 화살이 발사되었다.

날아간 화살은 주로 용의 팔과 다리에 걸리며 옭아맸고, 기사들은 말에 연결된 도르래에 줄을 걸어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가장 성가신 것은 비행이다.

놈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우리는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 떼로 전락한다.


상대가 당장 날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지금이 기회.

이때를 노려 미리 막는다.


[■■■■■■!!!!!]


지금껏 무엇을 하든 무관심하던 녀석이 포효와 함께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위기감? 아니, 그것은 길을 가다 거미줄에 걸렸을 때의 불쾌감 표현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불쾌감의 표현에 커다란 군마 수십 마리가 휘청였다.


“달려라! 그리고 달리면서 기도하라!”


끊어지지 않게 줄에 신성력을 퍼부으며 우리는 쉬지 않고 놈의 주위를 달렸다.


“3번과 7번! 지금이다, 2번!”


우리는 언제나 약자. 하지만 약자 나름대로 싸움 방법이 있다.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낸다.


놈이 날뛰는 모습을 보며 무게 중심을 흩트릴 수 있는 위치의 줄을 잡아당긴다.

거체를 넘어뜨리거나 할 정도는 안 되지만 효과는 있다.

적어도 군마가 끌려가 대열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귀찮게 구는구나. 감히 이 몸을 묶어두려 하다니!]


녀석이 점차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곧 큰 게 올지도 모른다.


“속도를 올린다! 기병창 준비!”


그렇다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 큰 것을 노린다.


모든 신성력을 기병창 하나에 집중. 그만큼 방어가 허술해지지만 상관없다.


팽팽하게 당겨진 포승줄을 이용해 원심력을 키운다.


달리는 말의 속도는 지칠 줄 모르고 점차 빨라진다.


창끝에서 신성력과 독무의 마기가 부딪치며 불꽃 같은 빛이 튀었다.


모순(矛盾).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

사실 그것은 한 끗 차이.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는 창이 있다면 그 창이야말로 곧 모든 것을 막는 방패나 다름없다.


기사들은 방어를 버리고 힘을 모은 창끝 일점이야 말로 생명의 방패가 되어줄 것을 믿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


디르필이 아까보다 더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심한 틈에 몸을 칭칭 감은 포승줄이 그를 마음대로 움직이게 두지 않았다.


이윽고 마룡은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 했으나 그것은 가장 경계하고 있던 것.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기사들이 준비해놓았던 성법을 한 번에 퍼부어 비행을 저지했다.


가속이 붙은 십여 명의 기사들이 이윽고 어떠한 방패도 뚫어버릴 기세로 용에게 짓쳐든다.


-쿠지지직···!


“크으윽! 전원 밀리지 마라!”


선두에 선 기사가 뒤돌 여유도 없이 크게 외쳤다.


그러다 기사단의 혼신의 일격도 다가갈수록 강해지는 독기를 간신히 뚫어내는 것에 그쳤고, 뒤이은 디르필의 몸부림에 크게 대열을 흩트리고 말았다.


무방비가 된 기사들은 한순간에 나자빠지고 포박했던 포승줄도 단번에 끊어졌다.


“그것마저 막는가.”


나는 태연하게 기사단의 연합 공격을 막아낸 디르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련이 극에 달했도다.]


기병대의 공격이 닿기 수초 전, 나는 이미 말을 내려 까마득한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유넥티스여. 핍박 받는 인류의 최초의 빛이었던, 시작의 성인이여.]


나의 손에 들린 것은 초대 교황이자 최초의 영웅이었던 유넥티스의 천검(天劍).


[그대의 유지를 이어받은 이가 같은 마음으로 기적을 바라노니.]


오직 마(魔)를 가른다.


그 일념 하나만을 담아 극한으로 벼린 불굴의 칼날.


[당신의 염원을 지금 이곳에. 빛이 있으라. 피아트 룩스(Fiat lux).]


성검에서 넘쳐 흐른 빛이 하늘을 채웠다 다시 검신에 수속(收束)한다.


종말의 용에게 최후를 선사하기 위해 준비했던 나의 최고의 기술.


“하아앗!”


지금 여기에서 너를 꺾고 종말을 막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리···!


-챙강!


“뭣···!”


나는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파편을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


분명 기적을 만들었어야 했을 터인 성검의 빛이 돌연 흩어지며 부러졌다.


[어찌, 생각한 대로 잘 되지는 않았나 보구나.]


-콰직!


소름 끼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내 전신을 타고 머리를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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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성자, 이단의 괴수가 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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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0) 24.03.29 2 0 13쪽
22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9) 24.03.28 4 0 12쪽
21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8) 24.03.27 4 0 12쪽
20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7) 24.03.26 6 0 12쪽
19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6) 24.03.25 5 0 14쪽
18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5) 24.03.23 5 0 13쪽
17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4) 24.03.22 6 0 12쪽
16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3) 24.03.21 6 0 12쪽
15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2) 24.03.20 5 0 15쪽
14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 24.03.19 6 0 14쪽
13 ep4.썩은 땅콩의 수난(6) 24.03.18 7 0 13쪽
12 ep4.썩은 땅콩의 수난(5) 24.03.16 5 0 14쪽
11 ep4.썩은 땅콩의 수난(4) 24.03.15 5 0 15쪽
10 ep4.썩은 땅콩의 수난(3) 24.03.14 5 0 12쪽
9 ep4.썩은 땅콩의 수난(2) 24.03.13 6 0 15쪽
8 ep4.썩은 땅콩의 수난(1) 24.03.12 5 0 13쪽
7 ep3.벌거벗은 기사(2) 24.03.11 7 0 13쪽
6 ep3.벌거벗은 기사(1) 24.03.09 7 0 13쪽
5 ep2.노래하는 자들 24.03.08 11 0 13쪽
4 ep1. 성전, 그리고 부활(4) 24.03.07 8 0 14쪽
» ep1. 성전, 그리고 부활(3) 24.03.06 9 0 12쪽
2 ep1. 성전, 그리고 부활(2) 24.03.05 10 0 12쪽
1 ep1. 성전, 그리고 부활(1) 24.03.05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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