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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지저씨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의 성자, 이단의 괴수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지저씨
작품등록일 :
2024.03.01 11: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8:3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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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추천수 :
0
글자수 :
136,245

작성
24.03.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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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4)

DUMMY

“하워드! 이제 슬슬 준비해. 조금만 더 가서 시작하자.”


케이트가 말 엉덩이로 달려드는 쿠알을 단창(短槍)으로 찌르며 신호했다.


두 사람의 시선에는 그들의 행동을 만전으로 기다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알았어. 타이밍 보고 바로 시작할 테니 잘 따라붙으라고!”


선두를 달리던 하워드는 뒤를 흘낏 확인하고 말에 몸을 바짝 붙였다.


뒤로는 눈을 벌겋게 하고 쫓아오는 굶주린 짐승이 수백.

일면, 두 사람이 도망치는 모양새로 보일 수 있었으나.


전신을 감싼 여명과 같은 빛이 상처 입은 마수들의 모습을 비추며 그를 부정하고 있었다.


“지금!”


하워드가 신호를 주자, 케이트가 단창의 반대 손에 있던 검으로 설치된 밧줄을 잘라냈다.


-덜컥! 덜컥!


검을 휘두른 곳부터 시작해서 연쇄적으로 장애물이 작동했다.

쿠알 떼가 달리던 경로 앞에 솟아오른 징 박힌 나무 방벽.

사족 보행인 놈들의 보폭에 맞춘 얇은 줄.

그리고 한 뼘 깊이 만큼 파놓은 땅이 절묘하게 이동을 방해했다.


대단한 기술이 들어간 함정은 없었다. 하지만 흥분해서 달리던 쿠알 떼의 전열은 이 정도에도 발이 얽혀 땅에 코를 박기 일쑤였고 두 기사는 이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라, 어리석은 이여. 죄값을 받으라, 내 그대의 허물을 도려내리니. 디바인 슬래시(divine slash)!]


검을 얼굴 앞에 세우고 기도를 마친 케이트가 성광(聖光)을 담은 검기를 날렸다.

금색 검광은 빠르게 날아가 짐승 서넛의 몸통을 한 번에 꿰뚫었다.


두 발로 세워놓으면 사람보다 큰 기괴한 짐승을 깔끔하게 도려내는 절삭력.

그녀의 신앙과 기개를 절로 알 수 있는 검세(劍勢)였다.


허나, 결국 고작 몇백 중의 서넛.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 이 같은 일을 수백 번 반복해야 하는 걸까?


[주께서 그 말과 탄 자를 들어 멸망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그 불과 이한 검으로 멸룡의 세력을 멸할 것이니.]


마을 쪽으로 달리던 하워드가 고삐를 틀어 방향을 바꿨다.

그는 달리는 속도를 더하며 기병창을 꼬나쥐고 기도를 외웠다.


[하늘의 크신 이여, 이곳에 임하소서. 나 천능(天能)을 태운 말이 되어 영광을 업으리로다.]


하워드를 태운 말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그 속도는 일반적인 말이 달릴 수 있는 빠르기는 진즉에 넘어섰고, 신성으로 강화된 것을 감안 해도 한층 더 빠른 속도였다.


“자, 가자, 버터. 달리는 거야. [백염질주(sacred flame charge)!]”


그가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기도의 마지막 구절을 외치자 말도 호응하듯 크게 울었다.


그러자 말발굽, 기병창의 선단(先端), 하워드의 투구까지 모두 하얀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쪽!”


먼저 시선을 끌고 있던 케이트가 자신이 공격하던 쿠알 무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말과 하나가 되어 커다란 불덩이가 돼버린 하워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에게 뜻이 잘 전달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워드는 머릿속으로 한 가지만 생각했다.

말 고삐를 채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무조건 직진.

속도는 줄이지 않는다.


-콰앙!


그의 질주는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처럼 빛났고 또 무자비했다.

창끝에 걸린 마수들은 성화(聖火)를 몸에 두른 그의 질주를 단 한 순간도 저지할 수 없었다.


“이랴!”


케이트가 하워드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말을 몰았다.

혹시나 질주하는 하워드의 뒤를 노리는 위협을 쳐내기 위함이었으나, 그녀가 손을 댈 일은 거의 없었다.


창끝이 꿰뚫고, 발굽이 짓이기며, 성화가 태운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말 그대로 일소(一掃).

목필로 까맣게 칠한 도화지를 지우개로 밀어버리듯, 검은 마수를 불태운 주위엔 옮겨붙은 하얀 불꽃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세는 길지 않았다.

하워드로선 이 정도로 효과적인 성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워드 조금만 더 달려! 마지막까지 달리지 않으면 창으로 네 엉덩이를 찔러버릴 거니까!”


적어도 짐승 떼의 복판에 들어와 있는 이곳에서 성법이 끊어지면 안 된다.

케이트는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한 하워드의 뒤를 지키며 외쳤다.


“두 번째 촛불 끌게요.”


한편, 그 모습을 높은 목책에서 바라보고 있던 소냐가 기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파이에게 말했다.

언뜻 확인을 바라는 듯한 말이었지만, 두 눈을 감고 있는 파이에게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다.


소냐도 그것을 아는지, 조용히 일곱 개의 양초가 타고 있는 촛대 중 두 번째 것에 덮개를 덮어 불을 껐다.


그러자 저 멀리 하워드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구잡이로 입을 벌리며 두 기사에게 달려들던 쿠알의 발밑이 훅하고 꺼져버린 것이었다.


“다들 조준!”


그 모습을 본 엔도가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내렸다.

빠르게 가늠하여 각도를 재고 장전 되어 있던 그물을 일제히 투척.


“맞았다! 장전 조는 바로 다시 준비. 준비된 곳은 신호 기다리지 말고 바로 쏴요!”


거센 마수를 잡기에는 조악한 그물이다.

그러나 하워드와 케이트의 공격, 파이의 지원까지 더해지자 제법 쓸만해 졌다.


“이번에는 세 번째.”


분주한 사람들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집중하고 있던 소냐가 다시 양초에 덮개를 덮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멀리서부터 땅이 꺼지며 마수들을 땅속으로 매몰시켰다.


두 개의 촛불이 꺼지고 나자, 파이는 남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표정은 한층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힘내요, 파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소냐의 응원에 파이는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서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일곱 개의 초를 올릴 수 있는 파이 앞의 촛대.

그것은 파이의 성법을 보조해주는 그녀의 성물(聖物)이었다.


그녀가 특기로 삼는 성법은 주로 보호막 계열.

그리고 그녀의 촛대는 촛불 하나마다 각기 다른 성법을 유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보통 보호 장막은 마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주된 사용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엔도와 소냐의 아이디어로 함정을 발동하는 트리거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동 전까지는 하중을 마음껏 버티면서 원하는 타이밍에 적을 빠뜨릴 수 있는 구멍 함정?

그런 입맛대로의 함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와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술자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리한 일도 신성의 힘을 조금만 빌리면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미리 파놓은 함정 위에 신성 장벽을 시전하고 위장에만 조금 신경 쓰면 완성.

영구적인 장치는 아니긴 해도 계획만 차분히 짜면 이용하기엔 충분하다.


이 말할 수 없는 편의성에 엔도는 불합리함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다섯 개면 평형 유지는 할 만 해.”


파이는 한쪽 눈만 살짝 뜨고 소냐에게 말했다.

그녀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곱의 신성 장막을 함정 위에 펼쳐두고 있었다.


덕분에 파이는 보호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전심전력.

나머지는 소냐가 촛불을 끄는 것으로 성법을 해제하며 원거리로 함정을 발동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


“안정적이군. 이 정도면 큰 무리는 없겠는데···.”


나는 목책 위에 서서 팔짱을 끼고 전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바쁜 와중에 어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게 뻘쭘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솔직히 말해 할 일이 없다.

여기까지 준비하는 거야 힘쓰는 일로 함께 했으나, 실전에서 나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하워드와 케이트처럼 전선에 서고 싶다.

그러나 성기사들 앞에서 신성이 아닌 힘을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마을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기도 했다.


그 결과 나는 파이에게 있을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그녀를 지키는 모양새로 팔짱을 끼고 있게 된 것이었다.


“다섯 개째. 이제 두 개 남았어요.”


파이의 촛대에는 처음과 마지막 촛불만 살아 일렁이고 있었다.


전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중반을 넘어선 분위기였다.


케이트는 솜씨가 좋다. 그녀는 아직도 말 위에서 종횡무진 달리며 함정에 걸린 녀석들만 골라 힘들이지 않고 목을 따고 있었다.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창을 들고 휘두르며 발만 사용해서 이동하는 그 기마술이 제법 훌륭했다.


반면, 하워드는 말을 내려 우직하게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커다란 방패와 갑옷을 앞세워 마을을 향해 달려드는 놈들의 허리를 하나씩 끊어냈다.

처음 질주를 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한 마리씩.

앞을 가로막는 놈이라면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확실히.

그야말로 기사의 정석이라는 느낌이었다.


목책 위의 사람들은 화공(火攻)으로 쿠알을 막아내고 있었다.

놈들의 두꺼운 가죽에는 화살도 잘 박히지 않는다.

그나마 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공격이 바로 불.


목책에는 근처 산등성이에서 구해온 화산재와 횟가루를 발라 내연성을 미리 확보했다.

싸움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나무가 타버리겠지만 두 번 정도는 새 목책으로 교체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짐승들이 벽을 타 넘지 못하게 창으로 찌르고 불을 지르며 분주하게 막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가끔 하워드가 뛰어다니다 불똥에 맞긴 했으나 신성을 가득 올린 그에게는 불도 짐승의 이빨도 위협이 되진 못해 보였다.


“하워드! 케이트! 저기 끝쪽!”


긴장되지만 큰 이변은 없이 짐승 무리의 반 정도는 시체로 만들었을 때쯤.

처음으로 할 일이 생긴 나는 두 기사에게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 난전 중에 사람 하나의 목소리가 들릴 일 없지만, 예전 신성력을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요령으로 목소리를 바람에 실었다.


내가 가리킨 곳에 있는 것은 다른 개체보다 한 배 반은 더 큰 쿠알이 한 마리.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꼭꼭 숨어 있던 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저놈이 우두머리! 저놈을 치면 좀 더 수월해질 겁니다!”


내 외침에 말을 타고 있던 케이트가 먼저 움직였다.

하워드는 뒤로 빼놓았던 말을 다시 데리고 오긴 했지만, 연신 달려드는 쿠알의 아가리 때문에 올라탈 기회를 못 잡고 있었다.


[밤에 취한 자들은 취한 채로 놔두어라. 도적같이 맞이한 빛에 눈이 멀지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다 빛의 아들이요 낮에 속한 자니라. 브라이트 블라인드(bright blind)!]


꺼졌던 파이의 두 번째 촛대에 다시 불이 타올랐다.


수세에 몰려 있던 하워드로부터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더없이 밝은 빛이었지만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신성의 빛이 내 눈에만 보이는 기묘한 빛과 어딘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고맙다, 파이!”


그 빛은 마수의 시력을 멀게 하고 하워드에게 기회를 주었다.


[광야 위에 이르러 오롯이 달리는 자야.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내가 너희를 위해 장막을 치매 이는 내가 너희를 굽어살핌이라. 헤이스트 베리어(haste barrier)!]


“케이트! 하워드! 달려요! 나 이제 힘들어서 더는 못 도와줘!”


세 번째 촛불까지 다시 밝힌 파이가 소리치기 위해 일어섰다 다시 주저앉았다.

그녀는 한 팔을 겨우 들어 주먹을 쥐고 빙글빙글 휘둘렀다.


파이 나름의 응원이겠지. 그러나 나처럼 바람을 실은 것도 신성력을 사용한 것도 아닌 목소리와 몸짓을 두 기사가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도는 확실히 그들에게 닿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바람이 실어날라 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고마워. 확실히 끝장내고 올게!”


방벽의 보호를 느낀 두 기사가 손에 든 검을 하늘 높이 번쩍 치켜들고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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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9) 24.03.28 4 0 12쪽
21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8) 24.03.27 4 0 12쪽
20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7) 24.03.26 6 0 12쪽
19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6) 24.03.25 5 0 14쪽
18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5) 24.03.23 5 0 13쪽
»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4) 24.03.22 6 0 12쪽
16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3) 24.03.21 6 0 12쪽
15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2) 24.03.20 5 0 15쪽
14 ep5.영웅이 되고 싶은 소년(1) 24.03.19 6 0 14쪽
13 ep4.썩은 땅콩의 수난(6) 24.03.18 6 0 13쪽
12 ep4.썩은 땅콩의 수난(5) 24.03.16 5 0 14쪽
11 ep4.썩은 땅콩의 수난(4) 24.03.15 5 0 15쪽
10 ep4.썩은 땅콩의 수난(3) 24.03.14 5 0 12쪽
9 ep4.썩은 땅콩의 수난(2) 24.03.13 6 0 15쪽
8 ep4.썩은 땅콩의 수난(1) 24.03.12 5 0 13쪽
7 ep3.벌거벗은 기사(2) 24.03.11 7 0 13쪽
6 ep3.벌거벗은 기사(1) 24.03.09 7 0 13쪽
5 ep2.노래하는 자들 24.03.08 11 0 13쪽
4 ep1. 성전, 그리고 부활(4) 24.03.07 8 0 14쪽
3 ep1. 성전, 그리고 부활(3) 24.03.06 8 0 12쪽
2 ep1. 성전, 그리고 부활(2) 24.03.05 10 0 12쪽
1 ep1. 성전, 그리고 부활(1) 24.03.05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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