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희령님!”
“알고...... 있어.”
희령과 앨리스는 프로스트의 부탁에 따라 과학국의 전력을 최대한 유인하고 있었다. 희령의 검과 다리 한쪽을 가볍게 날려버릴 정도의 레일건과 포탄의 화력을 이용한 무기들을 프로스트가 원했기 때문.
“치료는 불가능할까요?”
“싹바가지한테 마력 좀 빨아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펑 펑
분명히 단 한 걸음만 내뻗으면 여관이 있는 곳까지 눈 깜짝할 새에 도달할 수 있는 희령이었지만 저들의 포격범위 안에서 도망치려니 여관 귀찮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왼쪽 다리가 절단된 것은 물론이고 미끼 역할을 맡은 앨리스 또한 지켜야 한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하지만 귀여운 제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
‘복수를 해준다면 더한 것도 가능하지.’
히바나가 자신을 여유롭게 상대하던 모습을 떠올리자 희령의 의욕이 샘솟기 시작한다.
“풍수지리의 술.”
적합한 자연의 조화에 맞춰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때로는 바람을, 때로는 잎사귀 하나를 사뿐히 밟으며 포격의 세례를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으앙!”
“조금만 참어. 슬슬 도착할 것 같으니까.”
앨리스의 비명에도 희령은 침착했다. 과학국의 병기들은 예측된 상황과 전술에 최대의 효율을 보이는 반면, 이러한 상황에서는 화력만 강할 뿐이기에 변수가 없는 한은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셈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상황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
“희령님! 위에서 빛이.”
앨리스의 다급한 외침에 시선을 위로 향하는 희령. 그곳에는 지상요격을 위한 비행기들이 폭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대 전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속도, 화력, 원거리 폭격의 3요소를 두루 갖춘 병기의 등장에 지상을 누비던 희령의 표정 또한 굳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대륙 전쟁의 파괴 병기까지 들고온거야?”
대륙의 3강이 패권을 두고 펼친 대륙전쟁. 그곳에서 악명을 떨쳤던 공중병기 Destroy-12 의 등장에 자연스레 오행부를 주변에 흩뿌린다.
“저 비행기를 알고 계세요?”
“30년 전에도 악명을 떨쳤던 과학국의 비행체야. 그리고.”
뒷말은 도술의 발동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끊었지만 나올 말은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검황국의 검사들은 하늘을 부유할 수 없으니 가장 치명적이었다는 것.
“오행의 오망성. 화 수 목 금 토”
각 5장씩의 오행부가 오망성을 만들며, 희령과 앨리스의 머리 위로 방어를 위한 결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쏘아지는 빛.
단순한 화학적 변화만을 일으키는 X선 병기가 아닌, 물리적, 화학적인 데미지를 주기 위해 초고온 플라스마를 최대한 응축시켜 지상을 요격하는 병기였다.
대기의 저항에 의해 손실되는 양도 크나, 그럼에도 양산병기로서 채택될 정도의 살상력과 실용성이 그 빛줄기에는 담겨있었고, 오망성의 오행부 결계가 5중으로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충돌했다. 축지를 밟을 수 없을 정도의 순간을 정확히 노린 요격.
피웅
별 다른 충돌음도 거센 폭풍도 그 순간에는 없었다. 허나, 고온의 에너지가 발사되었으니 급격히 팽창하는 공기가 먼지와 입자를 밀어내는 것은 당연하기에
“꺄아아악!”
“별 거지같......!”
직접적인 데미지는 없으나 후에 급격히 팽창하는 공기에 밀려 날려지는 희령과 앨리스. 그들의 비명과 욕설은 엄청난 굉음에 묻혀 곧장 사라졌다.
‘아무리 계약자가 달라도 그렇지. 막는 것이 고작이라고?’
대기와 대지가 폭발한 근원지로부터 날려지는 희령은 분명 처음 병기를 마주했을 때와는 달리 포격에 큰 영향을 받은 것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과학국의 기술력이 진일보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황무지로 변해버린 일대의 광경 속에서 희령과 앨리스의 근처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알버트 중령님. 예상하신대로 건재한 모습입니다.”
“움직임이 너무 뻔했어. 우리를 유도하려는 속셈이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요?”
콧수염을 매만지던 알버트 중령은 일련의 상황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전날 모습을 갑작스레 감춘 코드넘버-C341과 그 일행이 모습을 드러내 병사들을 도발한 것.
왜 죽일 수 있음에도 기절시키거나 사지 중 한 곳만을 잘라내 행동불가로 만들었는가.
순식간에 벗어날 수 있음에도 굳이 무리하여 병기들의 포격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하는 이유. 도출되는 답은 오직 유인뿐이었다.
처음 상황에 대응한 것이 그가 아니기에 벌어진 추격전이었으나, 이후 지휘를 맡은 그가 지시한 명령은 플라스마 레이저 포격이었고, 전황을 더욱 판단할 현재의 상황이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Destroy-12 재충전까지 1시간 40분 남았습니다.”
“대 화력 전차부대 모두 무사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상황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보고들 모두 알버트 중령의 생각대로였다. 이후 C-341, 즉 앨리스와 희령이 보일 행동에 따라 작전을 지시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광역 레이더에 포착되는 다수의 인원들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드론에서 촬영한 사진을 띄우게.”
“알겠습니다.”
그의 지시대로 전방의 디스플레이에는 족히 200에 달할 법한 검황국의 병사들이 이미 무너진 여관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저건.......”
“황실의 병사들.”
“C-341이 검황국에 의탁한 것입니까?”
희령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르나 뛰어난 신체능력과 기묘한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은 검황국의 강자 중 한 명일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측근이 내린 결론은 과학국의 추격부대를 처리할 요량에 이번 일을 계획했을 것이라는 판단은 내렸으나 알버트 중령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분명 얼음이 잔뜩 낀 예의 그 현장에서 충돌의 흔적이 있다고 했었지?”
프로스트가 패도검 투지의 힘을 이끌어내 닌자들과 함께 얼려버린 지역. 그곳에서의 분석까지 알버트는 전부 꿰고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설마.....”
“녀석들은 검황국에도 쫓기고 있다는 이야기지.”
“그렇다면 굳이 충돌을 이어갈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 그게 참 복잡해졌어.”
물론 부관의 말에 따라서 희령과 앨리스를 쫓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쫓아야만 하기에 알버트 중령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럼 C-341을 검황국에 넘겨줘야한다는 리스크가 있다.”
“......상황이 복잡해졌군요. 반드시 양측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일부러 조성하다니.”
“이 일을 꾸민 녀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잔머리 하나는 인정해야겠군.”
과학국의 군인들은 앨리스. 정확히는 그녀의 안에 박혀있는 코어를 회수해야만 했고, 검황국의 병사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하오와 관련이 있는 이들을 황성으로 데려가야만 했다.
최고 결정권자가 없는 이 미묘한 전장의 흐름을 그는 예측한 것이었다.
“사진 속의 정보로 봐서는 저들도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다. 아마, 이 비열한 짓거리를 생각해낸 놈이겠지.”
“.......”
옆의 부관은 그저 그의 명령을 따라야하기에 검황국의 검객들과 충돌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여 말을 아꼈지만 그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물러설 수는 없다. 우리의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는 것을 어리석은 검사들에게 보여줘야겠지. 지금부터 대인 전투까지 상정해 약물을 각자 소지하도록.”
알버트 중령은 그 전쟁의 시대를 겪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검황국이나 마법제국처럼 개개인이 강해지는 기간과는 전혀 다르게 기술이라는, 병기라는 것을 갈고 닦아온 현재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것을.
“최대한 병기로 맞설 것이나, 최악의 최악까지 상정한다.”
대인전투는 아무리 약물로 능력치를 뻥튀기하고, 첨단무기로 맞선다고 한들이기는 것은 쉽지 않기에 최대의 장점인 전술과 병기로 맞설 계획으로
“정찰 드론 또한 적에게 탄환을 조금이라도 쑤셔 박기 위해 살상모드로 바꾼다.”
모든 전력을 쏟아 부을 생각으로 부하에게 지시했다.
“네놈 장단에 어울려주마 건방진 녀석.”
사진 속 프로스트를 보며 알버트 중령의 입꼬리는 포악하게 올라갔다.
“콜록 콜록.”
이리저리 날려진 나머지 목 안으로 들어간 먼지가 꽤나 거슬렸던 듯 앨리스의 기침소리가 고요해진 황무지에 울려 퍼졌다.
“이상한데?”
“콜록....... 네?”
“녀석들 전혀 타격이 없어.”
희령이 천리도 볼 수 있는 눈을 통해 강풍에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으나, 과학국의 전력은 전혀 타격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차도, 차량도 시설도 건재한 모습에 희령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 진짜 요즘 녀석들은 왜들 이렇게!”
히바나도 과학국의 병력들도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해주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이다. 아무리 미끼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지만 모두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으로 타격을 주는 과학국의 결과가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제 프로스트님이 다 해주실 거예요.”
“그래. 녀석이 해줘야지. 이 정도로 스승을 굴려먹었으니 제대로 해야 돼.”
이제 프로스트와 여관이 있는 마을까지는 3km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들의 목표는 거의 달성한 셈. 방금의 엄청난 폭격을 그들도 보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어때? 이제 우리 노림수는 알았지?”
희령이 앨리스가 아닌 다른이에게 건네는 말이었고, 그 인물은 히바나였다.
“그렇군요. 좀 전의 일격이라면 저도 저곳에 위치한 병사들도 순식간에 사라졌을 겁니다.”
“꽤나 여유롭네? 어디까지 갈지 보고 싶을 정도야.”
“그 전에 모두 정리하면 될 일입니다. 이곳에서 저와 마주친 이상 저들이 당도하기 전에 끝을 낼 수도 있고요.”
히바나는 담담히 검을 꺼내들었다. 그가 이렇게 등장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희령은 프로스트와의 계약이 아직 유효함을 확인하고 부적을 꺼내들었다.
“프로스트는 아직 건재한가본데?”
“신령님이 대놓고 사라졌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있겠습니까.”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앨리스가 제일 걱정했을 프로스트의 안위를 확인시켜준 희령에게 속으로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이 말을 물어야만 했다.
“희령님 이제 어떡하죠?”
“어쩌긴 녀석한테 가야지.”
‘이빨은 아직 자라지도 않았고, 부적도 방금 결계로 얼마 안 남았어. 둘이 충돌할 때까지 최대한 도망친다.’
프로스트가 빨리 합류하기를 빌면서 희령은 한 쪽만 남은 다리로 축지를 밟았다.
- 작가의말
알바를 하기엔 복학도 애매하고 고민이 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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