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진심이야?”
“......그래.”
하오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옆을 지켜온 사령은 하오의 이야기를 듣고도 말릴 수 없었다. 그저 진의를 물어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고작이었다. 하오라는 자신의 계약자가 각오한 일은 반드시 한다는 것쯤은 3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켜봐왔으니까.
“희령과 나보다도 제자를 택한 건가?”
“말을 참 서운하게도 하는군. 자네들에게는 별로 오랜 시간도 아니지 않았나.”
“네 말이 더 서운한데 말이지.”
하오가 희생할 것이라는 것을 사령은 청출어람을 프로스트에게 맡긴 때부터 어쩌면 그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갈수록 예상은 해왔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음에 당황했을 뿐.
“네 제자도 이미 훌륭히 한 사람의 도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어. 굳이 따지자면 젊었을 적에 너는 진즉에 넘어섰지.”
“그러니 다음 세대를 위해 늙은이는 제 역할을 하고 퇴장하는 것이 맞지.”
“......”
“물론. 신령인 너희는 나이의 개념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예외지만. 나는 두 팔을 잃은 순간. 아니 그 이전에 그 아이를 제자로 들인 순간부터 각오했었으니까.”
사령의 혀가 가볍게 하오의 볼을 핥았다.
“나는 네 제자와 계약을 하면 되는 건가?”
“뒤는 맡길게. 그 아이는 나한테 배우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제자를 위해 양 팔을 내주었고,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하오의 역량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단 한 번의 기회만 만들어주면 알아서 잘 해낼 아이야.”
사령은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신령부 안쪽으로 사라졌다. 하오의 이야기를 더 듣다가는 온 몸을 부러뜨려서라도 못 가게 막으려들었을 테니까.
“스승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청출어람과 그것을 뒤따르는 하오의 형체는 이미 투명한 상태였다. 신체와 마력.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을 청출어람에 담은 여파였고, 그것은 곧 하오의 최후를 뜻했다.
파지지지직
“이게 무슨.....!”
당황하는 힉스. 작은 스파크와 함께 블랙홀에 균열이 생기며, 마법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프로스트!”
“.......아”
어느새 그의 곁으로 이동한 로베르타가 절망하는 프로스트를 데리고 황급히 균열의 범위로부터 벗어났다.
“허억...허억..... 제기랄!”
사라진 균열의 중심에서 나타난 것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힉스였다. 피부 곳곳이 거친 힘에 의해 찢겨나간 듯 피가 낭자했으며, 기괴한 모습으로 겨우 사람의 형상만 유지하고 있었다.
“나의 수가 고작 코어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더 이상 수를 쓰기 전에 죽여주지.”
균열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한 허큘리스가 어느새 망가진 힉스의 뒤에서 나타났고, 강대한 주먹이 힉스를 처단하기 위해 내질러진다. 그러나
“쯧”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다시금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너무 늦었다. 펜타곤.”
[꼴이 말이 아니군요. 원수.]
펜타곤의 클론 1호기이자, 최후의 전쟁을 대비해 상공에서 무려 10년을 동결상태로 있었던 그가 최후의 병기를 이끌고 나타났다.
“가동은 문제없었나?”
[초소형 핵융합로에서 꾸준히 에너지를 보급 받고 있으니, 전혀 문제없습니다.]
열권 층이 존재하는 초상공에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유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연료의 고갈이 없었기 때문. 필요한 동력은 기체가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번 그라운드(Burn-Ground).”
다스에 탑승한 힉스의 명령어가 상공에 존재하던 모든 병기를 일제히 가동시킨다. 그 이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희령과 허큘리스였다. 이미 겪어본 바 있는 Destroy 시리즈. 즉, 레이저 플라즈마 병기가 가동되었다.
“설마?”
한 대 정도라면 희령의 도술로도 막는 것은 가능했으나, 그 수가 30 이상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모두 모이세요. 제가 막겠습니다.”
“쯧. 죽지는 않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씨익 웃어보이는 허큘리스는 지상을 뒤엎듯 쏟아지는 푸른색의 영롱한 빛 무리에 뛰어들었다.
파지지직
“이건.......많이 아픈데?”
아무리 패도검-전력의 힘으로 체력과 상처에서 뛰어난 회복력을 보인다지만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온 힘을 다해 레이저를 몸으로 막는 동안 살이 타는 냄새가 일대를 잠식했다.
“이제 고작 하나야.”
“하지만 막았습니다.”
그리고 이격 째. 충격이 동반된 병기인데다, 중력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뒤로 추락해오기 시작한다.
“사령! 싹바가지한테 일단 신경 끄고 붙어라!”
“젠장. 나도 아직 제정신이 아니다!”
프로스트의 넓은 팔소매로부터 튀어나온 사령이 희령과 함께 도술을 펼쳤다.
-근두운(觔斗雲)의 술
-태산암(太山岩)의 술
밀려내려오는 허큘리스를 받치기 위해 부유력을 가진 구름이 생성되고, 거대한 암석이 지상으로부터 치솟는다.
“이거라면!”
삼격 째. 자신하던 허큘리스의 의지를 꺾는다.
“젠장. 못 버티는 거냐 사령?”
허큘리스의 발판이 되어주던 사령의 도술로 만들어진 암석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계약자가 없다고 지금은!”
하오가 죽은 여파로 마력의 공급이 어려워진 사령은 인간계에 유지할 마력마저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격, 오격, 육격이 연이어 허큘리스를 노리고 쏘아진다.
“........!”
이제는 기합도 내지를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허큘리스의 전신을 때리고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패도검-전력이 있는 한 그가 죽을 일은 없었지만 의지마저도 녹여 없애버리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온다.
패도검-전력의 힘은 전투가 지속되는 한 무한한 체력과 힘을 공급해준다. 하지만 의지가 없다면 그마저도 무용지물인 셈이었다.
‘남은 포격정도는 맡겨도.......’
마지막 남은 의지의 불꽃이 꺼지기 직전. 그의 의식을 한 목소리가 깨운다.
“버텨, 허큘리스! 안 쓰러지고 버티면....... 사귀어준다!”
꺼져가던 의식에 다시금 빛이 켜진다.
“로....젤...린....그.......말.......진심이냐아아아아!”
이미 절반 정도 녹아 없어져가던 몸이 순식간에 회복되고 있었다.
[2번째 과업 : 레르네의 히드라]
신화 속 무한히 재생되던 아홉 머리 뱀의 생명력이 그에게 깃들고, 몸이 녹아 사라지는 속도보다 회복력이 월등히 앞서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머저리가 따로 없군.”
희령의 비웃음은 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 것처럼 상황도 호전되고 있었다. 팔격, 구격, 나머지 열 번째까지 허큘리스는 손쉽게 공격을 받아낸다.
“우오오오!”
기합과 함께 지상을 모두 태워 없앨 것만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로젤린 그 말 진......!”
들뜬 그를 노리고 뒤에서 날아오는 미사일 수십 개가 순간 빛을 뿜는다. 허큘리스에게로 폭발의 여파가 도달하기 직전 공간을 이동한 로젤린이 그를 안고 다시 사라졌다.
“신났어? 아주.”
“물론이지.”
허큘리스는 텔레포트로 자신을 폭격으로부터 지켜준 로젤린을 보며 웃어보였다. 로젤린의 눈이 부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나, 그는 끝까지 고백에 성공하고 신난 아이처럼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장에 다시 난전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정작 다스의 내부에는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펜타곤. 다스 한 기로는 녀석들을 이길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시밀러 코어의 작동도 통하지 않아.”
“그것도 물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펜타곤의 모습에 힉스는 의문이 들었다.
“무엇이 그리 즐겁나?”
“다스의 내부에는 원수를 치료할 수 있을만한 물품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통솔권을 넘기라 이 말인가?”
“원수는 이해가 빠르십니다. 하하하하하.”
“......”
이미 힉스는 온 몸이 찢기고 팔이 잘린 상태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혈색이 좋지 않았고, 언제 과다출혈로 쇼크를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버티고 있는 것이 기적인 셈이었다.
“과학국에 더 이상 무엇이 남았다고 그러지?”
“병기들은 더 이상 선보일 것이 없지만 시설은 아니니까.”
“......그런가? 이미 나는 실패했다. 허니 그대가 원한다면 넘기도록 하지. 모든 통솔권과 권한을.”
어떠한 제스처나 서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넘기겠다는 그 말 하나면 충분했다. 원수라는 지위와 그에 따른 권한은 펜타곤에게 너무나도 쉽게 넘어갔다.
그와 함께 전장에서 지상을 향해 미친 듯이 폭격을 날리던 다스가 정지하고, 이변을 느낀 지상의 인원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전쟁은 끝이다. 새로이 원수가 된 나 펜타곤이 종전을 선언한다.]
- 작가의말
어째서 종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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