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1)
대구는 상당히 큰 도시다. 군데군데 헌터들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과거의 도시답게 수많은 건물이 빼곡한 곳이다.
대구는 이모탈 시티에서의 마지노선 즉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지역이라고 알고 있다.
대구 너머로 나가는 것은 A급 헌터도 꺼린다.
대구까지가 이모탈 시티의 힘이 미치는 한계다. 이곳을 벗어나게 되면 태초의 환경, 저쪽 세계에 완전히 점령당한 원시적인 환경에 속한다.
몬스터와 데몬과 심지어 악마까지 거니는 죽음의 대지다. A 레벨 헌터라 해도 그 죽음의 밀림을 헤쳐 나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곳 대구에 숨어든 것이다. 그들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카피너를 이용할는지는 미지수다.
사문위원회는 무너졌고 조직의 수뇌부도 괴멸된 상태다. 사악귀라는 별칭의 특수 행동대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카피너를 납치했지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고 할 수 없이 이모탈 시티를 떠나는 방법을 선택 했을는지도 모른다.
놈들에게서 카피너를 찾아 복귀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이다. 나는 한 가지 고민한 것은 정동혁인 나 자신의 모습으로 움직여야 할지 데드 페이스로 움직여야 할 지였다.
둘 다 장단점은 있다. 정동혁으로 움직이면 주변 헌터의 눈치 없이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다만 허락 없이 대구까지 온 것을 들키면 나는 물론이고 김동현 박사도 곤란하게 된다.
이곳은 경험 많은 B 레벨 헌터나 A 레벨 헌터만 오는 곳이다. 어중간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바로 눈에 띄게 된다. 더욱이 나는 아카데미도 졸업하지 않은 정식 헌터도 아니다.
데드 페이스로 활동하면 당연히 헌터들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곳 헌터도 피해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언노운이 대구 전 지역을 스캔하기 위해서는 대구에서 가장 중심되는 곳으로 이동해야 범위에 담을 수 있었다.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던 꼼짝하지 않는다면 한동안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언노운이 스캔한 지역으로 접근했다. 대구의 중심이 되는 지역까지 건물과 건물을 타 넘고 뛰어다녔다.
김해나 울산처럼 완전히 탈환된 도시가 아니라 도시 내에 로밍몹이 상당히 돌아다닌다. 대부분 레서데몬이지만 흔한 고블린과 오크도 많다. A 레벨 헌터들은 그들을 사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내버려 둔다. 귀찮은 것이다.
하급 헌터가 와서 토벌을 못 하는 것은 레서데몬이 군데군데 끼어 있어서 함부로 나서지도 못한다.
레서데몬도 같은 종류라도 생긴 것도 조금씩 다르고 보유 능력도 다르다. 즉 놈들에게도 개성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큰 덩치에 엄청난 근육으로 상당한 힘을 내는 사람이 있지만 키도 작고 삐쩍 마른 약골이 있듯이 레서데몬도 마찬가지다.
같은 개체라도 강한 놈도 있고 약한 놈도 있다.
나는 심심하면 반월륜으로 놈들을 베어 넘기며 체크 했는데 레서데몬의 수준은 변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학살 가능했다.
대체로 놈들의 능력 수준은 인간으로 치면 B 레벨 헌터 정도였다.
언노운이 지시한 곳은 대구의 옛 시청 건물이었고 이곳은 이모탈 시티와 연결된 게이트가 있어 헌터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곳이었다.
난잡한 김해나 정갈한 울산에 비해 이곳은 한적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A 레벨 헌터들은 사회 제약을 덜 받는다. 그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던전 며칠 뛰면 쉽게 마련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일을 하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봐 너 혼자야? 혼자면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을래?"
시청 건물 옥상에서 검색하고 있는데 몇 명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 시간이면 대부분 던전 공략에 매달릴 때인데 던전을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은 다른 목적이 있다.
지금처럼 동료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다. A 레벨 헌터들은 강제로 던전을 도는 것이 아니라 재미 삼아 모험 삼아 도는 사람들이 많다.
F 레벨은 먹고 살기 위해 던전을 돌지만, A 레벨은 취미 삼아 던전을 돈다. 그렇게 돌아도 F 레벨보다 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벌고 여가 생활도 즐길 대로 즐긴다.
각성하는 레벨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나는 말을 걸어온 자를 힐끗 쳐다봤다. 나이는 30대 초반에 건장한 체격의 사내다.
"죄송합니다. 전 이미 파티가 있어요."
"그래? 그럼 이 시간에 던전을 가지 않고 왜 여기에 있지?"
"오늘은 기분이 좀 그래서요.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분위기 익숙하지 않고."
"너 B야 A야?"
"A입니다."
"그렇군. 나이를 보니 그래도 몇 년은 돌아다녔을 법한데?"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 길드에서 박사 조수로 몇 년을 구웠거든요."
"그렇군, 어쩐지 얼굴이 낯설다 했어. 하하."
"여기에 던전은 많아요?"
"음, A, B 다 합쳐서 최소 20개 정도는 돼."
"20개라 김해에 비하면 작네요."
"그래도 김해 던전 10개 합쳐도 여기 던전 하나만 못하지. 안에든 내용물이 완전 다르잖아. 여긴 건져내면 다 돈이니까."
"A 레벨들은 돈 벌기 참 쉬운 구조로군요."
"당연하지 능력이 있으면 그만큼 활용 하는 게 무슨 죄야."
"여긴 그래도 울산보다는 낫군요. 거긴 회색빛이라 우중충한데 여긴 그래도 밝네요."
"후후, 던전안에 있어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텐데. 이곳에는 지저분한 던전이 꽤 많거든."
"지저분요?"
"그래, 너 진짜 여기 처음이구나. 그동안 여기 던전 몇 번이나 돌아봤어?"
"음, 서너 번요."
"와, 올해 갓 졸업한 아카데미 헌터랑 다른 바가 없잖아."
"네, 길드 본사 생활을 몇 년 했더니 그렇게 됐어요."
"네가 B-2 던전을 안 가봤구나. 그지?"
"네, 아직 못 가봤어요."
"후후, 그 던전은 정말 지저분한 던전이지. 가장 많은 몬스터에 미로 던전이거든. 그곳이 발견된 지 50년 정도 됐는데 아직 완전히 공략 안 된 던전이라고. 미로라서 한 번 길을 잃으면 끝장이지. 솔직히 그곳에서 행방불명된 헌터도 상당수 돼."
나는 귀찮고 흥미 없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전에 범죄를 저지른 헌터 한 명이 그곳에 숨었는데 추적자들이 모두 포기하고 나왔지. 그 헌터는 아직도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하하."
그 말에 갑자기 머리가 확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거추장스러운 카피너를 데리고 추적대를 피해 숨어 있으려면 가장 좋은 곳이 그 던전일지도 몰랐다.
던전이 아닌 도시 내에 숨어 있다면 금세 발각될 것이다.
"B-2 던전이라고 했죠?"
"맞아 미노타우로스의 미로라고 하지."
"정보 고마웠어요. 그 던전은 어디에 있죠?"
"왜? 가 보게? 에이, 지금 시간이 그래서 가봤자."
"아뇨 그냥 구경만 좀 해 볼게요. 말을 들으니 매우 궁금해 져서요."
"좋아. 내가 데려가 줄게."
자신을 박해진라고 소개한 헌터는 미노타우로스의 던전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는 뭐가 그리도 재미나는지 쉬지 않고 주절주절했다.
박해진은 큰 도로 한가운데 난 던전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B-2 던전이야. 외관상 일반 던전과 다른 바 없지만 들어가면 놀랄 거다."
박해진의 말대로 던전 입구는 김해의 어느 던전과 비교해도 크게 다른 바가 없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던전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확 막았다.
메케한 곰팡내에 오래된 축축한 수분의 느낌이 신경을 깨웠다.
돌벽으로 된 일직선의 통로다. 이 통로는 완벽한 입방체의 구성을 하고 있는데 앞쪽은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언노운 지도 스캔 해줘."
[알겠습니다. 스캔 중 3분 28초 소요 예상]
"엉? 뭐라고?"
"아니에요. 혼잣말 한 거예요."
"더 가 볼래? 일직선이 끝나는 곳까지 가 보자고."
나와 박해진은 일직선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곧 양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은 입구라고 쓰여 있고 오른쪽은 출구라고 쓰여 있다.
"어때 간단하지? 왼쪽은 입구고 오른쪽은 출구야. 입구로 들어가서 출구로 나오면 되는 간단한 구조지. 하하."
[스캔 완료. 지도를 띄우겠습니다]
언노운이 띄워준 지도에는 몇 가지 색상의 점들이 점등되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는 붉은색으로 안에서 움직이는 헌터는 초록색으로 나는 생각보다 많은 헌터가 이곳에 있는 것에 놀랐다. 어림잡아도 30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대부분 그룹으로 뭉쳐져 있는 거로 봐서 파티 별로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지점이 한곳에 11명이 모여 있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다른 파티는 모두 이동하고 있지만 이 11명은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 그들이 모인 곳을 보니 사방이 꽉 막힌 막다른 곳임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다. 이놈들 생각대로 이곳에 숨어 있었구나."
그들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만큼 몸을 숨기기에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언노운 11명이 모인 곳으로 최단 거리 표시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 이봐! 함부로 움직이면 미아가 된다니까 조심해야 해."
박해진이 내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요. 이제부터 저 혼자 가 볼게요. 안내해 주셔서 고마워요."
"무슨 말을, 널 이렇게 보내면 후회하게 될 거야. 이곳은 미로라 준비하고 오지 않으면 안 돼. 이곳은 리셋 될 때마다 던전의 위치도 바뀌어 버려 이곳에 갇히면 끝이란 말이야."
"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전 충분히 탈출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넌 괜찮은지는 몰라도 내가 안 돼. 할 수 없군, 잠시 기다려봐 여기에 이렇게 표시를 남기고 이동해야지."
박해진은 통로 벽에 자신만 알 수 있는 표식을 새겼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길을 잃어버려. 이곳은 모두 같은 구조야 특징이 없어 길을 잃어버리기 딱 좋지."
"그러니까 혼자 간다니까요. 여기서 헤어져요. 전 더 깊숙이 들어갈 겁니다."
"안돼 널 여기 안내해 주고 그냥 보낸다면 내가 나쁜 놈이 되잖아. 그럼 안 되지 널 끝까지 책임져 주겠어."
'아니 이 양반은 또 왜 이러지. 귀찮게시리'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느낌이라 기분이 찜찜하다. 보니 계속 따라붙을 모양이다.
"전 계속 갈 겁니다. 알아서 하세요."
박해진을 무시하듯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박해진은 안절부절못하면서 고민하더니 내 뒤로 따라붙는다. 나는 갈림길이 나와도 거침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박해진은 기겁하고 벽에서 단검으로 흔적을 그어 놓았다.
앞서 누군가 지나갔기 때문인가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A 레벨 던전이다. 나는 정말 예기치 않게 A 레벨 초출을 이런 식으로 맞이해야 했다.
너무나 거침없이 들어가는 나 때문에 박해진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는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저 미친놈을 계속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말이다.
이곳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하루 안에 빠져나오지 못해 던전 리셋이 되어 버리면 끝장이라는 소리다.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마구 전진하자 박해진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벽면에 흔적을 새기느라 바빴다. 나는 그걸 기다려 주지 않고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생각보다 미로는 넓고 복잡했다. 언노운이 길을 표시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전진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박해진은 안절부절 난리가 난 것이다.
"아니, 그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따라다니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세요."
박해진은 돌연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너, 혹시 자살하려고 여기 들어온 것은 아니지? 생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다른 좋은 방법도 많아. 왜 하필."
나는 이 박해진이 오지랖이 많아도 정말 많은 사람인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끙, 마음대로 하세요. 전 그럼 이만."
다음 갈래 길이 나왔을 때 나는 박해진이 단검을 뽑아 들고 흔적을 남기려는 찰라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알다시피 내 신체 지수는 S 레벨에 도달해 있다. 나를 따라오려면 전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힘들 거다.
"이봐. 헉헉, 같이 가자고 왜 그리 빨리 가."
끝내 이 박해진은 나를 따라 왔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을 소명으로 하는 자가 아니면 정신 이상자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음 입구로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고약한 짐승 냄새.
통로의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눈동자들이 랜턴 불빛에 반사됐다.
"레서데몬이야. 조심해 이제부터는 처녀 길인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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