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란
랭커에 들어가 얻을 수 있다는 신이 기거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는 꽤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존재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는 것이며,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에서 살아감에 있어 보다 좋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굳이 상위의 경쟁자들에게 노출시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제가 6억. 아니 보다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사람들을 제치고 올라선다면. 허큘리스가 말한 랭커에 도달해 신을 만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
하오는 그런 프로스트의 의문에 쉽사리 해답을 줄 수 없었다. 하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는 세상의 신이라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에 기대가 있었지만 제자가 그 해답을 자신에게 묻는다면 그것은 제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것과 동일했다.
“너는 본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도 지금은 스승님과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네가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하오의 말에 프로스트는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취업도 못했고, 그저 평범한 집안에 비전과 장래, 스펙은 없었다.
어쩌면 이 옴니포텐스라는 게임이 가져다준 세상이 현실의 도피처이자, 또 다른 현실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추억과 경험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을, 희령님을. 이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연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리한나에게도 당당히 했던 말이지만 프로스트는 이 세상을 게임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하오에게도 기쁜 말이었다.
“하지만 약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보거라.”
하오의 헐렁이는 양 팔의 소매. 하오도 충분한 강자였음에도 검황국에는, 대륙에는 더한 강자들이 존재했다.
“경쟁하는 이들보다 더욱 강해지면 그만이 아니더냐.”
능력치를 그 누구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프로스트이기 때문에.
“비록 나와 너의 입장은 다를지언정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강한 것이 네게 독이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
“이 팔도 너와의 연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던 것과 비교해서는 썩 나쁘지 않은 교환이로구나.”
조각상처럼 완벽한 미형을 보이는 하오의 얼굴에 작지만 확실하게 웃음이 어려 있었다.
“이자벨라, 로베르타 늦게 와서 정말 미안.”
“.....그리고?”
깨어난 이들에게 거듭 고개를 숙이는 프로스트에게 여성진의 표정은 한 없이 차가웠다.
“어.......”
추가적인 답변을 원하는 로베르타의 질문에 머뭇거리자 이자벨라와 비앙카도 한 몫 거들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자기중심적인 행동에다가 멍청한 것은 변하지 않았네요.”
“왜 저한테는 사과도 안하시는 거죠?”
그 뒤로도 이어지는 연타에 프로스트는 안절부절하며, 이들을 쳐다보았고 세 여성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표정은 진짜 오랜만이네.”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진짜 멍청한 애완동물 같아요.”
지속된 전투에 지쳤고, 정신적으로 의존하던 프로스트는 어떤 이유였든 부재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전환점이 필요했고, 앨리스가 잡혀간 시급한 상황임에도 프로스트는 여자들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부탁할게 하나 있어.”
“앨리스씨에 대한 거죠?”
“응.”
“저도 고백할게 하나 있어요.”
이자벨라는 지금이 말해야할 시기라고 직감했다.
“저 프로스트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뭐? 하지만”
“뜬금없겠죠. 그래도 지금이 말해야할 기회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자신의 마음은 이미 앨리스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자벨라에게 마음을 줄 수 없다는 사실도.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랬다. 별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감정을 느끼니까. 그녀와 같이 자신도 앨리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고마워.”
“별 말씀을요.”
당돌한 이자벨라의 모습에 로베르타도 비앙카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고, 하오 또한 한 걸음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서 가려는 것이냐.”
“스승님. 제 힘으로는 모두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크게 깨달았습니다.”
“허큘리스라는 자에게 갈 생각인가 보구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 말은 또 다른 이의 힘을 빌리겠다는 뜻이고, 이 자리를 새벽에 홀로 떠나려는 말은 허큘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이들의 안전은 내게 맡기고 가거라.”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오는 프로스트의 곁으로 다가서더니 부서져버린 청출어람이 담긴 부적을 무형의 힘으로 그의 품에서 꺼내어 자신의 마력을 주입했다.
“청출어람은 반드시 품에서 떨어뜨리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특별한 의미 없이 하오가 그런 이야기를 할 리 없음을 알기에 프로스트는 축지를 밟아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결국 말도 없이 떠났네요.”
“정말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이냐.”
“저희야 어젯밤 내내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괜찮아요.”
하오의 도술로 세워진 임시 숙소에서 나온 로베르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보기엔 그것만이 아닌 것 같구나.”
“어머, 눈치도 빠르셔라.”
“도술과 검술에 매진했다고는 하나 나도 사람의 심리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네. 곧바로 따라갈......리는 없겠구나.”
실질적으로 짐이 되지 않으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는 4명 중 하오와 로베르타 둘 뿐이었다. 그럼에도 프로스트가 권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겪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
그것을 로베르타 자신도 알기 때문에 바로 쫓지는 않을 것이었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바로 쫓아갈 생각이에요.”
“내 제자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었구나.”
하오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았음을 조금 후회했다.
“과학국 유일의 마력 병기. C341. 드디어! 코어의 결합에 성공했습니다.”
로스앨러모스의 집무실을 박차고 들어온 하얀 가운을 걸친 이는 그렇게 외쳤다.
“하...... 그 정도는 회선으로도 보고 가능하지 않나.”
“그렇지만 이 성과는 꼭 직접 말하고 싶어서 말입죠. 헤헤헤.”
“주변국에서 별 다른 움직임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아직은 여유를 가져도 충분할 정도야. 보다 완성도를 높일 방법이나 이 시간에 강구해.”
“이 이상의 기술력은 아마 20년은 족히 걸릴 텐데 괜찮으신지요.”
직급으로는 확실하게 위에 있던 로스앨러모스지만 그를 대하는 인물의 태도는 전혀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연결되는 병기들의 정비도 가능하잖나.”
“헤헤헤. 알겠슴돠.”
이만한 성과보고에도 귀찮아하는 로스앨러모스의 태도에 흥미가 식은 것인지 그는 곧장 집무실을 나갔다. 그 후 바로 로스앨러모스는 통신을 또 다른 대장인 아이언블러드에게로 연결했다.
“보고는 들었나?”
[물론이다. 다시 진격하면 되는 건가?]
“확실하게 공격목표를 정하는 편이 좋겠지.”
[확실히. 전력이 분산되는 편보다는 낫겠어. 그래서 목표는 생각해둔 바가 있나?]
“검황국이다.”
‘거대한 마력 파동을 감지하지 못할 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면 될 뿐.’
[펜타곤 그 자식한테 수도를 맡기는 것은 짜증나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하니....... 미사일 폭격부터 시작하겠다.]
“성과 기대하지.”
그렇게 잠시간의 휴전이 끝을 내렸다.
“안녕?”
“.......”
프로스트가 미리 전달받은 장소에 도착하자 로젤린이 인사를 건네 왔고, 프로스트는 그 인사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뭐야? 인사도 안 받아주네.”
“뭐, 우리가 인사할 정도로 친하지 않으니까.”
“뭐야. 지금 쟤 편드는 거야? 많이 컸네?”
이미 과학국에서 움직인 것을 확인한 후였기에 둘의 꽁트를 보고 싶던 마음이 없던 프로스트는 그들의 말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동맹에 대해 빠르게 정리하지.”
“......저 재수대가리. 말 끊는 것 좀 봐.”
“좋아. 서로에게 나쁠 것 없는 제안이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필요할 테니.”
로젤린은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이야기는 셋이 나눠야만 했기에 고개를 프로스트쪽으로 향하지는 않았지만 의견만큼은 듣고 있었다.
“앨리스를 구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최단시간, 최단루트로 앨리스를 구하고 나면 이후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를 돕도록 하지.”
“마음은 알겠지만, 위험 부담도 생각보다 크다. 무엇보다 성공확률이 지극히 낮지. 아무렇게나 내뱉고 우위를 점할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최적의 상대인 것은 맞지만 우리는 돕지 않으면 그만이야.”
의견 조율에 있어 가장 처음에 제시한 제안과 제안의 사이에서 절충안을 내는 것은 당연했기에 프로스트는 내뱉은 말이었지만 너무도 쉽게 그것을 간파당했다.
“쯧.”
“아쉬워 하지마. 지금 대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만큼 우리도 앨리스라는 인물의 탈환의 중요도를 높게 잡고 있다.”
‘무엇보다 그런 마력을 품고 있다면 아군이 되었을 때에 어떤 이득이 있을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군.’
속마음을 숨기며 허큘리스는 로젤린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내가 중립의 입장에서 정리해서 딱 말한다.”
“네가?”
처음 만날 때부터 허큘리스와 둘이 다니는 모습을 봤었기 때문에 의문을 내뱉었지만 사실 로젤린 또한 굳이 따지자면 밥그릇 차지도, 앨리스의 구출도. 그 어느 쪽도 아니기 때문에 중립이 맞았다.
“우리 말고도 랭커는 각국에 많아. 결국 이용할 것들은 최대한 이용하면 될 일이야.”
“어떻게 하려고?”
“능력치 120은 채웠어?”
“아니......”
“우선 그것부터 마치면 말해. 그게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지만 프로스트는 다시금 호미를 잡아야만 했다.
- 작가의말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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