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으로
“그래서 용무는 뭐지?”
“네?”
“날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그냥 찾아오면 안 되는 건가요?”
코메트가 아무리 퀘이사의 딸이라지만 그녀는 그를 잇는 진정한 구심점 역할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마법 실력이 퀘이사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퀘이사 공작이 어치브 수준의 마법사를 희생시켜 싸웠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한 일은 아니라할지라도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였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공작가에서 지는 것이 당연했다.
“뭐 네 맘이니까 뭐. 그래도 이 검은 못 돌려준다?”
프로스트의 허리춤에 있는 그람. 그 마검은 본래 코메트의 호위로 있던 그리즈만이라는 아이의 검이었다.
“돌려받을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가지고 계시는 편이 더 좋을지도......”
그가 검을 사용할 때마다 자신을 떠올려준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 코메트였다.
“아 그리고 저번에 부탁했던 원더하고 폴른은 적응 잘 했어?”
“네, 생각보다 유능한 분들이어서 저희도 적극적으로 직책을 맡겼습니다.”
원더와 폴른은 검황국에서 앨리스를 빼앗긴 후에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습을 감추었다한들 과학국의 감시 장비들을 사용하면 찾지못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프로스트는 인력이 부족한 마법 제국에서 그들을 거두어가기를 코메트에게 요청했고, 원더와 폴른은 그의 바람대로 마법제국에 좋은 대우로 들어갔다.
“검황국에서의 움직임은?”
전쟁이 끝난 후에 가장 큰 문제가 검황국이었다. 그들은 주 전력들을 잃기는 했어도 제국과 과학국에 비하면 손해가 작은 측에 속했다.
게다가 황궁의 수호령과 제일무녀인 리한나의 모습을 중요한 순간에도 보지 못한 것이 이내 마음에 걸렸던 것.
“프로스트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반대로 황성과 주변의 작은 마을들은 바쁘게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언블러드라는 과학국의 대장이 처참하게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나름의 피해를 준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뒤에서 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나보네.”
“또 싸우러 가는 건가요?”
사나워진 표정을 짓는 프로스트를 보며 코메트가 되물었지만 그는 오히려 부정했다.
“아니.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농사나 지어야지. 솔직히 나한테 피해가 오지 않는 한은 나도 나설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거든.”
나고 자란 세상도 국가도 아니었다. 심지어 유저들을 길러준 존재들은 노부부를 비롯하여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현재 국가를 위해 나서는 짓은 목에 칼이라도 들어오지 않는 한은 하지 않았다.
“그럼 검황국을 제지할 세력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겠군요.”
“아무리 전쟁의 후유증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과학국이나 마법제국이나 검황국을 상대할 여력쯤은 한두 개쯤 남았을 텐데?”
“.......그 사실을 어떻게?”
“과학국만 봐도 대충 사이즈 나오잖아.”
과학국의 경우가 그러했다. 힉스가 사망했다고는 하지만 클론과 병기 생산시설은 계속해서 가동되고 있었고, 병력도 숫자만 따지자만 검황국과 마법제국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인력이 남아있었다.
심지어 핵이라는 대량살상 병기도 갖추고 있었으니, 펜타곤의 클론이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렇네요. 저도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 생각인데 괜찮을까요?”
“마음대로 해. 애초에 이자벨라나 로베르타도 어쩌다보니 같이 살게 된 케이스거든. 아! 희령님 왜 매일 로베르타만 보면 어린애처럼 꼬라지를 부립니까?”
“꼬라지? 이게 스승님이자, 신령님인 나한테 말하는 뽄새 좀 보소!”
프로스트와 희령의 언쟁으로 3차전이 벌어지고, 다시금 로베르타가 프로스트를 옹호하며, 싸움의 스케일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축지와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전장은 넓어졌고, 애써 가꾼 밭은 다시금 형태를 잃어간다.
‘이건 아버님의 의지가 아니야. 이건 내 마음이야.’
처음에는 퀘이사 공작이 내비친 의사대로 그와 혼약을 맺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접근했고, 그를 만났지만 지금은 퀘이사 공작도 없었고, 그녀의 마음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호감이 가득한 상태였다.
검황국의 황성. 그곳의 옥좌에는 리한나가 황제인 쉔룽 대신에 앉아있었다. 쉔롱은 패도검-평정(平定)을 지녀 막강한 무력을 지녔었지만 그녀의 계략에 의해 꼭두각시로 전락한 상태였다.
때문에 황성의 구성원들이 하나둘 바뀌어 현재 검황국은 유저들의 국가로 바뀌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외부 대륙에 관한 정보는 모두 모았나?”
“성현. 이제 궁에서는 기척 좀 드러내지? 이미 황성은 내 손에 넘어왔어.”
너도 치워버릴 수가 있어. 라는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초승달을 그리는 그녀의 표정 너머에 의지는 확실하게 성현에게 전해졌다.
“사과하지. 내가 회복할 동안 외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하지 않았나.”
“물론. 모두 찾았어.”
한 장 한 장마다 글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들이 리한나의 품에서 계속해서 꺼내진다.
“쓸모없어 보이는 소문이나 서적들까지 전부.”
“천천히 읽어보지.”
그대로 성현은 찝찝한 황궁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을 리한나의 말이 막아섰다.
“왜 그렇게 바다 너머의 상황을 궁금해 하는지 말은 해줘야지?”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도 다음번에는 꼭 알려줘야 해?”
저 가식적인 웃음 너머에 존재하는 악의를 너머선 광기.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순전히 황제였으나 이제는 그녀가 검황국의 실세였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넘어서 성현은 그녀에게 협력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대륙의 바깥. 6억에 이르는 인원이 지구보다 훨씬 광대한 이 곳으로 이동해 이곳으로 날려지지는 않았다.
‘저편까지 이어진 수평선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대륙에도 분명 또 다른 유저들과 새로운 종족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곳을 벗어나려는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품속에서 꺼낸 사진 한 장. 이곳으로 이동되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될 것이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김성희. 살아만 있어다오.’
고작 5살 밖에 먹지 않은 딸을 찾기 위해서 그는 검황국에서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프로스트가 있는 대륙과는 다른 대륙.
“하이고......삭신이 다 쑤시네.”
“뭐 얼마나 사냥했다고 꾀병을 부리냐.”
“평소보다 2배는 많이 잡았잖아.”
두 남녀의 주변에는 몬스터라 불리는 이종족들의 시체가 길목마다 가득했다.
“어쩔 수 없다.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면 언제까지고 이 마을에서 지낼 수는 없어. 마을을 오랫동안 비워두려면 식량이라도 넉넉하게 구해야지.”
“힘들다고 한 마디 했다가 아주 몇 배로 훈계 받네.”
충격적이게도 그들은 처음 날려진 장소에서부터 떠나지 않고 줄곧 같은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다.
일정한 경계 너머로는 수준이 남다른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났고, 그 경계 사이사이에 그들조차도 손쉽게 먹이로 삼는 포식자들이 터를 잡아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먹혔기 때문.
벗어나려면 그만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부락내에서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큰 진전 없이 지내온 것이다.
“능력치는 어느 정도인데?”
“이제 힘 스텟이 231이네. 그러는 너는?”
“나는 민첩이 232”
“지다니.......”
“고작 1차이로 무슨. 그 1 차이로 여길 벗어날 수 있었으면 몰라도 진짜 의미 없다니깐.”
“또 무슨 뒷말을 그렇게 덧붙이냐......”
무려 230이 넘는 주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두 남녀는 그럼에도 전혀 성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 챗기능 진짜 쓸모없지 않냐?”
“그러네. 밖의 상황을 모르니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네.”
“또 저번처럼 랜덤채팅마냥 글이나 싸질르던지.”
“아 쫌!”
남자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었던 듯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근데, 저 말 사실일까?”
“과학국이라는 괴상한 나라에 지구로 갈 방법이 있다는 개소리?”
“어.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 국가라고 해봤자, 그때 본 괴상한 말투의 녀석이 보여준 비상식에는 못 따라갈 것 같단 말이지.”
“실패한다면 뭐....... 결국 우리가 있는 쪽도 한 번 둘러보러 오겠지.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 계획대로 이곳을 벗어날 계획을 실행하면 되는 거고.”
채팅 로그들의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들이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해 지기 전에 얼른 식량이나 끌고 가자고. 일단 벗어나야 사실 확인이든 뭐든 하지.”
“그래. 내일부터는 새로운 영역의 지형을 익힌 후에 곧바로 벗어나보자고.”
두 남녀는 수 십구의 식량이 되어줄 시체들을 줄로 연결에 질질 끌고 허름한 나무와 넝쿨로 엉성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가득한 마을로 이동했다.
- 작가의말
이것도 제 업보겠지요...... 허접한 필력으로 세계관을 크게 그려놨으니ㅜㅜ
새롭게 넘어오게될 사람들도, 대륙 건너편에 존재할 더욱 거대한 대륙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주인공 버프로 어찌저찌 키워놨습니다만 어림도 없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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