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운은 별에 지다(4)
슈고들은 불길을 잡는다고 정신이 없다. 다행히 강이 근처에 있어 물을 퍼 나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언노운의 설명으로는 표적에 레이더를 발사하고 레이더에 비친 좌표에 유도되어 표적을 찾아가는 장치가 내장된 미사일의 한 종류라고 한다.
대상을 정밀하게 파괴할 수 있고 레이저에 유도되기 때문에 오차율이 거의 없다.
언노운이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면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았을 거다. 상대는 확인을 기하기 위해 추후 두 발을 더 날렸다.
폭발력은 대단하다. 네필림인 나라도 장담하지 못할 만큼의 파괴력이다. 언노운이 분석해도 몸이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되면 복구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니 막말로 십 년 감수한 셈이다.
"육문천은 미사일과 함께 자폭했는가? 여섯 명 모두 보이지 않으니?"
지도상에 육문천의 위치가 표시되지 않는다. 이것은 소멸한 거라고 봐야 한다. 하긴 미사일이 육문천과 내가 있는 곳에 직격 했으니까. 피하면서 힐긋 돌아봤지만 육문천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빠른 점등 하나가 내 쪽으로 접근한다.
"류스케사마 괜찮으십니까?"
"허, 내가 이쪽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뭐랄까? 감각입니다. 류스케사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쪽에 계실 것 같았습니다."
와타나베는 엉망이 된 내 옷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육문천이 습격했다. 이리로 몰려오기에 나 때문으로 파악돼서 미리 마중 나갔더니 아주 큰 선물을 들고 왔더구나."
와타나베는 나를 한 바퀴 돌며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그리고 머리의 뿔을 발견하고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와 같은 뿔을. 육문천과 같은 뿔이 있으시군요. 역시 천황의 무장. 신인류가 맞는군요."
인제 와서 와타나베에게 진실을 말하기는 이르다고 판단했다.
"누가 미사일 따위를 날렸는지 당장 확인해 봐야겠다. 어이없는 일이군. 나를 잡겠다고 미사일까지 준비해 왔어? 그것도 육문천에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자폭과 다름없는데 겐마가 아닐 확률이 높아. 설마 천황?"
궁금증이 도지면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린다.
"와타나베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 넌 여기 남아 있어라."
"아닙니다. 주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제가 어떻게 여기 있겠습니까?"
와타나베의 표정을 보니 말려서 될 것 같지 않았다.
"조심해야 한다. 상대는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아."
"알겠습니다."
나는 걸레가 되어 버린 사무라이 복장을 벗어 던지고 일본에 올 때 입고 있었던 슈트로 갈아입었다.
지도의 점등은 단출했다. 사이타마시의 신몬. 지바시의 히마다. 도쿄의 겐마. 딱 세 명뿐이다. 나머지는 고쇼에 해당하는 마인이고 아크 데몬은 이 세 명이 다였다.
'육문천이 정말 미사일 따위에 휘말려 전원 사망했다는 건가?'
【계산할 수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검색에 걸리는 않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소멸했다고밖에 결론을 내지 못합니다】
"그렇겠지."
풍신화를 신고 와타나베를 잡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화재를 진압하느라 베니마루의 인원이 모두 모여들었다. 도시의 한 블록이 증발했으니 대단한 위력이다. 물론 중국 상하이의 핵폭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뒤통수도 맞을 수 있구나. 또다시 핵폭탄 같은 일이 터지면 저번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검색 확장을 권고합니다. 마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 확장해 봐.'
언노운에게 말해 놓았던 것이 일본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 즉 전투력 500줄 이상만 지도상에 표기되도록 명해 놓았다. 언노운이 다시 마인의 위치를 표기하자 지도상에 무수한 점들이 나타났다.
"이것 봐라?"
나는 하늘 위로 떠 올랐다가 다시 건물 옥상으로 날아내렸다. 수많은 점등이 북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도쿄에 있던 아사쿠라 나생문, 서쪽 지바시의 히마다 겐조의 마인 이 모든 점등이 모두 사이타마시를 향해 밀려들고 있다.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둘이 왜? 설마? 와타나베 너는 여기 대기하고 있어."
와타나베를 옥상에 다시 내려 놓고 신몬을 향해 날았다. 신몬도 폭발음을 들었을 거다. 거대한 미사일 3기가 폭발했는데 못 들일은 없고.
신몬이 거주하는 건물 외벽 유리창을 박살 내고 그대로 뛰어들었다. 신몬은 무장하고 있었다. 그도 무언가 느낀 모양이다.
일본의 전통 갑옷인 아키타루와 같은 오오요로이를 시녀의 도움을 받으며 걸치고 있었다.
유리창을 박살 내고 들어온 나를 보면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사쿠라와 히마다 전 병력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몬은 콧바람을 내 쉬었다.
"올 것이 왔어. 우리 쪽에 내통자가 있는 것도 알고 있고 류스케공의 소문이 그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네. 류스케공이 육문천을 힘을 가진 신인류를 만들어 낸 것이 원인이외다."
그랬구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단지 내 심복 하나를 만들어 하백광처럼 일본을 제어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한번은 해야 할 일.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어?"
그는 내 이마에 솟은 거대한 뿔을 이제 확인한 모양이다.
"그대는 전혀 다른 뿔을 가졌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시고 정면 승부는 상대가 안될 겁니다. 뒤로 물러나는 편이."
"흥, 내 사전에 후퇴란 있을 수 없어. 겐마를 배신하고 나온 이후부터 이미 각오한 바다."
말려서 어떻게 될 일이 아니다.
"그럼 슈고들과 하따모또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진형을 잡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이미 연락을 취했네. 저 폭발은 역시 자네의 작품인가?"
"육문천이 이쪽으로 접근하기에 제가 마중 나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가 겨루고 있는 곳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미사일? 과거 인간의 전쟁 유물이 아닌가? 일본에서는 모두 소진되어 사라진 것인데?"
"누군가 만일을 준비해 숨겨 놓은 것이겠지요. 그런 미사일까지 동원하면서 왜 저를 죽이려 할까요? 그 폭발에 육문천까지 휘말려 사라졌습니다."
"호오, 그것 차라리 잘된 것 아닌가? 육문천이 사라졌다면 승부의 추는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모르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히마다 겐조의 마인 전원이 움직입니다. 그들도 북쪽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신몬의 표정을 차갑게 굳어졌다.
"생각보다 심각해져 버렸군. 평화 조약은 겉치레의 불과하지. 작은 불씨 하나만 떨어져도 불이 활활 타오를 기름 바다 같은 곳이니까."
"제 실수입니다. 제가 너무 나댔군요. 와타나베를 신인류로 만든 것이 두 세력에 큰 위협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삼신기가 모여야 만들어진다는 신인류를 그렇게 쉽게 만들어 냈으니 가만 있을 리 없을 거다. 이미 불씨는 기름 위로 떨어져 버렸어. 이제 그 누구도 끄지 못한다."
생각해보니 어처구니없게도 가장 한심한 짓을 저지른 것은 나다. 일본에 건너오기 전에 절대 이들의 역사에 관여하지 않겠다. 지켜 보는 자로서만 움직이자고 다짐한 것이 내가 아니던가.
마가타마에 관여하면서 와타나베까지 만들어 자랑했다. 한 마디로 갑질을 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이 지경이 된 것이다.
나는 왜 철없는 망나니처럼 굴었던 것일까? 내가 진짜 네필림으로서의 제목이 되는 인간인가? 망둥이처럼 설쳐 대기만 했고 결과는 평화 조약을 맺고 안정을 찾은 일본을 뒤집어엎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것이 과한 힘일수록 그 책임의 무게는 무겁다.
'3023, 어떻게 해야 할까? 베니마루를 도와야 하나? 겐마를 잡을까? 천황은? 내가 무얼 해야 하지?'
【일본에 온 목적은 네필림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겐마를 잡아 그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동안 신몬의 사람들은 학살 당할 거다. 두 세력이 모두 베니마루를 공격하지 않느냐?'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일에는 우선권이 있습니다. 네필림을 찾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안돼. 내 책임이 크다.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내 책임이야."
【인제 와서 도의적 책임을 공감하는 것은 잘못된 결과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망상입니다】
'씨발 너까지 왜 이래?'
【일본인이 어떻게 되든 그 또한 역사의 한 줄기라고 생각하십시오. 저희는 네필림의 위치만 알아내면 됩니다】
'오늘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텐데?'
【일본은 멸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번식하지 못하는 종족은 미래가 없습니다. 중국처럼 그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조금 앞당겨진다고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신몬 이 사태는 내가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이니 베니마루와 함께 싸우겠습니다."
신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입니까? 류스케공. 류스케공이 도와주신다면 정말 한 번 해볼 만한 일전이 될 겁니다. 류스케공 우리 베니마루의 선봉에 서 주시겠습니까?"
나는 이빨을 우두둑 갈았다. 나 자신에게 미친 듯이 욕을 해댔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오늘 또 수많은 생명이 사라질 것이다. 온전히 나로 인해.
내 멍청한 고구마 한가득 처먹은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3년 평화는 깨어졌고 일본 내 전 인원이 모두 쳐들어오는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애애애애애앵
사이타마시에 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쟁을 알리는 이 사이렌은 3년 만에 처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언노운이 관여하지 말라고 했으나 나는 미치도록 화가 났다. 나 자신에 대한 화다.
왜! 왜! 생각을 더 깊이 진중하게 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팔푼이인가? 네필림이라고 무적이라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슈고가 보는 앞에서 아키타루와 장난치고 신경 거슬린다고 와타나베를 아크 데몬으로 만들어 만인이 보는 앞에서 갑질하고.
아. 이건 도대체가 나는 무얼 하러 일본에 왔는가? 내가 네필림이라고 신의 힘을 가진 자라고 자랑하고 뻐기려고 왔는가? 사람들이 칭송하고 멋지다고 숭상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인가?
왜 이리 어리석은 짓만 골라 했던가. 자신을 자각하지 못한 한심한 인간이다. 이런 내가 무슨 네필림이고 인류를 구할 사명을 가진 사람이란 말인가?
난 그릇이 못 돼. 이모탈 시티 불사의 회람 회장 정도도 과분한 인간일 뿐.
와타나베가 있는 곳으로 다시 날아왔다.
"와타나베 목숨은 중요한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면 즉시 피하는 것이 옳다."
"네, 주군. 명심하겠습니다. 육문천과 만나면 즉시 피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육문천은 모두 죽었다. 그러면 네가 겐마와 히마다 다음으로 일본에서 강한 사람이 되는구나. 그럼 겐마와 히마다를 제외하고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테니 걱정이 없긴 하겠구나."
"베니마루에 몸을 담고 있지만, 저에게 주군은 하나뿐입니다. 류스케공을 위해서는 언제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섬뜩하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자. 살아남아라. 이것이 내 명령이다."
"네, 주군."
지도를 최대 크기로 확장했다.
"역시 전 일본이 모두 움직인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전이 되겠어."
와타나베는 내 이마에 솟은 뿔을 보더니 자신의 뿔을 만져 보았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은 같은 뿔. 와타나베는 기분이 좋은지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온다."
첫 번째 선발대가 아라카와 강을 건너고 있다. 나로 인해 일본을 유지하던 파워 인플레가 무너졌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지옥의 밤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서 있나? 도의적 책임인가? 베니마루를 위해? 내가 무엇 때문에 베니마루를 위해 싸워야 하지? 아사쿠라와 히마다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서 있는 거냐는 말이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냥 능력이 있으면 겐마에게 찾아가 그의 기억을 읽어 냈으면 그냥 끝날 일이다.
하루 만에 깔끔히 끝낼 수 있는 일을···. 나는 뭔 생각으로 움직였지. 일본은 중국과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이들의 삶을 겪어 보면 경험이 될 것 같다. 이런 사소한 생각들. 어려운 자를,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개념 똥으로 찬 망상들.
하백광을 만들어 중국을 손에 넣었듯이 이참에 와타나베를 이용해 일본도 제어해야겠다는 어리석은 발상들.
내 행동으로 인해 일본 전체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장기판이 세워 졌다. 이곳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
"최대한 수를 맞춰 놓고 대장의 목을 잡는다. 어떻게 하든 이 싸움을 중지시켜야 해."
중국 녹림 전투에서도 경험했듯이 마인의 싸움은 매우 처절하다. 완전히 목을 베어내 멀리 차버리지 않으면 금세 붙여 버린다. 잘린 신체 부위도 금세 붙여 버리고 상처도 순식간에 아물어 버린다.
상대를 확실히 죽여 놓기 위해 서는 철저하도록 잔인해져야 한다. 상대의 신체를 복구 가능할 정도로 찢어 놓아야 한다. 바닥은 흘러내린 내장으로 질퍽해진다. 목을 치고 배를 갈라 상처가 아물기 전에 뱃속의 내장물을 뽑아내야 한다.
마인의 싸움은 현실에 지옥이 강림한 것과 같다. 역겨운 피 냄새. 고통에 찬 비명이 까마귀 소리처럼 속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58번대의 슈고들이 전면으로 밀려 나왔다. 슈고다이 히로시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는 검을 치켜들며 슈고들을 독려했다.
"물러서지 말아라. 우리는 자랑스러운 베니마루 58번대 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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